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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5-12-14 21:31:57 +09: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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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7화 거지 그리츠(Gritz) (3) - 기괴한 문답

“저기다, 저기 있어! 빨리 무녀님께 알려!”

“이 멍청아, 소리 줄여…! 들키면 어쩌려고… 아, 아! 제길! 도망친다!!”

“조용히, 조용히 감시하는 거다. 내가 무녀님을 데리고 올 테니, 들키지 말고 잘 지켜보고 있어.”

“자, 잠깐만요, 저놈 다른 곳으로 가는데요?”

“멀리서 보고만 있어도 귀신같이 알아채고 사라져 버리잖아!?”

“저거 사람이 맞긴 해? 무슨 괴물 같은 거 아니야?”

“이렇게 되면 이판사판이다!! 그냥 붙잡아!!”

“밧줄 가져와, 밧줄!!”

우당탕탕. 시끌시끌. 와장창.

도시 곳곳에서 오크통을 찾는 이들의 우여곡절이 벌어졌으나, 그중 목적을 이룬 이는 단 하나도 없었다.

오크통의 행적이 얼마나 신출귀몰한지, 어찌어찌 찾아낸다고 한들 그레이스를 데려오기도 전에 다른 곳으로 사라져 버리기 일쑤였기 때문이다.

잡힐 듯 잡히지 않는 그 얄미운 행보에 열받은 이들이 아예 직접 오크통을 붙잡기 위해 나서기도 했지만, 그로 인해 얻은 성과라고는 심각한 근육통과 바닥난 체력뿐.

그리고 그렇게 의뢰에 실패한 이들은, 그레이스에게로 돌아와 하소연을 내뱉었다.

“정말로 최선을 다했습니다. 하지만 놈이 워낙에 재빠르고 눈치가 빠른 탓에….”

“어떻게든 놈을 잡아보겠다고 노력하다가 여기저기 삐고 멍까지 들었습니다, 당장 내일 또 일을 나가봐야 할 텐데….”

사람들이 떠드는 내용은 제각각이었으나, 그 의미는 사실 똑같았다.

비록 의뢰는 실패했지만, 그래도 노력을 가상하게 여겨 조금이라도 보상해 줬으면 좋겠다는 것.

어찌 보면 뻔뻔하다고 할 수 있는 행동이었으나, 그레이스는 화를 내거나 그들을 매몰차게 내치지 않았다.

애초에 이 도시 사람들에게 ‘무녀님’이란 고귀하긴 하되 가능하면 엮이고 싶지 않은 존재다.

그런데도 그레이스의 의뢰를 받아 열심히 뛰었다는 건, 그만큼 돈이 없거나 사정이 절박한 이들이라는 뜻.

고로, 그녀는 부드럽게 미소 지으며 말했다.

“그렇군요. 당시의 상황을 자세히 알려주시겠어요?”

안 그래도 오크통의 기상천외한 움직임에 빈번히 골탕을 먹은 이들은 누군가에게 자기가 겪은 일을 하소연이라도 하고 싶은 심정이었기에, 그레이스의 질문에 열과 성을 다해 대답했다.

반대로 수색 작업에 제대로 참여하지 않고 그저 농땡이나 피우다가 남들 사이에서 보상만 타 먹으려 했던 이들은 그만큼 말하는 내용이 허술하거나 여기저기 빈틈이 많았기에, 이를 알아채는 건 그리 어려운 일이 아니었다.

하려고만 하면 유용한 정보를 가져온 이들에게만 보상을 주는 것도 가능했겠지만, 그레이스는 구태여 둘을 구분하지 않고 모두에게 보상을 내놓았다.

거짓말을 들키거나 잘못을 지적받았을 때, 모든 사람이 부끄러워하거나 죄책감을 느끼는 건 아니다.

개중에는 오히려 진실을 말한 이에게 원한을 품고 아무튼 상대가 나쁘다고 밀어붙이는 이들도 적지 않았다.

‘무녀님’에게 대놓고 덤비는 인간이야 없겠지만, 괜히 고아원 쪽에 가서 엉뚱한 화풀이라도 할지 모르니 어지간하면 원한은 쌓지 않는 것이 좋았다.

