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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5-12-14 21:31:57 +09:00

14 KiB
Raw Blame History

나는 왕이 내민 반지를 받아 들었다.

섬세한 문양이 음각된 반지.

나는 아이템의 설명을 읽어보았다.

[불의 기억]

[등급: 레전더리]

[효과: 드워프들의 설계도를 열람할 수 있습니다.]

[그들의 기술을 흉내 낼 수 있게 됩니다.]

[현재 단계: Lv.1]

“한번 착용해 보시게.”

손가락에 끼우자, 마치 처음부터 내 것이었던 것처럼 착 감기는 느낌이 들었다.

왕은 만족스러운 표정으로 나의 손을 내려다보았다.

“그 반지 안에는 우리 드워프 종족이 태초부터 쌓아온 모든 지식과 설계도가 담겨 있지. 갑옷, 무기, 기계 장치, 심지어 고대의 유물까지….”

“하지만 저는 대장장이가 아닌데요.”

“걱정 마시오. 드워프가 만들 수 있는 것이라면, 이제 그대 또한 만들 수 있을 것이니.”

레전더리 아이템답게 설명은 거창했다.

한 종족의 모든 기술력이 담긴 아티팩트라니?

그 가치는 감히 헤아릴 수조차 없을 터였다.

주변의 드워프들 역시 뿌듯함과 자부심이 가득한 얼굴로 나를 바라보고 있었다.

그들은 자신들이 내놓을 수 있는 최고의 보물을 내놓았다고 확신하는 듯했다.

하지만 내 표정은 미묘했다.

‘… 나보고 망치질을 하라고?

머릿속이 복잡해졌다.

설계도가 있다는 건 알겠다.

하지만 그걸로 끝.

우리 집에는 용광로는커녕 변변한 망치 하나 없었다.

아니, 설령 모든 장비가 갖춰져 있다고 한들, 내가 그걸 쓸 수 있을까?

나는 마법사였다.

멀리서 스킬로 싸우는 것이 내 방식.

땀을 뻘뻘 흘리며 뜨거운 불 앞에서 쇳덩이를 두들기는 모습은 상상조차 해본 적 없었다.

드워프들은 내 속도 모르고 계속해서 칭찬을 늘어놓았다.

“왕도 통이 크군! 우리의 긴 역사에서 저것을 선물로 준 적은 단 한번뿐이라네!”

“저것은 우리 종족의 혼 그 자체! 돈으로 환산할 수 있는 물건이 아니다!”

“귀쟁이 놈들이 주는 나무토막 따위와는 격이 다르지!”

그들의 열광적인 반응에도 불구하고, 내 표정은 애매해졌다.

‘좋은 건 맞는데….

이걸 대체 어떻게 써야 한단 말인가.

나는 반지를 낀 손가락을 꼼지락거리며 생각에 잠겼다.

나의 침묵을 드워프들은 감동으로 해석한 모양.

왕은 만족스러운 웃음을 지으며 내 어깨를 툭 쳤다.

“하하! 역시 그 가치를 알아보는군!”

“아…. 고맙습니다?”

“감사는 됐네! 우리 드워프는 원한만큼이나 은혜도 결코 잊지 않는 종족이니! 내 수염이 발에 밟힐 만큼 길어질 때까지, 오늘의 일을 기억하겠네!”

그것이 마지막 인사였다.

왕의 말이 끝나기가 무섭게, 내 눈앞에 익숙한 시스템 메시지가 떠올랐다.

[드워프들이 당신을 기억합니다.]

그 문구와 함께 내 주변의 풍경이 빛에 휩싸였다.

탑에서 배출되는 감각.

시끄럽던 드워프들의 함성도, 용광로의 뜨거운 열기도 순식간에 멀어졌다.

눈을 다시 떴을 때 나는 내 전용 도로 위에 서 있었다.

나는 손을 들어 새로 얻은 반지를 내려다보았다.

“일단 집에 가서 써보지 뭐.”

한숨이 절로 나왔다.


집으로 돌아온 나는 곧장 침대에 몸을 던졌다.

30층을 돌파하고, 연회를 즐기느라 쌓인 피로가 한꺼번에 몰려왔다.

하지만 잠들기 전 반드시 해야 할 일이 남아 있었다.

나는 몸을 일으켜 컴퓨터 앞에 앉았다.

