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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5-12-14 21:31:57 +09:00

16 KiB
Raw Blame History

히틀러랑 괴벨스라니.

한때 대륙의 판도 자체를 흔들 뻔했던 전쟁 범죄자들이 아닌가. 그런 놈들이 신비의 존재를 인식하고 이용까지 했다고 하니 어처구니가 없었다.

“신비는 모든 시대의 전쟁에서 다 이용됐어. 마법사가 언제부터 있었다고 생각해?”

정작 이서아는 별로 놀라지 않고 태평하게 꺼낸 병의 뚜껑을 열어 새하얀 뼛가루를 손가락으로 찍었다. 그러곤 그것을 천천히 얼굴에 발랐다.

“역사적으로 기록된 말도 안 되는 사건들. 그거 다 마법사나 주술사, 점성술사 등등이 힘을 쓴 거야. 십자군 전쟁 때 네크로노미콘 때문에 난리가 난 적도 있어.”

“……그때는 마법사들이 양지에서도 자주 활동했으니까.”

“그렇지. 근대 들어오고, 시계탑이랑 다른 몇몇 조직이 만들어지고부터 음지에서 움직이기 시작한 거야. 정보 통제는 개나 줬을 땐 전쟁터에서 마법사들은 흔히 볼 수 있었어.”

이서아는 그렇게 말하곤, 얼굴에 바른 뼛가루를 이용해 피부를 귀신처럼 창백하게 바꿨다. 그걸로 모자라 손가락에 피를 살짝 내서 입술까지 붉은색으로 칠했다.

그런 그녀의 모습을 보며 이안이 떨떠름하게 물었다.

“그보다, 아까부터 뭐 하는 거야?”

“마법 준비.”

이서아가 태평하게 대답하며 펜을 꺼내 테이블 위로 마법진을 그렸다.

“신비의 상충이라고 들어본 적 있어?”

“……책에서 본 적이 있는 것 같은데. 같은 계열의 신비일 때, 비슷한 무언가를 불러들여 양쪽 모두의 힘을 깎아내는 이론 아닌가?”

사전적 의미는 복잡했지만, 사실 그렇게 어려운 개념은 아니었다.

예를 들어 진상 괴이가 있다고 하자. 편의점으로 들어가서 깽판을 치는 놈은, 아르바이트생을 상대할 때 최상의 퍼포먼스를 보여줄 수 있다.

그런데 여기서 아르바이트생까지 괴이라면? 손님이 마음에 들지 않을 때마다 머리를 깨부수는 괴이와 아르바이트생이 마음에 들지 않을 때마다 머리를 깨부수는 괴이가 마주치면 어떻게 될까?

정답은 약화다. 같은 장소에서 서로 상극이 되거나 비슷한 괴이가 만나면 양쪽 모두 힘이 약해진다.

일종의 영역 다툼이었다. 둘 중 누군가가 흡수되기 전까지 이루어지는 싸움. 이기는 쪽은 패배한 쪽의 개념을 흡수하여 더욱 강한 신비로 성장하지만, 패배한 신비는 그대로 소멸한다.

신비를 직접 다루는 마법사들이 다른 신비를 길들일 때 자주 사용하는 방법이었다. 길들인 신비를 풀어 다른 신비를 약화. 그대로 잡아먹어 성장시키거나, 아니면 약화된 신비를 붙잡아 지배한다.

어느 쪽이든 자주 사용되는 방안이었다.

다만 신비 마법사도 아닌 이서아가 다루는 건 불가능한 방법이다. 신비를 부르는 것도, 미리 길들여 놓은 괴이도 없는데 어찌 다른 신비를 불러온단 말인가.

하지만 이안의 생각과 달리 그녀의 표정은 자신만만했다.

“여긴 크루즈잖아. 그럼 어쨌든 ‘배’라는 카테고리에 들어간다는 뜻이고. 생각보다 배랑 관련된 괴이는 제법 많거든.”

이서아는 마법진 위로 뼛가루를 듬뿍 붓고, 피를 떨어뜨리며 말했다.

“태세우스의 배도 있고, 난파선, 거북이 수프, 타이타닉의 저주 등등. 굵직한 것들만 세도 이 정도야. 자잘한 것들을 따지면 훨씬 더 많고. 아, 크라켄도 있다.”

“……그것들은 다 말 그대로 괴이 아닌가? 사령술로는 어떻게 데려오지도, 유혹하지도 못할 텐데.”

“맞아. 근데 유령이랑 관련된 괴이 중에도 유명한 게 하나 있기는 하거든.”

