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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5-12-14 21:31:57 +09: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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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aw Blame History

해가 완전히 하늘로 떠올랐다. 기나긴 적막은 그제서야 끝을 맺었다.

서연은 제 손아귀를 내려다봤다.

짜부라진 검과 핏자국이 손아귀에 들려 있었다.

‘잡았다고 생각했거늘.

거리가 워낙 아득했던 탓에 감각에만 의지해야 했다. 무언가를 잡아챘다는 느낌은 들었으나, 그것의 정체까지는 확신하지 못했다.

직접 확인하기 위해서는 잡아당겨 이곳까지 끌어와야 했다.

체외로 뻗어나간 진기의 통제를 극한까지 발휘한 기예였다. 머릿속으로만 떠올릴 법한 절기를 직접 실현해본 것이다.

소림사의 백보신권 역시 이와 비슷한 원리로 작용하지 않을까. 그 묘리를 알았다면 지금처럼 놓치지는 않았을 것이다.

서연은 얼굴 위로 떠오른 희미한 아쉬움을 숨겼다.

‘뭇 초고수들은 각자를 상징하는 절세비기가 있다던데.

오른쪽 어깨의 결분혈(缺盆穴)부터 엄지손가락의 소상혈까지 가벼운 통증을 느꼈다. 생전 처음 느껴보는 뻐근함이었다.

진기를 장(丈)도 아니고 리(里) 단위로 펼쳤으니 그럴만도 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내공량이 막대한 탓인지, 풀어놓은 진기를 회수하는 데에도 적잖은 힘을 써야 했다.

서연은 새하얀 팔을 이리저리 돌려가며 상처의 유무를 확인하다가, 허리춤 검집으로 납검했다.

착―

신병이기 특유의 청아한 소리가 울려퍼졌다.

그제서야 주변이 시야에 들어왔다. 일대의 시선이 자신에게 쏠려 있었다.

“…….”

한 성(省)에서 손에 꼽힐 초고수의 경지에 도달했다는 사실을 알고 있었다. 온몸의 감각이 깨닫기 전과는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곤두섰다. 주변 행인들의 속삭임이 훤히 들렸다.

“……무슨 일이 일어난거요?”

“검은 파도가 몰아치더니, 갑자기 한순간에 없어진 것만 보았소. 설마 환각이었나?”

“이래서 견문 떨어지는 무지렁이들은. 사방으로 이지러지는 기파를 못 느꼈나? 맞았으면 일격에 죄다 핏물이 되었을거다.”

“구파의 신선들보다 더 신선같은 분이 계셨구나. 어느 도문 출신이실까? 복을 빌고 싶은데. 쌀 한섬도 받아주시겠지?”

“저 날개옷 좀 보렴. 필시 동호를 수호하는 여선(女仙)이실거야. 저 용모좀 봐. 어찌 저리 아름다우신지……. 손이라도 한 번 잡아주셨으면 좋겠다. 시녀 행세라도 하고 싶은데…….”

“아가씨! 명문가의 여식이 그런 말씀을 함부로 하시면 아니됩니다!”

낭인들과 뭣 모르는 민초들의 대화가 이어졌다. 신분을 막론하고 다들 경탄을 입에 담았다.

제갈세가와 무당파가 자리한 호북 땅, 심지어 천하에서 드문 경치를 품었다는 동호 근처였다.

당연히 일대의 절대자 행세를 하던 이들도 자리하고 있었다. 혼란 가운데에서도 인파에 휩쓸리지 않고 진형을 유지하던 이들이었다.

처음부터 온전히 상황을 주시하고 있었기에, 상황이 어찌 돌아가고 있는지를 꿰뚫어 볼 수 있었다.

강자의 출현에 관한 정보는 그 자체로 막대한 보화가 오가기 마련이다. 개중에는 대화가 새어나가지 않도록 아예 기막까지 펼치는 이들도 존재했다.

“들어본 적이 있소. 신녀문 문주의 머리카락이 도화를 품었다던데. 그때는 무슨 말인지 몰랐소만, 직접 목도하니 알겠더군. 도화 그 자체요.”

“하오문이 웃돈을 요구하기에 왜 그런가 했더만, 이런 내막이 있었을 줄은. 구마교의 광명좌사가 수를 섞지 않고 물러난 것을 보면, 구파의 장문인 중에서도 수위에 속한다고 봐야겠소.”

“연배가 어찌될까. 분명 환골탈태는 했을테고……. 외양만 봐서는 약관이라고 해도 믿겠소만…….”

신흥 강자의 출현을 곧 기득권에 대한 위협으로 받아들이는 무림 호족다웠다.

초고수의 무위는 차치하고, 작금의 일이 자신들에게 어떠한 영향을 미칠지만 따져보는 것만 봐도 그러했다.

당장 퍼지지도 않은 명성을 깎으려 드는 이들도 존재했다.

