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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5-12-14 21:31:57 +09:00

14 KiB
Raw Blame History

정만호를 떠나보내고 얼마 뒤. 브로커에게서 전화가 왔다.

전화기 너머로 깊은 한숨 소리가 먼저 들려왔다.

“여보세요?”

[하아… 대표님. 접니다.]

“목소리가 왜 그래요?”

[제가 묻고 싶은 말입니다. 대체 무슨 일을 벌이신 겁니까?]

당혹감이 묻어나는 목소리. 나는 영문을 모르겠다는 듯 순진하게 되물었다.

“네? 저 아무것도 안 했는데요. 그냥 탑 한 층 올라갔다 온 게 전부예요.”

[그냥 한 층이 아니잖습니까? 이런 엄청난 일을 저지를 거면 미리 언질을 주셔야죠. 게다가 팀원은 대체 또 어디서 구한 거고?]

“아, 말 안 했었나? 저는 솔플인데. 파티 없어요.”

[아니, 그건 또 무슨….]

브로커의 어이없어하는 표정이 선했다. 나는 침대에 누우며 대수롭지 않다는 듯이 대답했다.

“에이, 이런 일은 아저씨가 다 해결해 주기로 했잖아요? 그리고 뭐, 크게 문제 생길 일은 없을 것 같은데.”

[하아…. 네가 A급 헌터라고 처음 말했을 때도 놀랐지만, 이 정도로 대단한 인물일 줄은 상상도 못 했다. 그래서 살짝 놀란 것뿐이야.]

그때, 내 반지가 진동했다.

[샌드웜이 당신을 보고 혀를 쯧쯧 찹니다.]

“뭐야?”

[샌드웜은 당신이 신도를 대하는 자세가 옳지 못하다고 충고합니다.]

[샌드웜은 당신이 사과하는 편이 좋다고 제안합니다.]

“… 네가 내 엄마냐?”

물론 난 부모님이 없기 때문에 현실의 엄마들이 어떻게 말하는지는 모른다.

그러나 한낱 지렁이에게까지 이야기를 들으니 확실히 내가 잘못한 것 같았고, 갑자기 부끄러움이 몰려왔다.

나는 순순히 그 말대로 했다.

전화기 너머로 브로커의 말이 이어지려던 찰나, 내가 먼저 입을 열었다.

“흠흠, 저기…. 죄송해요. 미리 말했어야 했는데.”

내 어색한 사과에 브로커는 잠시 말을 잇지 못했다.

예상치 못한 반응에 당황한 듯했다.

잠시 침묵이 흐른 뒤, 그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어딘가 감격한 듯한 목소리.

[무슨 일이냐? 네가 사과를 다 하다니. 아저씨가 기특해서 눈물이 다 나려고 하네.]

“아씨, 역시 하는 게 아니었는데.”

나는 괜히 사과했다는 후회와 함께 베개를 걷어찼다.

브로커는 헛기침을 몇 번 하더니, 다시 평소의 프로페셔널한 톤으로 돌아왔다.

[아무튼, 이제부터는 이 상황을 어떻게 활용할지 생각해야 합니다.]

역시 전문가는 달랐다. 그는 금세 평정심을 되찾고 본론으로 들어갔다.

[그래서, 대전 탑의 새로운 지배자로서 그 권한을 어떻게 사용하고 싶으십니까? 생각보다 누릴 수 있는 혜택이 여러 가지 있습니다.]

“혜택이라면 어떤?”

[예를 들면, 대전의 유명 빵집에서 줄을 서지 않고 바로 빵을 살 수 있는 소소한 특권부터 시작해서….]

“빵집? 웬 빵집?”

[드라이브 스루랑 배달도 됩니다.]

“아니, 필요 없어요. 그런거.”

[…그리고 몇몇 품목에 대한 세금 감면, 탑 주변 구역의 개발 계획에 대한 발언권, 심지어 대전시 세수의 일부를 분배받을 수도 있습니다.]

듣고 보니 꽤나 구미가 당기는 조건들이었다. 하지만 내게는 돈보다 더 중요한 것이 있었다.