이안이 그게 뭐냐고 물으려던 찰나, 돌연 떠오르는 생각에 헛웃음을 내뱉었다.

“……아니지?”

“바다의 무법자! 해적으로 살다가 죽었음에도 약탈을 멈추지 못한 미련한 것들! 악령이자 괴이이며, 세계 대전 때도 군함 몇 개를 통째로 쳐부순 악명 높은 유령 집단!”

그녀가 이안의 말을 무시하고 씩 웃으며 마법진 위로 손을 올렸다.

“유령 해적선! 놈들이 크루즈를 약탈하기 위해 이곳으로 오리라!”

“미치겠군.”

이안이 마도서를 손에 쥐며 고개를 젓고, 이서아가 눈을 감으며 주문을 외우기 시작했다.

통제할 수 없는 악령을 불러들이는 주문. 보통은 잘 사용하지 않는 위험한 마법이지만, 그녀는 망설이지 않았다.

“피와 살점을 탐하는 자여. 저주받은 자여. 원한으로 이루어진 자여. 이곳으로 오라, 그대가 원하는 만찬을 내가 준비했으니, 그대는 마음껏 취하고 탐닉하며 쾌락을 즐겨라.”

뿌우우우우!!

창문 너머 어딘가에서 배의 경적 같은 것이 희미하게 들려오기 시작한다. 바다의 물살이 더욱 거세게 변했다.

“제사장이자 신녀이며 신비의 주인이자 목줄을 쥔 자로서 명한다.”

이서아가 감았던 눈을 뜨고 흐릿하게 웃었다.

“오라. 그대가 원하는 모든 것이 이곳에 있다.”

주문이 끝나는 순간, 마법진이 발광하며 사방으로 뼛가루를 분산시켰다. 이서아는 마법이 발동됐다는 걸 확인하자마자 식탁보로 대충 얼굴을 닦아내며 소리쳤다.

“가자! 온다!”

“어디로 뭘 가자는…….”

콰아아아앙!!!

이안의 말이 갑작스레 터져 나온 굉음이 묻혀 사라졌다. 포탄이 박히는 듯한 소음과 함께 크루즈가 흔들리고, 이안이 미간을 콱 찌푸리며 창밖을 돌아보았다.

[꺄하하하하하학!!]

저 멀리, 해무 너머로 거대한 범선의 윤곽이 서서히 보이기 시작했다. 바람을 따라 흩날리는 깃발 아래로 망원경과 우람한 저격총을 든 선원의 형태가 흐릿하게 눈에 들어왔다.

들고 있는 저격총의 상태가 심상치 않다. 대항해시대 때 흔히 쓴 그런 화승총이 아니라 반자동 저격소총이 놈의 손에 들려있었다. 매끈한 검은색 금속 덩어리가 철컥거리며 움직였다.

“이런 시발!”

이안이 기함했다.

“무기가 왜 최신식이야!”

쐐애액-!

바람을 가르는 소음과 함께 식당의 창문이 부서지며 사방으로 유리 조각이 흩날렸다. 이안은 이를 악물고 이서아와 같이 식당 밖으로 내달렸다. 그녀는 흐익, 하는 비명을 내지르며 크게 소리쳤다.

“다른 유령선이랑 군함들 잡아먹으면서 노획했나 보지! 빨리 달려어어!”

“시민들은 어쩌고!”

“귀신들을 풀어뒀어! 알아서 안전한 곳으로 유도할 거야!”

“넌 계획이 다 있구나!”

“나 이 바닥 베테랑이야!”

콰아아앙!

날아온 대포가 또 한 번 크루즈의 몸체를 두드렸다. 이안은 휘청거렸다가 간신히 균형을 되찾았다.

고개를 돌리자 어느새 코앞까지 다가온 유령선의 모습이 보였다.

시꺼먼 안개 같은 범선. 그 위로 그득그득 모여 있는 각양각색의 유령 해적들이 최신식 무기와 옛날 무기를 동시에 쥐고 입술을 할짝거리고 있었다. 몇몇 놈들은 방탄복이나 방탄 모자까지 푹 눌러쓴 상태다.

이안의 상상과는 전혀 다른 모습이었다.

그가 예상한 유령선은 해골 형태의 해적들이 시미터나 화승총, 갈고리 등을 쥔 채 삐걱거리는 모습이었지, 저렇게 소총이나 RPG를 들고 깝치는 모습이 아니었단 말이다.

아무래도 요즘 해적 커트라인이 더럽게 높은 모양이었다. 이안은 속으로 욕지거리를 내뱉으며 리볼버를 꺼내 쥐었다.