어차피 이렇게 빠져나가는 돈은 카닐리안 가문에서 준 ‘품위 유지비’라서 딱히 아낄 필요도 없었고.

그렇게 사람들이 떠나간 뒤, 그레이스는 추격자들의 증언을 활용해 분석을 시작했다.

오크통이 가장 빠르게 굴러갔을 때 속도는 어느 정도인지, 그놈의 공중 점프는 어디까지 가능한지, 주로 출몰하는 장소는 어딘지 등, 그레이스가 직접 체험하며 알아냈다면 몇 달은 우습게 걸렸을지도 모를 정보들이었다.

하루만으로는 정리가 안 된 나머지, 그 뒤에도 저택 내에서 골머리 앓기를 며칠.

마침내 그레이스의 얼굴에 미소가 떠올랐다.

사람들 앞에서 보여주던 차분하고 정숙한 미소와는 거리가 먼, 재미있는 장난을 떠올린 악동 같은 웃는 얼굴이었다.


다음 휴일.

그레이스가 돈을 흩뿌려가며 오크통 수색에 나섰다는 이야기를 들은 사람들은 어쩌면 이번에도 비슷한 일이 있을지 모른다며 기대를 품었지만, 안타깝게도 그레이스는 모습을 드러내지 않았다.

일부 인원들이 ‘일단 오크통을 잡아 놓고 무녀님에게 가보자’라는 생각을 품고 오크통 포획 작전에 덤벼들기도 했지만, 저번보다 더 많은 인원이 조직적으로 행동해도 될지 의문인 판에 그런 되면 좋고 아니면 말고 식의 행동이 성공할 리가 없었다.

많은 이들이 허탕의 아쉬움을 뒤로한 채 떠나가고, 마침내 해가 질 무렵.

이전의 팽팽하고 소란스럽던 분위기가 사라져 정적이 찾아온 골목을, 오크통이 드르륵 소리를 내며 굴러갔다.

그리고 그렇게 굴러가는 오크통 근처.

길 구석에 쌓인 잡동사니 더미 아래에서, 그레이스는 조용히 숨을 죽였다.

“…….”

차갑고, 눅눅하다.

피부고 근육이고 뼈고 뭐 어디가 먼저랄 것도 없이 온갖 군데에서 비명을 지르는 듯하다.

오크통이 아침 식사 확보를 위해 자리를 비운 사이 노려 이곳에 숨어든 뒤, 그대로 해가 질 때까지 길바닥에 엎드린 채 자세 한번 못 바꾸고 대기 중이었으니 그야 몸이 멀쩡할 리가 만무했다.

툭 터놓고 말해서, 단순히 매복했다가 덤벼드는 것만이라면 이렇게까지 할 필요는 없었다.

적당한 누더기 같은 걸 구해 뒤집어쓴 채 숨어 있었어도 괜찮았을 테고, 바닥에 깔개 같은 걸 깔 수도 있었다.

뭣보다 오크통이 지금 그레이스 옆을 지나가는 것만 벌써 네 번째니, 그중 몇 번 째든 간에 공격을 시도할 수 있었을 터.

하지만 그레이스는 그 모든 유혹을 뿌리쳤다.

그런 식으로 외부 물건을 가져다가 숨는 데 활용했다면, 오크통의 경계를 살지도 모른다.

최대한 그 자리에 있는 물건을 활용해서, 그것도 배치를 거의 바꾸지 않고서 숨으려고 하면 이런 꼴로 숨는 것 외에는 달리 방법이 없었다.

습격 기회가 몇 번이나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지금까지 참은 것 역시 같은 맥락이었다.

그래야 기습의 성공률이 높아질 테니까.

설마 본인이 몇 번이고 지나간 길에, 이미 한참 전부터 그녀가 매복하고 있으리라고는 생각하지 않을 테니까.

제 삼자가 보면 대체 왜 그렇게까지 하는 거냐고 어이없어할지도 모르지만, 원래 이런 바보짓은 진심으로 하는 만큼 즐거워지는 법이었다.

그리고 마침내. 기다리고 기다리던 순간.

문자 그대로 온몸을 날리다시피 하며, 그레이스는 오크통을 덮쳤다.

