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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Authored-By: Claude Opus 4.5 <noreply@anthropic.com>
2025-12-14 21:31:57 +09:00

11 KiB
Raw Blame History

나는 천천히 성벽에서 내려왔다.

“…….”

성 안은 기이한 정적에 휩싸여 있었다.

방금 전까지 울려 퍼지던 함성과 비명은 온데간데없었다.

병사들은 모두 하던 일을 멈추고, 성벽 너머의 모래 구덩이를 멍하니 내려다보았다.

마치 거대한 해일이 휩쓸고 지나간 것처럼 아무것도 남아있지 않은 자리.

오크 대군이 존재했다는 사실조차 믿기지 않을 정도로 깨끗했다.

정적을 깬 것은 한 병사가 손에 들고 있던 칼을 떨어뜨리는 소리였다.

쨍-.

그 작은 소리가 신호탄이 되었다.

누군가가 울음을 터뜨렸다.

“사, 살았다….”

그것을 시작으로 억눌려 있던 목소리들이 터져 나왔다.

“와아아아아아아아!”

성벽 전체가 떠나갈 듯한 함성.

병사들은 서로를 부둥켜안으며 소리를 질렀다.

죽음의 공포에서 벗어났다는 안도감, 믿을 수 없는 기적을 목격했다는 흥분.

곧 그 모든 열광이 한 곳으로 모였다.

바로 나에게로.

“대현자님이시다!”

“대현자보다는 작은 현자란 이름이 어울리는 것 같은데?”

“그런가? 작은 현자님께서 우리를 구하셨다!”

사람들이 내 주위로 몰려들었다.

하지만 감히 내게 손을 대지는 못하고, 몇 걸음 떨어진 거리에서 그저 나를 바라볼 뿐.

그들의 눈에는 순수한 숭배의 빛이 가득했다.

심지어 몇몇은 그 자리에 무릎을 꿇고 기도를 올리기 시작하는 사람들도 있었다.

무척이나 난감한 상황.

“저렇게 작고 가는 몸에서 어떻게 그런 힘이….”

“인간의 힘이 아니야. 분명 신의 축복을 받으신 거야.”

“사실 천사가 아니실까?”

“과연!”

천사라니?

나는 일그러지려는 표정을 참아야 했다.

듣기만 해도 온몸이 오그라드는 것 같았다.

과한 칭송을 들으면 버틸 수가 없다더니. 정말 그랬다.

내 얼굴이 저들이 보기에도 새빨개졌을까 봐 걱정하고 있을 때였다.

시모어와 다른 지휘관들, 심지어는 왕관을 쓴 왕까지 황급히 내게로 다가왔다.

그들 역시 흥분을 감추지 못하는 얼굴이었다.

왕은 내 앞으로 다가와, 군주라는 사실도 잊은 채 깊게 허리를 숙였다.

“그대의 은혜를 어찌 갚아야 할지 모르겠소, 위대한 현자여. 그대는 우리 왕국 전체를 구원한 것이오.”

“흠흠. 고개를 드시죠.”

나는 작게 헛기침을 했다.

바로 그때였다.

“마, 말도 안 돼….”

모두의 등 뒤에서 죽어가는 목소리가 들려왔다.

궁정마법사 제라드였다.

그는 겨우 벽을 짚고 선 채로, 넋이 나간 표정을 하고 있었다.

제라드의 시선이 내게로 향했다.

그의 눈동자가 지진이라도 난 것처럼 격렬하게 흔들렸다.

“이건… 이런 건 마법이 아니야….”

제라드는 나를 향해 손가락질하며 비명을 질렀다.

“속지 마라! 저것은 현자도, 천사도 아니다! 저것은 마법이 아니란 말이다!”

회의실에서보다도 더욱 격렬한 반응.

“이 규모의 마법을 순식간에 구현하는 것은 불가능하다! 마법의 법칙을 전부 무시한 힘이란 말이다!”

“… 제라드님?”

“천사라고? 아니, 저것은 악마다! 어린아이의 탈을 쓴 악마가 우리를 기만하고 있는 것이야!”

제라드의 절규에 주변이 조용해졌다.

병사들은 미친 사람을 보는 듯한 눈으로 궁정마법사를 쳐다보았다.

