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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Authored-By: Claude Opus 4.5 <noreply@anthropic.com>
2025-12-14 21:31:57 +09:00

12 KiB

“그래서 ‘청년 시절의 나’는, 늘 머릿속으로 구상해 두었던 기억 전달 마법을 자네에게 심어두었지.”

마법 깎는 중년이 담담하게 설명했다.

“그 마법은 일종의 씨앗처럼 자네의 몸에 붙어 있다가, 오늘 나를 만나자마자 발동하여 싹을 틔운 걸세.”

나는 그제야 15층의 청년이 왜 순순히 나를 보내주었는지 이해했다.

그와 헤어질 때 느꼈던 미미한 위화감.

바로 이 마법을 심어두었기 때문이었다.

“좋은 생각이었지. 기억을 전달받기 전까진, 내게 자네를 만난 기억이 없었거든.”

“어떻게 그럴 수가 있죠? 지금이 그때보다 더 미래인데.”

“글쎄. 과연 그럴까? 극단적으로 말하자면, 그와 나는 동일인조차 아닐 수 있네.”

나는 그 말을 전혀 이해할 수 없었다.

내가 좀 더 자세한 설명을 듣고자 했을 때였다.

“아직 묻고 싶은 게 남아있다네.”

마법 깎는 중년은 찻잔을 채우며 말했다.

“청년 시절의 내가 말하길, 자네는 ‘미래의 나’를 만났을 거라더군…. 그 모습은 어떠했나? 지금의 나보다 더 나이가 들어 보였나?”

나는 5층에서 만났던 미치광이 노인을 떠올렸다.

백발이 성성한 머리와 광기로 번뜩이던 눈.

지금 내 앞에 있는 중년의 모습과는 확연히 달랐다.

“지금보다 훨씬 더 늙은 모습이었죠. 그래서 치매가 온 것 같았고요.”

내 대답에 마법 깎는 중년은 깊은 한숨을 내쉬었다.

그의 얼굴에 실망이 섞인 복잡한 표정이 스쳐 지나갔다.

“그렇다면… 나는 결국 실패한 것일지도 모르겠군.”

그가 의미를 알 수 없는 말을 나지막이 중얼거렸다.

실패라니? 대체 무엇을 실패했다는 것일까.

내가 되묻기도 전에, 그는 고개를 저으며 말을 이었다.

“아니, 아직은 정보가 너무 부족해. 단편적인 기억만으로는 전체 그림을 그릴 수가 없군. 더 많은 파편들을 모아야만 해.”

그의 눈빛이 다시 나를 향했다.

나는 이것이 마깎중의 부탁임을 직감했다.

“계속해서 다른 시간대의 나를 만나주게. 절대 중간에 포기하지 말고.”

“그건 제가 원한다고 해서 되는 일이 아닌데요. 탑의 층마다….”

나는 별생각 없이 탑이라는 단어를 꺼내려했다.

하지만 마법 깎는 중년이 재빨리 손을 들어 나를 제지했다.

그의 눈빛이 순식간에 날카로워졌다.

“쉿.”

그는 검지손가락을 자신의 입술에 가져다 대며 조용히 하라는 신호를 보냈다.

“우리 사이에선 ‘그걸’ 함부로 입에 담지 말게.”

나는 영문을 몰라 그를 쳐다보았다.

그는 마치 누군가 우리의 대화를 엿듣고 있기라도 한 것처럼 조심스러운 태도를 보였다.

“뭘 걱정하는지 아네. 하지만 자네가 원하지 않아도, 반드시 그렇게 될 걸세. 자네는 선택받은 것이나 마찬가지니까.”

나는 한숨을 내쉬었다.

애매모호하게 휘둘리는 건 질색이다.

솔직하게 말했다.

“대체 뭐가 뭔지 전혀 모르겠는데요. 현학적인 말 없이 그냥 명쾌하게 설명해 주실 수는 없나요?”

“흐음?”

“잘은 모르겠지만, 제가 이제 협력자인 것 같은데. 설명을 해주면 더 잘 도울 수 있잖아요?”

“그런가…. 모르는 건가….”

“?”

“아쉽지만 지금은 알려줄 때가 아닌 것 같군.”

“???”

“하하, 자네에게 배운 건데. 효과가 아주 좋군? 왜 이 화법을 쓰는지 알겠어.”

“….”

이 노인네 사실 뒤끝이 엄청난 거 아닌가?

로브도 언급하더니, 이제 이런 사소한 장난까지 그대로 갚아준다고?

마깎중년은 허허 웃더니 다시 말했다.

“자네는 늘 하던 대로만 하면 되네. 자네가 원하든 원하지 않든, 자네는 반드시 또 다른 시간대의 나와 마주치게 될 거야.”

