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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5-12-14 21:31:57 +09: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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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aw Blame History

클럽의 뒤쪽 자그마한 주차장.

이안은 주차장 옆에 마련된 흡연실에서 담배를 피우며 하늘에 걸린 달을 올려다보았다.

딱히 감상에 젖은 것은 아니었다. 그냥 달이 중천에 걸린 지 한참인데, 아직 뱀파이어 헌터들이 나타나지 않아서 그랬을 뿐이다.

“……후우.”

담배 연기를 내뿜고 휴대폰을 꺼내 문자에 적힌 내용을 확인했다.

장소는 딱히 틀리지 않았다. 경기도 남부에 있는 제법 규모가 큰 클럽. 입장하기 위한 기준이 제법 높아서, 클럽 토박이들에게 물은 좋지만 까다롭다고 유명한 곳.

이안이야 클럽을 한 번도 가보지 않아서 이쪽 업계가 어떻게 돌아가는지는 모르지만, 그래도 마냥 깨끗하다고 생각하지는 않았다. 애초에 깨끗하기만 했으면 흡혈귀들이 여기 숨어들지도 않았겠지.

아무튼.

약속된 장소에 도착한 게 대략 10분 전이고, 약속까지 남은 시간은 정확히 5분이었다. 슬슬 모습을 드러낼 때도 되었건만, 아직 헌터들은 보이지 않았다.

‘설마 도망친 건 아니겠지.

순간 그런 생각이 들었지만, 이안은 속으로 고개를 저었다.

뱀파이어 헌터라는 이름을 달고 다니는 사람들이다. 아무리 그래도 흡혈귀들을 눈앞에 두고 도망칠 정도로 등신 같은 놈들은 아닐 거다.

카르텔이 보장한 사람들이니, 최소한의 신뢰는 있을 터.

‘안 오면 뭐, 나라도 혼자 들어가야지.

보수로 잡힌 금액이 무려 700만 원이다. 좋은 기회이니만큼, 놓칠 생각은 없었다.

이안이 그렇게 고개를 내리고 담배를 지져 꺼트리는 순간이었다. 돌연 흡연장의 문이 벌컥 열리더니, 모자를 푹 눌러쓴 남자 2명이 안으로 들어왔다.

“…….”

“…….”

흡연장 안에 어색한 분위기가 감돌았다.

두 남자는 잠깐 이안을 뚫어져라 응시하더니, 품에서 시가 하나를 꺼내 능숙하게 입에 물고 끄트머리를 잘라냈다. 그러곤 치익 불을 붙였다.

“쓰읍…… 후우…….”

그들의 입과 코에서 자욱한 담배 연기가 흘러나왔다. 이안은 꺼트린 담배를 재떨이에 던져넣고, 의자에 털썩 주저앉았다.

“시간에 딱 맞춰서 왔군.”

이서아의 조언대로, 이안은 존댓말 대신 거만한 말투로 그들을 대했다.

예상했다는 듯, 그들이 시가를 손가락에 끼우며 웃음을 터트렸다.

“그쪽이 이번 흡혈귀 사냥에 참가하는 마법사인가? 샌님처럼 생겼군.”

“계획은 있나?”

이안은 그들과의 대화를 이어가는 대신 곧바로 본론부터 내뱉었다.

그게 퍽 마음에 들었는지, 뱀파이어 헌터 중 늙은 남자가 입을 열었다.

“클럽에 숨어든 흡혈귀는 총 15마리다. 인간으로 의태 하는 게 가능한 놈은 딱 1마리. 나머지는 모두 이성이 아닌, 본능대로 살아가는 흡혈귀다.”

단순한 괴물이라는 뜻이었다. 이안은 담배 하나를 더 꼬나물고 그의 이야기를 경청했다.

“일단 클럽 안으로 들어가 흡혈귀들이 숨어있는 위치를 파악한다. 그 후, 의도적으로 소란을 일으켜 클럽 안에 있는 시민들을 대피시킨다. 그러고 나서 흡혈귀를 친다. 끝이다.”

“생각보다 간단하군. 위치를 파악하는 건 누가 하지?”

“네가 한다. 마법을 사용해서 알아내 줬으면 좋겠는데. 가능하겠지.”

노인의 날카로운 시선이 이안을 훑는다. 이안은 시선을 피하지 않고 가만히 생각하다가 고개를 끄덕였다. 신비의 위치를 알아내는 마법은 마도서에도 적혀 있던 것이었다.

“화장실에서 마법을 사용하겠다.”

“좋아, 우리도 우리 나름대로 돌아다니며 그들의 위치를 알아내지. 움직일 때는 조심해라. 그들에게 물리면 뭘 하기도 전에 동족으로 바뀌어버리니까.”

