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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5-12-14 21:31:57 +09: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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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aw Blame History

병원에서 돌아온 이안은 몸을 씻고 밥을 먹은 뒤, 곧바로 침대에 다이빙하듯 드러누웠다.

평소라면 자기 직전까지 마도서를 읽거나 커뮤니티를 둘러봤겠지만, 오늘은 제법 피곤한 상태라 딱히 다른 무언가를 할 생각이 들질 않았다.

굳이 이 상태에서 억지로 뇌를 굴리거나 공부를 할 바에야 차라리 잠드는 게 훨씬 나았다. 내일을 위해서라도 컨디션은 관리해야 한다.

이안은 그리 생각하며 심해견문록을 머리 옆에 놔두고, 이불을 뒤집어쓰면서 눈을 감았다. 얼마 지나지 않아 그의 숨소리가 고르게 변했다.

[…….]

얌전히 누워있던 심해견문록은, 이안이 잠드는 것과 동시에 꾸물꾸물 기어와 그의 가슴에 찰싹 달라붙었다. 책상 위에 놓여있던 재창조의 손길이 한심하다는 듯 그것을 응시하다가, 몇 분 후 자기도 이안의 옆구리를 파고들었다.

그날, 그는 얼굴도 모르는 두 여자가 자신을 끌어안고 있는 듯한 꿈을 꿨다.

다음 날 아침.

이안은 졸린 눈으로 몸을 일으키고, 가슴과 옆구리에 찰싹 달라붙어 있는 마도서들을 떼어냈다. 마도서들은 잠깐 저항했지만, 이내 순순히 물러났다.

“……분명 다른 곳에 놔뒀던 것 같은데. 왜 붙어 있는 거지.”

그는 침대에 엎어진 마도서들을 흐릿하게 응시하다가 침대맡에 놓아두었던 물을 들이켜 잠을 쫓아내고, 기지개를 켜며 침대에서 일어났다.

잠을 푹 잔 덕분인지 수마는 금방 사라졌다. 이안은 옷가지를 챙겨 샤워하고, 냉장고에 넣어뒀던 재료들을 꺼내서 간단한 아침 식사를 준비했다.

예전에는 직접 요리하는 일이 거의 없었지만, 최근 들어서 요리에 흥미를 좀 붙이려고 노력하는 중이었다.

별다른 이유가 있는 건 아니고, 배달 기사로 괴이가 찾아오거나 공간형 신비로 뜬금없이 납치되는 일을 피하기 위함이었다. 겸사겸사 영양 균형도 조금 챙길 생각이다.

마법사라고 뒤에서 마법만 딸깍 난사할 수는 없는 노릇이었다. 오히려 직접 최전선에서 뛰는 일이 많은 만큼, 체력을 기르는 건 할 수 있을 때 해놓는 게 옳은 일이었다.

치이익.

언제 샀는지 모를 냉동 목살을 프라이팬에 굽고, 그릇에 밥과 숙주 등을 놓아둔다. 그러고 나서 적당히 익은 목살을 잘게 잘라 밥 위에 얹는다.

목살 숙주 덮밥 완성이었다. 이안은 냉장고에 있던 아무 소스나 가져와서 적당히 비비고, 한 숟가락 떠먹었다.

“먹을만하네.”

생각보다 나쁘지 않은 맛이었다. 그는 배가 찰 정도만 밥을 먹고, 설거지까지 한 뒤 침대에 앉았다.

이대로 운동을 갈까 싶기도 했지만, 오늘은 그냥 쉬기로 했다.

머리가 복잡하기도 하고, 어제 많이 움직여서 근육통까지 있으니 적당히 휴식해 두는 게 좋을 것 같았다.

안 그래도 슬슬 본업에 복귀할 타이밍이었다. 컨디션 조절은 미리 해두는 편이 나을 것이다.

