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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5-12-14 21:31:57 +09: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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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aw Blame History

화양현은 현 치고는 제법 번화한 곳이었다.

낙양과 숭산, 그리고 하남의 성도인 정주(鄭州)의 한가운데에 자리 잡은 까닭이었다. 붉은 단청을 얹은 고급스러운 기와집들이 즐비하여, 멀리서도 그 번영이 한눈에 들어왔다.

본디 이처럼 돈이 몰리는 곳에는 으레 흑도가 자리잡기 마련이다.

허나 소림사가 굳건히 뿌리내린 하남의 특성 때문일까, 인근 현에 자리 잡은 흑도라 해봐야 세상 물정 모르는 삼류 잡배들이 대부분이었다.

그런데 화양현은 조금 남달랐다. 삼류 흑도들이 감히 발 붙이지 못했다. 현의 주민들조차 그 정확한 연유를 알지 못했다.

그저 야심 큰 포두와 새로 부임한 지현이 흑도들을 쥐잡듯 쓸어버린다는 소문만이 무성할 뿐이었다.

화양현에서 가장 큰 기루들조차 모조리 관아의 아래로 들어갔다던가.

기이한 것은, 본래 반발했어야 할 흑도들이 관아의 명을 고분고분 따른다는 점이었다.

안전이 보장되고 볼거리가 풍성하니 자연스레 사람이 몰렸다. 당장 화양(華陽)이라는 이름부터가 꽃이 빛날 정도로 많이 핀다고 하여 붙여졌다.

어느 순간부터 백도의 젊은 후기지수들이 모여서 술도 마시고, 꽃구경도 하다가 연애도 하는 장소로 발전했다.

객잔과 주루가 우후죽순처럼 생겨났고, 인근의 문파들마저 하나 둘 속가를 꾸렸다.

목 좋고 물 좋다는 소식에 슬쩍 얼굴을 들이밀었던 흑도들도 있었으나, 죄다 하룻밤 사이에 어디론가 사라졌다.

듣기로는 근처를 배회하던 무림맹원들이 그러했다던가.

일 년 사이에 현의 규모가 몇 곱절로 커졌다. 본디부터 작지 않았던 현이었기에, 그 변화는 더욱 크게 다가왔다. 빠르면 내년에는 주(州)로 승격될 것이라는 이야기가 돌 정도였다.

“무슨 상단 행렬이 저리 길다냐?”

행인들이 길게 줄지어진 상단의 행렬을 보며 혀를 내둘렀다.

나름 체급이 커진 화양현에서도 보지 못했던 광경이었다. 짐을 가득 실은 마차가 자그마치 스무 대가 넘었다.

하남에서 으뜸이라 일컬어지는 금룡상단의 행렬이었다. 보기 드문 광경에 평소보다 더 많은 이들이 거리로 쏟아져 나왔다.

삽시간에 객잔들도 가득 차서 상단의 행렬이 어디로 향하는지 내기하는 사람들도 적지 않았다.

“명문대파가 새로 지부를 짓기라도 하나보오.”

“그렇다면 굳이 화양현에 지을 이유가 없지 않나……?”

일대의 땅을 통째로 매입한 것인지, 너른 허허벌판 위에 건물의 뼈대가 올라가고 있었다. 터가 워낙 넓어 골조만으로도 그 규모를 짐작할 수 있었다.

공사의 규모가 방대한 탓에 아무리 빨라도 몇 년은 족히 걸릴 듯했다.

“도대체 뭘 짓기에 저리 큰 땅을…….”

“주가 된다고 하지 않았던가. 관청이라도 새로 짓는가보지.”

“땅 주인 놈, 세 배를 불러도 안 판다고 그리 큰소리치더니.”

뭇 문파와 부자들이 탐내던 땅이었다. 인부들에게 은전을 건네며 주인이 누구냐 묻는 이들도 있었으나, 한결같이 모른다는 말만 되풀이했다.

구파가 그러하듯 고아한 향취가 드러나도록 짓는다던가. 기어코 화양현의 뒤편에 자리한 산까지 골조가 뻗어나가는 것을 보고 혀를 내둘렀다.

