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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5-12-14 21:31:57 +09: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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분노를 노래하소서, 여신이여!

펠레우스의 아들, 아킬레우스의 분노를.

그의 파괴적인 분노는 아카이아인들에게 헤아릴 수 없는 재앙을 안겨주었으며.

숱한 영웅들의 굳세고도 용감한 영혼들이 하데스에게 던져졌노라.

그들은, 그리고.

개들의 먹이가 되고, 새들의 먹이가 되니.

그 잔혹한 분노를.

다시금, 노래하소서!

인간들의 왕인 아트레우스의 아들.

그리고 고귀한 아킬레우스가 처음에 다투고 갈라선 바로 그날부터.

제우스의 계획이 이토록 비극적으로 이루어지리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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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젤린은 오늘도 바쁜 하루를 보냈다.

  • 작가님! 우연히 만나네요! 차기작은요?

  • 어머, 작가님! 식사하러 가시나요? 다음 사랑 이야기는요?

  • 와아! 좋은 밤이네요! 산책하시나요? 어, 작가님? 어디 가셔요? 어차피 못 도망가실 텐데.

……아무튼 바쁜 하루였다.

그리고 그 하루를 쌓고, 또 쌓아서.

  • ……성녀님이라서 먼저 보여드리는, 크흑, 겁니다…….

  • 으히히! 걱정하지 마세요! 여신께 맹세코, 저는 고해성사소가 아니더라도 절대 비밀을 누설하지 않는답니다!

결국, 로젤린은 원하는 바를 성취했다.

그치만.

  • 사랑 이야기…… 하하, 네, 차기작은 사랑이 주제긴 합니다.

애초에 김율이 잘못한 거다.

사랑 이야기가 아니라 다른 이야기를 쓴다고 했으면 당연히 이렇게까지 집착할 이유가 없었다.

네가 먼저 꼬셨잖아.

네가 먼저 염정소설 써준다고 했잖아!

그녀가 괜히 귀하디귀한 신성력을 써서 김율을 깔끔하게 치료해 준 게 아니었다.

어설프게 각목을 세게 쥔 나머지, 손이 완전히 부르튼 바람에.

……그 사내가 글을 쓰는데 지장이 생길 것 같았으니까.

여신의 권능을 행사하기에 너무나도 합리적인 이유였다.

보라.

그릇된 방향으로 힘을 남용한다면 절대로 다시는 채워지지 않는 신성력이 지금 이토록 충만하지 않던가.

모두를 사랑하고 아낌없이 베풀어라.

교리 실천 그 자체!

신성국의 모범 성녀!

그게 바로 로젤린, 그녀였다.

“엘레인?”

“예, 성녀님.”

“저 불온 분자, 지금 숨 쉬는데요?”

“시정하겠습니다.”

“끄르륵……! 커헉, 컥!”

그러니 이것은 합당한 정의 집행.

감히 김율의, 미래의 염정소설 대가의 목숨을 노린 죄를 씻어내기 위해 오늘도 ‘물은 답을 안다’를 체험하고 있는 가녀린 타락한 양들을 흘긋 바라보고서.

다시금 갈취한…… 아니, 봉납받은 따끈따끈한 신작을 읽기 시작했다.

불행하게도.

김율이 직접 그리스어 원문으로 된 일리아스의 판본을 펼쳐보고, 히스토리에를 갈궈서 교차검증하고.

나아가 대중성을 위해 ‘한 권으로 읽는 그리스·로마 신화’까지 대조해 보면서 고증을 지킴과 더불어 나름대로 각색을 지킨 서사시적인 인트로는.

“음.”

사랑에 미친년, 로젤린에게는 딱히 와닿지 않았다.

하지만, 팔랑, 팔랑.

페이지가 넘어가면 넘어갈수록.

“헤, 헬레네……? 설마, 지금, 여기서?”

“아무리 황금 사과의 주인이라지만, 그래도, 파리스가 지금 여기서 이런 행동을 해버리면……!”

물론, 이성적인 독자였다면.

최고의 부와 권력을 약속한 헤라.

위대한 지혜와 모든 경쟁의 승리를 약속한 아테나.

그 둘을 제치고, 가장 아름다운 여자를 약속한 아프로디테의 손을 든 파리스가 멍청하다 욕할 것이다.

하지만.

이성적으로는 그를 이해하면서도.

“그래, 그게 사랑이니까……!”

이미 사랑 이야기에 반쯤 뇌수가 녹아버린 로젤린만큼은, 파리스의 선택을 응원할 수밖에 없었다.

물론.

  • 파리스……! 그러면 안 되는 것입니닷……! 그러면, 파리스가……! 위험해지는 것입니닷……!

파리스가 본디 왕자가 아니라 양치기로 살았을 시절, 그와 혼례를 올렸던 님프.

아직 퇴고가 덜 되었는지, 오이노네와 오이노이라는 이름이 혼용되는 그의 아내가 한껏 말렸긴 했다.

물론 불륜은 죄악이라 할 수 있으나.

“이혼은 안 했고…… 중혼…… 이지?”

여신 교단은 일부다처제를 긍정하는 교단.