“잡았다…!”

그레이스의 말에는 다소 오류가 있었다.

잔뜩 굳어 있던 사지가 제대로 움직여주지 않은 탓에 사실 ‘잡았다’기보다는 ‘매달렸다’에 가까웠기 때문이다.

허나 그레이스는 그런 사소한 부분은 무시했다. 어쨌든 양손으로 움켜쥔 이 사냥감의 감촉만큼은 진짜였으니까.

그리고, 마침내 대답이 돌아왔다.

“─거참 미련한 년일세. 뭐가 그리도 절박한 건지. 쯧쯧.”

무척이나 투박한, 좀 더 속되게 말하자면 ‘껄렁거린다’라는 표현이 어울리는 말투였다.

만약 저 오크통 안에서 무언가가 들려온다면 분명 인간의 언어로 형용하기 어려운 괴성일 것이라 여겼던 그레이스는 화들짝 놀라 눈을 껌뻑였다.

그러든 말든 오크통은 신랄한 독설을 이어 나갔다.

“잡았으니 뭐 어쩌라는 거냐. 내가 여기서 빙빙 돌기 시작하면 네년 손모가지가 박살 날 거라고는 생각도 안 해본 거냐? 아니, 굳이 손에 한정할 것도 없겠군. 점프 한 번 한 뒤에 네년 위에 착지하면 그대로 콰직 일 테니까.”

언뜻 살벌하게마저 느껴지는 그 말을 앞두고, 그레이스가 대답했다.

“오, 그렇네요?”

“……?”

“뭐 어때요. 그땐 그때인 거지.”

무심한 말이었다.

생각이나 감정이 없다는 의미가 아니라, 정말로 그렇게 된다고 한들 뭐 그건 그것대로, 라는 체념이 느껴진다는 점에서.

그레이스는 옷에 묻은 먼지나 검댕이 따위를 대충 털어낸 뒤(별다른 의미는 없었다), 그대로 오크통에게 고개를 꾸벅 숙였다.

“안녕하세요, 오크통씨. 혹시 시간 좀 되시나요?”

“창부라면 안 산다. 그럴 돈도 없어.”

“창부 아닌데요?”

“그 옷 꼬라지를 하고?”

“핫, 초대면에 성희롱?”

“길거리 거지한테 신사적인 대응을 바라는 년놈들이 머리가 빈 거지.”

“그건 그렇죠.”

흠흠, 하고 그레이스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리고 재차 질문했다.

“그래서, 시간 되시나요? 저, 오크통씨한테 이것저것 궁금한 게 되게 많은데.”

“…….”

오크통이 잠시 침묵했다.

오크통의 높이가 그레이스의 키와 비슷했기에 내부를 살펴보는 건 불가능했지만, 어째서인지 그레이스는 그가 자신을 지긋이 바라보고 있는 듯한 기분이 들었다.

아니, 여태까지의 대화를 생각해 볼 때 실제로 어떻게든 보고 있는 게 틀림없었다.

불쑥, 오크통 안쪽에서 지팡이가 솟아올라 어느 한 방향을 가리켰다.

“저쪽으로 쭈욱 가면 푸른빛이 도는 바위가 있는데, 아냐?”

“당연히 알죠. 여기 토박이인데.”

“하루 중 그림자가 가장 짧은 시간에 거기로 와라. 한 끼 식사를 가져오면 잠깐 수다 정도야 떨어주지.”

그레이스는 ‘지금 당장은 안 되나요?’라고 질문하려 했다가 그만두었다.

몇 마디 대화를 나눈 것만으로도 알 수 있을 만큼 까탈스러워 보이는 인물이니, 괜히 이래저래 토를 다는 것보다야 상대가 한 수 물러줬을 때 받아들이는 게 좋을 것 같았으니까.

뭣보다, 이렇게 기다리는 건 그것대로 좋은 시간 때우기가 될 터였다.


또다시 일주일 후.

그레이스는 대량의 빵과 식초와 허브를 섞은 음료 따위를 챙겨 약속 장소로 향했다.

“오크통씨! 저 왔어요!”

푸른빛이 도는 바위 위에서 낮잠 자는 개처럼 널브러진 오크통을 향해, 그레이스가 마치 데이트라도 나온 것처럼 발랄한 음성으로 말을 걸었다.

