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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5-12-14 21:31:57 +09: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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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aw Blame History

포두는 걸레짝처럼 너덜거리는 검을 집어들었다. 아홉 개의 구멍이 뚫린 검신은 보는 것만으로도 섬뜩한 분위기를 내뿜었다.

‘도대체 용력이 얼마나 대단하기에…….

검을 부수지 않고 구멍만 이리 뚫어내려면 필시 찌르기의 대가가 아니고서야 불가능한 일. 비록 견문이 얕아 검흔만으로 문파를 가늠할 수는 없었으나, 각 문파의 명성은 익히 아는 바였다. 이만한 찌르기라면 점창파 말고 마땅한 문파가 떠오르지 않았다.

점창파. 먼 운남에 위치하여 다른 구파에 비하여 영향력이 작을 수는 있으나, 관리들에게는 남다른 의미를 가진 문파였다.

새외무림과 직접 맞닿아 마교를 비롯한 사마외도를 막아내는 칼날. 변방을 수호하는 변경백(邊境伯)과 유사한 역할 때문인지, 황실에서 점창파를 예우함은 공공연한 비밀처럼 전해졌다.

찰나에 면사 틈으로 비친 용모 또한 그러했다.

‘점창파 장문제자가 청목족이라 들었는데.

수는 적으나 남녀 가릴 것 없이 하늘에서 내려온 신선과 같은 용모를 지녔다던가. 직접 보지는 못했으나, 저만한 외모가 청목족이 아니라면 도대체 누가 청목족일까 싶었다.

포두는 마른침을 삼켰다. 어찌 그인들 촌구석에 박혀 썩고 싶었겠는가. 사파를 척결하고 백성을 괴롭히는 죄인들을 잡아들여 공을 세우고 싶었으나, 상급자인 지현(知縣) 나리가 회화루주에게 매수된 탓에 뜻을 펴지 못했다.

허나 상황이 이렇게 되었으니, 이것이 하늘이 주신 기회가 아니면 무얼까.

상급자를 고발함은 보통 죄이나, 탐관오리를 들춰내는 일로 포장한다면 능히 용기로 둔갑될 터. 지현과 같은 문반(文班) 출신들이야 곱지 않게 보겠으나, 애초 무반(武班)인 그에게 큰 의미는 없을 것이다.

문반과 무반은 진급 체계도 다르고, 화양현처럼 조그마한 마을의 지현이라면 필시 뒷배도 없을 것이 분명했다.

‘가능성이 있다.

저 여고수의 배분이 얼마나 높은지는 모르겠으나, 무림맹 조장씩이나 되는 인간이 쩔쩔매는 것을 보면 보통 배분은 아닐 것이다.

못해도 구파의 일대제자(一代弟子) 급은 될 것이라 짐작했다.

일대제자가 무엇인가. 말만 제자요, 다음 세대에 구파를 이끌어갈 실질적인 주역이자, 예비 장문인이며 장로가 될 배분을 말하는 것이 아니던가.

‘이 정도면 충분히 걸어볼 만하다.

겉보기엔 잔혹하나, 죽은 자가 하나도 없는 것을 보아 손속 또한 자비로웠다. 여인들을 한곳에 모아두고 죄질이 덜한 흑도들도 내버려두었으니, 저러한 성품을 지닌 정파 무인이 으레 가질 걱정거리란 뻔한 법.

상황판단을 마친 포두가 입을 열었다.

“회화루를 무너뜨리지 않아도 됩니다.”

상황 설명은 배제한 채 결론만 말했기에, 의문스러운 표정으로 자신을 돌아보는 이들이 적지 않았다. 허나 포두는 아랑곳하지 않았다. 여고수가 자신을 응시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내 말을 들어주고 있다.

그 침묵이 계속 말하라고 독려하는 듯했다.

“회화루주가 운영하는 기루는 세 개였습니다. 그중 두 개는 매일 홍등(紅燈)을 달았으나, 회화루는 홍등을 건 날보다 그렇지 않은 날이 많았습니다. 창기보다 예기가 많았다는 뜻입니다.”

서연이 고개를 끄덕였다.

“계속 말씀해주세요.”

광오한 실력을 가진 여고수가 목소리까지 따뜻하니 그것이 배려처럼 느껴졌다.

“창기들은 돌려보내되, 예기들은 남겨 계속 영업을 하도록 하는 것이 옳습니다. 섣불리 없앴다가 새로운 흑도가 나타나 도를 넘을 가능성이 크기 때문입니다. 돌아갈 집이 없는 자들은 옆 주(州)에 생기는 관영기녀원(官營妓女院)으로 보내면 됩니다. 제가 마침 그쪽 담당 관원과 개인적인 친분이 있습니다. 마땅한 기녀를 모으지 못해 어려움을 겪고 있다고 하니, 그쪽으로 보내면 될 듯합니다.”

“관리는 현에서 하게 되는 건가요?”

“기존의 흑도에게 맡기는 편이 낫습니다.”

