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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5-12-14 21:31:57 +09: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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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aw Blame History

일대가 완연한 적막으로 물들었다. 금룡상단의 무사들은 지면에 반쯤 처박힌 둘째 공자를 보며 저도 모르게 병장기를 강하게 쥐었다.

천하에서 세 손가락에 꼽히는 상단이다. 북경에 미치는 영향력만 놓고 보면 능히 첫 손가락에 꼽힌다고 할 만했다.

당연히 이 자리에 모인 무사들 역시 대개 지역에서 명성을 날리던 이들이었다.

“…….”

그런 이들이 수십이 모였는데도 감히 나서지 못했다.

투두둑.

돌 부스러기가 굴러다니는 소리가 작게 울렸다.

진기가 뇌리를 파고든 탓인지, 금진명은 혼절한 상태로도 전신을 부르르 떨었다. 전류라도 통한 듯했다.

처박힌 지면 주변이 갈라져 있는 것이 섬뜩하게 다가왔다. 전신의 뼈가 우그러지다 못해 그 자리에서 즉사했어도 이상하지 않은 상황이었다.

숨이 붙어있는 것에서 여인이 손속에 사정을 두었음을 직감했다. 무위의 격이 남달랐다.

여인은 그런 금진명을 내려다보다 섬섬옥수와 같은 손을 치켜들었다.

스윽.

허공섭물의 묘리를 펼쳐 성인 남성을 아무렇지 않게 들어올렸다. 몸가짐에 어린 우아함에서 범접할 수 없는 기백을 느꼈다.

저 정도는 되어야 금룡상단의 본가에 단신으로 난입할 수 있다는 것일까.

타고난 용모 때문인지도 몰랐다. 황실의 고결한 신분이라 추측하는 이들이 적지 않았다. 출수하지 말라는 엄포가 뒤따른 탓도 있었다.

고요한 혼란 속에서.

서연은 뚜렷한 눈으로 혼절한 금진명을 응시했다.

어줍잖게 대응했다간 훗날 더한 원한을 살 것을 직감했다. 그러했기에 진기를 극한까지 일으켜 금진명의 뇌리에 천녀유검의 검초를 단단히 새겼다.

한 수에 족히 수십 번의 타격이 들어갔다. 전신이 아슬아슬하게 버틸 수준으로 공격을 몰아쳤다는 뜻이다.

손속에 사정을 두지 않았으면 백치가 되고도 남았을 위력이었다. 일격만 더해도 전신의 뼈가 동시에 부러지리라.

‘필시 압도적인 인상을 남겼겠지.

뇌리에 강제로 공포를 새겨놓았다. 천녀유검의 계승자에게 감히 대적하지 못할 것임을 확신했다.

훗날 제자들을 마주하더라도 전신에서 들불처럼 일어나는 경외와 공포를 감당하지 못하고 혼비백산하지 않을까.

비연천공의 법력 이치에 서연의 심상이 가미되어 생겨난 공능인 듯했다. 혼절하기 직전 금진명이 보였던 공황에 가까운 모습에서 유추할 수 있었다.

당장도 그랬다. 허공섭물의 묘리를 펼쳐 들어올린 순간 신체가 반응했다. 전신에 공황이 깃든 것처럼 떨려왔다.

뭣 모르는 이들이 보기에는 서연이 금진명의 육체를 희롱하고 있다고 느낄 정도였다.

‘나아갈 방향이 보이는 듯하구나.

비연천공은 완벽한 무학이지만, 천녀유검은 그렇지 않았다.

불살을 기본 기조로 삼는 검법이다. 능히 천하를 감당할 수 있어야 했다.

어쩌면 오히려 그러했기에 이러한 공능이 생겨났을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도가와 불가의 무학 역시 남들과 다른 길을 걸었기에 현묘함을 얻어냈기 때문이다.

둘째 공자를 하잘것없는 물건 대하듯 내려놓은 직후였다. 인파를 뚫고 금룡상단주가 코앞에 이르러 있었다. 그를 호위하듯 선 무인들의 기세가 피부를 저밀 듯 매섭게 다가웠다.

금룡상단주가 아무리 대인배라고는 하나, 아들을 이 꼴로 만들어놓고 예전과 같이 대우할 것이라고는 생각지 않았다.

서연이 상황을 설명하려 입술을 떼려던 순간이었다.

“……늙고 못나, 차마 눈 뜨고는 못 볼 부끄러운 꼴을 보였습니다. 둘째를 저리 키운 것은 순전히 이 늙은이의 잘못입니다.”

선대에 북경 귀족과 피가 섞인 이후로는 고위 관리조차 감히 아래로 보지 못한다고 했다. 구파의 장문인이나 세가의 가주들과 동일선상에 놓는 자들도 적지 않았다.

