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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5-12-14 21:31:57 +09:00

15 KiB

[소환 스킬 : 샌드웜]

[등급 : 레인보우]

[땅의 신입니다.]

[경의를 표하십시오.]

“…설마 꽝인가?”

샌드웜?

거대 모래 지렁이를 말하는 건가?

나는 고개를 갸웃거렸다.

소환수라면 이미 초호기가 있었다.

굳이 또 다른 소환수가 필요한가?

무엇보다 나를 당황하게 한 것은 스킬 설명이었다.

[땅의 신입니다. 경의를 표하십시오.]

지금까지 봐왔던 그 어떤 스킬 설명보다도 오만하기 짝이 없었다.

겨우 조금 큰 지렁이 따위가 땅의 신이라고?

나는 이 황당한 문구에 의문을 표했다.

왠지 꽝을 뽑은 것 같다는 느낌이 사라지지 않는다.

대체 어떤 녀석이 튀어나오는 걸까.

당장이라도 시험해보고 싶다는 충동이 강하게 일었다.

하지만 나는 이내 고개를 저었다.

“아무리 그래도 여기서 쓰면 난리가 나겠지?”

샌드웜의 크기는 모르겠지만, 자동차 정도의 크기만 소환돼도 시내는 난리가 날 것이다.

그런 대형 사고를 칠 수는 없었다.

“어차피 랭킹 1등 보상받으려면 다시 클리어해야 하니까.”

나는 중얼거리며 다음을 기약했다.

26층에 다시 도전할 때라면 마음껏 시험해 볼 수 있을 것이다.

그때 써보자. 나는 다음 등반을 기대하며 집으로 발걸음을 옮겼다.


집으로 돌아와 지하실에 지팡이와 산의 심장, 초호기를 대충 던져두려다가 멈칫했다.

어제와 같은 일을 겪고도 산의 심장과 다른 물건들을 같이 둘 만큼 바보는 아니니까.

나는 돌덩이를 담은 상자를 한층 더 보강하고는 지하실 구석에 박아둔 뒤, 지팡이와 초호기는 1층으로 들고 올라왔다.

“아, 저것도 처리해야겠네.”

지하실 한편에 여전히 대충 쌓여있는 오리할콘 더미.

이제는 내가 먹을 양은 충분했으니, 남은 것들은 전부 팔아서 돈으로 바꿔야 했다.

“그런데 이걸 언제 다 파냐….”

문제는 그 양이었다.

어쩌면 한국에서 1년 동안 캐낸 것과 비슷할 지도 모르는 양.

이걸 한 번에 시장에 풀었다가는 시세가 폭락할지도 모른다.

무엇보다 일반적인 경로로는 한번에 매입해주지도 않을 거 같고.

여러 경로를 통해 조금씩 처분해야 했다.

문득, 이사 당시 잠시 떠올렸던 생각이 다시금 고개를 들었다.

브로커에게 매니저를 제안하려던 생각.

지금이 바로 그 적기였다.

나는 더 이상 망설이지 않고 핸드폰을 들어 브로커에게 연락했다.


얼마 지나지 않아 현관 벨이 울렸다.

인터폰 화면에는 어김없이 손에 무언가를 들고 있는 브로커의 모습이 보였다.

이번에는 사과 한 박스였다.

“에휴, 그런 거 필요 없다니까….”

나는 작게 한숨을 내쉬며 문을 열었다.

“여전히 황량한 집이군.”

브로커가 텅 빈 거실을 둘러보며 혀를 찼더니, 문득 이상하다는 듯 고개를 갸웃거렸다.

“그런데 이 집은 가을인데 왜 이렇게 에어컨을 빵빵하게 틀어놨어? 감기 걸리겠다.”

“아… 그럴 이유가 좀 있어서.”

나는 지하실 문을 힐끗거리며 얼버무렸다.

봉인해 두긴 했지만 산의 심장이 내뿜는 열기는 여전히 집에 영향을 미치고 있었다. 열기를 식히기 위해 에어컨을 최저 온도로 가동해야만 하는 상태였다.

“춥지는 않죠?”

“뭐, 그렇긴 하지만….”

