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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5-12-14 21:31:57 +09: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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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변을 둘러보니 일정한 간격으로 수많은 석상들이 도열해 있었다.

왕을 알현하러 가는 길을 지키는 근위병처럼 입구에서부터 왕좌까지 길게 이어져있는 석상들.

다만 그 모습이 조금 이상했다.

입구 근처에 있는 석상들은 하나같이 땅에 엎드려 기는 자세를 하고 있었다.

나는 가까이 다가가 그중 하나를 자세히 살펴보았다.

개를 닮은 주둥이와 앙상한 팔다리.

“코볼트?”

20 층대 초반의 폐광에서 지겹도록 봤던 몬스터였다.

하지만 이곳의 코볼트 석상들은 어딘가 달랐다.

그들의 얼굴에는 고통이 가득해 보였다. 마치 영원한 노역을 선고받은 죄수처럼.

왕을 향해 기어가며 용서를 구하고 있는 듯한 자세.

나는 고개를 갸웃하며 왕좌를 향해 계속 걸었다.

기묘한 변화가 눈에 들어왔다.

끝에 가까워질수록 석상들의 모습이 점차 변하고 있었다.

“이건….”

처음에는 미미한 변화였다.

땅에 바짝 엎드려 있던 코볼트가 허리를 조금 펴더니, 다음 석상은 무릎을 꿇고 있었다.

길었던 주둥이는 조금씩 짧아지고, 앙상했던 몸에는 점차 근육이 붙기 시작했다.

덥수룩한 털 대신 굵고 뻣뻣한 수염이 턱을 덮었다.

마침내 왕좌에 가까워졌을 때, 석상의 모습은 완전히 달라져 있었다.

작지만 다부진 체격과 강철 같은 근육. 무엇보다도 풍성하고 길게 땋아 내린 수염.

그들의 손에는 곡괭이 대신 거대한 전투 망치와 날카로운 전투 도끼가 들려있었고, 금방이라도 뛰쳐나갈 듯한 자세를 취하고 있었다.

나는 그제야 20층의 주인이 누구인지 깨달았다. 그들은 전사이며 동시에 장인인 종족.

“드워프….”

나는 걸음을 멈추고 그 변화의 흐름을 눈으로 좇았다.

입구의 코볼트에서, 왕좌 앞의 당당한 드워프까지.

마치 하나의 종족이 겪는 진화를 보여주는 것 같았다.

이 긴 복도는 하나의 역사서였다.

드워프들이 어떻게 비천한 코볼트로 변해버렸는지를 보여주는 연대기.

순간, 19층의 유적에서 보았던 벽화가 뇌리를 스쳤다.

“엘프들에게서 본 것과 비슷한 현상이군.”

10 층대 후반, 세계수를 잃고 타락하여 다크엘프가 되어버렸던 엘프들의 이야기가 떠올랐다.

그렇다면 이것도 같은 맥락일까? 이들도 탑 때문에 이런 모습이 된 것인가?

“드워프들 중 일부가 코볼트가 된 건가? 그다음 전쟁이라도 벌어진 거고?”

나는 주머니에서 휴대폰을 꺼냈다.

이 광경은 그냥 지나칠 수 없었다.

나는 홀의 전경부터 시작해서, 코볼트가 드워프로 변해가는 석상의 모습을 카메라에 담았다.

“다른 사람은 몰라도 냉장고는 좋아하겠지.”

사진을 찍는 데 정신이 팔려 있을 때였다.

끼이이이익.

마찰음과 함께 홀 전체가 미세하게 진동했다.

사방의 벽과 기둥에서 숨겨져 있던 문이 열리며, 그 안에서 수십이 넘는 골렘들이 쏟아져 나오기 시작했다.

나는 휴대폰을 주머니에 넣으며 혀를 찼다.

“분위기 파악 못 하네.”

나는 어깨 위에 있던 초호기를 바닥에 내려놓았다.

바닥에서 모래가 솟아올라 모래 분신들을 만들어냈다.

“초호기, 저놈들 좀 막아줘.”

