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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7화 거지 그리츠(Gritz) (3) - 기괴한 문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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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기다, 저기 있어! 빨리 무녀님께 알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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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멍청아, 소리 줄여…! 들키면 어쩌려고… 아, 아! 제길! 도망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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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용히, 조용히 감시하는 거다. 내가 무녀님을 데리고 올 테니, 들키지 말고 잘 지켜보고 있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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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 잠깐만요, 저놈 다른 곳으로 가는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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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멀리서 보고만 있어도 귀신같이 알아채고 사라져 버리잖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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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거 사람이 맞긴 해? 무슨 괴물 같은 거 아니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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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렇게 되면 이판사판이다!! 그냥 붙잡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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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밧줄 가져와, 밧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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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당탕탕. 시끌시끌. 와장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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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시 곳곳에서 오크통을 찾는 이들의 우여곡절이 벌어졌으나, 그중 목적을 이룬 이는 단 하나도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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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크통의 행적이 얼마나 신출귀몰한지, 어찌어찌 찾아낸다고 한들 그레이스를 데려오기도 전에 다른 곳으로 사라져 버리기 일쑤였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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잡힐 듯 잡히지 않는 그 얄미운 행보에 열받은 이들이 아예 직접 오크통을 붙잡기 위해 나서기도 했지만, 그로 인해 얻은 성과라고는 심각한 근육통과 바닥난 체력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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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그렇게 의뢰에 실패한 이들은, 그레이스에게로 돌아와 하소연을 내뱉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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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말로 최선을 다했습니다. 하지만 놈이 워낙에 재빠르고 눈치가 빠른 탓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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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떻게든 놈을 잡아보겠다고 노력하다가 여기저기 삐고 멍까지 들었습니다, 당장 내일 또 일을 나가봐야 할 텐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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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들이 떠드는 내용은 제각각이었으나, 그 의미는 사실 똑같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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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록 의뢰는 실패했지만, 그래도 노력을 가상하게 여겨 조금이라도 보상해 줬으면 좋겠다는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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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찌 보면 뻔뻔하다고 할 수 있는 행동이었으나, 그레이스는 화를 내거나 그들을 매몰차게 내치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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애초에 이 도시 사람들에게 ‘무녀님’이란 고귀하긴 하되 가능하면 엮이고 싶지 않은 존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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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데도 그레이스의 의뢰를 받아 열심히 뛰었다는 건, 그만큼 돈이 없거나 사정이 절박한 이들이라는 뜻.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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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로, 그녀는 부드럽게 미소 지으며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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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군요. 당시의 상황을 자세히 알려주시겠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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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 그래도 오크통의 기상천외한 움직임에 빈번히 골탕을 먹은 이들은 누군가에게 자기가 겪은 일을 하소연이라도 하고 싶은 심정이었기에, 그레이스의 질문에 열과 성을 다해 대답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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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대로 수색 작업에 제대로 참여하지 않고 그저 농땡이나 피우다가 남들 사이에서 보상만 타 먹으려 했던 이들은 그만큼 말하는 내용이 허술하거나 여기저기 빈틈이 많았기에, 이를 알아채는 건 그리 어려운 일이 아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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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려고만 하면 유용한 정보를 가져온 이들에게만 보상을 주는 것도 가능했겠지만, 그레이스는 구태여 둘을 구분하지 않고 모두에게 보상을 내놓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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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짓말을 들키거나 잘못을 지적받았을 때, 모든 사람이 부끄러워하거나 죄책감을 느끼는 건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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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중에는 오히려 진실을 말한 이에게 원한을 품고 아무튼 상대가 나쁘다고 밀어붙이는 이들도 적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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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녀님’에게 대놓고 덤비는 인간이야 없겠지만, 괜히 고아원 쪽에 가서 엉뚱한 화풀이라도 할지 모르니 어지간하면 원한은 쌓지 않는 것이 좋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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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차피 이렇게 빠져나가는 돈은 카닐리안 가문에서 준 ‘품위 유지비’라서 딱히 아낄 필요도 없었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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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게 사람들이 떠나간 뒤, 그레이스는 추격자들의 증언을 활용해 분석을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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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크통이 가장 빠르게 굴러갔을 때 속도는 어느 정도인지, 그놈의 공중 점프는 어디까지 가능한지, 주로 출몰하는 장소는 어딘지 등, 그레이스가 직접 체험하며 알아냈다면 몇 달은 우습게 걸렸을지도 모를 정보들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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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루만으로는 정리가 안 된 나머지, 그 뒤에도 저택 내에서 골머리 앓기를 