그리고 익숙하게 헌터 갤러리에 접속했다.

“할 건 해야지….”

비록 내게는 당장은 큰 쓸모가 없어 보이는 아이템.

그래도 자랑은 해야 했다.

문제는 이번 보상을 어떻게 포장하느냐였다.

“이번에도 그냥 유니크 등급이라고 할까?”

늘 하던 대로 적당히 등급을 낮출까?

하지만 반지는 무기에 비해 임팩트가 약했다.

고작 유니크 반지로는 사람들의 반응이 미적지근할 수도 있었다.

게다가 옵션도 설명하기 애매하고.

고민 끝에 나는 과감한 결정을 내렸다.

“그래, 이번엔 레전더리라고 해보자.

[제목: 첫 레전더리 템 먹었는데 옵션이 좀 아쉽네요 ㅠㅠ]

[작성자: ㅇㅇ(5F5.5F5)]

[내용: (반지 사진.jpg)]

[레전더리 반지 하나 먹었는데 옵션이 좀 애매하네.]

[이거 꽝 뽑은 거 맞지?]

내 글이 올라간 지 1분도 채 되지 않아 수십 개의 댓글이 달리기 시작했다.

ㄴ 하~ 살기 좋은 헌터갤.

ㄴ 또 너야 탑유동?

ㄴ 진짜 지랄ㅋㅋ 옵션이 아쉬워? 레전더리 본 적도 없는 놈들 천지인데 ㅋㅋ

ㄴ 아 갤 또 한참 불타겠네. 한 시간 탈갤 하고 옴.

“생각보다 반응이 찰진데?”

나는 예상보다 격렬한 반응에 고개를 갸웃했다.

레전더리라고는 해도, 주요 장비가 아닌 장신구 아이템.

이렇게나 환영을 받을 일인가?

다행히도 몇몇 친절한 사람들이 내 의문에 대해 설명해 주기 시작했다.

[제목: 흠 그 정돈가….]

[작성자: ㅇㅇ(128.48)]

[내용: 어차피 무기도 아닌 반지 아님? 옵션 별로면 꽝 아님?]

[왜 이렇게 불타지? 진짜 모름.]

ㄴ 어 그 정도 맞아.

ㄴ 넌 손 하나 없냐? 반지 칸이 10개나 되잖아.

ㄴ 옵션 조금 애매해 보여도 10개나 착용할 수 있으니 절하고 껴야지.

ㄴㄴ(작성자) 그래서 지금 반지 10개임? 아니잖아.

ㄴㄴ 아오 안지려고 아득바득 우기네.

사람들의 댓글을 읽으며 나는 새로운 사실을 깨달았다.

반지는 한 사람이 10개나 낄 수 있구나.

“아 맞다, 난 8개밖에 못 끼네?”

내 손가락 하나는 없다. 초호기를 만드는 데 사용해 버렸기 때문.

게다가 남은 9개 중 하나는 이미 샌드웜이 차지하고 있다.

심지어 가끔 마법을 쓸 때 손가락을 소모하는 경우도 있으니, 10개를 전부 채우는 건 무리일 것 같았다.

하지만 그건 별로 중요한 게 아니었다.

나는 깨달았다.

이 아이템의 실제 성능이 어떻든, 사람들이 좋다고 생각하면 그것으로 된 것이라는 사실을.

나는 만족스러운 미소를 지으며 다음 목적지로 향했다.

A급 헌터들과 관련자들만 활동하는 익명 커뮤니티.

나는 그곳에도 헌터 갤러리와 똑같은 내용의 글을 올렸다.

내가 A급 갤러리에 처음으로 올리는 글.

과연 이 사람들은 어떤 반응을 보여줄까?

ㄴ ㅇㅇ1: 혹시 판매할 의향이 있으시다면 답장 부탁드립니다.

ㄴ ㅇㅇ2: 반지 교환 가능합니다.

ㄴ ㅇㅇ3: 저는 정보만 사고 싶은데요. 획득 경로가 어디죠?

“역시 A급 헌터들이라 다른 건가?”

반응은 헌터 갤러리만큼 폭발적이지는 않았다.

조금 더 진지한 분위기의 댓글들.

내 기만질에 화를 내기보다는, 아이템과 정보의 가치를 평가하고 구매 의사를 표하는 사람이 대부분이었다.

