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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5-12-14 21:31:57 +09: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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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aw Blame History

왕의 알현실.

며칠만에 다시 보는 국왕 앞에 무릎 꿇은 엔리는 왕에게서 치하를 받고 있었다.

“훌륭하다. 엔리 경. 필마단기로 왕자와 생도들의 목숨을 구한 것. 더할나위 없는 용맹의 증거다!”

홀로 납치된 열차 안으로 쳐들어가 도적떼들을 베어내고 왕족과 귀족, 그리고 시민들의 목숨을 구한 것. 국왕은 이 사실을 대대적으로 발표하여 왕국의 명예와 위세를 지키려 애썼다.

우리 왕국에는 이 정도의 저력이 있다! 상대가 누구든 전혀 두렵지 않으니 얼마든지 덤벼 보라는 기세등등한 모습을 내보인 것이다.

“예로부터 용맹한 기사에게는 그만한 포상이 주어지는 법. 기사Knight 엔리 경. 자네에게 아카데미 교수직을 부여하마.”

국왕은 싱긋 웃으며 그리 이야기했다. 엔리의 나이 열여덟. 다른 이들은 아카데미에 다니거나 다른 기사의 밑에서 종자 생활이나 하고 있을 나이에 교수직이라는 파격적인 제안을 건넨 것이다.

그러나 엔리는 그 제안을 그닥 달갑게 여기지 않았다.

“엑- 싫은데요.”

“……뭐?”

거절의 의사를 입에 담은 그 순간, 알현실 안에 적막이 가득 내려앉는다. 왕의 제안을 거부하는 것은 불경스러운 행위. 곧장 불경죄로 감옥에 가두어도 할 말이 없는 일이었지만, 국왕은 침착을 유지하며 침음성을 흘렸다.

“그, 그렇군. 엔리 경. 그렇다면 원하는 포상이 따로 있는가?”

기껏 그를 영웅으로 만들어놓았거늘, 그를 체포해서 이 분위기를 깨뜨리고 싶지는 않았다. 나중에 따로 트집을 잡을 지언정, 지금 당장 그를 처벌하는 것은 악수였다.

“─예, 폐하. 있습니다.”

“말해보게나.”

“그렇다면 제게─.”

엔리는 기억을 더듬으며 국왕에게 제 의사를 이야기했다. 그러니까 왕실의 보물로 널리 알려진 그것을…….


사흘 뒤.

클라우디아 령으로 복귀한 엔리는 이브 공녀에게 멱살을 붙잡힌 채 탈탈 털리고 있었다.

“그러니까.”

이브 공녀는 눈빛으로도 사람을 죽일 수 있다는 게 무슨 의미인지 몸소 알려주겠다는 양, 무척이나 날카로운 눈빛으로 엔리를 째려보았다.

“왕 앞에서 그딴 망발을 저지르고, 저딴 거나 받아왔다고……?”

“켁, 아가씨. 슬슬 숨이 안 쉬어지는데요…….”

“대답.”

“예, 예. 그런데요.”

“이 멍청이가-.”

꾸우우우욱…!

이브는 주먹을 쥐며 몸을 부르르 떨었다. 마음 같아선 이 멍청이를 한 대 후려치고 싶었지만, 그랬다간 제 주먹만 아플 거라는 사실을 알기에 가까스로 참아낼 수 있었다.

겨우 화를 참아낸 이브는 씩씩 숨을 몰아쉬며 이를 갈았다.

“그래서, 저건 왜 받아온 건데…?”

이브의 손가락이 창 밖, 공작저의 마당에서 뛰놀고 있는 한 마리 말을 가리켰다. 오자마자 공작령의 마구간을 정복하고, 마당을 제 집 안방마냥 뛰어다니는 왕실의 말. 명마 호르스를.

“그야, 아가씨께서 예전에 갖고 싶다고 말씀하셨잖아요.”

“그건 십년도 더 된 이야기잖아! 이 멍청아!”

퍽-!