방금 전까지 자신들을 구해준 은인을 향해 악마라고 소리치는 그를 이해할 수 있을 리가 없었다.

국왕이 분노한 목소리로 외쳤다.

“궁정마법사! 지금 제정신인가! 은인께 무슨 망언인가!”

“망언이 아닙니다, 폐하! 눈을 뜨십시오! 저 자는 우리가 감당할 수 있는 자가 아닙니다! 당장 저 악마를 봉인해야…!”

“저 자를 끌어내라. 전투의 충격으로 실성한 모양이군.”

“폐하! 폐하! 이거 놔라! 읍읍…!”

제라드의 말이 채 끝나기도 전에, 장군의 명을 받은 병사 두 명이 그의 입을 막고 양팔을 붙잡았다.

궁정마법사는 끌려가면서도 필사적으로 발버둥 치며 나를 향해 알아들을 수 없는 소리를 질렀다.

“갑자기 왜 저러시지?”

“원래 궁정마법사께선 성격이 조금…. 옹졸한 면이 있으셨지 않나.”

“자신보다 뛰어나고 어린 마법사의 등장에 질투심이 폭발한 것이겠지. 쯧쯧….”

사람들은 혀를 차며 그 모습을 지켜보았다.

왕국의 대마법사가 질투심과 충격에 완전히 미쳐버렸다고 생각하는 모양.

나는 그 모습을 보며 괜히 마음이 찝찝해졌다.

짜증 나는 사람이긴 했지만, 저런 모습을 보니 입맛이 개운치 않았다.

게다가 높은 확률로 다음 층이나, 다다음 층에도 영향을 줄 것 같았다.

괜히 원한을 살 필요는 없겠지.

나는 왕을 향해 입을 열었다.

“그를 너그러이 용서해 주시죠. 저는 아무렇지 않으니.”

“과연, 진짜 현자님은 마음도 넓으시구려. 현자님의 뜻이 그렇다면 그리하겠소.”

왕은 다시 내게 허리를 숙였다.

“다시 한번, 그대에게 왕국의 모든 것을 걸고 감사하오. 그대의 이름은 우리 역사에 영원히 기록될 것이오.”

그의 말이 끝나기가 무섭게, 내 눈앞에 시스템 메시지가 떠올랐다.

[당신은 절체절명의 위기에 빠진 왕국을 구원했습니다.]

[왕국의 사람들이 당신을 ‘현자’라 칭하며 숭배합니다.]

[칭호: [사막의 작은 현자]를 획득했습니다.]

‘작은이란 수식어는 필요 없는데….

나는 투덜거리면서 허공을 바라보았다.

시야 한 구석에는 32층의 클리어까지 남은 시간이 표시되어 있었다.

[남은 시간: 21분 17초]

30분짜리 방어 퀘스트.

타이머는 이제 겨우 8분을 넘어가고 있었다.

[탑 32층(EXTREME) 클리어를 축하합니다.]

잠시 뒤, 내 앞에 금빛의 스킬북이 떠올랐다.

나는 이제 무슨 일이 일어날지 알고 있었다.

[최초 클리어 보너스가 적용됩니다!]

[랭킹 1위 보너스가 적용됩니다!]

약속의 2단계 진화.

빛과 함께 내 손에 쥐어지는 두툼한 책 한 권.

표지는 무지갯빛으로 찬란하게 빛나고 있었다.

[액티브 스킬: 신기루]

[등급: 레인보우]

[빛으로 진실을 가리십시오.]


집에 돌아오자마자 나는 지하의 훈련실로 향했다.

피곤했지만 머릿속은 새로운 스킬에 대한 호기심으로 가득 차 있었다.

내 세 번째 레인보우 스킬, 신기루.

최근 한 가지 눈치챈 것이 있다.

스킬 등급이 높을수록 설명이 싸가지가 없어진다는 것.

그래서 모든 효과는 내가 직접 테스트해보면서 알아내야만 했다.

“뭐, 짐작 가는 게 없는 것은 아니지만.”

아마도 이 스킬은 환상을 만드는 스킬일 것이다.

나는 모래 바닥에 신기루를 발동했다.

어떤 환상을 만들지?

나는 탑 안에서 만났던, 기사단장 시모어의 얼굴을 떠올리고 그 형상을 만들려고 했다.

“이렇게는 안 되는 것 같은데….”

