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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5-12-14 21:31:57 +09:00

12 KiB
Raw Blame History

이안은 이서아를 찾아 크루즈의 하층으로 내려갔다. 중간에 마주친 악령이 그의 뜻을 알아차리고 길잡이를 자처한 덕분에 그녀를 찾는 건 금방이었다.

“아, 이안.”

이서아는 1층 카지노에 있었다. 코주변으로 번진 핏물을 보아하니 무리를 해가며 전투를 이어갔던 모양이다.

다행히 지금은 주변에 적이 없어서 대화에 큰 지장은 없었다.

“괜찮아?”

이안이 이서아를 향해 다가가며 물었다. 그녀는 근처 의자에 앉아 숨을 길게 내쉬며 고개를 끄덕였다.

“크게 다친 곳은 없어. 조금 베이기는 했는데…… 이정도야 아무렇지도 않아.”

그녀는 그리 말하곤, 찢어진 이안의 뺨을 보며 눈을 찌푸렸다.

“다쳤잖아.”

“나가서 치료할 거야. 여기선 어쩔 수 없으니까.”

“흉터 남겠는데…… 꿰메기 싫으면 카르텔에 있는 연고 한번 발라봐. 비싸기는 한데 성능은 좋으니까.”

“그럴게.”

이안은 대충 대답하고 뺨에서 흐른 피를 대충 닦아냈다. 이미 굳어버린 피딱지가 부서지며 가루처럼 떨어지고, 따끔거리는 통증을 뒤로 한 그가 마도서를 꽉 쥐었다.

“괜찮으면 이동하자. 기생 생물들은 전부 처리했으니 해적들만 조심하면 될 거야.”

“그래? 잘됐네. 해적은 걱정하지 마. 결국 내 마법으로 불러들인 놈들이니, 악령을 풀어두면 알아서 상충하며 힘이 줄어들 거야.”

“좋은 소식이군.”

이안과 이서아는 같이 카지노의 금고를 털고, 밖으로 빠져나와 크루즈의 갑판으로 올라왔다.

탁 트인 공간. 짙게 깔린 해무 사이로 크루즈에 딱 붙어있는 해적선이 보이고, 그 아래에서 꿈틀거리고 있는 무언가가 얼핏 시야에 들어온다.

실루엣은 보이지 않는다. 그러나 무언가가 있다는 건 본능적으로 알 수 있었다. 그게 인간에게 그리 친화적이지 않다는 것 또한.

“아마 파수꾼일 거야.”

이서아가 말했다.

“외신이 지상에 영향을 끼칠 수 있도록 하는 닻이지. 제법 강한 괴이라서, 관리국에서도 부장급들만 보내 처리하는 편이야.”

“……닻이라.”

이안은 난간에 상반신을 내밀며 마도서를 까딱거렸다.

“지금 이 공간이 신비에게 장악되었다는 건 알고 있지? 이곳은 현실이면서도 현실이 아닌 곳이다. 신비의 침식을 받아 게임처럼 바뀐 거야.”

“자세히 설명해 줘.”

그렇게 했다.

이안과 선장 사이에 있었던 일, 그리고 그와 나눈 대화를 모두 전해 들은 그녀가 침음성을 흘리며 팔에 붕대를 감았다.

“아무래도 길이 열린 것 같은데. 게임이라는 통로를 통해서 저놈이 기어들어 온 거지.”

“음.”

“선장을 죽였음에도 상황이 종식되지 않는 건 저 거대한 ‘닻’이 통로를 막고 있기 때문일 거고.”

꾸욱.

붕대의 매듭을 묶은 그녀가 이안을 돌아보며 바닥에 뼛가루를 뿌렸다. 기어 나온 귀신이 방금 막 갑판으로 올라온 해적들을 밀어낸다.

“아마 시간이 지나면 강제로 통로가 닫혀서 저놈도 사라질걸. 그럼 현실로 돌아갈 수 있어.”

“얼마나 걸리는지는 아나?”

“모르지. 운이 좋으면 며칠. 안 좋으면 최소 년 단위는 생각해야 해.”

“죽여야겠군.”

이안이 즉답했다.

며칠 동안 여기 있는 것만으로 몸서리가 치는데 몇 년을 버텨야 할 수도 있다고?

절대 안 된다. 이 비린내 가득한 곳에서 1초도 더 머무르고 싶지 않았다.