브로커는 영문을 모르겠다는 표정을 지었지만 더는 묻지 않았다.

나는 그를 지하실로 안내했다.

“이번에 팔 물건이 좀 많아서. 직접 보는 게 나을 걸요.”

“… 이게 다 뭐야?”

지하실 문을 열자 마주한 풍경에 브로커는 눈을 커다랗게 떴다.

열기와 냉기가 뒤섞인 기묘한 공기. 그리고 모래밭의 3분의 1이 녹아내려 유리와 흑요석으로 변해버린 비현실적인 풍경.

상식으로는 도저히 이해할 수 없는 광경이었다.

“훈련하다가 실수를 해서….”

내 태연한 대답에 브로커는 어이가 없다는 표정을 지었다.

나는 지하실 한쪽 구석을 가리켰다.

그곳에는 오리할콘 더미가 작은 산을 이루고 있었다.

“저게 내가 보여주려던 거.”

브로커의 시선이 그쪽으로 향했다.

처음에는 그것이 무엇인지 알아보지 못하는 듯했다.

하지만 곧 그의 눈이 믿을 수 없다는 듯이 커졌다.

그는 홀린 듯 광물 더미로 다가가 가장 위에 놓인 분홍빛의 금속 조각 하나를 집어 들었다.

“이, 이게 전부 오리할콘이라고?”

차가운 감촉과 은은하게 흘러나오는 마력.

진짜였다. 의심의 여지가 없는 순수한 오리할콘.

“네가 어떻게 이런 걸? 아니, 어떻게 이런 양을?”

브로커는 나를 돌아보며 물었다. 그 눈에는 혼란이 가득했다.

“이 정도 양은 평생 보기도 힘들 정도인데….”

“좀 많긴 하죠?”

지극히 당연한 반응이었다. 나는 태연하게 금속 더미를 발로 툭 차며 말했다.

“이거 언제 다 팔지? 세금 처리도 해야 하고… 혼자서는 할 줄도 모르고, 신경 쓸게 너무 많아서 귀찮아 죽겠더라구?”

내 투덜거림에 브로커는 잠시 어이가 없단 표정으로 나를 돌아보았다.

나는 아무렇지도 않게, 마치 지나가는 말처럼 툭 던졌다.

“아저씨가 그냥 내 매니저 할래요?”

내 말에 브로커는 잠시 침묵했다.

이내 그는 피식, 하고 헛웃음을 터트렸다.

“하하…. 농담도 참.”

브로커는 내 제안을 완전히 농담으로 여기는 듯했다.

그럴 만도 했다. 그는 여전히 나를 험한 일을 겪은 불쌍하고 어린 소녀로 보고 있었으니.

나는 이제 오해를 풀어야 할 때라고 생각했다.

“농담 아닌데.”

나는 내 손을 그에게 내밀어 보였다.

열 개의 손가락이 모두 멀쩡하게 달려있는 손.

아니, 정확히는 아홉 개였다.

“봐요. 다친 적도 없어. 그냥 마법 부작용 같은 거였어요.”

“…!”

브로커의 눈이 놀라움으로 커졌다.

그는 내 손과 내 얼굴을 번갈아 쳐다보았다.

하지만 그는 곧 예리하게 지적했다.

“새끼손가락은 여전히 없는데….”

“아, 그건 초호기를 만들어서 그런데…. 생활에 불편함은 없어요.”

나는 품속에서 조용히 웅크리고 있던 초호기를 꺼내 브로커에게 보여주었다.

작은 모래 인형이 멀뚱멀뚱한 눈으로 브로커를 올려다보았다.

내가 손짓하자 녀석은 꾸벅, 하고 예의 바르게 인사를 했다.

“세상에….”

브로커는 처음 보는 기묘한 생명체의 등장에 낮은 신음성을 흘렸다.

이걸로는 부족했다.

나는 품속에서 마지막 증거를 꺼냈다.

김수호가 만들어준 비공식 A급 헌터 등록증.

“그리고 이거.”

브로커는 등록증을 받아 들고 그 내용을 확인했다.

김한별이라는 이름과 함께 선명하게 박혀 있는 A급 마크.

그의 손이 미세하게 떨리기 시작했다.