도파민으로 뇌가 반쯤 녹은 로젤린이 보았을 때, 크게 문제가 되지 않았다.

애초에 중혼 자체가 문제였다면, 당장 제우스 이야기를 다룬 서적부터 불온서적으로 지적하고 화르르 불살랐으리라.

그렇게.

분명히 김율, 아니, 호메로스의 의도는 영웅담이었지만.

로젤린의 머릿속에서는 헬레네를 중심으로 한 로맨스 판타지가 펼쳐지기 시작했다.


“최근에 김율 작가님이 보이지 않는군…….”

“다음 권…… 없다?”

“에이, 설마. 제우스가 깐 자식들만 해도 신이 몇 명이고, 영웅이 몇 명인가? 그 모두가 헤라클레스와 같은 서사를 들고나올 걸세!”

“그렇지만, 차기작이…….”

“이 사람, 참. 소설 한 권 출간까지 1년을 기다리던 인내심은 어디로 갔나? 지금까지 출간 속도가 비정상적으로 빨랐던 것이지.”

어느덧 올림포스 이야기에 푹 빠진 문인들은, 적적함을 그저 술로 달래고 있었다.

그도 그럴 것이.

그들이 지금껏 향유했던 문학들은 대부분 원 패턴.

몰락한 귀족이 어찌어찌하여 성공하고 자신을 모함한 사람들에게 복수하는 이야기.

평민 출신 용사가 어찌어찌하여 결국 전인미답의 마경 속에서 마왕을 물리치는 이야기.

주인공의 특색만 조금 바뀌고, 플롯 자체는 대동소이한 이야기들이었다.

물론 그것도 없어서 못 먹을 정도로 게걸스러웠던 문인들이었지만, 지금은 달랐다.

미리 철저하게 준비한 듯, 방대하면서도 세계관에 오류가 없었으며, 자극적인 맛부터 감동적인 맛까지 한 권의 흐름에 담아내기까지.

어느덧 그들은 올림포스 이야기에 빠져들었으며, 다른 중소 도시의 문학 작품과 비교하며 지적 우월감을 느끼는 수준까지 도달했던 것이다!

“피폐 드리프트…….”

“어허! 비극으로써 드디어 서사가 완성된 것인데, 어쩔 수 없는 일 아니겠나! 결국 헤라클레스는 신이 되었다고, 신이!”

오늘도 격조 높은 토론이 이어지고 있는 살롱 드 블랑의 문이 딸랑, 경쾌한 소리를 내며 열렸다.

들어온 것은 도시를 대표하는 문예 비평가, 하인즈.

평소 진중한 표정으로 무게를 잡기 일쑤였지만, 오늘따라 그의 표정에는 열망과 광기가 끈적이고 있었다.

하인즈가 그러한 반응을 보일 때는 무언가 자랑하고 싶을 때라는 걸 익히 알고 있었던 다른 문인들은 그를 외면하려고 했지만.

“후후, 후후후…… 올림포스 이야기의 신간이 나왔다네……!”

“뭣.”

“헉!”

“마침내!”

하인즈가 던진 광역 도발의 파장은 살롱 전체를 크게 흔들었다.

“어디, 어디 나도 보여주시오!”

“이럴 때가 아니군. 빨리 서점에……!”

“크아악, 못 참겠다……!”

순식간에 살롱 내부는 아수라장이 되었다.

.

.

.

사람들이 빠져나간 후.

살롱 사람들이 문학을 즐기는 방법의 하나──

낭독회가 시작되었다.

“헤라클레스는 막내 왕자, 포다르코스만을 살려두고 모두를 몰살시켰다. 유일하게 살아남은 포다르코스는, 세월이 지난 후 프리아모스로 개명해 트로이의 왕이 되었다. ……최후의 왕이. 이 이야기는, 트로이가 어떻게 멸망으로 치달았는가에 대한 이야기다.”

전작의 주인공이었던 헤라클레스의 행적을 한 번 더 조망하여 자연스럽게 흘러가는 이야기의 도입.

그리고 전개는 빠르게 테티스와 펠레우스의 결혼식 파트에 도달했다.

“불화와 다툼을 관장하는 여신, 에리스는 결국 결혼식에 초대받지 못하자 불같이 화를 냈다. …… 결혼식 당일, 에리스가 보낸 선물이 도착했다. 가장 아름다운 여신에게 이 황금 사과를 바칩니다. 단순한 문장이었지만, 그 울림은 전혀 가볍지 않았다. 하필이면 결혼식에 참석했던 여신만 해도 셋. 헤라, 아테나, 아프로디테였다.”

“자, 잠깐, 실례하겠네……!”

살롱의 문인 중 한 명.

대형 과일가게의 주인이 그 대목에서 빠르게 달려 나갔다.

모두가 그 뒷모습을 보며 짐작할 수 있었다.

오늘부터, 도시에서 파는 모든 덜 익은 사과에 에리스의 황금 사과라는 이름이 붙을 것이라는 사실을.

사소한 이슈가 있었지만, 그에 개의치 않고 낭독회는 계속 이어졌다.

그리고 갈수록 커지는 스케일.