[꺄하하학! 약탈이다! 살인이다! 보물이다!]

[계집은 죽이고, 남자도 죽여라! 전부 우리 선원으로 만들어!]

[아이랑 노인은 어떡합니까, 선장!]

[바다에 던져서 물고기 밥으로 줘라! 필요도 없는 놈들이다!]

제법 살벌한 대화 소리가 공기를 타고 들려왔다. 해적들은 부서진 크루즈의 창문에 갈고리를 걸고 넘어오며 깔깔 웃어댔다.

이서아는 고개만 슬쩍 돌려 크루즈에 불법 승선하고 있는 해적들을 응시하면서 크게 소리쳤다.

“살아있는 인간을 지키고, 저것들을 죽여! 명령이다!”

내뱉음과 동시에 소복을 입은 귀신들이 천장과 벽, 바닥에서 튀어나오기 시작한다. 검은색 한복을 걸친 저승사자들이 뚜벅뚜벅 걸음을 옮기고, 징그러운 몰골의 악령들이 피투성이가 된 채 미친 듯이 웃어댄다.

귀신과 귀신이 충돌한다. 살벌한 비명과 총소리, 괴성이 선명히 울려 퍼졌다. 이서아는 과도한 마법 사용으로 흘러나온 코피를 대충 닦아내며 이안을 돌아보았다.

“흩어져서 크루즈 괴이의 본체를 찾자! 난 아래로 갈게! 넌 위로 가!”

“혼자 가도 괜찮겠어?”

이안이 뒤로 총구를 겨누며 내뱉었다. 이서아가 문제없다는 듯 유리병을 꺼내 들었다.

“이 정도는 충분히 버틸 만해! 뭐 찾으면 신호 보낼 테니까 죽지 마!”

그녀가 그리 말하며 이안의 어깨를 툭 치고 계단을 향해 달려 나갔다. 이안은 잠깐 그녀의 뒷모습을 응시하다가, 때마침 도착한 엘리베이터의 문 너머로 몸을 날렸다.

제법 요란한 소리와 함께 엘리베이터에 탑승한 그가 마도서를 꺼내 쥐며 몸을 벌떡 일으켰다.

그 순간, 뒤통수에 느껴지는 시선을 감지하고 고개를 돌렸다.

“……”

“…….”

아침부터 엘리베이터 안에서 애정 행각을 나누고 있던 신혼부부 두 사람이 그를 뚫어져라 응시하고 있었다.

이안은 그들의 눈동자 사이로 빠르게 지나간 기다란 지렁이의 실루엣을 확인하고 곧장 방아쇠를 당겼다.

탕-! 타앙-!

정확히 두 사람의 미간을 꿰뚫고 후두부까지 날려버린 총알이 벽에 처박힌다. 모습을 변형하기도 전에 사망한 두 사람의 몸뚱이가 바닥에 엎어지고, 흘러나온 핏물 사이로 푸른 지렁이들이 기어 나온다.

콰직!

그대로 밟아 죽인 이안이 복도 저편에서 달려오는 해적의 다리에 총탄을 처박으며 엘리베이터 버튼을 눌렀다.

천천히 닫히기 시작한 문 위로 손을 올리고 마법을 사용한다.

“새롭게 태어나라.”

우드득!

살벌한 소음과 함께, 벌어진 엘리베이터 문이 접합한 것처럼 합쳐진다. 닫힌 문을 꿰뚫고 칼 한 자루가 쑤욱 들어왔지만, 그게 휘둘러지는 것보다 승강기가 위로 올라가는 게 더욱 빨랐다.

“후우…….”

이안은 흐른 땀을 닦아내며 담배 한 개비를 입에 물고 불을 붙였다. 뜨거운 연기가 목구멍을 타고 폐부로 스며들자 쿵쾅거리던 심장이 차분하게 가라앉았다.

갑자기 상황이 다급하게 변했지만, 딱히 이서아를 원망하지는 않았다. 애초에 정석적으로 괴이를 해결할 생각이 없었을뿐더러, 조용히 며칠 동안 조사만 할 바에야 깽판을 치는 게 훨씬 나았다.

가만히 있다가 무슨 일이 생길 줄 알고 시간을 허비하겠는가.

당장 기억을 잃고 죽었던 남자도 2일 차에는 살아 있다가 다음 날 사망했다. 시간이 지날수록 상황이 더욱 까다로워질 가능성이 충분하다는 뜻이다.

그러니 속전속결로 오늘 전부 다 끝내는 것도 나쁘지 않은 방법이었다.

“…….”