관아에서 직접 운영하면 제약이 많다. 허가를 받기도 까다롭고, 인건비 또한 전부 장부에 비용으로 차출해야 하기 때문이었다. 그뿐이랴, 상부에 보고하기도 마땅치 않고, 잘못했다간 횡령으로 몰릴 가능성 또한 적지 않았다.

“결국 기루란 손님을 받아야만 유지될 수 있습니다. 관아의 방식으로 운영했다간 결국 주변 기루에게 손님을 모두 빼앗기게 될 것이고, 그러면 같은 일이 반복될 뿐입니다. 허나 이리 하면 관아가 뒤를 봐주는 격이 되니, 다른 흑도들은 함부로 영업장을 열 수도 없을 것입니다.”

“죄를 지은 흑도들은 어떻게 하실 생각이신지요?”

목소리가 더욱 부드러워졌다. 제시한 방책이 마음에 든다는 것이다.

포두는 지금이 가장 중요하다고 생각했다.

“엄벌에 처하고, 죄질에 따라 분류하여 상대적으로 괜찮은 자들만 추려 노역을 대신하는 식으로 근무토록 하는 방안이 좋을 듯합니다.”

“관리자로는 누구를 임명하실 생각이신가요?”

다 왔다. 포두는 곧장 대답하는 대신 주변을 살폈다. 사실상 답이 정해져있는 질문이나 마찬가지였기 때문이다.

“매 각주가 좋을 듯 합니다. 살인을 저지르기는 했으나, 같은 흑도를 죽였을 뿐 민생에 손을 뻗친 적은 없습니다. 철저히 조사하겠지만, 죄질이 그리 크지는 않을겁니다.”

매 각주는 서연이 이야기를 꺼내기 전부터 눈치껏 무릎을 꿇고 있었다.

입도 다물고 있었다. 여기서 함부로 입을 열었다가 경을 치르게 될 것을 누구보다 잘 알았기 때문이다.

서연은 고개를 들려 기녀들을 응시했다. 사실 매 각주에 대한 이야기는 이미 전해 들은 바 있었다.

무섭고 흉악하게 생겼으나, 기녀들을 함부로 대하지는 않았다고 했다. 매 각주가 두려워 억지로 뱉는 말이 아니었다.

사내로서의 강단도 있었다. 수하들을 함부로 대하지도 않았다. 기녀들과 수하들의 이름과 얼굴도 기억하고 있었다.

“매 각주님이면 괜찮을 것 같아요.”

“무서운 분이시긴 하지만, 다른 각주님들처럼 저희를 때리시진 않으셨어요.”

“손님들이 난폭하게 굴 때 도와주신 적도 있어요.”

매 각주는 여전히 무표정했으나, 속으로는 안도하고 있었다. 여태껏 선을 지키겠다고 했던 행동들이 그대로 돌아와 자신의 삶을 연명하게 하게 해주었으니, 실로 다행이라 생각했다.

기녀들과 포두가 직접 나서서 변호했다. 서연은 자신이 더 개입할 필요가 없다고 여겼다.

“부탁드리겠습니다. 포두 대인.”

서연은 그렇게 말하며 정중하게 고개를 숙이며 포권했다. 포두는 침묵했다. 일개 포두로서 무림인에게 이만한 예를 받을 줄 몰랐던 까닭이다.

“…….”

관원들을 무시하는 다른 무림인들과는 달랐다. 지방 관리를 무지렁이 취급하는 무림인들이 적지 않았다.

구파의 도인들은 전부 이러할까.

마음이 움직였기 때문일까, 포두 또한 눈빛부터 달라져 있었다. 곧 정신을 차린 포두가 예우하듯 마주 고개 숙였다.

“최선을 다하겠습니다.”


흑도들을 압송한 포두는 결연한 얼굴로 돌아갔다. 일을 제대로 마무리 지으려면 지현과 담판부터 지어야 했기 때문이다.

예기들이 서연에게 감사 인사를 올리던 그때, 한 소녀가 앞으로 나와 입을 열었다.

“감사합니다. 혹시 성함을 여쭈어도 될까요? 머릿속에 담아두고 평생 기억하려 합니다.”

영영이었다. 예화가 여동생처럼 아낀다던 바로 그 아이였다. 지학이 살짝 안 되어 보였는데, 눈에 총기가 서려 있는 것이 보통 아이처럼 보이지는 않았다.

“서연이라 한단다.”

서연의 대답에 영영은 고개를 끄덕였다. 입술을 달싹거리는 것이, 뜻을 곱씹기라도 하는 모양이었다.

“언젠가 뵙게 되면 반드시 보은하겠습니다.”

어린아이가 굳은 어조로 다짐하듯 말하는 것이 귀여워 머리를 쓰다듬었다.

“나중에 노래나 한 곡조 들려주렴.”

일을 마무리한 서연은 느긋하게 복귀했다. 제자와 함께 도시 바깥으로 나온 것은 처음이었으니, 이번 기회에 세상 구경이나 할 생각이었다.

마침 옆에 무림맹원들도 있었기에 서연이 물었다.