제우스는 주신답게 엄정한 중립을 지켰지만, 나머지 신들은 각기의 이해관계에 따라 그리스와 트로이 중 지지 세력을 결정하고, 영웅들은 신의 대리인으로서 격돌한다.

접전과 불화.

제우스의 중재에도 불구하고, 헤라와 아테나의 고집으로 인해 휴전 없이 전쟁이 속행되기도 하며.

“헥토르가…….”

“아킬레우스까지……?”

전쟁에서 내내 활약했던, 양 진영을 대표하는 장군들의 사망까지.

전개 하나하나가 손에 땀을 쥐게 할 정도로 박진감이 넘쳐흘렀다.

어찌 이 모든 이야기가 한 인간의 상상력에서 나올 수 있었을까.

감탄을 넘어 경외심까지 들 지경이었다.

.

.

.

그렇게, 정오부터 시작된 낭독회는 해가 완전히 저물 때까지 이어졌으며.

그리고, 마침내 종막.

“누가 그날 밤의 재앙과 살육을 형언할 수 있을 것이며, 어떤 눈물이 그 고통을 설명할 수 있을까. 오랜 세월 동안 자리를 지켜온 트로이가 무너지고 있었다.”

“아…….”

“헬레노스만 잡히지 않았더라면……!”

“헥토르, 헥토르가 살아 있었어야 했다!”

트로이를 응원하던 사람들이 탄식을 흘렸으며.

“오디세우스, 믿고 있었다고!”

“역시 무력은 지혜를 이기지 못하는군.”

그리스를 응원하던 사람들은 손뼉까지 치면서 찬탄을 남겼다.

그리고, 마지막 페이지만을 남겨둔 지금.

“…….”

하인즈의 표정이 굳어지며, 손이 떨리며, 말이 멈췄다.

저 영감, 또 여운을 즐기는군, 하고 생각하며 차분하게 기다렸던 사람들이었지만.

“아니, 왜 그러시오?”

“혹시 충격적인 반전이라도 있는 건가?”

“하인즈 씨. 도대체 뭡니까?”

독촉에도 불구하고 하인즈는 쉽게 입을 떼지 못했다.

“아잇, 이리 줘봐!”

그 공백을 참지 못한 하인즈의 친구가 책을 뺏어 들었지만.

“…….”

마찬가지로 하인즈처럼 굳어버릴 뿐이었다.

도대체 무엇이 적혀있단 말인가?

여기서 뭐 어떤 이야기가 더 이어졌단 말인가?

호기심을 참지 못한 사람들이 삼삼오오 주변에 몰려들었고.

그들은 목격하고야 말았다.

누군가, 떨리는 목소리로 마지막 목소리를 소리 내 읽었다.

“올림포스 이야기 시리즈는 여기서 마무리됩니다. 그동안 사랑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

“…….”

.

.

.

그날 밤.

“사장 나와!”

“제정신이냐! 이게 마지막이라고?”

“출판사는 도대체 뭐 하는 놈들이냐! 당장 통조림해!”

횃불을 든 분노한 폭도의 무리가 출판사를 덮쳤다.


“흠.”

나름대로 정들었던 카멜리아를 떠나는 길.

저 멀리서 화려한 불꽃이 일렁이는 걸 보니 축제라도 일어났나 본데.

축제를 즐기고 떠날 걸 그랬나, 하는 사소한 아쉬움을 잠깐 마음속으로 갈무리했다.

.

.

.

“오…….”

밤새 달려서, 새벽동이 틀 때쯤.

기차에서 내리자마자 동네 분위기가 확실히 다르다는 것이 피부로 느껴졌다.

전에 살던 도시, 카멜리아는 중세풍에 가까웠다면.

제국의 수도는 과연 수도답게 굉장히 거대하고, 화려하며, 마법으로 반짝반짝 빛나고 있었다.

거의 속초와 한국 최고의 도시 인천 정도의 차이.

“호외요! 호외!”

“스마트 수정구 인 원더랜드! 따끈따끈한 신작입니다!”

심지어.

카멜리아에는 주간지밖에 없었는데, 여기는 일간지가 마구 넘실거리고 있었다.

심지어 걸어가는 사람들 손에는 대부분 신문 한 부씩 들려 있었으니.

과연, 소설의 미래가 출판 서적이 아니라 신문 연재에 있다는 게 과언이 아닌 것 같았다.

“한 부! 감사합니다!”

호객하던 꼬맹이에게 동전을 쥐여주고 신문을 사서 펼친 순간.

원래라면 소설 연재란을 먼저 확인해 보려고 했지만.

괴상한 기사 하나가 내 눈을 먼저 사로잡았다.

[올림포스 이야기. 소설인가? 예언인가?]

[마경의 백면귀룡 토벌 소식이 들려온 지 얼마 지나지 않아, 또다시 희소식이 전해졌다. 어제 새벽, 국경도시 안타론의 전복을 꾀하는 흑마법사가 저주받은 물건들을 반입하려 시도했지만, 소설 내용에 영감을 깊게 받았던 경비대장 랑셀 씨가……]

“……이건 또 뭐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