며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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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침내 그레이스의 얼굴에 미소가 떠올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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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들 앞에서 보여주던 차분하고 정숙한 미소와는 거리가 먼, 재미있는 장난을 떠올린 악동 같은 웃는 얼굴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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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음 휴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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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레이스가 돈을 흩뿌려가며 오크통 수색에 나섰다는 이야기를 들은 사람들은 어쩌면 이번에도 비슷한 일이 있을지 모른다며 기대를 품었지만, 안타깝게도 그레이스는 모습을 드러내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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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부 인원들이 ‘일단 오크통을 잡아 놓고 무녀님에게 가보자’라는 생각을 품고 오크통 포획 작전에 덤벼들기도 했지만, 저번보다 더 많은 인원이 조직적으로 행동해도 될지 의문인 판에 그런 되면 좋고 아니면 말고 식의 행동이 성공할 리가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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많은 이들이 허탕의 아쉬움을 뒤로한 채 떠나가고, 마침내 해가 질 무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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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전의 팽팽하고 소란스럽던 분위기가 사라져 정적이 찾아온 골목을, 오크통이 드르륵 소리를 내며 굴러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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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그렇게 굴러가는 오크통 근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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길 구석에 쌓인 잡동사니 더미 아래에서, 그레이스는 조용히 숨을 죽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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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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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갑고, 눅눅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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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부고 근육이고 뼈고 뭐 어디가 먼저랄 것도 없이 온갖 군데에서 비명을 지르는 듯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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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크통이 아침 식사 확보를 위해 자리를 비운 사이 노려 이곳에 숨어든 뒤, 그대로 해가 질 때까지 길바닥에 엎드린 채 자세 한번 못 바꾸고 대기 중이었으니 그야 몸이 멀쩡할 리가 만무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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툭 터놓고 말해서, 단순히 매복했다가 덤벼드는 것만이라면 이렇게까지 할 필요는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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적당한 누더기 같은 걸 구해 뒤집어쓴 채 숨어 있었어도 괜찮았을 테고, 바닥에 깔개 같은 걸 깔 수도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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뭣보다 오크통이 지금 그레이스 옆을 지나가는 것만 벌써 네 번째니, 그중 몇 번 째든 간에 공격을 시도할 수 있었을 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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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그레이스는 그 모든 유혹을 뿌리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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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 식으로 외부 물건을 가져다가 숨는 데 활용했다면, 오크통의 경계를 살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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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대한 그 자리에 있는 물건을 활용해서, 그것도 배치를 거의 바꾸지 않고서 숨으려고 하면 이런 꼴로 숨는 것 외에는 달리 방법이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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습격 기회가 몇 번이나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지금까지 참은 것 역시 같은 맥락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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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야 기습의 성공률이 높아질 테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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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마 본인이 몇 번이고 지나간 길에, 이미 한참 전부터 그녀가 매복하고 있으리라고는 생각하지 않을 테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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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 삼자가 보면 대체 왜 그렇게까지 하는 거냐고 어이없어할지도 모르지만, 원래 이런 바보짓은 진심으로 하는 만큼 즐거워지는 법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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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마침내. 기다리고 기다리던 순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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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자 그대로 온몸을 날리다시피 하며, 그레이스는 오크통을 덮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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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잡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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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레이스의 말에는 다소 오류가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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잔뜩 굳어 있던 사지가 제대로 움직여주지 않은 탓에 사실 ‘잡았다’기보다는 ‘매달렸다’에 가까웠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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허나 그레이스는 그런 사소한 부분은 무시했다. 어쨌든 양손으로 움켜쥔 이 사냥감의 감촉만큼은 진짜였으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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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마침내 대답이 돌아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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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참 미련한 년일세. 뭐가 그리도 절박한 건지. 쯧쯧.”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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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척이나 투박한, 좀 더 속되게 말하자면 ‘껄렁거린다’라는 표현이 어울리는 말투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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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약 저 오크통 안에서 무언가가 들려온다면 분명 인간의 언어로 형용하기 어려운 괴성일 것이라 여겼던 그레이스는 화들짝 놀라 눈을 껌뻑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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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든 말든 오크통은 신랄한 독설을 이어 나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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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잡았으니 뭐 어쩌라는 거냐. 내가 여기서 빙빙 돌기 시작하면 네년 손모가지가 박살 날 거라고는 생각도 안 해본 거냐? 아니, 굳이 손에 한정할 것도 없겠군. 