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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5-12-14 21:31:57 +09: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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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aw Blame History

이안은 침대에서 벌떡 일어나 곧바로 마도서를 손에 쥐었다. 부드럽게 안착한 재창조의 손길이 펄럭이며 열리고, 그가 눈앞에 떠오른 문자 위로 손을 올렸다.

“새롭게 태어나라.”

우웅.

발동한 마법이 문자 배열에 간섭하여 글자를 일그러뜨린다.

잠시였다. 무너져내린 글자는 다시 정상으로 돌아와 이안의 눈앞에서 깜빡거렸다.

“……허.”

재창조의 마법이 통하지 않는 최초의 상황. 이안은 왠지 모르게 등골이 서늘해지는 느낌을 받으며, 탁자 옆에 놓인 컵을 대상으로 마법을 사용해 보았다.

우드득!

무언가 우그러지는 듯한 소리와 함께 컵의 형태가 단검처럼 바뀌었다.

아무래도 마법 자체에 문제가 생겼다기보다는, 이 정체불명의 ‘상태창’이라는 괴이가 마법을 무시하는 것 같았다. 영향을 아예 안 받는 건 아닌 것 같다만, 그래도 단순 무식하게 죽일 수 없다는 건 확실했다.

“후우…….”

이안은 살짝 떨리는 손으로 담배 한 개비를 꺼내 물고 불을 붙이며 연기를 허공에 내뿜었다. 방 안에서의 흡연은 금지되어 있지만, 지금은 그런 것까지 신경 쓸 여유가 없었다.

뜨거운 니코틴과 타르가 폐를 적신 덕분인지 정신이 제법 맑아졌다. 그는 싸늘한 얼굴로 침대 끄트머리에 앉아 이 ‘상태창’이라는 놈을 조작했다.

‘직접적인 터치는…… 가능하군. VR 게임의 시스템을 조작하는 느낌이야.

흔히 겜판이라고 부르는 장르가 있다. 게임 속으로 들어가 상태창과 함께 움직이는 장르의 소설을 말하는 데, 지금 광경이 꼭 그것 같았다.

그럼 혹시 나도 게임 속으로 끌려온 건가?

“…….”

순간 그런 생각이 들었지만, 이안은 속단하지 않고 머리를 차갑게 식혔다.

예상하지 못한 상황을 마주친 만큼 침착하게 움직일 필요가 있었다. 괜히 당황하며 날뛰면 시야만 좁아진다.

‘나에게만 이런 변화가 생긴 건 아닐 거야. 이 크루즈에 탑승한 전원이 이상해졌다고 보는 게 맞겠지.

차분하게 상황을 관조한다.

상태창에 적힌 말에 따르면, 이안의 역할은 탐정이었다.

아무런 근거도 없이 배정된 역할은 아닐 것이다. 아마 어제 하루 종일 사건의 실마리를 찾아 돌아다녔기에 이런 직업을 가지게 된 것일 터.

그 증거로 어젯밤 카지노에서 도박하던 이서아는 도박꾼이라는 역할이 부여된 상태였다.

다른 이들이라고 별반 다르지는 않을 것이다. 선장은 진짜 선장일 거고, 사진작가나 형사 등은 아마 특정 트리거를 통해 얻어낸 직업일 가능성이 높았다. 실제 직업은 아닐 거다.

‘일종의 역할극인가.

하루 전에 있었던 일을 토대로 분석하여 부여한 역할들.

아무래도 신비는 어제부터 은밀히 움직이고 있었던 모양이다. 탐지하지 못한 걸 보면 직접 행동하는 형태의 신비보다는 기생, 혹은 도구에 가까운 성격을 지녔을 터.

어느 쪽이든 성가시기 그지없었다. 이안은 짜증에 혀를 쯧 차며 테라스 쪽으로 고개를 돌렸다.

하늘에 낀 먹구름 탓에 해는 뜨지 않았다. 밤이 멀어지는 중이지만, 그리 밝은 아침은 아니었다. 수면 위로는 해무(海霧)가 짙게 깔린 상태였고, 그 아래에서 무언가 헤엄치는 듯한 느낌이 들었다.

……평범한 물고기일까.

알 수 없었다. 굳이 당장 확인해 보고 싶은 마음이 들지도 않았다. 지금은 때가 아니다.

이안은 다 피운 담배를 재떨이에 비벼 꺼트리고, 빠르게 씻은 뒤 방을 나왔다.

이서아의 모습은 보이지 않았다. 옆방에서 인기척이 느껴지는 걸 보면 아직 잠들어 있는 상태인 모양이다.

망설이지 않고 전화를 걸어 그녀를 깨웠다.

[으응……? 왜애…….]

잔뜩 갈라진 목소리가 휴대폰 스피커를 타고 흘러나왔다. 이안은 돌려 말하는 것 없이, 곧장 본론으로 들어갔다.

“신비가 움직이기 시작했다. 상태창이니 뭐니 하는 거 보이나?”

[응……? 상태창……? ……어, 시발 뭐야 이거.]