얼마 지나지 않아 구파 중 하나가 터를 옮긴다는 소문이 돌기 시작했다.


으아악―!

태실산 자락에서 갑작스런 소란이 일었다. 화련이 새싹이 하나둘 피어오르는 흙밭을 나뒹구는 소리가 일대에 울려퍼졌다.

앉은 채로 눈을 감고 있던 서연이 눈꺼풀을 천천히 들어올렸다.

근래 일문의 문주에 걸맞는 마음가짐을 가지기 위해 심상을 다스리는 중이었다. 금룡상단에서 뜻을 완전히 세운 까닭이다.

문파를 세운다고 말하니 금벽산이 도움을 주겠다고 나섰다. 은혜를 갚겠다는 노인장의 부담을 덜어줄 겸, 자문도 구하고자 선뜻 수락했다.

―화양현 말씀이십니까? 마침 상단이 가진 땅이 있습니다.

언젠가 개파식을 열겠다는 말도 덧붙였으니, 최소한 문파 행세는 할 수 있을 크기로 준비하지 않을까. 원체 대인배셨으니 말이다.

수풀 너머, 화련이 몸서리치는 것을 봤다.

당소소에 손에 들린 손바닥만한 지주가 원인인 듯했다.

‘영물이라고 했나?

태실산에 당도하자마자 당소소의 다리에 달라붙었던 녀석이다. 독물에 익숙한 당소소도 처음 보는 종이라던가.

당소소가 품고 있는 독기를 느끼기라도 한 듯했다. 충견이라도 되는 양 당소소를 졸졸 따라다녔다.

모종의 계기로 영성을 지녀 사람의 말을 알아듣는 듯했다. 당소소의 말로는 지주답지 않게 살이 통통하게 올라 귀엽다고 했다.

여느 지주와 달라 보이기는 했다. 반짝이는 검은 눈동자들이 심히 부담스러웠다.

사천당문의 직계들은 날때부터 독물과 긴밀히 지낸다고 했다. 그 탓에 미적 감각이 뒤틀린 경우가 많다던가.

당소소의 머리 위.

그곳이 둥지라도 되는 듯 자리를 틀고 앉아있는 지주가 보였다.

“사저, 안 뭅니다. 산군의 털도 거뜬히 쓰다듬으시는 분이 고작 지주를 무서워하시다뇨.”

“폴짝 폴짝 뛰어다니잖아! 당장이라도 옷 속으로 파고들 것 같다고……!”

“지주의 특징이지요. 나름대로 애교를 부리는 겁니다.”

“으꺅!”

어느새 당소소의 어깨에 올라간 지주다. 지주치고 속도가 매우 빨랐다.

와바박거리는 움직임에 화련이 몸을 세차게 떨었다.

영물이라는 말이 틀리지 않았다. 이따금 사냥을 나갈 법도 하거늘, 얌전히 당소소의 주변에만 머물렀다. 찬 봄바람을 아무렇지 않게 받아내는 것만 봐도 그러했다.

독물에 관해서는 당소소가 자신보다 전문가일 터였다. 그랬기에 서연은 지주에 관한 일을 당소소에게 일임했다.

다시 눈을 감고 본래 하던 생각을 계속했다. 신녀문에 관한 생각이다.

문파를 운영하는 것은 쉽지 않은 일이다. 뜻과 목적은 세웠으나, 세세한 방침까지는 정하지 못했다.

본디 문파가 크기를 키우기 위해서는 무인들을 영입하고 제자를 더 받는 것이 첫째이나, 그러고 싶지 않았다.

구파의 장문인들이 괜히 장문제자를 하나만 두겠는가. 제자 하나에 힘을 쏟기에도 벅찬 탓이다.

서연이 생각하기에도 둘이 최선이었다. 여기서 더 늘렸다간 감당하지 못할 것이 눈에 훤했다.

가르치지 못한다는 것이 아니다. 전심전력을 다하지 못한다는 뜻에 가까웠다.

구파나 세가가 그러하듯, 장로나 일대제자 층이 탄탄했더라면 아랑곳하지 않고 제자를 받았겠으나, 막 생긴 신생 문파에 그런 것이 있을 리가 있겠는가.