초호기는 내 말에 고개를 끄덕이더니, 자신의 가슴을 통통 두드렸다. 문제없다는 듯한 자신감 넘치는 몸짓.

나는 29층에서와 마찬가지로 녀석의 몸집을 키우고, 방패와 창을 쥐여주었다.

쿠구구궁-!

골렘들이 육중한 몸을 이끌고 달려들었다.

초호기와 양산형 분신들이 방패를 앞세우고 그들과 정면으로 부딪혔다. 굉음과 함께 불꽃이 튀었다.

나는 그 소란을 등지고, 망설임 없이 앞으로 나아갔다.

저런 잡몹들은 내 상대가 아니었다.

내 시선은 오직 홀의 가장 높은 곳의 왕좌에 고정되어 있었다.

“진짜는 저기 있을 것만 같거든.”

내 직감이 그렇게 말하고 있었다. 이 모든 이야기의 중심에는 저 왕좌가 있을 거라고.

과연, 내가 계단을 오르기 시작하자 왕좌가 스스로 움직이기 시작했다.

키기기기긱-!

옥좌가 거대한 소음과 함께 그 형태를 바꾸기 시작했다.

팔걸이가 팔로 변하고, 등받이가 몇 번 접히더니 상체가 되었다. 다리와 엉덩이 부분이 갈라지며 다리가 되어 바닥을 짚었다.

나는 그 광경을 넋을 놓고 바라보았다.

“… 좀 멋있는데?”

나도 모르게 감탄사가 터져 나왔다.

합체 변신 메카라니.

모든 남자의 로망이 눈앞에서 실현되고 있었다.

변신 도중에 해치워도 되지만 그것은 도리가 아니다.

나는 녀석의 변신을 끝까지 기다려주었다.

마치 어릴 때 보던 변신 로봇 영화의 한 장면 같았다.

영화와 조금 다른 점이 있다면 그 멋진 기계 사이사이에 그로테스크한 것들이 박혀 있다는 점일까.

꿈틀거리는 살점 덩어리들. 고통스럽게 일그러진 채 비명을 지르는 듯한 수십 개의 얼굴들.

“우워어어어어어-!”

녀석이 비명과 고함 사이에 있는 소리를 질렀다.

나는 이제는 꽤 익숙해진 다이아 커터를 만들어 녀석을 일도양단했다.

거대한 기계 괴물이 무너져 내렸다.

나는 가볍게 손을 털었다. 생각보다 싱거운 마무리.

“코어도 주웠고….”

녀석이 무너져 내린 잔해를 밟고 서서 주변을 둘러보았다.

홀을 가득 메웠던 골렘들은 초호기와 분신들에 의해 하나씩 정리되고 있는 중.

나는 만족스럽게 고개를 끄덕이고 탐색을 시작했다.

“왕궁이니까 보물 같은 것도 있지 않을까?”

드워프 하면 역시 보물. 게다가 여기는 왕궁이다.

이런 곳을 빈손으로 떠나는 것은 예의가 아니었다.

나는 홀을 어슬렁거리며 벽을 두드려보거나 석상들을 밀어보았다.

하지만 어디에도 굳게 닫힌 비밀 공간은 없는 듯했다.

“에이, 역시 없는 건가?”

내가 실망하며 중얼거리는 순간, 손가락의 반지가 미세하게 진동했다.

[샌드웜은 당신의 방식이 비효율적이라고 말합니다.]

“그럼 뭐 다른 방법이라도 있어?”

[샌드웜은 드워프들이 보물을 숨기는 방식에는 규칙이 있다고 설명합니다.]

[샌드웜은 저쪽 벽을 확인해 보라고 조언합니다. 왕관을 내려놓은 왕의 석판을 찾으십시오.]

나는 녀석이 가리키는 방향으로 걸어갔다.

수많은 드워프 영웅들의 일대기가 조각된 벽면. 나는 그중에서 샌드웜이 말한 석판을 찾아냈다.

왕관을 쓴 왕이 스스로 그것을 벗어 대장장이의 모루 위에 올려놓는 장면이 묘사되어 있었다.