이안은 그리 생각하며, 예전에 약속한 대로 ‘재창조의 손길’의 표지를 관리하기 시작했다.

손가락으로 스윽 먼지를 닦아주고, 얼룩이 있는지 확인하며 붓으로 불순물을 털어낸다. 재창조의 손길은 이안의 손길이 기분 좋은 듯, 미약하게 진동하며 그의 손아귀에 몸을 더욱 깊숙이 파묻었다. 심해견문록이 자기도 해달라듯 그의 허벅지를 모서리로 쿡쿡 찔러댔다.

지이잉.

그때, 침대맡에 놓아두었던 휴대폰이 진동했다. 이안은 관리해 주던 마도서를 잠깐 내려놓고, 휴대폰 화면을 확인했다.

[010-……: 나 체칠리아인데, 만나서 이야기 좀 해.]

어느 정도 예상한 인물로부터 도착한 메시지. 설마 바로 다음 날부터 문자를 보내올 줄은 몰랐지만, 체칠리아가 어떤 방향으로든 연락을 취할 거라는 건 예상하고 있었다.

이안은 잠깐 고민하다가 휴대폰 키보드를 두드렸다.

[나: 번호는 어떻게 알아냈어?]

[체칠리아: 수녀님에게 물어보니까 줬어. 그보다 어디서 만날래?]

[나: 아직 수락 안 했는데.]

이안이 메시지를 보내고 몇 분 후 답장이 도착했다.

[체칠리아: 너도 나한테 궁금한 거 있잖아.]

[체칠리아: 알려줄게. 보자.]

담담한 대답에 이안이 픽 웃으며 자판을 두드렸다.

[나: 카페에서 보자. 주소 보낼게.]

딸랑.

이안의 집에서 그리 멀지 않은 자그마한 카페.

문을 열고 들어가자, 알바생이 그를 반갑게 맞이해주었다.

“어서 오세요!”

“네.”

이안은 그녀에게 대충 화답해 주고 체칠리아를 찾아 시선을 돌렸다. 얼마 지나지 않아 구석에 혼자 앉아 커피를 홀짝거리고 있는 그녀를 발견했다.

‘무기는…… 따로 안 챙겼나.

체칠리아의 옷차림은 굉장히 평범했다. 외투는 벗어서 옆자리에 놔둔 상태고, 총이나 칼을 숨길 만한 곳은 딱히 보이지 않았다. 있다고 해봐야 스위치블레이드 같은 걸 주머니에 넣어두었을 텐데, 그 정도는 충분히 반응할 수 있었다.

피가 묻은 코트는 놔두고 왔지만, 역방향 조준기는 챙겼다. 체칠리아가 적의를 드러내는 순간 곧바로 대응하면 역으로 제압할 수도 있을 테니, 큰 걱정은 할 필요 없었다.

‘……처음부터 너무 살벌한 생각을 하는 거 아닌가.

문득 그런 생각이 들었지만, 자신의 안위를 먼저 생각하는 게 마법사로서 이상한 일은 아니었다. 이안은 다시 당당한 표정을 지으며 체칠리아를 향해 다가갔다.

“아.”

그녀가 이안을 발견하고 들고 있던 커피잔을 내려놓았다.

에스프레소.

전형적인 이탈리아인들이 사랑하는 커피였다. 하지만 이안은 냄새만 맡아도 느껴지는 끔찍한 쓴맛에 미간을 살짝 찌푸리며 키오스크를 조작했다.

“그걸 대체 뭔 맛으로 먹는 거냐? 아메리카노가 더 낫지 않나.”

“망할 코리안. 커피를 모욕하지 마.”

“미치겠군.”

이안은 헛웃음을 내뱉으며 아이스 아메리카노를 주문했다.

잠시 후, 완성된 음료를 가지고 체칠리아의 맞은편에 앉았다. 그녀는 옅은 갈색의 커피를 응시하며 증오스러운 눈빛을 품었다.