점프 한 번 한 뒤에 네년 위에 착지하면 그대로 콰직 일 테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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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뜻 살벌하게마저 느껴지는 그 말을 앞두고, 그레이스가 대답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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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 그렇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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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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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뭐 어때요. 그땐 그때인 거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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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심한 말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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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각이나 감정이 없다는 의미가 아니라, 정말로 그렇게 된다고 한들 뭐 그건 그것대로, 라는 체념이 느껴진다는 점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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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레이스는 옷에 묻은 먼지나 검댕이 따위를 대충 털어낸 뒤(별다른 의미는 없었다), 그대로 오크통에게 고개를 꾸벅 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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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녕하세요, 오크통씨. 혹시 시간 좀 되시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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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부라면 안 산다. 그럴 돈도 없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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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부 아닌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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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옷 꼬라지를 하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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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핫, 초대면에 성희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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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길거리 거지한테 신사적인 대응을 바라는 년놈들이 머리가 빈 거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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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건 그렇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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흠흠, 하고 그레이스는 고개를 끄덕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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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재차 질문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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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서, 시간 되시나요? 저, 오크통씨한테 이것저것 궁금한 게 되게 많은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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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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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크통이 잠시 침묵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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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크통의 높이가 그레이스의 키와 비슷했기에 내부를 살펴보는 건 불가능했지만, 어째서인지 그레이스는 그가 자신을 지긋이 바라보고 있는 듯한 기분이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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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니, 여태까지의 대화를 생각해 볼 때 실제로 어떻게든 보고 있는 게 틀림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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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쑥, 오크통 안쪽에서 지팡이가 솟아올라 어느 한 방향을 가리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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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쪽으로 쭈욱 가면 푸른빛이 도는 바위가 있는데, 아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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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연히 알죠. 여기 토박이인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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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루 중 그림자가 가장 짧은 시간에 거기로 와라. 한 끼 식사를 가져오면 잠깐 수다 정도야 떨어주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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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레이스는 ‘지금 당장은 안 되나요?’라고 질문하려 했다가 그만두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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몇 마디 대화를 나눈 것만으로도 알 수 있을 만큼 까탈스러워 보이는 인물이니, 괜히 이래저래 토를 다는 것보다야 상대가 한 수 물러줬을 때 받아들이는 게 좋을 것 같았으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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뭣보다, 이렇게 기다리는 건 그것대로 좋은 시간 때우기가 될 터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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또다시 일주일 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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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레이스는 대량의 빵과 식초와 허브를 섞은 음료 따위를 챙겨 약속 장소로 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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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크통씨! 저 왔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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푸른빛이 도는 바위 위에서 낮잠 자는 개처럼 널브러진 오크통을 향해, 그레이스가 마치 데이트라도 나온 것처럼 발랄한 음성으로 말을 걸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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표정이며 눈빛에서 상대를 놀려주려는 장난기가 다분히 묻어나오긴 했지만, 그걸 알면서도 헤어 나오기 어려울 만큼 매력이 충만한 모습이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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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오크통의 반응은 지극히 시큰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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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밥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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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기 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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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레이스가 가져온 묵직한 바구니, 평범한 사람이라면 며칠은 배불리 먹을 수 있을 것 같은 그것을 보고 오크통이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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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 혹시 계산할 줄 모르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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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뜬금없이 무슨 소리예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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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을 10이라고 주장할 것 같아서 하는 소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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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 많이 주면 대답도 더 성실해질 것 같아서 그랬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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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 성실해지기는. 