그녀의 목소리가 순식간에 깨끗이 바뀌었다. 이불이 스르륵 내려가는 소리와 함께 침대 스프링 소리가 희미하게 들려왔다.

[나 왜 도박꾼이야. 나 마법사야!]

“어젯밤 도박으로 많이 벌어서 그런 거겠지. 아무튼 중요한 건 그게 아니야. 우리가 우리도 모르는 사이 신비에 휘말렸다는 게 문제다.”

복도에 기대어 서며 주변을 둘러본다.

“……으어어.”

저 멀리, 모퉁이 너머로 비척거리며 다가오는 한 여자의 모습이 보인다. 이안은 품에 넣어둔 리볼버의 차가운 감촉을 느끼며 입술을 달싹였다.

“빨리 나와. 30분 안에 안 나오면 문 부순다.”

[알겠어. 금방 준비해서 나갈게.]

이서아는 불평하는 대신 빠르게 답하며 통화를 끊었다. 이안이 한 손으로 휴대폰을 조작하여 GPS 앱을 실행했다.

[현재 위치: 안개 해역]

듣도 보도 못한 지역의 이름이 튀어나왔다. 이안이 미간을 콱 찌푸리며 지도를 축소했다.

넓어진 세계 지도. 그 한복판에 찍힌 붉은색 점이 남미와 북미 사이 바다에 자리 잡고 있었다.

‘……버뮤다 삼각지대잖아, 여기.

딱히 이안이 타국의 해안에 그리 박학다식한 건 아니지만, 그래도 지금 이곳이 버뮤다 삼각지대라고 부르는 대서양의 한쪽이라는 건 알 수 있었다. 워낙 유명한 곳이라 고민할 필요도 없었다.

온갖 음모론과 미스터리에 휩싸인 곳. 그러나 전부 가짜라고 밝혀진 게 몇 년 되지 않은 일인 것 같은데, 이리 갑자기 전이한 걸 보면 이 또한 관리국에서 시행한 정보 은폐인 모양이다.

그 사실 자체는 그리 놀랍지 않았다. 중요한 건, 한국의 영해에서 하룻밤 사이에 아메리카 대륙까지 날아왔다는 점이다.

‘현실에 있는 지역이니 공간형 괴이에 갇힌 건 아닐 거야. 말 그대로 순간 이동을 한 것 같은데…….

순간 이동이라니.

전혀 현실감 없는 단어지만, 신비가 엮인 이상 불가능한 일도 아니었다. 이안은 숨을 길게 토해내며 멀리서 다가오는 여자를 향해 고개를 돌렸다.

“으어억.”

물에 푹 젖은 듯한 몰골. 풀린 동공 사이에선 누런 고름과 진물이 떨어지고, 세 갈래로 찢어진 오른쪽 다리 사이로 푸른색 촉수가 꿈틀거린다.

어딜 어떻게 보아도 정상적인 몰골은 아니었다. 이안은 담배 한 개비를 입에 물고, 주머니 속 과도를 꺼내 그대로 투척했다.

쐐애애액!!

빠르게 날아간 과도가 그대로 여성의 허벅지를 스치며 떨어진다. 여성은 아무런 비명도, 반응도 보이지 못하고 그대로 안개가 되어 흩어졌다.

[끼에에엑!!]

그녀가 사라진 자리 위로 자그마한 푸른 지렁이 3마리가 떨어졌다. 놈들은 아가리를 쩍 벌리며 괴성을 질러댔다.

평범한 기생충이라고 하기엔 지나칠 정도로 징그러운 모습.

이안은 그대로 쏴 죽이기 위해 리볼버를 꺼냈지만, 그가 방아쇠를 당기는 것보다 지렁이들이 말라비틀어지는 속도가 더욱 빨랐다.

[끼이이익…….]

마치 수분이 빨린 것처럼 쪼그라든 모습.

지렁이들은 아무런 공격도 하지 못한 채, 먼지가 되어 사라졌다.

“…….”

이안은 겨눴던 리볼버를 빠르게 거두고, 주변에 목격자가 있는지 확인했다.

다행히 본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복도 한중간에 CCTV가 있기는 했지만, 이서아랑 동행한 상황이니 크게 신경 쓰지는 않았다. 직접적인 목격자만 어떻게 처리하면 될 일이다.

“……후우.”

이안은 숨을 길게 토해내며 담배 끄트머리에 불을 붙였다.

잠시 후, 이서아가 방문을 열고 밖으로 나왔다.

가벼운 크롭티와 후드집업, 그리고 긴 바지만 걸친 그녀가 담배를 피우는 이안을 보고 미간을 찌푸렸다.

“여기선 흡연 금지인데.”

“지금 그럴 걸 따질 땐가.”

이안이 가볍게 그녀의 지적을 넘기며 몸을 일으켰다.

“방금 뭔 괴물 같은 걸 하나 봤다. 갈라진 다리에서 촉수가 뻗어 나오는 익사체 같은 모습이었어.”

“흔한 괴이네. 다른 특징은?”

두 사람이 대화를 나누며 발걸음을 옮겼다.

