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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아, 이것 말인가?”

나는 짐짓 심드렁한 목소리로 중얼거렸다.

하지만 속으로는 쾌재를 부르고 있었다.

내 직감이 속삭였다.

판이 깔렸다고. 여기서 최대한 뼛속까지 빨아먹어야 했다.

나는 천천히 고개를 저으며, 마치 심오한 진리를 깨달은 현자처럼 조용히 읊조렸다.

“그런가…. 모르는 건가….”

내 덤덤한 말투에 청년의 표정이 무너져 내렸다.

“….”

그는 한참이나 무언가 반박하려는 듯 입술을 달싹였다.

그러나 결국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

“허허….”

잠시 후, 그의 입에서 터져 나온 것은 헛웃음이었다.

처음으로 자신의 무지를 인정하는 웃음소리. 그가 중얼거렸다.

“…아니. 모르는 것이 당연하지 않은가. 이런 마법이 세상에 존재할 리가? 인과에서 벗어난다니, 이게 대체 어떻게 가능한 건가? 제발 알려주게나.”

인과? 인과에서 벗어난다라….

나는 청년이 토해내는 독백 속에서 익숙한 단어를 포착했다.

5층에서 만났던 미친 영감탱이가 했던 말.

‘자네는 인과에서 벗어났네.’

그 순간 나는 깨달았다.

이 청년이 경악하고 있는 대상은 내가 아니라, 내 몸에 붙은 정체불명의 마법이라는 것을.

나는 이제 이 게임을 완벽하게 이해했다.

나는 아련한 눈빛으로 허공을 응시하며, 마치 거대한 비밀을 짊어진 현자처럼 말했다.

“아쉽지만 지금은 알려줄 때가 아닌 것 같군….”

“때가 아니라니! 그게 무슨 말인가? 단서만이라도 좋네. 내 연구도 장비도 뭐든 주겠다! 알려만 다오!”

청년은 이제 내 앞에 무릎이라도 꿇을 기세였다.

사실 나는 그가 왜 이렇게 집착하는지는 알지 못했다.

하지만 그것은 몰라도 되는 일이었다.

중요한 것은 하나.

상하관계가 완벽하게 역전됐다는 것.

나는 더 이상 미치광이의 손아귀에서 놀아나는 불쌍한 실험체가 아니었다.

이 순간만큼은 내가 갑.

나는 만족스러운 미소를 애써 숨기며, 짐짓 귀찮다는 듯 팔짱을 끼며 말했다.

“내가 왜 알려줘야 하지?”

“원하는 게 뭔가? 희귀한 마법 재료? 고대의 유물? 뭐든지 말만 하게!”

“으음….”

본격적인 협상을 시작할 시간이었다.

무엇을 받아낼 수 있을까….

나는 턱을 괴고 청년을 찬찬이 흩어봤다.

‘저 녀석이 입고 있는 옷, 좀 좋아 보이는데?’

“일단, 지금 입고 있는 그 로브. 그거부터 줘 봐.”

“내 로브 말인가? 으음, 이건 아끼는 것인데….”

내 요구에 청년은 잠시 망설이는 듯했다.

“싫음 말고.”

하지만 내가 발을 빼려는 듯한 태도를 보이자, 그는 한 치의 미련도 없이 자신이 입고 있던 로브를 벗어 내게 공손히 건넸다.

“여기 있네. 자, 이제 됐나?”

나는 로브를 받아 들었다.

손끝에 닿는 감촉부터가 예사롭지 않았다.

청년의 눈동자와 같은 깊고 어두운 검은색의 로브.

나는 만족스러운 미소를 지었다.

[??? 의 로브]

[등급: 레전더리]

[효과: 인공 마나 코어 제조.]

아이템 판정을 받는 물건이라면 자연스럽게 뜨는 상태창.

등급은 무려 레전더리.

‘대박이다.’

나는 속으로 환호성을 질렀다.

하지만 겉으로는 최대한 태연한 척, 시큰둥한 표정을 유지해야 했다.

나는 어금니를 꽉 깨물고 올라가려는 입꼬리를 애써 참아내며 말했다.

“좋아. 30분. 그 시간 동안만 연구하게 해 주지.”

“30분? 고작 30분이라고?!”

청년이 발끈했다. 하지만 나는 눈 하나 깜짝하지 않았다.

“아까도 말했지만, 싫으면 말고.”

“… 알겠네. 자네가 30분이라면 30분이지.”

그는 분한 듯 입술을 깨물며 고개를 끄덕였다.

그리고는 곧바로 내 본체 앞으로 다가와 연구를 시작했다.

그는 내 몸에 직접 손을 대지는 않았다.

대신 내 주변을 빙글빙글 돌며 마력의 흐름을 관찰하고, 허공에 복잡한 수식을 그려나가며 무언가를 연신 중얼거렸다.

“이럴 수가…. 상상도 못 한 발상이로군. 뿌리 자체는 나와 비슷한 것 같기도 한데….”