“근처에 아이를 데리고 가기에 적당한 곳이 있을까요?”

쭈뼛거리며 뒤따르던 장산이 사레라도 들렸는지 마른 기침을 토해냈다. 주변에 있던 맹원들도 마찬가지였다.

겨우 호흡을 되찾은 장산이 말했다.

“화양현의 일은 맹에서도 예의주시하도록 하겠습니다. 걱정은 놓으셔도 될 듯 합니다.”

동문서답이었다.

허나 서연은 뭐라 되묻는 대신 그저 고개만 끄덕였다. 하남에 있는 도시들의 치안을 관리하던 중에 여기까지 단숨에 달려올 정도로 책임감이 넘치는 사람들이 아닌가. 지금처럼 정신을 못 차리는 것도 이해할 수 있었다.

어디 무림맹원이 할 일이 한둘이랴. 서연은 무림맹원 또한 참 할 짓이 못 된다고 생각했다. 보통 책임감으로는 감당하기 어렵다는 뜻이었다.

물론 맹원들의 생각은 전혀 달랐다. 맹주님과 독대하여 차를 마시는 것보다 지금이 열 배는 더 불편했다.

‘앞으로 하남 쪽 임무는 쳐다도 안 봐야겠다.

‘교대가 언제더라? 한 반 년 남았나? 그때까지 어떻게 버티지?

‘보고서가 도대체 얼마나 늘어난거야.

뛰어난 고수는 목울대의 울렁임만으로도 전음입밀(傳音入密)을 알아차린다는 것을 알았기에, 처량한 신세를 어디에다 한탄할 수조차 없었다. 그렇다고 다른 곳으로 가자니, 어디가냐고 한소리를 들을까 눈치가 보였다.

침묵이 길어질수록 맹원들의 불안도 커졌다.

폭풍전야라 할 수 있겠다.

“그럼 맹원 분들은 보통 어디에서 쉬시나요?”

저 질문은 지금 너희 주제에 쉴 생각을 하는 것이냐고 눈치를 주시는 것일까, 아니면 너희들과 같이 있는 것이 불편하니 당장 꺼지라고 눈치를 주시는 것일까. 장산은 말 한마디에 오장육부가 뒤틀릴 수도 있다는 사실을 오늘 처음 알았다.

맹주님도 이 정도는 아니었다.

‘맹주님이 그립다.

장산은 주변 눈치를 슬쩍 봤다. 맹원들은 하나같이 자신의 시선을 피했다. 먼저 대답한 사람이 피를 본다는 사실을 아는 것이다. 그렇다고 눈앞에서 떠넘길 수도 없었다. 자신이 일을 해결하지 못해 수하들에게 떠넘기는 무능한 놈이라 생각할 것이 뻔했기 때문이다.

문득 노강호께서 맹주님께 가서 항의하는 장면이 머릿속에 선연히 그려졌다.

갈굼당한 맹주님이 다시 장로님들을 갈구고, 갈굼당한 장로님들이 다시 대주님들을 갈구고…….

‘아.

눈앞이 새하얘지는 느낌이 이러할까. 내리갈굼의 지옥이 눈 앞에 선연했다.

장산은 눈을 질끈 감고 될 대로 되라는 심정으로 입을 열었다.

“어찌 맹원의 일원으로서 편히 쉴 수 있겠습니까. 앞으로 반년간은 주야 2교대로 돌아가면서 민생 안정에 집중할 계획입니다.”

폭탄선언이었다.

당황한 맹원들은 눈을 부릅뜨고 제 조장을 노려보거나, 꺽꺽 소리를 뱉거나, 심장을 부여잡았다.

서연은 시선이 화련에게 향해 있어 그러한 광경을 보지 못했다.

그때였다. 서연의 손을 꼭 잡고 있던 화련이 입을 열었다.

“스승님. 저 당과가 먹고 싶어요. 배도 고파요.”

“배고프니?”

“네.”

화련은 그렇게 말하며 맹원들을 슥 돌아봤다. 그러면서 슬쩍 고개를 끄덕였다. 화제를 돌려줄테니 눈치껏 떠나라는 뜻이다.

‘아!

‘실로 자애로운 심성이다!

‘노망난 노강호 밑에서 어찌 저런 제자가 나왔을까? 선녀라 부르기에 부족함이 없구나!

무림맹원들은 화련의 품성에 감탄했다. 제갈혜는 아예 입에 주먹까지 넣고 울음을 참고 있었다. 물론 서연이 고개를 돌렸을땐 언제 그랬냐는 듯 정자세로 서는 것을 잊지 않았다.

“저는 이만 가봐야 할 것 같습니다. 제자와 식사를 해야 해서요.”

“조심히 가십시오.”

“혹시 같이 드시겠습니까? 정말 고생하시는 것 같아, 밥이라도 대접하려 합니다.”

장산의 머리에서 식은땀이 흐르려던 찰나에, 화련이 다시 입을 열었다.

“저는 스승님이랑 둘이 먹고 싶어요.”

그날 화련은 맹원들 사이에서 선녀가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