노인의 옆에 있는 청년이 말했다. 그는 코트 안 주머니에 꽂아놓은 권총을 이안에게 보여주며 히죽 웃었다.

“우리가 네 머리통에 고속도로를 깔 일이 없었으면 좋겠어.”

“……별걱정을 다 하는군.”

“자신 있으면 됐다. 그보다 이거나 받아라.”

청년이 이안의 품으로 권총 한 자루와 선글라스 하나를 던져주었다. 이안은 묵직한 권총의 무게에 눈을 찌푸리고 청년을 돌아보았다.

청년은 깐 마늘을 씹어먹으며 말했다.

“은탄을 넣어둔 물건이다. 우리가 만난 거야 카르텔 덕분이지만, 어쨌든 지금 이 순간만큼은 같은 목적을 가진 형제니까. 그걸로 몸을 지켜.”

“……후우. 사양하지는 않겠다. 고맙게 받지.”

의도치 않게 실총을 받게 되었으나, 이안은 침착하게 탄창에 들어간 총알의 개수를 확인하고, 슬라이드를 당겨보았다.

다행히 총은 정상적으로 작동하는 것 같았다. 아직 방아쇠를 당겨보지는 않았지만, 그래도 이 정도면 중요한 순간에 고장 나지는 않을 터.

그는 권총을 코트 안주머니에 집어넣고, 옷매무시를 다듬으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슬슬 가지. 여기서 담배만 피울 생각도 아니잖냐.”

“그래, 그래. 가자. 그보다 내가 너를 뭐라고 부르면 되겠나.”

노인이 물었다. 이안은 잠깐 고민하다가, 그냥 단순한 호칭을 내뱉었다.

“마법사라고 불러라.”

“좋아. 그럼 나는 알파, 저놈은 베타라고 불러라.”

“그러지.”

그걸로 통성명이 끝났다. 세 사람은 클럽의 정문으로 가서 입장하기 위한 줄에 끼어들었다.

잠시 후, 세 사람의 차례가 돌아왔다. 클럽 가드는 가장 먼저 이안의 얼굴을 확인하고 곧바로 입장을 허가했다. 베타는 애매한 눈으로 보다가, 마지못해 허락했다.

의외로 가드는 알파의 얼굴을 보자마자 그를 안으로 들여보냈다. 베타가 아니꼬운 듯 눈을 찌푸렸지만, 그는 웃음을 흘릴 뿐 아무런 말도 하지 않았다.

“하아…….”

그렇게 베타의 한숨 소리를 들으며 클럽에 입장했다.

“와아아아악!!”

들어가자마자 귀가 터질 것만 같은 함성과 음악 소리가 들려왔다.

사방에서 헐벗은 남녀들이 서로를 끌어안고 몸을 비벼댄다. 어두컴컴한 공간에 자그마한 불빛들만이 희미하게 반짝거렸다.

“움직이지.”

알파가 말했다. 이안은 고개를 끄덕이고, 곧바로 화장실을 향해 발걸음을 옮겼다.

“어머, 오빠. 처음 보는 얼굴인데? 혹시 여기 오는 거 처음이야?”

도중에 어떤 여성이 이안에게 말을 걸었다. 이안은 부드럽게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네, 맞습니다.”

“역시! 내가 이렇게 잘생긴 남자를 놓쳤을 리가 없거든! 자기, 우리 잠깐 저기 가서 단둘이 이야기나 좀 할까? 내가 술 한잔 살게.”

“아, 좋습니다. 근데 제가 지금 화장실이 급해서요. 잠시만 들렀다 오겠습니다.”

“응! 3번 테이블로 와!”

여성이 이안의 뺨에 키스를 쪽 갈기고 엉덩이를 살랑살랑 흔들며 사라졌다.

이안은 그녀가 시야에 보일 때까지 미소를 머금고 있다가, 사라지는 순간 미간을 찌푸리며 뺨에 묻은 립스틱을 닦아냈다.

괜한 소동을 일으키고 싶지 않아서 최대한 부드럽게 응대했건만, 이럴 줄 알았으면 그냥 강하게 나갈 걸 그랬다.

이안은 한숨을 내쉬며 화장실로 들어갔다.

화장실에는 각양각색의 인간들이 다양한 몰골로 뒤집어져 있었다.

그들을 무시하고, 비어 있는 칸으로 들어가 문을 잠갔다.

‘소환.

속으로 생각하는 것과 동시에 마도서가 손에 잡혔다. 그는 망설임 없이 마도서에 적힌 대로 마법을 사용했다.

[신비 추적]

[반경 20m 이내에 있는 신비의 위치를 파악한다.]