“악마의 구정물 같으니…….”

“……성직자가 할 말은 아닌 것 같은데.”

이안은 아메리카노를 한 모금 들이켜고, 바로 본론으로 들어갔다.

“그래서, 할 말이라는 건?”

“…….”

체칠리아는 바로 답하는 대신, 이안처럼 커피를 한 모금 마셨다. 뜨겁고 씁쓸한 액체가 그녀의 혀 위에서 꿈틀거리다가 목구멍을 타고 내려간다. 덕분에 겨울의 한기가 살짝 가시는 듯한 느낌이 들었다.

“……내가 한국에 온 목적은, 외신의 마도서를 주운 마법사를 찾기 위함이야.”

돌려 말하는 것 없이, 그녀가 곧바로 자신의 목적을 밝혔다.

“바티칸의 예언자들이, 한국에 있는 마도서의 주인을 찾아 내가 하고 싶은 대로 처리하라 그랬어. 그 이상의 정보는 안 알려주고.”

“……처리라.”

“친해지거나, 아니면 죽이거나. 판단은 내게 맡겼지.”

달그락.

체칠리아가 에스프레소 잔을 내려놓았다. 그러곤 진지한 얼굴로 이안을 응시했다.

“그래서 나도 나름의 기준을 세웠어. 만약 마도서의 주인이 멀쩡하다면 친해지고, 이미 미쳤다면 죽이기로. 하지만 다행히…… 죽일 필요는 없을 것 같아.”

그녀의 시선이 순간 이안이 챙겨온 가방으로 향했다가, 다시 그의 눈으로 옮겨갔다.

“친분을 쌓고 싶어. 우리 친구 하자.”

친분. 친구.

내뱉은 문장의 단어만 살피면 다소 맥이 풀리는 건 사실이지만, 그 안에 담긴 뜻까지 그런 것은 아니었다.

“…….”

이안은 바로 대답하는 대신, 체칠리아의 자색 눈동자를 응시하며 테이블을 톡톡 두드렸다.

바티칸. 교황청. 가톨릭의 성지.

다양한 이름으로 불리지만, 마법사와의 접점은 그리 없는 편에다가 알려진 정보도 적은 단체. 그런 곳에서, 이단이나 다름없는 외신의 선택을 받은 마법사와 친분을 쌓으려 하는 이유는 무엇일까.

‘죽인다는 선택지가 있었다는 걸 보면 마도서나 내 신변 확보에 초점을 둔 건 아닐 거야. 가장 가능성이 높은 건 역시 접점 만들기인가.

바티칸에서 외신의 마도서를 지닌 주인과 친해졌을 때 얻을 이득이 뭔지는 이안도 자세히 알 수 없었다. 다만, 가만히 놔두는 것보단 이득이란 예언이 있었기에 이리 직접 움직인 것은 확실했다.

솔직히, 이안에게도 그리 나쁜 제안은 아니었다.

이 세상에 존재하는 신비와 엮인 거대한 단체는 이안이 알기로 관리국과 카르텔, 교황청, 시계탑이었다. 세세하게 따지자면 다른 집단도 있기야 하겠지만, 주로 언급되는 건 저게 전부다.

그리고 그들 중 몇몇 곳과 우호적인 관계를 쌓아서 이안이 손해 볼 것은 전혀 없었다.

만약 계약이나 이런저런 조건을 붙여 친분을 쌓자고 하면 이안도 이득을 얻을 수 있는 방향으로 고민을 해보겠지만, 단순히 ‘친해지자’라고 말할 것에 세세한 의미를 부여하거나 이기적으로 생각할 필요는 없었다.

교황청은 외신의 마도서를 주운 주인과 적대하고 싶어 하지 않는다.

이안은 교황청과 마찰을 빚어 한 단체와 척지는 일을 만들고 싶지 않았다.

서로 이해관계가 일치한 이상, 굳이 체칠리아의 제안을 거부할 이유는 없었다.