스위트룸이 아무리 좋다고 한들 원룸의 투박한 침대에 비하면 쓰레기일 뿐이다. 사방에 가득한 시체 냄새는 또 어떻고? 가둬둔 시민들의 안전까지 신경 쓰면서 여기 머무르며 시간을 죽여야 할 이유가 있나?

없다. 저 빌어먹을 놈을 죽일 수단이 없다면 어쩔 수 없겠지만, 다행히도 이안에겐 괴이를 상대하는 데 특화된 마법이 하나 존재했다.

“마법을 쓰겠다. 뒤로 물러나.”

촤라락.

그의 손에 잡혀있던 심해견문록이 저절로 펼쳐지며 소환수들의 목록을 드러낸다. 이서아가 그의 지시에 따라 뒤로 물러나면서 흥미로운 표정으로 고개를 기울였다.

“갤러리에서 말했던 두 번째 마도서?”

이안은 대답하는 대신 고개를 끄덕이고, 가방 속에서 피를 꺼내 갑판 위로 마법진을 그렸다. 이서아가 보조했다.

피로 그려진 마법진 위로 괴이의 살점을 몇 점 던진다. 그 위로 다시 한번 피를 끼얹고, 이안이 빈손을 쭉 뻗으며 소환할 소환수를 확정 지었다.

약한 놈을 소환할 수는 없다. 최소한 감시자와 동급이거나 그 이상이 되는 생물을 뽑아야 바닷속에 있는 저것과 대등하게 싸울 수 있을 것이다. 육지보다 바닷속에서 외해의 생물들이 더 강할 수도 있지만, 아직 시험해 보지 않은 상태에서 굳이 도박수를 던질 필요는 없었다.

확신이 필요했다. 그렇기에 신중히 고르고 골라 한 마리를 선정했다.

이름은 [생산자].

감시자보다 한 단계 더욱 높은 곳에 있는 생물로, 인간과 비슷한 지능을 지닌 개체다. 의사소통이 가능하며 필요로 하는 먹이 또한 그리 많은 편은 아니라고, 마도서에 적혀 있었다.

다만 감시자보다 강한 생물이 적은 양의 먹이로 만족할 거라 생각하지는 않았다. 외해 입장에서야 많은 편이 아닌 거지, 여기선 충당하기 어려울 수도 있다.

그럼에도 소환하고나 하는 이유는 이놈이 같은 격을 지닌 생물 중 유일하게 의사소통이 가능하다는 점과 먹이가 많이 필요 없다는 언급, 그리고 외해의 주인과 밀접한 관계가 있다는 점 때문이었다.

생산자는 외해의 주인이 한 말을 플랑크톤이나 송사리 같은 피식자로 만들어 외해 전반에 흩뿌리는 역할을 맡고 있다.

‘만약 외해의 주인이 나를 정말 아끼고, 평소에도 언급했다면 배고프다고 해서 무작정 적대하지는 않을 거다.

이안이 그렇게 생각하며 마도서를 들여다보자, 마도서가 웃음을 흘리는 것처럼 작게 진동했다.

그게 무엇보다 확실한 신뢰가 되어 주었다. 이안은 더 이상 망설이지 않고, 눈을 감은 채 주문을 외웠다.

“위대한 분의 언어를 전달하는 자여. 생태계의 위와 아래 모두를 관장하는 자여. 그분의 대리자인 내가 명하노니, 이곳에 모습을 드러내어 나의 적을 타개하라.”

사아아……!

주문이 끝나는 것과 동시에 마법진 위로 피안개가 자욱하게 번져 나왔다. 이서아가 후욱 풍겨오는 피 냄새가 얼굴을 찌푸리고, 이안이 마도서를 강하게 잡으며 마법진 위로 소환된 거대한 덩어리를 응시했다.

어지간한 버스만큼이나 커다란 검은색 육체가 천천히 이안을 향해 고개를 돌렸다.

전반적으로 둥근 몸체. 피부는 뾰족한 검은 털로 뒤덮여 있었으며, 불규칙적으로 박혀 있는 붉은 눈동자가 살벌하게 떠오른다. 세로로 갈라진 동공에는 이안의 얼굴이 선명히 떠올랐으며, 벌어진 생산자의 입에선 검은 바닷물이 침처럼 고이기 시작했다.

[……아.]

곧, 놈의 육체 정중앙에 있는 아가리가 쩍 벌어지며 목소리가 흘러나왔다.