“그런 건 뭐 별로 안 중요하고…. 만약 할 수 있다면, 제 동상을 하나 세우고 싶은데요.”

[뭐?]

“저기 북쪽 동네에 있는 것처럼 거대한 걸로. 대전 어디서든 볼 수 있게 아주 크게.”

[… 진심이냐?]

브로커의 목소리는 그 어느 때보다도 진지했다. 나는 그 반응에 웃음이 터져 나왔다.

“푸흡, 당연히 농담이죠.”

[다행이군.]

“그런 건 나중에, 내가 더 강해지고 나서 만들어도 안 늦으니까.”

[…?]

전화기 너머에서 브로커가 눈을 찌푸리는 듯한 모습이 그려졌다.

나는 작게 웃으며 진짜로 필요한 일을 이야기했다.

“사실, 진짜 필요한 건 따로 있거든요. 도로 하나를 만들고 싶어.”

브로커의 목소리에 의아함이 가득 담겼다.

[이번 것도 농담이지?]

“농담 아닌데요. 진지해요.”

[… 대표님, 제가 제대로 들은 것이 맞습니까? 도로를 건설하고 싶으시다고요?]

“못 만드나요?”

[아니, 못 만들 건 없습니다. 탑 지배자의 권한이라면 시의 협조를 얻어내는 건 일도 아니죠. 하지만 어떤 도로를?]

나는 내 집 정문에서부터 저 멀리 보이는 검은 탑의 입구까지를 손가락으로 허공에 그렸다.

“우리 집 앞에서 탑까지, 길을 일직선으로 뻥 뚫었으면 좋겠어요. 지금 있는 길을 양옆으로 좀 넓히고요. 그리고 길 양쪽에는 높은 담을 쌓아서 다른 사람들이 못 보게 막는 거죠.”

[이유를 들어봐도 되겠습니까?]

“뻔하잖아요. 사람들 시선 신경 안 쓰고 탑에 들락날락하고 싶어서지. 매번 아이템 숨기고 몰래 다니는 것도 귀찮아.”

내 단순하고 명쾌한 대답에 브로커는 또다시 침묵했다.

[알겠습니다. 대표님의 뜻이 그렇다면, 그렇게 진행하죠. 필요한 서류 작업과 행정 절차는 제가 모두 처리하겠습니다. 건설 허가부터 교통 통제까지, 문제는 없을 겁니다.]

“아 참, 건설은 제가 할 거예요.”

[… 뭐?]

“아저씨는 서류만 처리해 주세요. 길 만드는 건 제가 직접 할 거예요. 그게 더 빠르니까.”


그로부터 며칠이 지났다. 나는 탑에도 가지 않고 집에서 빈둥거리며 시간을 보냈다.

헌터 갤러리의 모든 글을 다 읽고, 볼 만한 영상도 전부 바닥이 났을 때쯤. 브로커에게서 전화가 걸려왔다.

[대표님, 모든 준비가 끝났습니다.]

“벌써? 빠르네요.”

[대전시의 행정 절차는 탑 지배자의 이름으로 일사천리로 통과되었습니다. 문제가 됐던 건 집과 탑 사이에 있던 건물들인데, 그것도 어제부로 매입을 완료했습니다. 건물주들은 지금쯤이면 아마 다른 집에서 행복하게 살고 있겠죠.]

역시 프로는 달랐다. 며칠 만에 법과 돈의 문제를 모두 해결해 버린 것이다.

[이제 그 길은 온전히 대표님의 사유지입니다. 건축허가도 다 받아두었고. 언제든 원하시는 대로 하셔도 좋습니다.]

“수고했어요.”

나는 짧게 칭찬하고 전화를 끊었다. 그리고 자리에서 일어났다.

안전모를 찾아 초호기의 머리에 씌워주었다.

녀석은 익숙하다는 듯 안전모를 고쳐 썼다.

밖으로 나가자 이제 텅 빈 건물 몇 채가 보였다.

“일단 깨끗하게 정리부터 하자고.”

나는 지팡이를 들고 빈 건물들과 그 사이를 가로지르는 아스팔트 도로를 향해 손을 뻗었다.