“전 이제 한국에 다섯밖에 없는 마법사고요. A급 헌터예요. 아직 뉴스에는 안 나갔지만.”

폭풍처럼 몰아치는 진실들.

지금까지 알던 불쌍한 상처 입은 소녀가 아니다. 국가 최상위 전력, A급 마법사라니?

브로커는 한참 동안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

그저 등록증과 나, 그리고 초호기를 번갈아 쳐다볼 뿐.

“….”

나는 그가 당연히 내 제안을 받아들일 것이라고 생각했다.

A급 헌터의 전속 매니저.

그것도 한국에 단 다섯뿐인 마법사의 매니저가 된다는 것은, 그가 지금까지 음지와 양지의 회색지대에서 해왔던 일과는 차원이 다른 부와 명예를 가져다줄 터였다.

그가 거절할 이유는 없었다.

하지만 잠시 후 그의 입에서 나온 대답은 내 예상을 완전히 빗나갔다.

그는 헌터 등록증을 내게 돌려주며 나지막이 말했다

“… 안 되겠다.”

브로커는 내 제안을 거절했다.

“나 같은 사람이 네 매니저를 할 수는 없어.”

“…?”

나는 예상치 못한 거절에 잠시 할 말을 잃었다.

브로커는 고개를 저으며 말을 이었다.

“나는 회색지대에서 일을 해온 브로커야. 그런 내가 공식적으로 활동하는 A급 헌터의 매니저를 맡는 건, 네 앞길에 흠집만 내는 짓이지.”

브로커의 목소리는 전에 없이 단호했다.

“너는 A급 헌터고, 5명밖에 없는 마법사야. 그렇다면 대형 길드에 들어가거나, 국내 최고의 매니지먼트 회사와 계약하는 게 맞아. 국가에서 붙여주는 최고의 지원을 받으면서 활동해야 한다고.”

브로커가 내 눈을 똑바로 쳐다보며 말했다. 그의 눈빛에는 한 치의 사심도 없었다.

오직 나를 위한 진심 어린 조언.

“그게 네 미래를 위한 일이다.”

“…….”

그래, 나를 위하는 마음은 충분히 알겠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다른 매니지를 구할 생각은 없었다.

대형 길드나 매니지먼트 회사, 국가 계약….

그런 곳은 나에게 맞지 않았다. 내가 그런 곳에 적응할 수 있을 리가 없었다.

자유롭게, 내 마음대로 활동하기 위해서는 믿을 수 있는 소수의 조력자만 있으면 족했다.

나는 브로커를 다시 한번 설득하기로 마음먹었다.

“아저씨.”

나는 차분하게 입을 열었다.

“우리가 처음 만났을 때 기억해요?”

브로커가 고개를 끄덕였다.

“아저씨는 내가 아무것도 없는 어린애라고 생각했죠?”

“… 그랬지.”

“나한테서 뭘 뜯어낼 수 있을까, 그런 생각은 전혀 하지 않았어. 오히려 손해 보면서까지 나를 도와줬지. 그냥, 선의로.”

내 말에 그의 어깨가 살짝 흠칫했다.

나는 그의 눈을 똑바로 쳐다보며 말했다.

“나는 빚지고 사는 건 싫어요. 특히나 그런 종류의 빚은 더더욱. 나는 빚을 갚고 싶을 뿐이야. 이건 비즈니스 제안이지만, 동시에 내 감사 표시라고 생각해 줘요.”

“….”

“대형 길드? 매니지먼트 회사? 내가 그런 곳에서 버틸 수나 있을까? 난 내 매니저가 다른 누구도 아닌, 아저씨였으면 좋겠거든요.”

내 진심 어린 설득에 브로커는 복잡한 표정을 지었다.

한참을 고민하던 그가 마침내 포기했다는 듯, 두 손을 들어 올리며 항복을 선언했다.

“… 졌다, 졌어.”

“하실 건가요?”

“그래. 이렇게까지 말하는데 내가 어떻게 더 거절하겠어?”

그렇게 계약은 성립되었다.

이제야 모든 것이 제자리를 찾은 기분이었다.

더 이상 만날 때마다 손을 숨길 필요도 없고.