[만나서 반갑습니다, 대리자님.]

“…….”

[우리의 어머니가 선택한 동반자이자 지구라는 연약한 행성에서 태어난 당신을 진심으로 동정하며, 또한 축복합니다.]

생산자의 목소리는 아무리 좋게 말해도 듣기 편안한 음정은 아니었다. 그러나 선명했고 이지적이었으며, 숨길 수 없는 지성이 느껴졌다.

“……와, 미친…….”

이서아가 침을 꼴깍 삼키며 자신도 모르게 욕지거리를 내뱉는다. 생산자가 그녀를 향해 모든 눈동자를 돌렸다가, 다시 이안을 바라보며 눈꺼풀을 끔뻑거렸다.

[외해의 주인께서 이르시길, 당신이 요구하는 모든 사항을 지키라고 명령하셨습니다. 다만 본능을 억누르는 건 저도 첫 소환인 오늘만 가능합니다. 다음 소환부터는 정당한 제물이 없으면 아무리 저라도 대리자님을 먹을 수밖에 없습니다.]

“……그 말은, 이번 소환에선 배가 차지 않아도 내 명령만 끝낸 뒤 돌아가겠다는 뜻인가?”

[실로 그러합니다.]

생산자가 고개를 살짝 숙였다. 그렇게 느껴졌다.

[외해의 주인께선 하루라도 빨리 대리자님이 자신의 곁으로 오시길 바라고 계십니다. 그 가장 빠른 방법은 저희에게 잡아먹히는 것이지요. 오직 당신에게만 허락된 방안입니다. 그분께선 당신을 이런 열악한 환경에 풀어놓는 것보다 자신의 곁에 두고 평생 함께 살아가길 원하십니다.]

“…….”

[하지만 그분은 당신의 뜻을 존중하여, 자신의 욕망을 억누르시고 저를 비롯한 다른 생물들에게 대리자님의 말을 따르라는 명을 남기셨습니다. 실로 자애로우신 처사이지 않습니까?]

이안은 침묵하며 그의 말에 어떻게 대답해야 할지 고민했다.

다행히 그는 이안의 대답을 듣지 않고, 입에 고인 검은 바닷물을 살짝 흘리면서 고개를 돌렸다.

[제가 죽여야 할 생물은 아무래도 이곳의 바다 아래에 있는 것 같군요. 맞습니까?]

“그래. 외신의 닻이다.”

[니알라토텝. 열등한 종이군요. 고작 이야기에서 탄생한 주제에 자기가 우주의 신 중 하나인 줄 아는 머저리의 이름입니다. 실로 죽어 마땅한 존재이지요.]

생산자가 거대한 몸을 움직여 갑판의 난간 쪽으로 걸어갔다. 그가 가는 길을 따라 검은 바닷물이 카펫처럼 깔렸다.

[본체가 아닌 것은 실로 아쉽습니다만, 어쩔 수 없군요. 이걸로 만족하는 수밖에 없겠습니다.]

“이길 수 있나?”

[그 질문은 잘못되었습니다.]

생산자의 등에서 피어난 눈동자가 이안을 정확히 응시한다.

[명령하십시오. 당신에겐 자격이 있습니다.]

“……하.”

그의 말에, 이안이 작게 웃으며 손에 쥔 마도서를 어깨 위로 올렸다. 그러곤 가볍게 내뱉었다.

“죽이고 먹어라.”

[따르겠습니다. 그분의 대리자이자 우리의 새로운 첫 어버이시여.]

생산자의 눈동자들이 동시에 호선으로 굽어지고. 그것이 난간을 부수며 바닷속으로 추락했다.

콰아앙!

마치 대포가 떨어지는 것 같은 소음과 함께 물보라가 일었다. 이안이 쏟아지는 물을 맞으며 간신히 난간 너머로 고개를 들이밀었다.

그리고 경악했다.

“허.”

칙칙하면서 투명하던 바다. 그 모든 해역이 검은색으로 물든 채, 핏빛의 눈동자가 수면 위로 촘촘히 박혀 있었다.

마치 바다에 안구가 생긴 듯한 모양새. 다른 외해의 생물들에게선 볼 수 없던 특징에 이안이 속으로 감탄하는 찰나.

[오오오오오오!!!]

거대한 포효 소리와 함께 무언가의 상반신이 수면 위로 치솟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