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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계의 마도서.
그게 무엇을 의미하는 건지도 모를 정도로 은하는 멍청하지 않았다.
지구에서 태어나지 않은 혼돈. 기본적으로 악한 이들을 골라 선별하며, 단순한 악의만을 재료로 탄생한 역겨움의 결정체. 보는 것만으로 정신에 착란을 일으키고, 소유주나 주변 인물 구분 없이 광기를 퍼트리는 외우주의 재앙.
“…….”
과거부터 현재까지, 외신의 마도서가 발견된 횟수는 고작 2번밖에 되지 않았다.
각각 [신비묵시록]과 [르뤼에의 침수]라 불리는 마도서들.
신비묵시록의 주인은 백년전쟁에 참가한 어느 한 수도승이자 마법사였다. 그는 매우 성실한 사람이었지만, 외신의 지식에 빠져 주변 동료들을 모조리 죽여 신비로 만들고 지배했다. 그 후 토벌되었으나, 그가 죽은 곳에서는 외신의 즐거운 듯한 웃음소리와 광기가 녹아내려 일대에 있던 생명을 모조리 죽여버렸다.
그게 외신의 마도서를 관측한 첫 사례였다. 이를 통해 시계탑과 세상에 외신이라는 존재가 본격적으로 알려지기 시작했고, 그것을 분석하다가 미쳐버린 이들이 속출했다.
그리고 두 번째.
르위에의 침수를 얻게 된 건 시계탑의 평범한 마법사였다. 다만 첫 번째 사례와 달리, 그녀는 마도서를 얻었음에도 남용하지 않고 마도서와 관련된 모든 정보를 직접 기록했다. 현재까지 알려진 외신의 마도서에 대한 정보는 거의 대부분 그녀가 작성한 것이다.
끝끝내 미쳐서 학살을 자행하기는 했지만, 그녀의 기록은 마법사들에게 많은 도움이 되었다.
그 사람이 선인이기에 그랬던 것은 아니다. 오히려 지식을 탐구하기 위해서 어떤 짓이든 일삼는 순수한 악의 덩어리였기에 그리할 수 있었던 것이다.
그녀가 작성한 기록의 내용은 은하도 읽어본 적이 있었다.
[외신의 마도서를 펼쳐서 읽게 되면 더 이상 돌이킬 수 없다. 곧바로 외신의 노리개로 전락하여 그들의 뜻을 따라 움직이게 되고, 점점 머릿속에서 알 수 없는 중얼거림과 살의, 저주가 피어오른다. 그것을 거부하는 건 불가능하다. 하여, 외신의 마도서를 지닌 존재는 반드시 토벌하는 게 옳은 일이다.]
기록의 마지막은 저렇게 끝난다. 은하가 그걸 읽었던 시점이 딱 레메게톤을 얻은 직후라서, 지금까지도 자세히 기억하고 있었다.
하지만…….
‘외신의 마도서를 가졌다고 하기엔 기운이 너무…… 평범한데.’
레메게톤이 무엇을 느꼈는지는 은하도 잘 알지 못했다. 다만 그녀가 보기에 저 마법사의 기운은 지극히 평범했다.
악과 선을 구분할 수 있는 마법을 악마와의 계약을 통해 얻은 뒤로 매번 필요할 때마다 사용하는 편인데, 그 눈에 비친 남자의 모습 또한 악보단 중립이나 선에 더욱 가까웠다.
완벽한 성인군자까지는 아니지만, ‘도망쳐’라고 말할 정도로 위험한 인물 또한 아니었다. 상대가 감정을 느끼지 못하는 성격 장애라 선이고 악이고 구분할 필요도 없는 순수함의 결정체라면 또 모를까. 그런 낌새는 하나도 보이지 않는 상태인데 굳이 적대하고 밀어낼 이유는 없었다.
“……착각한 거 아니에요?”
결국, 탐색을 마친 유은하가 작은 목소리로 그리 중얼거렸다.
그러나 레메게톤의 뜻은 확고했다.
[아니, 확실하다. 저 미친 것은 이계의 마도서를 두 개나 가지고 있다. 범인이 아니라는 뜻이다. 필시 대량 학살이나 그에 준하는 범죄를 저지른 게 틀림없어. 외신의 마도서를 지닌 것들은 전부 그딴 짓은 숨 쉬듯이 저질렀다!]
“……아닌 것 같은데요?”
[맞다니까! 페로몬이 나오는 중이다! 저 마법사는 마도서를 끌어들이는 힘이 있어! 그래서 외신들도 눈독을 들인 거겠지! 크윽, 나도 너라는 주인이 없었다면 흥미를 느꼈을지도 모르겠군……! 이 무슨 독이 든 성배인가……!]
혼자 발광하는 레메게톤을 뒤로하고 유은하가 바이크를 끌고 오는 이안을 시야에 담았다.
