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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5-12-14 21:31:57 +09: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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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라진 상태창.

이안은 굳이 놈을 찾지 않고, 뻥 뚫린 복도를 걸어 계단이 있는 곳으로 이동했다.

엘리베이터는 더 이상 이용하지 않았다. 방금이야 급한 상황이니 이용했지만, 지금 와서 밀폐된 공간에 스스로 고립되는 선택을 내릴 필요는 없었다. 차라리 계단이 더 낫다.

이안이 그리 생각하며 피로 찰팍거리는 길을 나아갔다.

계단으로 들어가는 입구는 꽉 막혀 있었다. 문고리가 안쪽에서 으스러진 건지, 회전 자체가 되지 않았다.

타앙-!

망설이지 않고 그대로 박살 낸다. 총알에 부서져 덜렁거리는 문고리를 대충 뜯어내고, 끼익하는 소리 함께 열린 문 너머로 발을 들였다.

들어가자마자 해산물 특유의 비린내가 후욱 풍겨왔다.

견디지 못할 정도는 아니지만, 그럼에도 역겹기 그지없는 악취다. 사방에 가득한 혈향(血香)과 섞여서 그런가, 괜히 맡고 있으니 머리가 지끈거리는 것 같았다.

‘신비가 본격적으로 움직이기 시작했다는 증거겠지.

이안은 코를 문질러 대충 냄새를 희석시키고, 계단을 타 위로 올라갔다.

‘본래는 시간이 흐를수록 강해지는 놈이지만, 상황이 이렇게 됐으니 놈도 가만히 있을 수는 없을 거야.

인간을 향한 악의와 설명할 수 없는 초자연적인 현상으로 이루어진 신비지만, 놈들이라고 해서 죽음의 공포가 없는 건 아니다. 당장 오피스텔을 점거하고 있던 귀신들만 하더라도 본인이 제령 당할 것 같은 상황이 되자 부리나케 도망가지 않았던가.

크루즈라고 별반 다르지는 않을 것이다. 마법사 두 명이 거리낌 없이 활동하기 시작했으니, 놈이라고 해서 여유롭게 있을 수는 없었다.

뭐가 됐든 크게 신경 쓸 필요는 없다.

어차피 놈이 움직이든 그렇지 않든, 해야 할 일은 처음부터 명확했다.

공략법이니 뭐니 그딴 건 아무래도 좋았다. 직접 죽여버릴 수 있는 수단이 있는데 굳이 먼 길을 돌아갈 이유는 없었다.

철컥.

이안이 실린더를 열고 탄을 재장전했다. 차가운 매그넘 탄환들이 실린더 내부를 채우고, 아직 열감이 가시지 않은 총구가 미약한 열을 총신 전체에 실어 나른다.

마법을 사용하는 것도 좋지만, 역시 아직은 총기를 다루는 게 훨씬 편했다. 다수를 사용할 때는 마법을 주력으로 사용하더라도, 일대일 상황에선 방아쇠를 당기며 마법은 보조로 돌리는 게 나을 것 같았다.

‘총이 현대 마법의 파이어볼이지.

방아쇠 딸깍으로 사람을 죽일 수 있는 살인 도구가 마법이 아니면 뭐겠는가.

“…….”

실없는 생각을 하며 한 층 더 위로 올라갔다.

4층.

불길한 숫자가 부여된 층인 탓일까, 4층으로 들어가는 문은 아주 그냥 개박살이 나 있었다. 바닥을 나뒹구는 철판이 우그러진 상태 그대로 방치되어 있고, 부서진 벽과 바닥에 꿈틀거리는 육편들이 박제되어 있었다.

자세히 확인해 보니 포탄에 처맞은 선원들인 것 같았다. 답지 않게 마린복을 입은 그들은, 몸 절반이 날아갔음에도 여전히 힘줄과 신경을 움직일 수 있는지 손끝과 발끝을 파르르 떨어댔다. 물론 팔다리가 날아간 이들은 그러지 못했다.

“흐음.”

널브러진 선원들을 제외하면 다른 특이 사항은 따로 보이지 않았다. 이안은 한 손에 마도서를 쥐고, 다른 손으로 리볼버를 까딱거리며 꿈틀거리는 선원에게 다가갔다. 코를 기준으로 왼쪽 머리가 통째로 날아간 선원이었다.