나는 만족스럽게 손을 내밀며 말했다.

“앞으로 잘 부탁해요, 매니저님.”

브로커는 내 작은 손을 잠시 내려다보다가, 이내 피식 웃으며 내 손을 맞잡았다.

“그래, 나도 잘 부탁합니다. 대표님.”

“대표님? 내가 대표?”

“물론이죠. 회사 이름도 생각해야겠군요.”

“으, 존댓말 쓰지 마요. 오글거려.”

“큭큭…. 우리 딸이랑 똑같은 말을 하네.”

내 말에 브로커는 호탕하게 웃었다.

그 웃음을 보고 나도 만족스러운 미소를 지었다.

마지막으로, 가장 중요한 조건 하나를 덧붙였다.

“아, 그리고 제일 중요한 게 있거든요?”

“뭔데?”

“다시는, 절대로, 갤러리에 내 이야기 쓰지 마요.”

“아, 처음에 그거…. 그 후로는 안썼는데?”

내 말에 브로커는 멋쩍은 표정으로 뒷머리를 긁적였다.

나는 진심을 담아 경고했다.

“그때 쪽팔려서 죽는 줄 알았으니까. 다시 한번만 더 그러면, 그땐 진짜 끝이야. 알겠죠?”

“알았다. 다시는 그런 일 없을 거다. 약속하지.”

“그리고 이상한 메신저 말투도 좀 고치고.”

“그건… 노력해 보마.”

그 약속을 끝으로 첫 번째 업무가 시작되었다.

이제는 새내기 매니저가 된 브로커는 곧바로 지하실에 쌓인 오리할콘 더미를 처리할 계획을 세우기 시작했다.

광물들을 차에 조심스럽게 옮겨 실었다. 무게가 너무 나가서 몇 번에 나눠 이동해야 할 것 같았다.

그가 분주하게 움직이는 모습을 보며 나는 비로소 마음이 놓이는 것을 느꼈다.

이제 잡다한 일은 전부 저 아저씨가 알아서 처리해 줄 것이다.


오늘은 26층의 랭킹에 도전할 생각이었다.

어차피 공략법은 이미 알고 있었다. 이번에는 헤매지 않고 최단 시간으로 돌파할 수 있을 것이다.

이제 내게는 확실한 비장의 무기가 있었으니까.

[소환 스킬 : 샌드웜]

[등급 : 레인보우]

[땅의 신입니다. 경의를 표하십시오.]

풍화와 동급, 레인보우 스킬.

게다가 저 건방지기 짝이 없는 설명.

땅의 신이라니? 나에게 잘 어울리는 스킬이었다.

[탑 26층(EXTREME)에 진입합니다.]

익숙한 폐허가 나를 맞았다.

나는 망설이지 않고 지팡이를 땅에 꽂았다.

사막화.

지난번처럼 모래의 파동이 땅 전체를 쓸어버렸다.

고철 병사들은 조립되기도 전에 모래알이 되어 사라졌다.

순식간에 거대한 미스릴 성벽만이 덩그러니 남았다.

여기까지는 지난번과 똑같았다.

하지만 이번에는 다른 점이 있었다.

나는 성벽을 향해 걸어가며 새로운 스킬을 발동했다.

“나와라, 샌드웜.”

레인보우 등급의 소환수.

분명 저 거대한 미스릴 벽 정도는 한입에 부숴버릴 수 있을 것이다.

나는 기대감에 부푼 채로 지면을 바라보았다.

“… 왜 아무 일도 안 일어나지?”

하지만 아무런 변화도 없었다.

그저 고요한 모래사막만이 펼쳐져 있을 뿐. 내 마력은 허공으로 사라졌다.

나는 당황해서 주변을 두리번거렸다.

마력이 부족했나?

아니, 그럴 리는 없었다. 분명 스킬이 발동되는 감각은 있었다.

그때였다.

내 발치에서 무언가 볼록 솟아오르는 것이 보였다.

꿈틀.

모래를 헤치고 모습을 드러낸 것은 지렁이였다.

내 새끼손가락만 한 굵기의 지렁이가 나를 멀뚱멀뚱 바라보았다.

“애걔…. 겨우 이 정도 크기라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