혹시나 하는 마음에 다시 한번 마법으로 확인해 보았지만, 여전히 그녀의 눈동자에 비친 그의 모습은 평범하기 짝이 없었다.
이질적인 기운? 없다.
사특한 이운? 마찬가지로 없다.
착한 사람이라는 아우라? 없지만 그렇다고 나쁜 사람이라는 아우라도 없었다.
딱 평범한 인간 군상. 그게 다였다.
어쩌면, 정말 어쩌면 악인에 가까운 인물일 수도 있다. 마법으로 확인도 끝냈고, 예전에 검증도 했지만 진짜 극악의 확률을 뚫고 그가 악인이 되었을 가능성도 없지는 않았다. 그러나 아무리 그렇다고 한들, 적어도 호들갑을 떨 정도는 아니었다.
결국 은하는 한숨을 푹 내쉬며 패딩 안주머니에 넣어둔 레메게톤을 손으로 툭툭 두드렸다.
“확인해 봤는데, 딱히 문제는 안 보여요. 완벽한 선인은 아니더라도 악인 또한 아니에요. 솔로몬 님이 말했던 범죄를 저지르지는 않은 것 같아요.”
[은하! 날 믿어야 한다! 너는 나를 존중해야 해!]
“솔로몬 님의 말을 안 믿는 건 아니에요. 외신의 마도서? 가지고 있을 수도 있죠. 위험할 수도 있어요. 근데 진짜 잠깐 마법만 걸어주고 떠날 거니까, 크게 위험하지는 않을 거예요. 그리고…… 만약 그런 일이 있어도, 제가 그리 쉽게 당할 마법사는 아니잖아요.”
[……은하.]
“저 믿죠, 솔로몬 님?”
[…….]
솔로몬은 대답하지 않았다. 그게 무엇보다 확실한 대답이 되어주었다.
“……그쪽이 대모인가?”
그 사이, 오토바이를 갓길에 세운 이안이 말을 걸어왔다. 대모는 레메게톤을 두드리던 손을 치우고 고개를 끄덕였다.
“네. 반가워요.”
“……혹시나 해서 묻는 건데, 근처에 사람이라도 묻었나? 옷차림이…….”
이안의 시선이 은하의 옷차림을 한 차례 훑고 지나갔다.
피부 하나 보이지 많은 모습. 손에 장갑을 끼고 있는 건 날이 추우니까 그럴 수도 있지만, 얼굴까지 완벽하게 가린 건 아무리 봐도 평범하지 않았다. 당장 근처에 시체 하나를 묻어두고 왔다 해도 믿을 만한 몰골이다.
‘설마 갤러리에서 한 말이 진짜는 아니겠지?’
순간 그런 생각이 들었지만, 느껴지는 적의가 없어서 눈동자에 힘을 풀었다.
그래도 언제든지 대응할 수 있도록, 주머니에 넣어둔 지식 먹는 종이를 만지작거렸다. 아무리 대단한 마법사라고 한들 머리를 깨끗하게 비워버리면 할 수 있는 게 없을 것이다.
이안이 그리 생각하는 사이, 잠깐 침묵하던 대모가 입을 열었다.
“……사람 안 묻었어요. 그리고 그런 농담은 별로 안 좋아해요.”
생각보다 훨씬 가녀린 미성의 목소리.
혹시나 했는데 역시 여성이었던 모양이다.
딱히 중요한 일은 아니라서, 고개를 끄덕이고 곧바로 바이크를 손바닥으로 톡톡 두드렸다.
“바이크는 여기 있다. 지금 바로 마법을 쓸 수 있나? 아니면 준비가 좀 필요한가?”
“바로 쓸 수 있어요. 그전에 잠시 맹약을 좀 할 게요.”
무슨 맹약이라고 되물을 틈도 없었다. 대모가 돌연 손바닥 위로 붉은 마도서를 소환하고, 주문을 외우기 시작했다.
“그대 주관자여. 신의 이름 아래에서 맹약을 올리노니, 나의 마법에 단 한 치의 장난도, 오류도 없을 것을 맹세한다.”
사아아……!
내뱉음과 동시에 그녀의 마도서에서 붉은빛 오망성이 떠올랐다. 회전하는 펜타그램은 하늘로 살짝 떠올랐다가, 그 속에서 길쭉한 팔 하나를 뽑아냈다. 창백한 팔은 정확히 대모의 머리에 손을 얹고 나직이 읊조렸다.
[받았다.]
그 말을 끝으로 팔이 사라졌다. 이안은 속으로 감탄을 터트리며 눈동자를 가늘게 좁혔다.
‘악마를 소환한 건가? 아니, 그보단 이미 계약한 악마의 능력을 일부 사용한 것 같은데.’