전혀 생겨나지 않는 형상.

나는 이번엔 컴퓨터나, 핸드폰 같은 무기물의 환상을 만들려고 시도해 보았다.

핸드폰은 성공했으나 컴퓨터는 실패했다.

“아하. 실물이 내 눈에 보여야 되는 것 같네.”

조건을 눈치챈 나는 몇 가지 실험을 반복했다.

얼마 안 가 이 스킬의 명확한 조건을 알아낼 수 있었다.

“반드시 모래 위에서만 발동 가능하고, 실물이 내 눈에 보여야 하는구나.”

나는 거실로 이동. 바닥에 모래를 약간 뿌렸다.

바닥에 앉아 핸드폰을 보고 있는 초호기를 대상으로 지정. 스킬을 발동했다.

모래 위에서 초호기와 완벽하게 똑같은 형상이 만들어졌다.

“…!”

초호기가 자신의 앞에 나타난 또 다른 자신을 보고 눈을 동그랗게 떴다.

녀석은 조심스럽게 다가가 자신의 환영을 향해 손을 뻗었다.

콕, 찔러보는 초호기.

손은 아무런 저항 없이 환영을 통과했다.

“…?”

초호기는 자신의 손과 환영을 번갈아 쳐다보며 혼란에 빠진 듯했다.

녀석은 이번에는 조금 더 강하게 환영을 만졌다.

하지만 결과는 같았다.

“…!”

허공에 팔을 뻗다가, 넘어지고선 어리둥절 하는 초호기.

나는 그 모습을 보며 큭큭 웃음을 터뜨렸다.

마치 거울 속 자신에게 덤벼드는 고양이 같았다.

잠시 그렇게 놀아주다가, 다음 실험으로 넘어갔다.

나는 환영을 향해 다시 한번 마력을 집중했다.

초호기의 환영이 순식간에 거대해지기 시작했다.

천장에 머리가 닿을 정도로, 거대한 거인의 모습으로 변하는 환영.

“!!!”

자신의 환영이 갑자기 커지는 것을 본 진짜 초호기는 깜짝 놀라 뒤로 나자빠졌다.

녀석은 놀란 눈으로 거대한 자신을 올려다보았다.

아무래도 환영의 크기는 내 마음대로 자유롭게 키울 수 있는 모양.

나는 거대해진 환영을 조종하여 거실을 한 바퀴 돌게 했다.

환영은 내 의지에 따라 부드럽게 움직였다.

하지만 환영의 발이 모래가 깔리지 않은 거실 바닥에 닿는 순간, 거대한 형상은 연기처럼 스르르 사라져 버렸다.

환영은 모래 영역을 벗어나면 유지될 수 없었다.

“모래는 대체 얼마나 필요한 거지?”

나는 바닥에 널브러진 모래 중 한 줌만 남기고 나머지를 전부 치웠다.

그리고 다시 한번 스킬을 시전 했다.

놀랍게도, 단 한 줌의 모래 위에서 다시 한번 완벽한 초호기의 환영이 피어올랐다.

“스크린 같은 느낌이구나.”

이 말은 즉, 모래 한 줌만 있다면 어디서든 이 마법을 쓸 수 있다는 소리였다.

문득 천재적인 아이디어 하나가 떠올랐다.

“혹시 사진을 보고도 환영을 만들 수 있을까?”

나는 핸드폰의 갤러리를 뒤졌다.

마침 최근에 찍은 사람의 사진이 하나 있었다.

바로 마법 깎는 청년의 더블피스.

“되네….”

포즈를 바꿀 수 없다는 단점은 있었으나, 어쨌든 똑같은 모양의 환영이 만들어졌다.

나는 그 기분 나쁜 미소를 바라보다, 손을 휘저어 환영을 흩어버렸다.


스킬에 대한 실험을 마친 나는, 만족스러운 마음으로 컴퓨터 앞에 앉았다.

새로운 레인보우 등급 스킬을 얻었다는 사실을 나 혼자만 알고 있기에는 너무나 아까웠으니까.

이런 소식은 당연히 마법사 갤러리에 가장 먼저 알려야 했다.

빠르게 게시글 하나를 쓰려고 했을 때였다.

[제목: 이번 주에 연구소 방문하지 않을래?]

“응?”

냉장고가 글을 하나 썼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