물론 팔 생각은 눈곱만큼도 없었지만.

그때였다. 갑자기 다른 댓글도 달리기 시작했다.

전부 내 작살난 아이피에 관한 댓글들이었다.

ㄴㅇㅇ5: 어 이 사람 헌갤 탑유동이잖아.

ㄴㅇㅇ6: 그게 뭐임?

ㄴㅇㅇ5: 넌 헌갤도 안보냐?

ㄴㅇㅇ6: 거길 왜 봐? 헌터 관련 이야기는 하지도 않던데.

ㄴㅇㅇ5: ㅉㅉ그게 재밌는 건데.

ㄴㅇㅇ7: 근데 이 사람 역시 A급이었네. 짐작은 했지만.

ㄴㅇㅇ8: 여기서도 하는 짓은 똑같은 게 얼탱임 ㅋㅋ.

나를 알아보는 사람들.

그리고 알아보려고 하는 사람들까지.

ㄴㅇㅇ9: A급이면 특정할 수 있는 거 아님?

ㄴㅇㅇ10: 단톡 공지방에 들어가 있는 사람은 알 법도 한데.

ㄴㅇㅇ11: 나 A급인데, 이 사람 정보는 안 캐는 게 좋을 것 같더라…. 대단한 사람임.

ㄴㅇㅇ9: ㅋㅋㅋ 모르면서 괜히 아는 척 ㄴㄴ.

ㄴㅇㅇ11: ? 인증해 봐? 너희 같은 짐꾼들은 모르는 경지가 있다.

나는 헛웃음을 터트렸다.

A급 갤러리라서 해서 조금 다른가 싶었더니, 금세 헌터 갤러리와 똑같은 풍경이 되어버렸다.

어쩌면 내 존재가 바로 갤러리를 오염시키는 원인일지도.

“그런데 나도 꽤 유명해진 모양이네.”

가는 곳마다 알아보는 사람이 있는 상황.

별로 기분 나쁘지는 않았다.

아니, 오히려 꽤 즐거웠다.

다만 이제는 슬슬 진짜들의 반응도 궁금해졌다.

이 반지의 진짜 옵션을 이야기할 수 있는 사람들.

나는 마지막으로 마법사 갤러리로 향했다.

그곳에서는 이제 딱히 옵션을 숨길 필요가 없었다.

나는 반지 이름과 모든 옵션을 전부 공개한 사진을 첨부하여 글을 올렸다.

가장 먼저 흥미를 드러낸 것은 냉장고였다.

ㄴ냉장고: 20층 대의 원래 주인이 드워프였다고? 재밌네. 내가 예전에 세운 가설 하나를 해결할 수 있을 거 같음.

ㄴㅇㅇ(88R.Y88): 무슨 가설?

ㄴ냉장고: 예전에 20 층대에서 아이템을 하나 주운 적이 있거든.

ㄴ냉장고: 결국 사용처를 알아내지 못해서 창고에 보관 중인데, 이제 보니 그게 드워프와 관련된 물건인 것 같아.

그 말과 함께 냉장고는 사진 한 장을 첨부했다.

사진 속에는 정체 모를 금속의 파편이 있었다.

표면에 화려한 색과 문양이 칠해진 것을 보아, 무언가에서 떨어져 나온 것임을 쉽게 추측할 수 있었다.

ㄴ냉장고: 혹시 네가 얻은 그 반지가 있다면, 이 물건의 원본이 무엇인지도 알 수 있지 않을까? 어쩌면 복원까지 가능할지도 모르고.

“흠…. 진짜 될 것 같은데?”

그녀의 가설에 나는 심장이 빠르게 뛰는 것을 느꼈다.

생각지도 못한 가능성.

이 반지는 기존의 유물을 해석하고 복원하는 열쇠가 될 수도 있었다.

만약 저 파편이 전설적인 드워프 유물의 일부라면?

그야말로 대박이 터지는 셈.

ㄴ냉장고: 만약 네가 원한다면 언제든 연구소로 와서 직접 확인해 봐도 좋아.

ㄴ냉장고: 아니, 더 확실하게 말할게. 네가 그래주면 좋겠어. 나는 이 아이템의 정체가 계속 궁금했거든.

그녀는 한발 더 나아가 파격적인 제안을 던졌다.