소환 마법은 무조건 제물이나 소환의 매개체가 되는 무언가를 필요로 한다. 이안이 사용하는 소환술은 그 대가가 굉장히 저렴한 편이지만, 레메게톤에 적힌 마법은 아니다. 악마라는 존재들을 다루고 이용하는 만큼, 들어가는 재료 또한 상당히 복잡했다.
짐승의 사체는 말할 것도 없었고, 독이 묻은 칼, 가죽을 벗겨낸 뱀, 고양이과 짐승의 머리 등. 해괴하고 특이한 것들도 다수 포진되어 있었다. 심한 건 인간까지 요구해댔다.
그런 소환술을 저런 식으로 사용할 수 있을 리가 없다. 그러니, 이미 진즉에 계약한 악마의 힘을 사용했다고 보는 게 옳을 터.
‘몇 마리의 악마랑 계약했는지 모르는 이상 함부로 싸울 수는 없겠어.’
솔로몬의 72악마에 대해서 그리 잘 아는 편은 아니지만, 그들 중 몇몇이 전투에 굉장히 특화되어 있다는 건 알고 있다.
예를 들어 플라우로스는 불을 자유자재로 다루는 게 가능하며, 베파르나 포칼로르는 바다를 마음대로 조종하는 게 가능하다. 이외에도 인식을 바꾸거나 강제로 욕정, 사랑에 빠지게 만드는 놈들도 있다.
그들을 동시에 다루는 게 가능한지는 모르겠지만, 확실하지 않은 상황에 굳이 위험을 감수할 필요는 없었다.
무엇보다 그 ‘솔로몬의 작은 열쇠’의 주인으로 지금까지 살아남았다는 것 자체가 그녀의 실력을 보장하는 증거였다. 마도서 사냥꾼이라는 족속들이 버젓이 돌아다니는 세상이니, 그녀가 얼마나 노련한지는 굳이 설명할 필요도 없으리라.
“맹약은 무사히 이행됐어요. 이걸로 제가 당신 바이크에 수작을 부릴 가능성은 없는 거나 마찬가지예요. 안심해 주세요.”
대모가 말했다. 그녀는 레메게톤을 다시 품에 집어넣고, 쭈뼛쭈뼛 바이크로 천천히 다가갔다. 이안이 자연스레 길을 비켜주었다.
그녀의 맹약을 의심하지는 않았다. 도구에 사용하는 마법이라면 발동되었을 때 성공인지 아닌지 구분하는 게 어려운 편이지만, 악마의 팔이 대놓고 튀어나올 정도로 직관적인 마법은 숙련된 마법사라면 누구나 성공인지 실패인지 알아볼 수 있었다.
그리고 이안이 봤을 때, 그녀의 마법은 아무런 오류도 없이 성공했다.
확인한 그가 작게 웃으며 고개를 살짝 숙였다.
“굳이 그렇게까지 해줄 필요는 없었는데. 고맙다.”
“아니에요. 저도 괜히 기싸움하는 건 안 좋아하거든요. 그냥 한 번에 신뢰를 얻는 게 더 낫죠.”
노련한 강자이기에 할 수 있는 발언이었다. 이안은 쓴웃음을 지으며 그녀가 바이크에 손을 얹는 모습을 지켜보았다.
“그보다 존댓말을 하는군. 내가 여태까지 만난 마법사들은 다 반말로 말하던데.”
“그게 기본인 건 맞지만, 저는 개인적으로 이쪽을 더 선호해서요.”
“존댓말 하는 마법사는 다 미치광이 아니면 정신 나간 이상 성욕자라는 소문이 있지 않나?”
“……맞는 말이지만, 저는 아니에요.”
대모가 이안을 향해 고개를 슬쩍 돌렸다.
“그래도 조심하세요. 저를 제외한 다른 마법사들이 존댓말 하면 기본적으로 무시하시고요. 그게 안전을 챙기기 더 좋을 거예요.”
은근슬쩍 자기를 빼는 게 어이가 없었지만, 이안은 작게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알겠다. 새겨듣지. 그보다 그쪽처럼 존댓말을 해도 되겠나? 그쪽이 먼저 불문율을 어겼으니, 상관은 없겠지?”
“어…… 마음대로 하세요. 원래 존댓말을 더 편하게 쓰시나 봐요?”
“마법사가 되기 전까지는 그랬지. 지금이야 적응을 좀 했지만…… 여전히 선호하는 편은 아니다.”
이안은 눈이 섞여 불어오는 바람에 손을 휘저으며 말을 이었다.
“그럼, 마법 잘 부탁하겠습니다. 대모님.”
“……네.”
대모가 대답하며 펜을 꺼내 들었다.
그러고는 그대로 방금 막 구매한 바이크의 몸체에 마법진을 새겨 넣었다.
지이익.
검은색 바이크 위로 새하얀 선이 쭈욱 그어졌다.
“…….”
이안의 얼굴이 왈칵 일그러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