나는 그가 알아들을 수 없는 말로 중얼거리는 것을 지켜보며 다음 요구사항을 생각했다.

이대로 30분이 지나면 그는 분명 더 많은 시간을 요구할 터. 그때를 대비해야 했다.

‘흐음…. 다음엔 뭘 뜯어내지?’

돈이나 아이템은 더 이상 욕심나지 않았다.

이미 최고의 아이템을 손에 넣었으니까.

그때, 내 머릿속에 기가 막힌 아이디어가 떠올랐다.

이건 어쩌면 돈이나 아이템보다 더 값진 것이다.

세계에서 오직 나만이 가질 수 있는 유일한 물건이 될 터였다.

“떨어져, 시간 다 됐어.”

30분이 지났다.

청년은 아쉬운 표정으로 내게서 한 걸음 물러섰다.

“으음…. 조금만 더 보면 알 수 있을 것 같은데…. 어떤가, 조금만 더 시간을 줄 수 없겠나?”

“조건이 있어.”

“말해보게.”

“나랑 사진 한 장 찍어줘.”

내 엉뚱한 요구에 청년은 잠시 할 말을 잃은 듯했다.

그의 얼굴에 당혹감이 스쳐 지나갔다.

“…사진? 사진이라는게 뭐지?”

“아아. 또 모르는 건가…. 너 폼만 잔뜩 잡고, 아는 게 없잖아?”

“…하하, 오늘 내 무지를 뼈저리게 느끼게 되는군.”

나는 대단한 비밀을 알려주는 것처럼 목소리를 낮추며 설명했다.

“순간을 기록하는 마법이지. 이걸로 찰칵하고 찍으면 지금 이 모습이 그대로 박제되는 거야. 영원히.”

“순간을… 영원히 박제한다라?”

청년의 눈이 경이로움으로 빛났다.

“흥미롭군. 시간의 흐름에 저항하는 개념인가. 좋아, 그 마법을 내게 보여주게.”

“자, 그럼 이쪽으로 와서 서.”

나는 모래 분신을 조종해 핸드폰을 들게 시킨 후, 청년의 옆에 섰다.

그리고 익숙하게 손가락으로 V자를 만들었다.

내친김에 청년의 어깨에 팔까지 둘렀다. 높이가 안 맞아서 좀 불편했지만.

“자, 브이.”

청년은 내 손가락 모양을 뚫어져라 쳐다보았다.

그의 표정은 마치 고대의 룬 문자를 해독하려는 학자처럼 진지했다.

“이 손짓은 무슨 의미를 담고 있는 거지? 특정 마법을 발동시키는 수인인가?”

“…승리와 평화의 상징이야. 그냥 따라 하기나 해.”

나는 귀찮다는 듯 쏘아붙였다.

청년은 잠시 고개를 갸웃거리더니, 이내 어색하게 내 손 모양을 따라 했다.

그의 얼굴에는 여전히 이게 대체 무슨 상황인지 모르겠다는 표정이 역력했다.

찰칵-

역사적인 순간이 사진 속에 담겼다.

사진을 확인한 나는 만족스러운 미소를 지었다.

하지만 뭔가 좀 아쉬웠다.

이런 기회가 다시 올 것 같진 않은데….

“몇 장 더 찍자. 이번엔 혼자 서봐. 여기 양손을 브이로 만들고….”

“…기분이 뭔가 불쾌해지는 자세군. 하지만 좋네. 이걸로 몇 분이나 더 주겠나?”

“음…. 30분?”

“거래하지.”

청년이 고개를 끄덕였다.

“좀 더 활짝 웃어봐! 치즈!”

“치이…즈…?”

“오케이, 자세 좋고!”

나는 신나서 카메라를 연타했다.

플래시가 연신 터졌다.

열 장도 넘는 사진을 찍은 나는 마침내 만족하며 고개를 끄덕였다.

“좋아, 약속대로 30분이야.”

“후…. 힘들군.”

한숨을 내쉰 청년은 다시 연구에 몰두했다.

그는 이제 아예 내 앞에 자리를 잡고 앉아, 허공에 거대한 마법진을 그려나가기 시작했다.

그의 손끝에서 그려지는 마법진은 내가 도저히 이해할 수 없을 정도로 복잡하고 정교했다.

나는 그가 연구에 빠져있는 동안, 슬쩍 시간을 확인했다.

[남은 시간: 31분 15초]

약속한 30분이 지나면, 탑에서 머무를 수 있는 시간은 거의 남지 않게 된다.

그때를 노려야 했다.

시간은 빠르게 흘렀다.

청년은 약속된 30분 동안 단 한순간도 쉬지 않고 연구에만 몰두했다.

그의 입에서는 알아들을 수 없는 전문 용어들이 쉴 새 없이 터져 나왔다.

나는 그의 모습을 보며 슬슬 불안해지기 시작했다.