“애초에 광명좌사가 맞는지도 확실치 않지 않소?”

“대놓고 어검비행을 하는 고수를 무시한다면 옹이구멍이나 다름없는 안목을 가진 것을 드러내는 것이나 다름없소. 인정할 것은 인정해야겠지. 저 둘이 손속을 제대로 섞지 않았으니, 그 면을 파고드는 편이 맞소.”

“비무라도 청해볼까. 그리하면 우리 가문이 그 명성을 그대로 가져올 수 있을 듯한데.”

허나 전신에서 새어나오는 기파 탓에 그것을 실제로 실행하는 자는 없었다.

기파 자체는 정순했지만, 사람 자체의 분위기가 패도적이었다. 압도된 무인들이 적지 않았다.

“가능하다면 가문의 식객으로 모시는 것이 좋겠소.”

“신녀문의 이름도 알려지고 좋지 않겠소이까.”

“구파가 십파가 될지도 모르는 일이오. 미리 연을 맺어두어 손해볼 것은 없겠지. 결국 속세로 나온 것을 보면 명예욕도 어느 정도 있는 모양이고.”

억지로 깎아내리는 자들도 존재했다. 허나 신녀문주의 무위를 조금이나마 제대로 목도한 이들은 그러지 못했다.

실력이 유독 뛰어난 이들이었다.

신녀문주의 손끝에서 막대한 양의 진기가 뻗어가는 것을 목도했다. 내공이 많기로 소문난 작자들도 감히 흉내내지 못할 공력 파동이었다.

인간으로 보이지 않았다. 한족으로 보이지 않는 도화빛 머리카락을 보고 도리어 안도한 이들도 있을 정도였다.

인간 행세를 하는 교룡으로 여기는 사람들도 적지 않았다.

그들은 기막은커녕 전음조차 함부로 내뱉지 못했다. 여고수가 문책할 것을 염려한 것이다.

패검대가 그러했다.

하나같이 내로라하는 기재들만 모인 집단이라 더더욱 그런 경향이 도드라졌다.

눈빛으로 짧게 의견을 나누는 것이 고작이었다.

“도움을 주셔서 감사합니다. 구명지은을 입었습니다.”

귀족가 여식 복장을 한 여인이 절도 있게 허리를 숙였다. 당황한 기색을 완전히 감춘 채다.

스스로를 대명의 관리로 여긴다는 천명검이 취할 수 있는 최고의 예였다. 상대를 구파의 장문인과 동격으로 여기지 않고서는 불가한 일이었다.

서연은 이러한 인사를 받아본 적이 있었다. 당소소를 처음 구했을 때였다.

‘천명검은 다 좋은 사람들이구나.

무인들이 으레 드러내는 호승심조차 찾아볼 수 없었다. 만날 때마다 호감이 더해졌다.

서연은 천천히 입술을 뗐다.

“괜히 방해하여 죄인을 놓친 것은 아닌지 염려가 됩니다.”

“……누가 그리 생각하겠습니까. 고인께서 돕지 않으셨다면 호북 전역에 다신 없을 참사가 벌어졌을 것입니다. 감사를 드려야 마땅합니다.”

천명검이 외인에게 고개를 숙이는 것은 흔치 않은 일이다. 아무리 말단이라도 그랬다.

대주 아래로는 전부 말단이라 칭하는 기괴한 집단인 탓이다.

강호로 따지면 정예 집단에 속하는 이들을 그 누가 말단이라 여기겠는가.

그렇기에 작금의 일이 민초들에게 더욱 크게 다가왔다. 눈앞의 여인이 그만큼이나 존귀한 인물이라는 뜻이었으니.

“천명검이 고개를……. 정녕 구파의 신선이신거요?”

“구천현녀(九天玄女)의 환생이라도 되시는 걸까. 존성대명이라도 들어야 보시(布施)를 바칠텐데. 어쩜 좋아.”

도교의 최고신인 서왕모에 버금간다는 여선을 들먹이는 이들도 생겨났다. 광명좌사를 쫓아낸 모습을 보고 치우를 물리쳤다는 여선을 떠올린 것이다. 웅성거림이 점차 커졌다.

천명검 여인, 단리가예(段離佳藝)는 그제서야 자세를 풀었다.

“사람이 많습니다. 자리를 옮기는 편이 좋을 듯한데 어찌 생각하시는지요.”

“저는 괜찮으니, 뒷수습에 집중하는 것이 좋을 듯합니다.”

“……배려에 감사드립니다.”

서연은 조용히 고개를 끄덕였다. 동시에 옅은 미소를 피워올리는데, 방금 전 패도적인 기세를 내뿜던 사람과는 동일인이라고 느껴지지 않았다.