기어이 분을 참지 못 하고 주먹을 내지른 이브는 무슨 강철이라도 넣어놨나 싶을 정도로 단단한 엔리의 가슴팍에 까진 손등을 쓰다듬었다.

이 멍청이가 악질적인 것은 평소 중요한 것들은 죄다 기억하지 못 하는 주제에 흘러가듯 내뱉은 말 한 마디는 쓸데없이 잘 기억한다는 점이었다.

마치 여덟 살 때 갖고 놀던 장난감을 아직도 좋아하는 줄 알고 열여덟의 딸에게 선물한 아빠와도 같다. 이브는 자신이 이런 경험을 하게 될 줄은 꿈에도 몰랐다.

“받을 게 있으면 먼저 나한테 물어를 보던가! 아니면 당장 쓸만한 마도구나 왕실 비전 마법 같은 걸 받아오든가! 호르스가 뭐야 호르스가!”

물론 호르스가 나쁜 건 아니다. 실제로 십년 전. 왕국에서 가장 유명한 말을 고르자면 누구나 호르스를 꼽던 시기가 있다. 이브가 당시 호르스를 원했던 것도 왕국 최고의 말을 갖고 있으면 영입할 수 있는 기사의 수가 늘어났기 때문이다.

그러나 그로부터 십여년의 시간이 흘렀다. 왕국은 그동안 다양한 말들을 육성했고, 호르스는 최고의 위치에서 내려오게 되었다. 공작쯤되면 호르스 정도의 말은 어렵지 않게 구할 수 있는 시대가 온 것이다.

“바꿔올까요?”

“바, 바꿔? 너 무슨 저잣거리 시장에서 물건 산 줄 아니? 그딴 소리나 하고 앉아 있다니…….”

이젠 지적할 힘도 잃어버린 이브가 의자에 털썩 주저 앉는 가운데, 엔리는 뭐 어쩌겠냐는 듯 어깨를 으쓱였다. 호르스. 최고는 아니지만 최상급은 되는 말이었다. 당장 공작저의 마구간에도 그와 비슷한 급이 몇 없는 말.

한때 최고라는 영광을 지녔던 말. 시간이 흘러 그 영광에 녹이 슬기는 했지만…… 엔리는 그닥 나쁘지 않다고 생각하고 있었다.

‘말이 많으면 좋은 거 아닌가…….

그러나 그 말을 입 밖으로 내뱉었다간 이제 막 지쳐 쓰러진 이브 공녀가 1코인을 획득한 마리오마냥 펄떡 뛸 거라는 사실을 알기에 입을 꾹 다물었다.

히히힝-!

호르스의 울음소리가 정원으로부터 울려퍼졌다. 여전히 자신이 최고인 줄 아는 과거의 영광이 울었다.


왕국의 좌하변. 남서부에 위치한 클라우디아 령은 왕국 전체의 식량을 담당하는 초거대 곡창지대였다. 당연히 이를 노리는 무뢰배들이 셀 수 없이 많았으며, 왕국 외부 야만족들이나 몬스터들이 가장 많이 노리는 목표물도 바로 이곳이었다.

이를 막기 위해 클라우디아 공작령에선 기사 영입에 상당한 공을 들였는데, 이브 클라우디아가 실권을 잡으며 기존의 기사단을 모조리 갈아버리고 만든 것이 바로 흑장미 기사단이었다.

검은 머리에 장미와도 같은 미모, 그러면서도 가시 돋은 성격의 아가씨를 상징하는 흑장미를 심볼로 삼은 기사단.

놀랍게도 이 흑장미 기사단은 왕국 제일의 기사단과 자웅을 겨룰 수 있을 정도로 뛰어난 기사단이었다. 엔리를 제외해놓고 보더라도 그러했다.

엔리는 아무리 공작령이라지만 왕실에 뒤처지지 않는 이유에 대해 궁금해한 적이 있었다. 이브는 그저 웃음지으며 선구안이 좋다고 말했을 뿐이었다.