물론 그게 완벽하게 신뢰한다는 뜻은 아니었다. 이해관계가 맞은 것처럼, 갑자기 사이가 틀어져 뒤통수에 칼침을 맞을지도 모르는 게 이쪽 업계였다.

‘언제나 배신을 상정하고 관계를 쌓는 게 낫겠지. 최소한 신뢰가 생길 때까지는.

생각을 정리한 이안은 커피를 한 모금 들이켜고 고개를 끄덕였다.

다만 곧바로 그녀의 제안을 승낙하는 대신, 떠오른 사적인 의문을 슬쩍 물었다.

“내가 지닌 마도서가 외신의 것이라는 건 어떻게 확신했지?”

“보통은 알아차리기 힘들지만, 나는 신을 섬기니까. 그게 이계의 주민이라는 걸 깨닫는 건 어렵지도 않은 일이야.”

이계의 주민.

감시자를 말하는 것이다. 아무래도 바티칸의 성직자들은 심해견문록으로 부르는 생물들이 어디서 온 건지 대충 알아차릴 수 있는 모양이었다. 자세한 환경이나 배경까지는 몰라도, 이 세상에 존재하지 않는 무언가라는 건 짐작할 수 있을 터.

다만 마법을 쓸 땐 아무런 말도 하지 않았던 걸 떠올려 보면, 단순한 마법까지 감지하지는 못하는 것 같았다.

‘한 가지 알아가는군.

그리 대단한 정보는 아니지만 없는 것보단 나았다. 이안은 작게 웃으며 커피잔을 내려놓았다.

“좋아. 친하게 지내지. 앞으로 필요한 일이 있으면 부르도록 할게.”

“……필요한 일?”

“카르텔의 의뢰를 해결하거나 할 때, 혼자 움직이는 것보단 같이 움직이는 게 나으니까.”

“……나를 탱커로 쓴다는 말?”

“게임으로 치면 그렇지.”

이안이 흐릿한 미소를 지으며 그리 대답했다.

체칠리아의 재생 능력은 전위로서 굉장히 가치가 뛰어났다. 좋은 의미로 말하자면 든든한 방패였고, 나쁜 의미로 말하자면 고기 방패였다.

어느 쪽이든 이안에겐 좋은 동료나 다름없었다.

“매번 부르지는 않을 거야. 네 의사도 존중할 거고. 협박 같은 수단을 통해 행동을 강제할 생각은 없다.”

“……강요만 안 한다면 됐어. 그리고…… 괴이를 잡는 건 원래 내 일이기도 하니까. 기회가 되면 합류할게.”

체칠리아는 옅은 한숨과 함께 대답하고, 테이블에 엎드려 웅얼거렸다.

“그래도 가끔은 그냥 친구처럼 놀아. 안 그래도 한국에 친한 사람 없어서 힘들어…….”

“외로움을 많이 타는 성격인가?”

“……조금?”

그녀의 솔직한 대답에 이안이 작게 소리 내어 웃었다. 그는 반쯤 남은 아메리카노를 놔두고 자리에서 일어났다.

“밥이나 먹자. 친구가 된 기념으로 내가 살 게. 뭐 먹고 싶은 건?”

“……피자.”

“그래, 가자.”

이안이 가방을 챙기고 체칠리아를 내려다보았다. 그녀는 남은 에스프레소를 쭉 들이켜고, 벗어둔 외투를 걸치며 그를 따라 나갔다.

그렇게 도착한 피자 가게.

체칠리아는 그 자리에서 피자 30판을 전부 먹어 치웠다. 가게 사장님이 서비스로 준 하와이안 피자만 이안에게 건네주며, 그녀가 행복하게 웃었다.

“마이써. 너도 먹어.”

“…….”

그날.

이안은 뷔페를 제외한 다른 식당에 다시는 체칠리아를 데리고 가지 않겠다 다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