내 의지가 땅속 깊은 곳까지 뻗어 나갔다.

콰르르르릉-!

거대한 굉음과 함께 땅이 울리기 시작했다. 콘크리트와 철근으로 이루어진 구조물들이 힘없이 바스러져 고운 모래가 되어 흩어졌다.

나는 텅 빈 땅을 향해 다시 손짓했다. 모래와 암석들이 내 의지에 따라 움직였다.

폭 10미터는 족히 되어 보이는 널찍한 길이 내 집 앞에서 탑의 입구까지 일직선으로 뻗어 나갔다.

마지막으로 길 양옆에 담을 세울 차례였다. 나는 지팡이를 바닥에 찍었다.

거대한 흙 벽이 지면을 뚫고 솟아오르더니, 높이 5미터에 달하는 매끄러운 석벽으로 변했다. 이음새 하나 없는 완벽한 벽이 길을 따라 길게 이어졌다.

모든 작업이 끝나는 데에는 10분도 채 걸리지 않았다.

“음, 완벽해.”

나는 만족스러운 표정으로 나의 새로운 전용 도로를 바라보았다.

이제 정말로 다른 사람들의 시선을 전혀 신경 쓰지 않고 자유롭게 탑을 오갈 수 있게 되었다.

심심한 도시에 간단한 랜드마크가 생긴 것은 덤이다.

이제 이 도시에도 활력이 돌겠지.

그때였다.

끼이이이익-!

익숙하고 요란한 급정거 소리가 고요함을 깼다.

고개를 돌리자, 검은색 세단 한 대가 위태롭게 멈춰 서 있었다. 정만호였다.

정만호는 자신의 집 앞에 난데없이 솟아난 거대한 대리석 구조물을 보고는 그 자리에 얼어붙었다.

마치 꿈이라도 꾸는 듯한 표정.

“뭐… 뭐야, 이게?”

그의 입에서 넋 나간 목소리가 흘러나왔다.

“내가 며칠 동안 서울에 다녀온 사이에 이런 게 생겼다고?”

정만호는 혼란스러운 얼굴로 주변을 두리번거리다 나를 발견했다. 그는 성큼성큼 내게로 다가왔다.

“이게 대체 어떻게 된 일이야? 이 담벼락은 대체 뭔데 우리 집과 탑을 잇고 있는 거고?”

‘아, 맞아. 옆집까지 포함하는 도로라서 그렇게 보일 수도 있겠네.

“아, 이거요? 부모님이 만드셨어요.”

“부… 부모님이?”

정만호의 얼굴에 떠오른 혼란이 경악으로 바뀌었다.

그는 이 거대한 대리석 담벼락을 며칠 만에 지어 올린 내 부모님에 대해 상상하고 있는 모양이었다.

정만호는 잠시 제자리에 서서 입을 뻐끔거리다, 이내 자신이 이곳에 온 목적을 떠올린 듯 헛기침을 했다.

“어, 음. 그래…. 정말로 대단하신 분들이구나.”

정만호는 자신이 들고 있던 커다란 쇼핑백을 내게 건넸다.

최근 들어 그는 이렇게 가끔 선물을 들고 나를 찾아오곤 했다.

탑의 새로운 지배자인 내 ‘부모님’에게 잘 보이기 위한 노력.

다만 그 방향은 매번 조금씩 엇나가고 있었다.

“이건 아저씨가 주는 선물이야. 요즘 여자아이들 사이에서 이게 그렇게 인기라던데?”

나는 무표정하게 쇼핑백 안을 들여다보았다.

그곳에는 분홍색 플라스틱으로 만들어진 요술봉과 벨트가 들어 있었다. ‘프린세스 라이더’라는, 보기만 해도 손발이 오그라드는 이름.

나는 반사적으로 욕설이 튀어나오려는 것을 겨우 참아냈다.

‘아니 씨발, 진짜 초등학생도 이건 안 받겠다. 내가 유치원생인줄 알아?

이 사람은 나를 대체 뭘로 보는 걸까.

나는 속으로 한숨을 쉬며 선물을 받아 들었다.

“감사합니다.”