적당한 중진 고수를 데려와 모시기도 애매했다. 그만한 위치에 도달한 여고수들은 하나같이 소속이 있었기 때문이다.

이름을 신녀문이라 지어놓고 남성 고수를 받는 것도 웃긴 일이다.

무공도 문제였다. 심법은 완성했으나 검법이 아직 미완성이었다. 화산의 매화검만 하더라도 무려 이십사 초식이며, 종남은 거기서 더 나아가 전, 중, 후 각 십이초식으로 이뤄져 있다.

천녀유검은 이제 겨우 네 초식에 불과했다. 미완성의 검법을 가지고 제자를 받는 것도 웃긴 일이다.

두 제자는 예외였다. 검법이 아니라 각예가 시작이었기 때문이다.

‘결국 셋이 전부다.

유혼과 백호, 거기에 지주까지 더하면 여섯이라고 봐야 할까. 아무튼.

규모를 더 키울 수는 없으니 깊이를 더하는 데에 힘써야 했다. 명성과 권위를 쌓아야 한다는 것이다.

신녀문주라는 별호가 널리 알려지기는 했으나, 오랜 세월에 걸쳐 권위를 다져온 구파나 세가에 비하면 발끝에도 못 미쳤다.

바람 앞의 등불처럼, 한순간에 명성이 사라져도 이상하지 않다는 뜻이다.

악인을 척살하지 않고도 선인들을 지키는 것을 목적으로 삼은 문파다. 그러려면 의지만으로는 부족했다. 민심이 따라야만 했다.

호랑이를 들먹여 우는 아이를 잠재우듯, 신녀문 역시 민초들에게 그런 존재가 되어야 했다.

‘천하까지는 무리여도, 소림의 절반이라도 이룬다면…….

당장 소림사가 그 예시였다. 이따금 대적이 나타나면 살계를 열기도 하지만, 표면적으로 내세우는 기치는 불살이었다. 그런데도 사마외도들이 감히 침범하지 못했다.

다른 문파가 불살을 내세웠다면 주제를 모른다고 비웃을 세인들이 적지 않았을 것이다. 허나 천하의 그 누가 감히 소림을 비웃는단 말인가.

하남 땅에 사마외도가 자리잡지 못한 것이 그 결과다.

‘신녀문을 그렇게 만들고 싶구나.

서연이 생전 처음으로 품은 욕심이었다. 그러려면 지금보다 더욱 제자들을 가르치는 것에 전념해야 했다.

당가주의 말이 떠올랐다. 때로는 엄하게 가르치는 것도 방법이라던가. 그 역시 자식들과 지도대련을 한 적이 적지 않다고 했다.

“둘 다 이리 오려무나.”

제자들을 지켜보던 서연이 입을 열었다. 두 제자들은 다가와 다소곳하게 앉았다.

“아직 손을 나눠본 적이 없는 것으로 안단다. 한 번 스승과 손을 섞어보겠느냐? 동시에 들어와도 된단다.”

“……!”

화련과 당소소가 놀란 기색을 띄었다.

스승과의 비무는 처음이었던 탓이다. 맥락이 없었던 탓에 무언가 잘못한 것은 없는지 괜히 헤아려보려는 둘이었다.


화련은 천하에서 가장 강한 열한 살이었다.

유혼의 술법에 영향을 받아 육체가 서연의 심법에 맞춰져 철저히 다시 짜였다. 천하에서 서연 다음으로 비연천공을 잘 구사할 수 있다는 뜻이다.

유혼은 그녀를 두고 절세고수보다 비연천공을 더 잘 다룰 것이라는 말까지 덧붙였다.

위씨 성을 버리고 시종이 되기를 다짐한 그날, 화련은 모산파에서 출가했다.

이따금 모친의 얼굴이 아른거리기는 했으나, 하늘에서 내려온 천녀를 스승으로 모시는 값으로 치렀다고 생각했다.

근래에는 비연천공의 이 성에 도달했다. 힘을 이 할까지 끌어올릴 수 있게 되었다는 뜻이다.

사천제일기재라는 당소소보다 빠른 성취였다.

―역시 사저십니다. 구파에서 내로라하는 장문제자들도 사저만 못할겁니다.