“……흐으, 흐으…….”

놀랍게도 그는 아직 숨을 쉬고 있었다.

뇌가 반쯤 사라진 상태인데 호흡이 가능하다니.

정상적인 인간이 아니라는 건 짐작하고 있었지만, 설마 이 정도 생명력을 보여줄 줄은 몰랐다.

선원이 이 정도라면 선장은 이보다 더욱 질긴 생명력을 보여줄 터.

확실하지는 않지만, 가능성을 확인한 것만으로 나쁘지는 않았다. 이안은 놈의 짓뭉개진 안구 속으로 총구를 꾹 들이밀었다.

쩌어억…….

끈적거리는 진액과 핏물이 총구에 덕지덕지 달라붙는다. 눈구멍을 통해 파고들어 오는 금속 덩어리의 감촉에 선원이 발작하지만, 이안은 아랑곳하지 않았다.

“선장은 어디에 있지?”

선명한 그의 목소리에, 선원은 자신을 공격한 것이 괴이가 아닌 인간이라는 것을 깨닫고 입꼬리를 파르르 떨어댔다.

“……너, 인간이군. 하지만 평범한 인간은 아니야.”

“대화 주제를 벗어나는 걸 그리 좋아하는 편은 아니라서. 묻는 말에나 답해줬으면 좋겠는데.”

꾸우욱.

총구를 더욱 밀어 넣자 딱딱하면서도 물컹거리는 뇌의 촉감이 총 끝을 타고 이안에게까지 전달되었다. 선원은 신경을 통째로 달구는 듯한 통증에 몸을 덜덜 떨면서도 비릿한 웃음을 머금었다.

“그분은 이미 위대한 분의 눈총을 받으셨다. 너 따위가 어떻게 할 수 있는 사람이 아니야.”

“…….”

“흐르는 피가 대지를 적시고, 만민이 그분의 이름을 연호하리! 우리는 미약한 피조물이요, 연약한 존재들이로다! 하여 그분의 은총을 기쁘게 받아들이리다!”

이안은 찬양하는 선원의 혓바닥 안쪽, 은은하게 반짝거리는 무언가를 발견하고 눈을 찌푸렸다. 그는 그대로 방아쇠를 당겨 선원의 뇌를 박살 낸 후, 늘어진 그의 혓바닥을 쫙 잡아당겼다. 혀는 아무런 저항도 없이 그대로 뽑혀 나왔다.

주르륵.

뜯어진 혀의 절단면에서 피가 흘러나왔다.

단순한 출혈이라고 하기에는 지나칠 정도로 많은 양의 핏물. 아무리 혀에 혈관이 많다고 한들, 이렇게 동맥이 절단된 것처럼 피가 쏟아지는 건 말이 안 됐다.

아무래도 이 혓바닥 자체가 선원을 비롯한 교단 인물들에게 힘을 주는 매개체인 모양.

이안은 피로 물든 손을 굳이 털어내지 않고 혀끝에 그려진 그림을 살펴보았다.

“……문양이군.”

벌어진 아가리 속으로 길쭉한 혀가 창처럼 꽂히는 기괴한 문양.

이게 교단의 상징이나 다름없는 심볼인 것 같았다.

누가 외신을 섬기는 교단 아니라고 할까 봐 참 징그럽게도 그려놨다. 이안은 혀를 쯧 차며 쥐고 있던 살덩이를 대충 바닥에 던져버렸다.

그러자 혓바닥이 꿈틀거리며 마치 살아있는 생물처럼 움직이기 시작했다.

그 모습을 확인한 이안이 흐릿한 미소를 머금었다.

“괴이였어?”

단순히 문양이 힘의 주체인 줄 알았건만, 아무래도 이 혀 자체가 본체였던 모양이다. 이안은 망설임 없이 혓바닥을 다시 주워 재창조 마법으로 형태를 변환하고 가방에 쏙 집어넣었다.

괴이라는 걸 확인한 이상 망설일 필요는 없었다.