이안은 반쯤 태운 담배를 입에 물고, 리볼버를 장전하며 엘리베이터가 멈출 때까지 기다렸다.

잠시 후, 띵 하는 소리와 함께 엘리베이터가 정지했다. 그는 장전이 끝난 리볼버의 실린더를 돌리며 승강기 문 위로 손을 올렸다.

익숙한 주문을 외우자 문이 옆으로 쩍 갈라졌다. 이안은 열린 문 너머, 복도에 가득한 지렁이들과 감염된 생존자, 그리고 해적들을 보며 담배 연기를 후욱 내뿜었다.

피 흐르는 혓바닥 교단인지 뭔지 하는 놈들이 숨을 죽이고 있는 크루즈.

그럼에도 지금까지 모습을 드러내고 있지 선장과 나머지 선원들.

무언가를 물어보기 위해선, 일단 그들부터 찾는 게 우선이었다. 그는 리볼버를 건홀더에 집어넣고, 재창조의 손길을 펼치며 입술을 달싹였다.

“나, 위대한 자의 동반자이자 등불이자 종일지니. 위대한 당신을 위한 은총과 우리의 적을 벌할 창을 내게 쥐여주소서.”

주문을 외우며 마도서 위로 괴이의 살점을 덕지덕지 올려놓고 피를 살짝 붓는다. 그러자 마도서가 창백한 하얀 빛을 내뿜으며 진동하기 시작한다.

“그리하여 당신을 위한 길을 개방할지니. 위대한 분이시여, 부디 당신의 손길을 내게 빌려주소서.”

뚝.

주문을 마치는 것과 동시에 마도서 위로 올라가 있던 마법진의 재료들이 증발하며 사라진다. 그 부재를 새하얀 정육면체가 대신한다.

“끼에에에엑!”

[생자(生者)다! 죽여라! 죽여!]

이안의 기척을 감지한 괴이들이 그를 향해 달려가지만, 이안은 눈 하나 깜빡하지 않고 정육면체를 향해 명령했다.

“길을 뚫어라.”

[받든다.]

정육면체가 여성의 목소리로 대답하며 발광한다.

곧, 원판처럼 모습을 변형한 그것이 압축하며 전방을 향해 빠른 속도로 질주했다.

콰아아아아!!

광풍을 일으키며 날아간 그것이 경로에 있던 모든 것들을 찢어발기고 분해 및 재조립한다. 기괴한 모습으로 사지와 장기가 변형된 놈들이 경련하다가 이내 축 늘어졌다.

[완수. 소멸.]

적이 사라지자 압축했던 정육면체도 빛무리가 되어 흩어졌다.

재창조의 손길에 기록된 공격 마법의 일종. 일회용이라는 것과 재료가 제법 많이 들어간다는 것, 그리고 사용할 때마다 피로감을 유발한다는 단점이 있기는 했지만 이만한 위력이라면 충분히 감당하고도 남았다.

이안은 만족스러운 미소를 머금으며 물고 있던 담배를 뱉어냈다.

“가볼까.”

[우웅.]

마도서가 이안의 혼잣말에 대답하듯 진동했다.

그 순간, 상태창이 알아서 켜지며 내용이 변화하기 시작한다.

[EX. CHAPTER 2 선상 살인 사건]

[줄거리 요약: 당신은 살인 사건의 진상을 알아내는 대신 이서아와 함께 크루즈를 파괴하기로 했습니다. 그것도 해적이라는 말도 안 되는 적을 끌어들여서 말이죠. 그 탓인지 승객들은 당신을 향한 살의를 품기 시작합니다. 하지만 당신은 그들을 무시하고 선장을 찾아 떠나네요. 과연 당신은 원하는 걸 찾을 수 있을까요?]

[ENTER. CHAPTER 3 바다 아래에 잠들어 있는 것]

[당신은 선장과 선원들을 찾아 배를 돌아다니기 시작합니다. 그런데 당신은 문득 궁금증을 가지게 됩니다. 어째서 크루즈에 이런 괴물이 나오는 걸까? 이 지렁이들은 정체가 뭐지? 왜 인간에게 기생하며 인간의 육체를 변형시키는 거지? 합리적인 호기심이었습니다. 과연 당신은 이 호기심을 풀 수 있을까요? 오, 쉬운 일은 아닐 것 같다는 예감이 듭니다.]

사견이 잔뜩 들어간 챕터 요약과 안내문.

이안은 물끄러미 그것들을 응시하다가, 픽 웃으며 중지를 치켜들었다.

[……하.]

상태창이 노골적인 그의 욕설에 헛웃음을 터트리며 사라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