[재료: 괴이의 살점, 에테르.]

간단한 효과만큼이나 재료 또한 단순했다. 이안은 곧바로 주머니에 넣어온 큐브를 꺼내고, 펜으로 벽에 마법진을 그렸다.

그 위에 큐브를 올리자, 큐브는 떨어지기는커녕 오히려 마법진에 찰싹 달라붙어 미약한 빛을 흩뿌렸다.

이걸로 준비가 끝났다. 이안이 곧바로 주문을 외었다.

“찾아라. 그들을 벌할 자, 이곳에 있나니.”

마법진이 한 차례 진동하고, 큐브가 녹아 사라진다. 그 순간, 이안의 머릿속에 괴이의 위치에 대한 정보가 고스란히 들어왔다.

감각의 영역보다는 잊고 있던 지식을 새롭게 깨달은 듯한 느낌이다.

마치 처음부터 그들이 어디에 있었는지 알고 있었던 것만 같은 기분.

‘지하에 셋. 클럽 내부에 다섯. 전부 상자에 웅크리고 있군. 천장에 있는 파이프에도 넷이 숨어있고, 직원 휴게실에 둘이 숨을 죽이고 있다. 이쪽은 이미 사냥을 마쳤어.

가장 중요한 인간으로 의태 중인 흡혈귀의 위치는 곡을 연주 중인 DJ의 바로 앞이다. 이안은 고개를 끄덕이고, 마도서를 변기 뒤쪽에 숨겨놓았다.

[우웅!]

마도서가 불만이라는 듯 몸을 진동했다. 이안은 쓴웃음을 지으며 표지를 쓰다듬었다.

“미안해. 잠시만 여기 있어 줘. 금방 다시 소환할 테니까.”

진심이 통한 덕분인지, 마도서가 다시 잠잠해졌다. 그는 표지를 몇 번 더 쓰다듬어주고, 화장실 문을 열어 밖으로 나왔다.

여전히 사람이 득실거리는 클럽 내부를 휘저으며 알파를 찾아 발걸음을 옮긴다.

노인은 클럽의 2층, 난간에 기대어 서서 위스키를 홀짝거리고 있다. 이안이 그에게 다가가자 알파가 곧장 물었다.

“위치는?”

“지하에 셋. 클럽 내부에 다섯. 천장에 있는 파이프에도 넷, 직원 휴게실에 둘이다. 의태 중인 놈은 DJ 바로 앞에 있고.”

“음. 아마 의태 중인 건 저기 서 있는 금발 머리의 여자일 거다.”

“근거는?”

“피 냄새.”

알파가 픽 웃으며 코트 주머니에서 반다나 하나를 꺼내 얼굴을 가렸다.

“아무리 숨겨봤자. 흡혈귀 특유의 역겨운 냄새는 지워지지 않는 법이지.”

“…….”

“선글라스를 착용해라.”

알파가 말했다. 이안은 잠깐 떨떠름한 표정으로 서 있다가, 어쩔 수 없다는 듯 선글라스를 착용했다.

시야가 살짝 어두워졌지만, 이 정도는 별로 타격도 없다. 이안은 모자를 푹 눌러쓰기 시작하는 알파를 보며 물었다.

“소란은 언제 일으키지?”

“지금.”

이안이 되물을 틈도 없이, 돌연 2층에서 작은 구체 하나가 1층으로 떨어졌다.

연막탄이었다.

마늘 향을 첨가한 연막탄.

푸쉬이이익!!!

연막탄이 펑 터지며 사방으로 누런 연기를 흩뿌리기 시작했다.

이안은 번져오는 연기 너머, 연막탄을 곳곳에 던지고 있는 베타를 발견하고 헛웃음을 터트렸다.

“뭐, 뭐야 시발!”

“꺄아아악!! 테러다, 테러야! 전부 나가!”

갑작스러운 소란에 클럽 내부가 혼란스럽게 변했다. 가득 들어차 있던 인원들이 누가 먼저라 할 것 없이 계단을 타고 도망치기 시작했다. 클럽 가드들도 처음에는 사태를 수습하려 했으나, 연기가 사방으로 번지자 욕지거리를 내뱉으며 밖으로 몸을 내뺐다.

덕분에 클럽 내부에 남은 거라고는 마법사 하나와 두 명의 뱀파이어 헌터.

그리고.

콰아앙!!

“갸아아아악!!!”

15마리의 흡혈귀뿐이었다.

“후우…….”

이안은 마도서를 소환하고, 반대 손에 권총을 쥔 채 천장에서 떨어져 내린 흡혈귀를 노려보았다.

흥겹게 울려오는 클럽 특유의 EDM 사운드가 심장 고동을 따라 베이스를 두드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