급박한 상황이던 병원에서조차 알뜰하게 재료를 수확하던 이안이다. 지금이라고 별반 다르지는 않았다.

그렇게 이안은 해당 층을 탐사하는 겸, 널브러진 선원들의 혀를 뽑아 재료로 변환하며 걸음을 옮겼다.

선원들은 혀가 뽑히기 전까지는 그래도 살아 숨 쉬고 있었으나, 그 미끈거리는 살점이 분해되는 순간 발작하다가 사망했다. 덕분에 이안은 그들의 약점이 혀라는 걸 알아차렸다.

뭐, 그에게 있어서 약점은 별로 중요한 사안이 아니기는 했다. 어차피 손에 닿기만 하면 약점이고 뭐고 다 상관없이 죽일 수 있으니까.

그래도 알아둬서 나쁠 건 없었다.

이안은 방금까지 발작하던 선원의 머리를 콱 붙잡고, 아래턱을 뽑아 입을 닫지 못하게 한 다음 혀를 뽑아냈다. 그러곤 근처에 굴러다니는 끈으로 묶어 바닥에 던졌다.

이번 혀를 재료로 변환하지 않는 이유는 단순했다. 지금까지 뽑은 혓바닥들이 전부 어딘가로 향하려는 것처럼 꿈틀거리는 움직임을 보였기 때문이다.

이미 소재를 많이 노획했으니, 이젠 안내를 받을 차례였다.

어디로 이어지는지는 잘 모르겠지만, 분명 그곳에 신비의 핵심이 되는 무언가가 있을 터. 어쩌면 선장에게 가는 중일 수도 있으나, 뭐가 됐든 따라가서 손해는 없었다.

이안은 혀를 묶은 끈을 목줄처럼 잡고 담배를 입에 물었다.

“자, 안내해.”

[뀨잉.]

혓바닥이 피를 눈물처럼 흘리며 찰팍찰팍 점프하듯 움직였다.

나아가는 길에 이서아가 다루는 악령들을 마주쳤다. 미친개처럼 뛰어오던 귀신들은, 이안을 보고 깍듯이 인사한 후 계단을 타 아래로 내려갔다.

[끼아아아악!!]

내려간 귀신들이 괴성을 내지른다. 이서아가 증원을 요청해서 이동하는 것 같은데, 아무래도 그녀 또한 전투를 시작한 모양이다.

사령술을 다루는 마법사가 어떤 방식으로 전투하는지 이안도 굉장히 궁금했지만, 지금은 다른 곳에 눈을 돌릴 틈이 없었다. 그는 혓바닥과 이어진 목줄을 잡고 걸으며 방아쇠를 찰칵 당겼다.

탕! 타앙-!

총구가 불을 뿜으며 납덩이를 발사한다. 그대로 총알에 처박힌 거대한 지렁이 한 마리가 고꾸라지고, 이안이 그 위로 거울을 투척했다.

푸욱!

푸른 살점을 파고든 거울이 발광하며 지렁이의 몸을 유리 파편처럼 바꾼다. 쨍그랑, 하는 소리와 함께 놈의 몸이 후두둑 떨어지고. 이안이 유리 조각들을 밟으면서 목줄을 살짝 잡아당겼다.

“제대로 가는 거 맞지? 지금 꼬라지 보니까 너 생각하면서 움직이는 게 아니라 그냥 본능대로 가는 것 같은데.”

[뀨이잉!]

혓바닥이 작게 포효하며 유리 조각들을 건너간다. 날카로운 조각들이 살을 찢고 가르지만, 자그마한 혀는 아랑곳하지 않고 폴짝폴짝 걸음을 옮겼다.

지금까지 관찰한바, 이놈에게 이성은 존재하지 않는 것 같았다. 애초에 지능 자체가 없었다.

소리를 내는 것도 어설프게 발성기관을 흉내 내는 것에 가깝지, 절대 듣기 좋은 소리는 아니었다.

굳이 따지자면 뀨잉, 하는 귀여운 의성어에 가까운 울음소리지만 객관적으론 전혀 귀엽지 않았다. 목소리는 수십 명의 노인이 내뱉는 것처럼 탁했고 날카로워서, 듣고 있으면 머리가 지끈거렸다.