그만한 위치에 있는 사람이 눈 앞의 젊은 여인을 보고 곧장 경어를 입에 담았다. 경천동지할 일이었다.

“상단주님……?”

주변의 무사들이 경악한 얼굴을 하는 가운데, 금벽산은 서연을 보며 쓴웃음을 지었다.

“둘째는 업보가 많은 아이지요. 일이 닥치고 나서 후회하는 것을 보면, 저 역시 도량이 좁은 소인배였던 모양입니다.”

반 년 사이에 인상이 확연이 달라져 있었다. 움푹 들어간 뺨, 검게 물든 눈가. 큰 편에 속했던 체구 역시 몰라볼 정도로 쪼그라들어 있었다.

중병에 걸렸다가 막 병상을 털고 일어나기라도 한 듯했다.

“상단주님, 아직은 안정을 취하셔야 합니다.”

금벽산은 주변 수하들의 반응에도 아랑곳하지 않는 태도였다. 힘겹게 손을 내저어 저를 부축하려던 이들을 떨쳐낼 뿐이었다.

놀란 듯한 서연의 얼굴에 금벽산이 고개를 저었다.

“걱정하실 계제가 아닙니다. 이런 모습을 보이는 것이 핑계로 보이지는 않을까 부끄러울 뿐이지요.”

금벽산은 곧장 무릎부터 꿇었다. 노화로 인해 덜덜 떨리는 손을 뻗은 채 허리를 앞으로 굽인다.

곳곳에서 헛숨을 들이키는 소리에도 아랑곳하지 않는 듯했다. 엎드렸다는 말로도 모자랐다.

“죄송, 또 죄송합니다.”

그 모습에 화들짝 놀란 서연은 그를 일으켜 세웠다.

“어찌 상단주께서 그런 모습을 보이십니까?”

“모두 제가 어리석어 벌어진 일입니다. 자식의 죄는 곧 부모의 무지에서 비롯되었다고 하였으니……. 이렇게 하는 것이 옳습니다.”

그렇게 말하는 도중에도 서연의 시선을 마주치지 못했다. 고개 역시 땅에서 떨어질 줄 몰랐다.

“각자 추구하는 상리(商理)가 다르다 여겨 크게 개입하지 않았습니다. 선을 넘지 않는 것으로 족하다 여겼지요. 뇌가 흐려진 탓에 방만한 작태를 방조했던겁니다. 오늘에 와서야 처세를 잘못했다는 사실을 깨달았습니다. 땅에 떨어진 체면을 건져 무엇하겠습니까. 무슨 처분을 논하시든 달게 받겠습니다.”

그리 말하면서 다시금 예를 취했다. 끝끝내 이마를 땅에 대었다.

‘실로 대인이신데, 어찌.

나이 지긋한 노인이 무릎을 꿇고 있는 모습을 지켜보는 것이 심히 불편했다.

“제게도 잘못이 있습니다. 수양이 깊지 못한 탓에, 신녀문주임을 곧장 밝히지 못했지요. 그러니 이제 일어나십시오. 정녕 저를 제자들 앞에서 무릎 꿇릴 요량이십니까?”

“…….”

일어서지 않으면 마주 절하겠다는 뜻이었다. 그제서야 금벽산이 고개를 들어올렸다.

“상단주님의 사과는 받은 것으로 하겠습니다. 저는 처벌을 마쳤으니, 어서 가서 용무를 보시는 것이 좋을 듯합니다. 저는 받아야 할 물건만 받고 가겠습니다.”

“……참으로, 참으로 감사합니다.”

금벽산이 자리를 털고 일어섰다.

더없는 회한을 품은 얼굴이었다. 애써 미소를 짓는 것이 안쓰러워 보이기까지 했다.

“그럼, 잠시 실례하겠습니다.”

그제서야 제 아들에게로 시선을 돌린 금벽산이 입을 열었다.

“가솔들은 금진명을 유폐하고, 대죄를 다스릴 준비를 하거라.”

상인으로서 지켜야 할 도리를 어겼다는 말을 덧붙이면서다.

옆에 있던 무인들이 되물었다.

“유폐, 말씀이십니까?”

“수 대에 걸쳐 쌓은 신뢰를 한순간에 무너뜨릴 뻔했다. 눈에 흙이 들어가기 전까지 직계로 대우하지 마라. 밥은 시종들 틈에 끼어 먹게 하고, 잠은 뇌옥에서 자게 해라. 지금 말하는 것 이외에 금진명이 상단 일에 간섭할 여지를 주는 이가 있다면, 그 역시 중죄로 다스릴 것이다.”

서연 앞에서는 드러내지 않았던 노기를 숨김없이 드러냈다. 상황을 모면하기 위해 연기하는 것이 아니라는 것을 자리에 있던 모두가 확신했다.