“하하, 마음에 든다니 다행이구나. 혹시… 부모님께 드릴 말씀이 있는데, 잠시 뵙는 건 어려울까?”

정만호의 목소리에는 간절함이 묻어났다.

그는 어떻게든 새로운 탑의 지배자와 연줄을 만들고 싶어 안달이 난 상태였다.

나는 고개를 저으며 미리 준비해 둔 대답을 내뱉었다.

“두 분 다 외출하셔서 지금 안 계세요.”

“아, 그러시구나…. 역시 대단하신 분들이야. 조금도 쉬질 않으시는군.”

정만호는 진심으로 감탄하는 듯했다. 그는 잠시 머뭇거리다, 주변을 두리번거리며 목소리를 낮춰 내게 물었다.

“혹시 요즘 부모님께서 별다른 말씀은 없으시니? 예를 들면, 대전시에 대해서라든가, 아니면 우리 길드에 대해서라든가….”

그의 눈이 불안하게 흔들리고 있었다. 나는 그의 기대를 충족시켜 주기로 했다.

“음…. 대전은 살기 좋은 동네라고 하셨어요. 그리고 아저씨가 좋은 사람 같다고도 하셨고요.”

“하하, 그래?”

정만호의 얼굴에 화색이 돌았다.

그는 기쁨을 감추지 못하고 헛기침을 몇 번 하더니, 다시 한번 내게 신신당부했다.

“혹시라도 부모님께서 필요한 게 있다고 하시면 언제든지 이 아저씨에게 말해줘야 한다. 알았지?”

“네에.”

나는 영혼 없는 대답을 하며 그를 배웅했다.

집에 돌아오자마자, 나는 손에 들린 박스를 뜯었다.

번쩍이는 분홍색 벨트와 요술봉이 모습을 드러냈다.

“진짜 이런 걸 누가 가지고 놀아?”

나는 한숨을 내쉬면서도 은근슬쩍 벨트를 허리춤에 착용했다.

플라스틱 버클이 찰칵, 소리를 내며 잠겼다.

생각보다 그럴싸한 모양새에 헛기침을 한 번 한 나는, 벨트 중앙의 보석 모양 버튼을 꾸욱 눌렀다.

삐융삐융 거리는 효과음과 불빛이 번쩍였다.

[프린세스 라이더, 변신!]

“어휴, 이게 뭐야.”

나는 툴툴거리면서 요술봉을 집어 들었다. 손에 쥐자마자 요술봉에서 빛이 들어왔다.

내친김에 한번 휘둘러 보았다. 허공에 나비모양의 홀로그램이 번쩍하고 떠올랐다.

“요, 요즘 기술력이 좀 좋네…?”

나는 주변에 아무도 없는 것을 확인하고, 요술봉을 다시 한번 휘둘렀다.

더 강하게 휘두를수록 더 많은 나비가 나타나는 구조.

젠장, 이걸 만든 사람은 천재인가? 기술력을 이런 곳에 낭비해도 되는 거야?

나는 연신 요술봉을 휘둘러 나비들을 만들어냈다.

[샌드웜이 당신을 보고 혀를 쯧쯧 찹니다.]

“… 핫!”

얼굴이 터질 듯이 화끈 달아올랐다.

나는 허둥지둥 벨트를 풀어헤치고 요술봉을 상자 안에 아무렇게나 구겨 넣었다.

하마터면 악마의 유혹에 넘어갈 뻔했다.

이건 아무도 안 보는 곳에 숨겨놔야지.


“벌써 20층대도 끝이네.”

나는 새로 생긴 전용 도로를 통해 탑으로 들어섰다.

[탑 29층(EXTREME)에 진입합니다.]

익숙한 시스템 메시지와 함께 시야가 전환되었다.

“여긴… 왕궁인가?”

저 멀리 넓은 공간의 중앙에는 다른 곳보다 조금 더 높은 단상이 있었고, 그 위에 거대한 옥좌가 놓여 있었다.

나는 옥좌를 향해 천천히 발걸음을 옮겼다.

내 발소리가 텅 빈 대전당에 크게 울려 퍼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