배때기는 한정되어 있는데 거기에 억지로 욱여넣어 봐야 터지기만 할 뿐이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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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크통은 그리 냉소한 뒤, 지팡이 끝으로 바구니 안의 내용물을 가볍게 낚아 올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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빵 하나와 음료 한 대접이 하늘 높이 솟구쳤다가 오크통 안으로 떨어졌는데, 빵이야 어찌 됐든 음료는 나무 그릇에 담겨 있는데도 한 방울도 바닥에 튀거나 흐르지 않은 것이 실로 기묘한 재주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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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이상은 받을 생각 없다는 듯이 침묵한 오크통의 모습에, 그레이스는 남은 음식들을 옆에 놓아두고 말을 걸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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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 오크통 안에 들어가 있는 건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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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게 내 집이고, 옷이고, 말이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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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게 전부 하나일 수 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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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가 안 될 이유는 또 뭐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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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편할 거 같아서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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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면 궁궐 같은 집에서 장식이 잔뜩 달린 신발을 신고 말을 타고 돌아다니면 그건 편한 거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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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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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레이스는 살짝 감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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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도시에서 가장 큰 저택에서 거추장스러울 만큼 화려한 생활을 하고 있는 그녀 입장에선 제법 와닿는 이야기였으니까. 그래도 말은 안 탔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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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게 빨리 굴러다니면 어지럽지 않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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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는 걷고 있으면 다리가 안 피곤하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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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크통 안이 어떻게 되어 있는지 봐도 되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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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너 벗겨놓고 내용물 좀 보겠다고 하면 끄덕일 거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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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 그렇게 말이 삐딱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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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래 개 눈에는 개만 보이는 법이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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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후로도 기괴하고, 무례하고, 남들이 보면 저게 대체 뭔가 싶은 대화는 한참이나 이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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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어졌지만, 거기에도 결국 끝은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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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크통 속 괴인의 이름이 ‘그리츠’라는 걸 알게 된 것을 마지막으로, 그레이스는 문득 더 이상 내뱉을 질문이 없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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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건 무척이나 실망스러운 일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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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녀는 자신이 이 기괴한 남자와의 대화를 무척이나 즐기고 있다는 걸 재차 자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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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물쭈물 새로운 질문을 짜내기 위해 골머리를 앓는 그레이스를 향해, 그리츠가 질문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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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야기는 끝이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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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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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 라고 대답하면 그걸로 이 대화는 끝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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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쩌면 이 괴인과의 관계 역시 끝나버릴지 몰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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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뒤에는 다시 예전처럼 갑갑하고 생각하기 싫은 것들로 가득한 삶이 기다리겠지. 언제까지 이어질지 그녀도 정확히 모르는. 하지만 아마 그리 길지는 않을 삶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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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뇨. ─혹시, 제 이야기를 들어주실 수 있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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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츠는 심드렁하게, 하지만 마음대로 하라는 듯이 수긍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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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그레이스의 입에서 새로운 이야기가 시작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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