병마를 겪은 몸으로도 상단주로서의 위엄을 더없이 드러냈다. 누구 하나 반문하지 못했다.

내공을 폐하지 않은 것이 아비로서의 마지막 자비인 듯했다.

“…….”

일대가 충격으로 물들었다.

금룡상단 둘째 공자의 인생이 한순간에 나락으로 떨어졌다.

일평생을 하늘 높은 줄 모르고 살아왔던 자였다. 자고로 끝없는 금력은 고위 관리들과 고수들마저 발아래에 두기 때문이다.

그랬던 자가 모든 권세를 잃고 지하로 추락했다. 차라리 죽는 것이 낫다는 생각이 들 정도의 형벌이었다.

정신을 차린 금진명이 어찌 반응할지 눈에 훤했다.

금룡상단 정도 되는 상가에는 내공 수발을 억제하는 기문병기 역시 수없이 많았다. 복수를 꿈꾸기는커녕 일반인보다 못한 삶을 살게 될 것이 훤히 보였다.

전음으로 명할 수도 있는 일을 공공연히 드러낸 것에서 금벽산의 면모가 드러났다.

이를 숨기는 것을 더한 치부로 여기는 듯했다.

일은 일사천리로 진행되었다. 금진명은 혼절한 채로 뇌옥으로 끌려갔다.

상단주의 명은 지엄했다. 정예 무사들은 더 이상 그를 직계로 대하지 않았다.

금벽산은 직접 서연을 이끌고 대리석이 보관되어 있는 곳으로 향했다.

산더미처럼 쌓인 대리석들을 보인 다음, 금룡표국의 표사들을 시켜 서연의 거처까지 운반하도록 했다.

귀한 운남산 대리석이 산처럼 쌓여있다고 했던가. 황실에서나 소화할 법한 양이라는 말에 틀림이 없었다.

어찌하여 금벽산이 대리석의 존재를 숨길 수 없었는지도 알 법했다. 아무리 금룡상단이라 한들 이만한 물량이 오갔다면 입단속을 시킬 수 없었을 것이다.

‘족히 반 백년은 쓰겠다.

그러한 기색을 눈치챘는지 금벽산이 말했다.

“너무 많다면 원하시는 만큼만 가져가실 수 있도록 조치하겠습니다. 저희가 언제고 보관하고 있을테니, 원하실 때에 원하시는 만큼 가져가십시오.”

그러면서 다시금 고개를 숙였다.

“……못난 아들을 살려주셔서 감사합니다. 다시 찾아오시면, 그때는 달라진 모습으로 뵙겠습니다.”

목소리가 심히 떨렸다.

일전까지는 상단주였으나, 지금은 그저 못난 아들을 둔 아비였다.

눈물을 뚝뚝 흘리면서도 애써 웃는 노인을 보니 그 망나니를 죽이지 않기를 잘했다는 생각이 들었다.

‘다행이구나.

본능이 속삭이는 듯했다.

그저 손을 더럽히지 않기 위해서가 아니라, 이런 자들을 지키기 위해서 불살을 입에 담은 것이라고.

망나니 하나를 살린 것이 아니라, 언젠가 찾아올 흉년에 수십 수백을 구했을 노인의 미소를 지키기 위함이라고.

우웅―

잔향이 호응하듯 짧게 울었다. 산정이 만들 때 영성이 깃들기라도 한 것일까.

본디 목숨을 취하기 위해 만들어진 병장기가 호응하는 것이 의아하면서도…….

그 느낌이 싫지 않았다.

웅웅.

쥘부채 역시 지지 않겠다는 듯 작게 떨어댔다.

“장문인…….”

“사저, 굳이 따지면 문주님이라 부르는 것이 맞습니다.”

“…….”

뒤에서 조용히 티격대는 제자들이 눈에 들어왔다. 서연은 저도 모르게 미소지었다.

갈 곳 없던 고아가 복에 겨운 제자를 둘이나 얻었다.

더 이상 산 속에 숨어살 이유가 없었다. 신녀문은 속세와 떨어져 도를 닦는 도문이 아니기 때문이다.

‘태실산에서 짐만 챙겨서 화양현으로 가야겠다.

회화루가 있던 곳이고, 갈 곳 없던 기녀들이 있던 곳이며, 반드시 보은하겠다던 꼬마 아이가 있던 곳이다.

사람이 되어야겠다고 처음으로 다짐했던 곳이자, 심상의 본(本)을 다진 땅이다.

그곳에 직접 깎아 만든 편액을 달아야겠다. 입구에 대리석으로 깎은 큼지막한 조각상을 세워두면 좋지 않을까.

웃음이 절로 나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