미세하게 시야가 어그러지는 걸 보면 정신 공격도 지속적으로 걸어대는 모양이다. 마도서 덕분에 멀쩡하기는 했지만, 괘씸하긴 매한가지였다. 이안은 잠깐 혓바닥을 멈춰 세우고 발로 살짝 짓밟았다.

[뀨잉! 뀨히이잉!]

혓바닥이 절규했다.

아마 놈의 입장에선 아무것도 없는 허공에서 끈이 튀어나와 자신을 묶고, 짓밟기까지 하는 기괴한 일처럼 느껴질 것이다. 코트에 부여된 마법 탓에 이안의 모습을 눈으로 볼 수 없으니 당연한 일이었다.

물론 마법을 풀 생각은 없었다.

몸을 보였다가 무슨 일이 벌어질 줄 알고 그런 안일한 짓을 하겠는가.

굳이 손해를 감수할 필요는 하등 없었다. 최소한 이 혓바닥이 향하는 곳을 확인한 후, 다른 액션을 취하는 게 옳은 일이었다.

이안은 그리 생각하며 발을 치웠다.

자신을 짓밟는 무게가 사라지자, 혓바닥이 포식자를 피해 도망치는 것처럼 서둘러 이동했다. 그가 목줄을 쥐고 뒤를 따랐다.

그렇게 층을 넘어가며 전투하고, 은신한 끝에 도착한 곳은 조타실이었다.

흔히 조종실이라고도 부르는 장소.

선장과 다른 선원들이 배의 방향과 속도를 조절하는 곳이다. 아무래도 이 안에 교단과 관련된 무언가가 있는 모양이다.

어느 정도 예상했던 장소였다. 이안은 쥐고 있던 목줄을 놓고, 조타실로 들어가기 전에 뻐근한 손목과 어깨를 풀었다. 실린더에도 총알을 새로 채우고, 언제든지 반응할 수 있도록 칼자루 또한 코트 주머니 밖으로 살짝 꺼내두었다.

그러고 있으니 혀가 조타실 문 아래로 쏙 들어가 버렸다.

굳이 급하게 쫓지는 않았다. 어차피 이제 놈에게 용무는 없다.

이안은 마지막까지 차분하게 상태를 점검한 후, 문제가 없다는 걸 확인하고 문에 손을 올렸다.

“새롭게 태어나라.”

우드득!

두꺼운 철제문이 쪼그라들며 마치 창처럼 날카롭게 변한다. 이안이 그것을 콱 붙잡고, 조타실 내부로 머리를 들이밀었다.

“…….”

조타실 내부는 제법 깨끗했다. 바닥에 물이 첨벙거리기는 했지만, 딱히 시체가 있거나 피투성이로 변한 곳은 없었다.

다만…… 공간이 좀 컸다. 아니, 좀 많이 컸다. 평범한 조타실의 몇 배는 더 될 정도로 거대했다.

밖에서 본 모습과는 전혀 다른 공간. 이안은 창을 바닥에 내다 꽂고, 마도서를 펼치며 천천히 걸음을 옮겼다.

“후우…….”

그때였다. 조타실의 구석에서 담배 연기가 희미하게 올라왔다. 이안이 곧바로 고개를 돌려 연기를 내뿜은 주인을 확인했다.

“어서 오게.”

가장 먼저 눈에 들어온 것은 새하얀 수염이다. 아무렇게나 엉켜있는 수염 사이로 혓바닥들이 들러붙어 있다.

눈은 애꾸였고, 귀에선 푸른 지렁이들이 쏟아져 나오는 중이다. 벌어진 입술 사이로 이빨만큼이나 촘촘하게 박힌 자그마한 설육(舌肉)들이 고스란히 비친다.

징그러운 모습. 그러나 이안은 놈에게서 눈을 떼지 않았다.

그게 퍽 기꺼웠는지, 캡틴 모자를 뒤집어쓴 놈이 파이프 담배를 까딱이며 웃었다.

“위대한 분의 은총을 받는 마법사여.”

놈의 가슴팍에 처박힌 인간의 머리 위로, 선장이라 적힌 명패가 희미하게 빛을 뿌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