당소소는 그런 화련을 치켜세웠으나, 화련은 마냥 기뻐하지 못했다. 그녀의 실제 나이는 당소소보다 두 살 연상이었기 때문이다.

상념을 흩어냈다. 그럴 상황이 아니었다.

지금 그녀 앞에 선 이는 천하에서 가장 강한 여인이다.

기수식조차 취하지 않고 있다. 자세에 연연하지 않는 경지에 도달했음을 의미했다.

‘음.

몇 수를 양보해도 비무가 성립되지 않을 격차다.

처음부터 가르침을 내릴 생각으로 그리 말하셨음을 직감했다. 그렇다면 신녀문 대사저에 걸맞는 품행을 보여야 했다.

사제에게 선수를 떠넘겨서는 안된다는 뜻이다.

화련은 스승께서 직접 깎아준 목검을 강하게 쥐었다. 아직 진검을 들 때가 아니라는 서연의 말 때문이었다.

그때였다.

―손과 발에 위치에 집중하렴. 유검은 본디 정교함에 본을 둔 검법인지라, 매 순간 최선의 투로를 고려해야 한단다. 전곡혈에 힘을 두 푼 가량 더 싣는 것을 잊지 말고.

상서로운 전음이 뇌리에 울려퍼졌다. 실시간으로 지도가 이루어졌다.

당소소 역시 자세를 바꾸는 것을 보니, 두 제자에게 동시에 전음을 보내시기라도 하는 모양이었다.

화련은 옅은 호흡을 내쉬며 자세를 다잡았다.

스윽.

화련의 두 발이 땅을 온전히 디딘 순간, 서연이 인자한 미소를 지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비무가 아니라 그저 가르치실 요량이었구나.

괜한 착각이었음을 깨닫고 천녀유검의 일초식을 준비할 때였다.

화악―!

돌연 스승님의 전신에서 기운이 흘러나왔다. 평소에는 드러내지 않고 있던 공력을 개방한 것이다.

화련은 저도 모르게 숨을 참았다. 비무라기에는 풀어헤친 공력의 양이 너무나도 막대했다.

숨쉬기가 벅찰 정도였다. 설마 하는 마음에 기력 수발이 흐트러진 순간이었다.

―궤적을 눈여겨 보려무나. 지인에게 듣기를, 검의(劍意)를 받아들이기에 이 방법이 가장 좋다고 하더구나. 그러니……. 두려워도 눈을 감지 마렴.

스승의 말뜻을 곧바로 이해하지 못했다.

뒤이어 상서로운 기운이 스승님의 손날 끝에 백광처럼 맺혔다.

“…….”

숨이 턱 막혔다.

미소를 짓고 계시거늘 어찌하여 화를 내시는 것처럼 보인단 말인가.

여태 한 번도 쓴소리를 하지 않으셨던 분이다. 무슨 일을 계기로 훈육을 마음먹으신 것이 분명했다.

허나 다급히 머리를 굴려봐도 도저히 잘못한 일이 떠오르지 않았다.

―상단세로 갈 요량이란다. 천천히 내리그을 터이니, 전력을 다해 막을 방법을 강구하려무나.

파아앗―!

어둑해지던 산이 한순간에 흰빛으로 명멸했다.

동시에 스승님의 손날이 천천히, 아주 천천히 다가왔다.

와악, 와아악―!

속으로 요란하게 비명을 지었다. 느린데도 피할 수가 없었기 때문이다.

타고난 신체 탓에 창백하게 질린 와중에도 편린이나마 묘리를 읽어냈다.

뭇 무인들은 이 검에 목숨을 잃어도 웃으면서 죽지 않을까.

살갗으로 세찬 감각이 와닿았다.

투로의 방향, 근육의 짜임새, 내공 호흡의 깊이, 진기의 성질…….

거기까지였다. 의식이 더는 감당하지 못했다.

“…….”

당소소는 입을 다물었다. 스승님의 옆구리에 들린 채로 혼절한 사저를 보면서다.

자신이 다음 차례였다.

저 괴랄한 방법을 일러준 지인이 누군지는 모르겠으나, 참으로 원망스러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