사실을 말하자면 그녀의 말이 틀린 건 아니었다. 선구안이 좋다. 그럴 수밖에. 그야 그녀는 회귀자요, 회귀자의 가장 큰 장점이라고 한다면야─.

“흑장미 기사단. 영지 순찰을 마치고 복귀했습니다.”

미래의 정보. 그를 통한 시장 독점.

이브는 지금으로부터 십여년 뒤, 어떤 기사가 이름을 날리고 또 어떤 기사가 뛰어난 실력을 갖추었는지를 안다.

그 기사가 아직 이름을 널리 떨치지 못 했을 때. 그때 신입 기사에게는 과분할 정도로 많은 돈과 이권을 제시하며 영입한다면- 당연하게도 이를 받아들이지 않는 기사란 존재하지 않는다.

흑장미 기사단은 그렇게 왕국 제일의 기사단 자리를 넘볼 수 있었다.

“영지 순찰 중 마주친 몬스터 무리의 위치와 도적떼의 위치를 기록한 지도입니다.”

“응. 그래, 수고했어. 다른 특이사항은?”

“없습니다.”

이브는 루카의 보고를 들으며 그녀를 바라보았다. 지난 회차에서 그녀를 따르며 끝까지 충절을 지키던 흑장미의 기사. 지난 번에는 기사단장이었지만 이번 생에는 엔리라는 돌연변이를 만난 덕택에 부단장으로 영입할 수밖에 없었다.

물론 그녀 본인은 부단장이라는 위치에 만족하고 있었지만.

아니, 만족을 넘어서 뭐랄까…… 사람 자체가 바뀐 것 같았다.

이브는 그녀를 볼 때마다 시간이 되돌아갔음을 새삼스럽게 느낀다. 그도 그럴 것이…….

“앗, 단장!”

“아…… 망할.”

보고를 마친 루카가 때마침 방으로 들어서던 엔리를 발견하고 잽싸게 달라붙는다. 그 모습을 본 엔리는 징글거린다는 듯 질색하며 뒤로 몇 걸음 물러섰다.

“헤헤, 단장. 보고 싶었어요!”

“어, 그래. 떨어져 줄래?”

“싫은데요? 오랜만에 만난 부단장한테 너무 섭섭하신 거 아니예요?”

루카 부단장은 그리 말하며 볼을 부풀렸다. 숱한 기사들이 그녀의 웃는 얼굴 한 번 보고자 목숨을 내던지는 걸 생각해본다면 그 모습에는 금화 이상의 가치가 있었다.

정작 그녀를 매달고 있는 엔리는 관심 없다는 듯 마구 밀어내고 있었지만.

이브는 그 모습을 보며 저 루카가 자신이 알던 루카가 맞는지 의심을 품을 수밖에 없었다. 지난 회차 때의 그녀는 어땠는가? 평생 웃음기 한 번 없는 얼굴로 사람을 죽이던 철혈의 기사였다.

지금은? 저 푼수 같은 모습에서 기사단장으로서의 품위나 체면 따위는 일절 느껴지지 않았다. 어쩌면 저게 그녀의 본 모습일 수도 있겠지. 기사단장이라는 자리에 짓눌려 개화하지 못 한 소녀의 모습…….

“둘 다. 노닥거리는 건 거기까지 하도록 하고.”

이브의 말에 두 사람은 표정을 굳히고 그녀의 이야기에 집중한다. 한량 같은 모습이나 푼수 같은 모습을 연출하기는 했지만 두 사람의 정체성은 기사. 군주의 말을 따르며 적을 베어내는 칼날.

“임무야.”

“뭡니까?”

“뭐긴 뭐겠어.”

그녀는 그리 말하며 왕실로부터 내려온 공문을 내밀었다.

그곳엔 소집령이라는 글자가 끄적혀 있었다.

“응징이지.”

반인류연맹 토벌.

감히 왕족을 건드린 일에 대한 철저한 복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