그것이 대체 무엇을 의미하는지는 알 수 없었다.

하지만 한 가지는 확실했다.

내가 어떤 거대한 흐름에 올라타게 되었다는 것.

“그냥 당하고만 있으라고요?”

“그건 그렇군.”

그는 잠시 침묵하더니, 결심했다는 듯 자리에서 일어났다.

“확실히 자네는 나의 소중한 마일스톤이자, 유일한 희망이지. 그런 자네가 너무 쉽게 죽거나 다치면 곤란해. 아주 곤란하지.”

그가 내 쪽으로 다가와 손을 뻗었다.

그의 손가락이 내 허리춤에 있는 마법 배터리를 가볍게 건드렸다.

파앗-!

벨트에서 희미한 빛이 피어올랐다.

매직 캔슬이 담겨 있던 공간에 새로운 마법이 저장되는 것이 느껴졌다.

벨트 표면에 복잡한 문양이 새겨졌다가 이내 사라졌다.

“선물일세.”

마법 깎는 중년이 말했다.

“모래시계를 뒤집는 마법이라네.”

“현학적인 설명은 이해 못 해요.”

“… 1시간 전으로 돌아갈 수 있다네. 1회용이니 신중하게 쓰고.”

시간을 되돌리는 마법이라고?

그런 게 존재해도 되는 건가?

내가 상상만 하던 마법이 손에 들어와 버렸다.

“슬슬 시간이 다 되어가는군. 이제 그만 돌아가게. 자네의 동료들도 함께.”

그가 손가락을 튕기자, 허공에 박제되어 있던 샤론과 샌드웜, 초호기의 몸이 자유로워졌다.

그들은 무슨 일이 있었냐는 듯 어리둥절한 표정으로 바닥에 착지했다.

“현자님!”

샤론이 걱정스러운 얼굴로 내게 달려왔다.

나는 괜찮다는 의미로 고개를 끄덕여 보였다.

마법 깎는 중년은 어느새 테이블과 의자를 모두 집어넣은 뒤.

처음 나타났을 때처럼 공간의 균열 앞에 서 있었다.

그는 마지막으로 나를 돌아보며 의미심장한 미소를 지었다.

“다음에 또 보지, 시간의 이방인.”

그 말을 끝으로, 그는 찢어진 공간 너머로 사라졌다.

그가 사라지자마자, 투기장의 풍경이 눈앞에서 아지랑이처럼 흩어지기 시작했다.

익숙한 탑에서 배출되는 감각이 온몸을 감쌌다.

나는 눈을 감았다.

머릿속이 복잡했다.


정신을 차렸을 때, 나는 내 방 침대 위에 누워 있었다.

창밖은 여전히 어두운 새벽.

온몸이 무거웠다.

정신력이 바닥난 듯한 엄청난 피로.

“으아….”

신음 소리가 절로 나왔다.

평소 같았으면 일어나자마자 컴퓨터부터 켜고 갤러리를 확인했겠지만, 오늘은 그럴 기력조차 없었다.

“이번엔 진짜 좀 쉬어야겠어.”

탑 등반을 잠시 멈추고 재정비할 시간이 필요했다.

머릿속이 너무 복잡했다.

내가 마깎노의 기억 전달자가 되다니?

게다가 지루하고 현학적인 틀딱답게 뭔가 명쾌하게 말해주는 게 없었다.

생각하면 할수록 머리만 아파왔다.

나는 침대에서 몸을 일으켰다.

그러고 보니, 아직 해결하지 않은 일이 하나 있었지.

나는 방 한구석에 잠시 내버려 두었던 구슬을 꺼냈다.

브로커가 구해다 준 두 번째 정령의 정수. 이번에도 속성은 흙.

그것을 꺼내자마자, 방 안의 공기가 미묘하게 변했다.

보고 있던 핸드폰도 던지고 기어 나온 초호기.

내 손가락에 반지 형태로 머물러 있던 샌드웜.

두 소환수의 시선이 일제히 내 손 안의 정수에 꽂혔다.

“….”

초호기는 아무 말 없이 내 발치에 바싹 다가와 앉았다.

그리고는 평소보다 훨씬 더 공손하고 충성스러운 자세로 나를 올려다보았다.

아니, 솔직히 말해서 이렇게 얌전한 건 본 적이 없다.

오직 정령의 정수만을 향해 있는 녀석의 눈.

[샌드웜은 자신이 이번에야말로 저것을 먹을 자격이 충분하다고 주장합니다.]

샌드웜은 텔레파시로 직접적인 의사를 전달해 왔다.

그 목소리에는 초조함마저 묻어 있었다.

둘 중 하나에게만 이 귀한 아이템을 줄 수 있다.