장인으로 돌아가겠다는 상징인가?

[샌드웜은 드워프의 수염을 당기라고 말합니다.]

“그거 진짜 맞아?”

나는 반신반의하면서 석판의 표면을 만졌다. 딸깍, 하는 소리와 함께 석판이 움직였다.

석판이 안으로 들어가더니 숨겨진 공간이 나타났다.

공간 안에는 룬 문자가 빼곡히 새겨진 검은 석판 하나만이 덩그러니 놓여 있었다.

보석이나 스킬북 같은 것은 어디에도 없었다.

“이게 다야?”

나는 석판을 꺼내 들었다. 고대 문자처럼 보이는 룬들은 도무지 해독할 수 없었다. 그림인지 글자인지도 분간하기 힘들 지경.

“이거 어떻게 읽어?”

[샌드웜은 그것이 고대 드워프의 언어이며, 자신이 해석할 수 있다고 말합니다.]

역시 이럴 때는 든든했다. 나는 석판을 샌드웜이 보기 편하도록 들어 보였다.

잠시 침묵이 흘렀다.

[샌드웜은 이 내용이 너무나 방대해서, 이런 방식으로 이야기를 전달하기는 힘들다고 말합니다.]

[샌드웜은 당신이 빨리 격을 높여 자신과 대화가 통하기를 바랍니다.]

“…? 내 격이 더 낮다는 거야? 너보다?”

샌드웜이 그 머리를 위아래로 끄덕였다.

“아니, 그럴 리가 없잖아.”

[샌드웜은 당신의 그런 모습을 이해합니다. 받아들이기 쉽지 않겠죠.]

“….”

말문이 막혔다. 완벽하게 패배한 기분.

그때였다.

콰직-!

홀 저편에서 마지막 남은 기계 골렘 하나가 초호기의 창에 머리가 꿰뚫리며 쓰러졌다.

그와 동시에, 내 가슴팍에서 강렬한 빛이 터져 나왔다.

“어?”

나는 깜짝 놀라 가슴을 내려다보았다.

빛은 목에 걸고 있던 펜던트에서 나오고 있었다.

세계수의 잎사귀.

19층에서 얻은 이후로 한동안 계속 잊고 있던 아이템이었다.

“뭐야, 이건 또?”

내가 어리둥절해하는 사이, 눈앞에 시스템 메시지가 떠올랐다.

[세계수의 잎사귀가 당신의 위업과 공명합니다.]

[더러운 난쟁이들을 학살하고, 그들의 왕궁을 범한 당신의 영웅적인 행동에 세계수가 응답합니다.]

“뭐? 학살? 난 그런 짓 안 했어!”

나는 드워프는 만난 적도 없다. 왕궁은 그저 조사를 좀 했을 뿐이고.

억울하기 짝이 없는 일이었다.

내 속마음과는 상관없이 시스템은 제 할 말을 계속했다.

[아이템이 진화합니다.]

펜던트에서 뿜어져 나오는 빛이 더욱 강렬해졌다.

연둣빛이 감돌던 나뭇잎이, 이내 에메랄드빛으로 변했다.

마치 방금 세계수에서 꺾어온 것처럼 영롱한 빛.

[‘세계수의 되살아난 잎사귀’가 ‘세계수의 영롱한 잎사귀’로 진화했습니다.]

[아이템의 등급이 ‘에픽’에서 ‘유니크’로 상승합니다.]

[특수 능력: ‘생명의 기운’이 추가됩니다.]

[착용자의 생명력이 대폭 증가하며, 모든 종류의 저주와 상태 이상에 대한 저항력이 생깁니다.]

[특수 칭호: ‘엘프의 영웅’이 추가됩니다]

[당신은 엘프의 오랜 숙원 다섯 중 둘을 해결했습니다. 모든 엘프들은 당신에게 절대적인 존경과 호의를 표할 것입니다.]

나는 멍하니 시스템 창과 영롱하게 빛나는 나뭇잎 펜던트를 번갈아 쳐다보았다.

드워프의 도시 한가운데.

어쩌다 보니 엘프의 영웅이 되어버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