표정이며 눈빛에서 상대를 놀려주려는 장난기가 다분히 묻어나오긴 했지만, 그걸 알면서도 헤어 나오기 어려울 만큼 매력이 충만한 모습이기도 했다.

하지만 오크통의 반응은 지극히 시큰둥했다.

“밥은?”

“여기 있어요!”

그레이스가 가져온 묵직한 바구니, 평범한 사람이라면 며칠은 배불리 먹을 수 있을 것 같은 그것을 보고 오크통이 말했다.

“너 혹시 계산할 줄 모르냐?”

“뜬금없이 무슨 소리예요?”

“1+1을 10이라고 주장할 것 같아서 하는 소리다.”

“더 많이 주면 대답도 더 성실해질 것 같아서 그랬죠.”

“더 성실해지기는. 배때기는 한정되어 있는데 거기에 억지로 욱여넣어 봐야 터지기만 할 뿐이지.”

오크통은 그리 냉소한 뒤, 지팡이 끝으로 바구니 안의 내용물을 가볍게 낚아 올렸다.

빵 하나와 음료 한 대접이 하늘 높이 솟구쳤다가 오크통 안으로 떨어졌는데, 빵이야 어찌 됐든 음료는 나무 그릇에 담겨 있는데도 한 방울도 바닥에 튀거나 흐르지 않은 것이 실로 기묘한 재주였다.

그 이상은 받을 생각 없다는 듯이 침묵한 오크통의 모습에, 그레이스는 남은 음식들을 옆에 놓아두고 말을 걸기 시작했다.

“왜 오크통 안에 들어가 있는 건가요?”

“이게 내 집이고, 옷이고, 말이니까.”

“그게 전부 하나일 수 있어요?”

“하나가 안 될 이유는 또 뭐냐?”

“불편할 거 같아서요.”

“그러면 궁궐 같은 집에서 장식이 잔뜩 달린 신발을 신고 말을 타고 돌아다니면 그건 편한 거냐?”

“호오.”

그레이스는 살짝 감탄했다.

이 도시에서 가장 큰 저택에서 거추장스러울 만큼 화려한 생활을 하고 있는 그녀 입장에선 제법 와닿는 이야기였으니까. 그래도 말은 안 탔지만.

“그렇게 빨리 굴러다니면 어지럽지 않나요?”

“너는 걷고 있으면 다리가 안 피곤하냐?”

“오크통 안이 어떻게 되어 있는지 봐도 되나요?”

“내가 너 벗겨놓고 내용물 좀 보겠다고 하면 끄덕일 거냐?”

“왜 그렇게 말이 삐딱해요?”

“원래 개 눈에는 개만 보이는 법이지.”

그 후로도 기괴하고, 무례하고, 남들이 보면 저게 대체 뭔가 싶은 대화는 한참이나 이어졌다.

이어졌지만, 거기에도 결국 끝은 있었다.

오크통 속 괴인의 이름이 ‘그리츠’라는 걸 알게 된 것을 마지막으로, 그레이스는 문득 더 이상 내뱉을 질문이 없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그건 무척이나 실망스러운 일이었다.

그녀는 자신이 이 기괴한 남자와의 대화를 무척이나 즐기고 있다는 걸 재차 자각했다.

우물쭈물 새로운 질문을 짜내기 위해 골머리를 앓는 그레이스를 향해, 그리츠가 질문했다.

“이야기는 끝이냐?”

“…….”

네, 라고 대답하면 그걸로 이 대화는 끝난다.

어쩌면 이 괴인과의 관계 역시 끝나버릴지 몰랐다.

그 뒤에는 다시 예전처럼 갑갑하고 생각하기 싫은 것들로 가득한 삶이 기다리겠지. 언제까지 이어질지 그녀도 정확히 모르는. 하지만 아마 그리 길지는 않을 삶이.

“아뇨. ─혹시, 제 이야기를 들어주실 수 있나요?”

그리츠는 심드렁하게, 하지만 마음대로 하라는 듯이 수긍했다.

그리고, 그레이스의 입에서 새로운 이야기가 시작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