초호기와 샌드웜.

두 충실한 부하 사이에서 미묘한 경쟁의 기류가 흘렀다.

하지만 나는 별로 고민하지 않았다.

정답은 처음부터 정해져 있었으니까.

“이런 욕심쟁이를 봤나…. 넌 저번에 먹었잖아?”

나는 초호기를 향해 고개를 저었다.

그러자 초호기의 어깨가 축 처지는 것이 보였다.

하지만 스스로도 납득은 했는지, 더 따지지는 않는 녀석.

나는 샌드웜이 깃든 반지를 향해 정령의 정수를 내밀었다.

“네 거야.”

[샌드웜은 위대한 주인의 현명한 결정에 깊은 감사를 표합니다.]

반지가 빛을 발하며 정수를 빨아들였다.

정수는 순식간에 반지 속으로 흡수되어 사라졌다.

그리고 샌드웜에게 변화가 찾아왔다.

샌드웜에게서 뿜어져 나오는 기운이 이전보다 한층 더 깊고 강력해졌다.

하지만 솔직히 말해서, 나는 그 차이를 명확하게 느끼지는 못했다.

초호기가 정수를 먹었을 때처럼, 겉으로 드러나는 극적인 변화는 없었다.

[샌드웜은 자신의 ‘격’이 한 단계 상승했다고 말합니다.]

“격?”

[샌드웜은 그것이 존재의 등급이라고 설명합니다.]

샌드웜의 설명이 머릿속에 울려 퍼졌다.

그의 말에 따르면, 이 세계의 모든 존재는 눈에 보이지 않는 격을 가지고 있다고 했다.

그리고 격이 낮은 자는, 격이 높은 자에게 어떠한 위해도 끼칠 수 없다는 절대적인 법칙이 존재한다고.

“그건 어떻게 올리는데?”

[샌드웜은 필멸자들의 신앙을 모으라고 권합니다. 이것은 신이 되는 길입니다.]

[하지만 가장 편하고 빠른 방법은 방금 전과 같은 포식. 자신보다 격이 높거나 비슷한 존재의 정수를 흡수하여 자신의 것으로 만드는 것이라고 설명합니다.]

나는 오늘 만났던 마법 깎는 중년을 떠올렸다.

그의 압도적인 힘.

나의 모든 공격과 마법이 그에게는 전혀 통하지 않았다.

[샌드웜은 그 존재도 분명 똑같은 일을 해서 격을 높였으리라 추측합니다.]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이제야 이해가 되었다.

그저 레벨이나 스킬의 차이가 아니었다.

나와 그는 영혼의 등급 자체가 달랐던 것이다.

[샌드웜은 주인께서도 하루빨리 격을 높여야 한다고 조언합니다.]

그의 말은 일리가 있었다.

앞으로 또다시 마법 깎는 노인 같은 존재를 만나지 않으리란 보장은 없었다.

아니, 그의 말에 따르면 나는 반드시 또 다른 그를 만나게 될 운명이다.

그때마다 이렇게 무력하게 당할 수만은 없었다.

나는 납득했다.

단순히 강해지는 것을 넘어, 나 자신의 ‘격’을 높여야만 한다고.


한편, 세계 헌터 협회의 본부가 위치한 스위스 제네바.

그곳에 마련된 공인 S급 헌터들만이 사용할 수 있다는 특수 훈련장.

현실과 거의 흡사한 가상 환경을 구현해 내는 최첨단 시설의 중심에서, 한 남자가 무릎을 꿇고 있었다.

“커헉… 헉….”

거친 숨을 몰아쉬는 그의 온몸은 땀으로 흠뻑 젖어 있었다.

대한민국 최강의 S급 헌터, 김수호였다.

그의 주위로는 폭풍이라도 휩쓸고 간 듯, 훈련장의 바닥과 벽이 온통 파괴되어 있었다.

그가 만들어낸 파괴의 흔적들이었다.

하지만 정작 그의 앞에는, 상처 하나 없이 멀쩡한 모습의 또 다른 남자가 서 있었다.

흐트러짐 없는 자세, 여유로운 표정.

성조기가 그려진 망토가 휘날린다.

세계 랭킹 1위, 신에 가장 가까운 남자라 불리는 S급 헌터, 데미갓.

데미갓은 무릎 꿇은 김수호를 무감정한 눈으로 내려다보았다.

“어이, 킴 카디안.”

데미갓의 목소리가 훈련장 전체에 낮게 울렸다.

“너, 이대로는 다음 층 공략에 실패한다.”

확신에 찬 통보.

김수호는 고개를 들지 못했다.

데미갓의 말이 뼈아픈 사실임을, 그 누구보다 자기 자신이 가장 잘 알고 있었기 때문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