ㄴ냉장고: 만약 이 파편의 정체를 밝혀내고 복원에도 성공한다면, 네가 가져도 상관없어. 난 그 과정에서 얻은 데이터만으로도 충분하니까.

그 말에, 나는 저도 모르게 군침을 삼켰다.

공짜 유니크 혹은 레전더리 아이템이 될지도 모를 기회.

“어쩐다….”

나는 잠시 고민했다.

다른 사람과 직접 만나는 것은 여전히 껄끄러웠다.

하지만 이 제안은 거절하기엔 너무 매력적이었다.

ㄴㅇㅇ(88R.Y88): ㅇㅋㅇㅋ. 하지만 당장은 힘들 것 같고…. 나중에 시간이 되면 한번 찾아감.

나는 일단 막연한 약속을 던졌다.

언젠가는 만나러 가겠지만, 그 시기는 정하지 않았다.

일종의 보험을 들어놓은 셈.

그때, 내 대답에 조용히 대화를 지켜보던 다른 마법사들이 들고일어났다.

ㄴ마법은화력: 잠깐. 왜 쟤만 만나줘? 나는? 나는 왜 안 만나줘? 나도 몇 번이나 만나자고 했는데?

ㄴp깟쮸: 풍뎅이에 이어서 냉장고까지 만난다에요. 이러다 나만 왕따당한다에요. 서러워서 못 살겠다에요.

마법은화력과 p깟쮸가 동시에 항의를 쏟아냈다.

나는 피식 웃으며 장난스럽게 키보드를 두드렸다.

ㄴㅇㅇ(88R.Y88): 화력 누나는 왠지 만나자마자 납치할 것 같아서 무서워서 못 만나겠음.

ㄴㅇㅇ(88R.Y88): 게다가 딱히 만날 이유도 없잖아? 뭐 주고받을 것도 없고.

ㄴ마법은화력: 아니, 줄 거 있었는데…. 지금은 없지만….

ㄴp깟쮸: 나도 있다에요.

ㄴㅇㅇ(88R.Y88): 뭔데?

ㄴp깟쮸: 언제든지 24시간 게임 듀오 돌려줄 수 있다에요. 디코도 하면서….

“참나, 이게 무슨 소리야.”

이번에도 어김없는 p깟쮸의 엉뚱한 말에 나는 소리 내어 웃었다.

나는 거기에서 적당히 갤러리를 끄고 침대에 다시 누웠다.

천장을 바라보며 반지를 만지작거리고 있자니 방금 전의 대화가 다시 떠올랐다.

“갤러리 사람을 만난다라….”

불과 몇 달 전의 나라면 상상도 할 수 없는 일.

나는 사람들과 엮이는 것을 극도로 꺼려왔다.

사람과의 접촉은 오직 인터넷이라는 필터를 두고서 이루어졌다.

현실에서의 만남은 귀찮고 위험한 일.

하지만 언제부터였을까.

필요에 의해서. 혹은 어쩔 수 없이.

브로커를 만나고, 풍뎅이와 직접 대면하고, 심지어 옆집 아저씨인 정만호와도 나름의 관계를 맺게 되었다.

그러면서 무언가 조금씩 변하기 시작했다.

김수호는 S급 헌터답지 않게 허당스러운 면이 있는 동네 형처럼 느껴졌다.

브로커는 단순한 사업 파트너를 넘어선 든든한 조력자가 되었고.

정만호도 이제는 귀찮기보다는 조금 우스운 이웃처럼 느껴졌다.

어쩌면 사람들과 직접 만나는 것이 그렇게 나쁜 일만은 아닐지도 모른다.

물론 여전히 귀찮고 조심스러운 일인 것은 변함없다.

하지만 예전처럼 무조건적으로 피하고 싶다는 생각은 들지 않았다.

오히려 약간의 호기심과 기대감마저 생겨나고 있었다.

냉장고와의 만남.

어쩌면 그것이 내게 새로운 가능성을 열어줄지도 모른다.

미지의 아이템에 대한 호기심뿐만이 아니었다.

나와 같은 마법사라는 존재가 어떤 모습으로 살아가고 있을까.

직접 만나서 이야기해보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나는 침대에서 몸을 뒤척였다.

아직은 멀리 남은 이야기였으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