저러다 시간보다 빠르게 마법을 이해해 버리면 어쩌지? 갑자기 폭주해서 나를 해치우는 건 아닐까?

5층에서 만났던 미치광이 노인의 모습이 떠올랐다.

다행히, 아무 일 없이 약속된 30분이 지났다.

[남은 시간: 1분 12초]

청년이 먼저 아쉬운 표정으로 자리에서 일어났다.

“시간이 벌써 이렇게 됐군. 아쉽지만, 오늘은 이만 보내줘야겠지.”

나는 속으로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다행히 그는 약속을 지킬 생각인 모양이었다.

하지만 바로 다음 순간, 그의 입에서 나온 말은 내 예상을 완전히 빗나갔다.

“거의 다 알아냈다네.”

청년의 목소리는 이전과 달리 차갑게 식어 있었다.

그의 눈에서 순수한 탐구심은 사라지고, 대신 섬뜩한 빛이 감돌았다.

“이 마법, 자네 것이 아니군.”

등골을 타고 식은땀이 흘렀다.

“무, 무슨 소리를 하는 거야?”

“처음에는 자네가 나보다도 뛰어난 천재인 줄 알았지. 하지만 아니었어. 이 마법의 근간을 이루는 이론은… 명백히 나의 것이다.”

청년이 한 걸음 다가왔다.

나는 반사적으로 뒷걸음질 쳤다.

“이건 내 연구를 바탕으로 수십 년, 어쩌면 수백 년의 세월을 거쳐 완성된 마법이야. 다른 누군가가 만들어낼 수 있는 물건이 아니란 말이지.”

그의 시선이 내 몸을 훑었다.

마치 해부라도 하려는 듯한 날카로운 눈빛.

“결론은 하나뿐. 무슨 수를 쓴 것인지는 모르겠어. 그러나 이건 확실하다. 자네는 먼 미래의 나를 만난 거야. 그렇지?”

소름이 쫙 돋았다.

분위기가 순식간에 돌변했다.

그곳에 방금 전까지 호구처럼 퍼주던 마법사는 온데간데없었다.

[남은 시간: 10초]

타이머가 깜빡였다.

지금이 마지막 기회였다.

나는 뒤도 돌아보지 않고 외쳤다.

“어어, 그럼 이만!”

그리고 망설임 없이 긴급 탈출 버튼을 눌렀다.

[탑을 나가시겠습니까? Y/N]

Y!

몸이 빛에 휩싸이며 익숙한 부유감이 덮쳐왔다.

시야가 흐려지기 직전 나는 보았다.

청년이 기분 나쁜 미소를 지으며 내게 손을 흔드는 것을.

[탑 15층(EXTREME) 클리어를 축하합니다.]

“휴… 개 무서웠다 진짜.”

익숙한 클리어 메시지.

탑 밖으로 나온 나는 그 자리에 주저앉아 가쁘게 숨을 몰아쉬었다.

심장이 미친 듯이 뛰었다.

정말 죽는 줄 알았다.

한참 동안 땅바닥에 앉아 마음을 진정시키고 나서야, 나는 비로소 자리에서 일어났다.

위험했던 순간이었지만 소득은 차고 넘쳤다.

나는 내 손에 들린 로브를 바라보고 만족스러운 미소를 지었다.

“VPN 수리 못 받은 건 아쉽지만…. 그래도 할 건 해야지.”

나는 집에 돌아오자마자 익숙하게 컴퓨터를 켰다.

[제목: 방금 템 먹었는데 이거 좋은 거예요?]

작성자: ㅇㅇ(V33.332)

(마법 깎는 노인의 로브 사진. jpg)

비틱 가득한 글에 헌터 갤러리가 뒤집어졌다.

ㄴ 뭐지? 처음 보는 템인데.

ㄴ ㅁㅊ. 이거 마깍노 드랍템이잖아. 유니크템.

ㄴ 마깍노? 그 30층대에 있다는 히든 보스?

ㄴ 최근에 마깍노 레이드 뛴 팀이 있었음?

ㄴ 있었으면 소문 쫙 났지. 진짜 뭐냐?

ㄴ 아니 지금 그게 중요한 게 아님. 30 층대에 갔으면 이 사람도 A급이라는 거 아님?

ㄴ 하루에 20시간씩 갤질하면서 분탕 치는 놈이 A급이라고? 말이 됨?

ㄴ 딱 알았다. AI 짤이네 ㅇㅇ.

갤러리는 순식간에 내 정체를 추론하는 글들로 도배되기 시작했다.

사람들은 저마다 아는 척을 하며 온갖 추측을 쏟아냈다.

“음, 반응 좋고~.”

그렇게 댓글을 하나하나 음미하던 중이었다.

문득 이상한 것을 느끼고 멈췄다.

“왜 다들 유니크 템이라고 하는 거지? 이거 레전더리인데?”

아무래도 엄청난 것을 주워버린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