“죽었을 때 안개가 되어 흩어졌다. 그리고 아직 인간의 형태를 유지하고 있어서 그런지, 아니면 본래 인간이어서 그런 건지 모르겠지만 여전히 영장류 취급이었다.”

“아, 그 칼로 죽였어?”

이안이 고개를 끄덕이며 복도 한복판에 떨어진 식칼을 주워들었다. 이서아가 수호령을 CCTV 내부로 흘려보냈다.

“저항도 못 하고 죽었으니 확실해.”

“혹시나 해서 하는 말이지만, 만약 우리가 환각을 겪는 거라면? 네가 죽인 대상이 사람이고, 이 상태창인지 뭔지 하는 게 전부 거짓이라면? 그런 가설은 어때?”

“불가능한 일이야. 방금 죽인 게 인간이라면 사라진 게 환각이라고 한들 시체가 남아야 한다. 하지만 우린 아무런 장애도 없이 복도를 걸었어.”

이안이 뻥 뚫린 복도를 슬쩍 돌아보며 엘리베이터 호출 버튼을 눌렀다.

“그러니 환각은 아닐 거야.”

이서아가 고개를 끄덕였다.

“나도 동의해. 환각은 많이 겪어봐서, 구분 정도는 쉽지. 소거법을 위해 한 말이니까 너무 신경 쓰지는 마.”

그녀가 텅 빈 뼛가루 병을 이안에게 내밀며 그를 돌아보았다.

“이거. 내가 어제 줬던 뼛가루 병. 아침에 일어나니까 발동되어 있더라. 일단 여기 있는 신비가 정신에 간섭한 건 확실해.”

“……난 아직 멀쩡하다만.”

이안이 떨떠름한 얼굴로 처음 받았을 때와 똑같은 상태인 유리병을 꺼내 들었다. 이서아는 잠깐 멈칫했지만, 그의 코트 사이로 보이는 마도서를 확인하고 고개를 끄덕였다.

“아마 마도서가 정신 방벽을 구축해 준거겠지. 제법 사랑받는 편인가 봐. 외신의 사랑이 좋은 건지는 잘 모르겠지만.”

“…….”

이안은 새삼 놀랍다는 표정으로 가방에 담긴 마도서를 의식했다. 두 권의 책이 그의 시선 느끼고 짧게 진동했다.

마치 ‘나 잘했지?’하고 묻는 듯한 떨림. 그는 쓰게 웃으며 마도서의 표지를 손으로 쓰다듬었다.

“별문제는 없을 거다. 아무튼, 정신 계열이라면 일단 첫 번째 공격은 피한 건가? 너나 나나 돌아버린 것 같지는 않은데.”

“아마도 그럴 거야. 난 기억의 혼선 같은 거 없거든. 너도 없지?”

“없어. 배운 마법도 전부 머리에 있다.”

“좋아.”

대화를 나누는 사이 엘리베이터가 도착했다.

승강기 내부에는 젊은 부부가 하나 타 있었다. 그들은 두 사람의 시선은 전혀 신경 쓰지 않고, 벽에 딱 붙어 격렬하게 입을 맞추는 중이었다.

그런 그들의 머리 위로 글자가 떠올랐다.

[신혼부부 이태령]

[신혼부부 김가인]

마치 게임 NPC 같은 이름들.

이안과 서아는 자신들의 머리 위에는 그런 것이 뜨지 않는다는 걸 확인한 후, 승강기에 탑승했다.

노골적인 키스 소리가 울려 퍼졌지만, 서아는 단 한 조각의 민망함도 느끼지 않은 채 주머니 속 송곳을 꽉 쥐었다.

그녀의 기세는 부부가 허튼짓이라도 하면 곧바로 목을 찔러버릴 정도로 살벌했다. 이안이라고 별반 다르지는 않았다.

“우웅, 자기.”

“가만히 있어, 응?”

승강기가 내려가는 동안 두 사람은 그 말만 지속적으로 반복해 댔다. 심지어 움직임도 똑같았다.

어딜 어떻게 봐도 정상적인 인간의 모습은 아니었다. 차라리 명령이 입력된 기계라고 보는 게 더욱 신빙성 있었다.

“……잡아먹혔어.”

서아가 신혼부부를 슬쩍 응시하며 말했다.

“역할에 잠식된 거야.”

“…….”

“정신 공격은 저런 식으로 이루어지는 것 같아. 만약 우리가 당했다면, 나는 도박꾼. 너는 탐정처럼 행동했겠지. 진짜 게임 속 NPC처럼.”

“……까다로운 놈이군. 게임을 현실에 덮어씌우는 신비인가?”

“잘 모르겠지만, 만약 그렇다면 해결 방법은…….”

“엔딩을 보는 거겠지.”

이안이 세 번째 담배를 피우며 대답했다.

담배 연기가 엘리베이터의 천장에 닿았다가 이내 흩어졌다.

그 순간, 엘리베이트가 자동으로 멈추더니 식당이 있는 층에 도착했다.

띵.

경쾌한 소리와 함께 승강기 문이 열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