경지에 이른 고수들은 하나같이 괴이한 면모를 가지고 있다는 소문이 있다. 패검대원들은 그 소문이 낭설이 아님을 누구보다 잘 알고 있었다.

당장 그들이 모시는 대주부터가 그러했기 때문이다.

‘이분께서는 그 기질을 악인에게만 드러내는 것일까.

전 광명좌사를 무슨 비충(飛蟲: 날벌레) 쫓아내듯 대하는 태도만 봐도 그러했다.

눈 밖에 나는 행동을 하는 순간 곧바로 고기 경단으로 변하지 않을까.

당연히 태도가 조심스러울 수밖에 없었다.

청목족임에도 경어를 사용한 것은 그 때문이었다. 눈 앞의 여인은 감히 연배를 추측할 수 없는 강자였다.

“…….”

당장 자신을 어린 후기지수로 여기는 듯한 미소만 봐도 그러했다.

단리가예의 외모는 한족으로 치면 어린 편에 속했다. 많이 쳐봐야 열 여덟은 될까. 실제로는 지천명이 넘었다.

모종의 술법으로 뾰족한 귀를 숨기기는 하였으나, 이만한 고수가 그것을 눈치채지 못했을 것 같지는 않았다.

씨족의 높으신 분이라고 생각한 것도 그 때문이었다. 둥그런 귀는 문제되지 않았다. 옛 어르신들에게는 뾰족한 귀를 숨길 수단이 무궁히 많았다.

아예 신체의 기질 자체를 변화시키는 고등한 술법도 있다고 들었다.

단리가예가 서연과 대화를 나누는 동안, 눈치빠른 나머지 패검대원들은 빠르게 일대를 통제하기 시작했다.

행인들은 통제를 따르는 도중에도 서연에게서 시선을 떼지 않았다. 아예 엎드려 절하려는 이들도 적지 않았다.

관심을 넘어 숭배에 도달할 지경이었다. 당연히 부담으로 다가올 수밖에 없었다.

서연은 그런 그들을 지켜보다 넌지시 입을 열었다.

“아무래도 방해가 될 듯하니, 자리를 피해드리지요.”

“……예?”

단리가예가 고개를 들었을 때, 서연은 온데간데 없이 사라져 있었다.


동호를 천천히 유영하는 유람선.

갑판 꼭대기층에 앉은 여인이 아래를 힐끗한다. 그녀를 향하는 시선들을 느낀 것이다.

“……면사를 다시 써야 할지 고민이 되는구나.”

서연은 제자들을 보며 그리 말했다. 원래도 제자들과 동호에서 유람을 즐길 생각이었다. 헌데 낮에 벌인 일 때문일까, 유람선에 탄 사람들의 시선이 꺼질 줄 몰랐다.

기나긴 장포에 도화색 머리카락, 허리춤에 찬 신검에 죽립.

특정하기 쉬운 외형이었다. 그것을 아는 당소소가 조용히 말했다.

“솔직히, 이쯤 되면 면사를 쓰셔도 알아볼 사람은 알아볼 겁니다.”

기파를 퍼뜨려 존재감을 흐릿하게 만들 수는 있었다. 허나 민초라면 모를까, 일정 경지에 이른 무인들에게는 도리어 눈에 띄었다.

서연도 그것을 알았기에 힘없이 웃었다. 제자들 앞에서 유약한 모습을 드러낼 수는 없었기에 대놓고 티내지도 못했다.

‘맘 편히 유람할 생각이었거늘.

웬 광인들 때문에 일이 꼬여버렸다. 운남에서 퍼진 소문이야 거리가 수천 리가 넘으니 그렇다 쳐도, 호북은 달랐다.

하남이 지근거리였다. 소문이 퍼지기에 충분한 거리라는 뜻이다.

중원에서 명성이 어떤 영향을 끼치는지는 서연도 잘 알았다. 당장 신녀문의 개파식을 연다고 하면 온갖 방파에서 참가 의사를 드러낼 것이 분명했다.

거기까지면 괜찮다. 허나, 민초들이 찾아와 자신을 칭송할 생각을 하니 절로 부담이 몰려왔다.

‘하지 말아야겠다.

당장은 제자 둘을 가르치는 데에 전력을 다할 생각이었다.

만약 개파식을 한다고 해도 지인들만 초청해서 약식으로만 진행해야 하지 않을까.

구파의 장문인들이 어찌하여 산문 바깥으로 나오지 않는지를 이해한 서연이었다.

지금 당장도 그랬다.

“선주 놈, 뱃삯을 열 배를 올리더군.”

“내 경지가 낮아서 그런가? 죽립의 그림자 너머가 보이지가 않아. 용모를 다시 한 번 보고 싶거늘.”

“선녀님 덕에 목숨을 건졌으니, 한 해의 복을 빌기 위해서라도 마땅히 공물을 드려야 할텐데…….”

“형상을 그려낸 화가가 있다던데. 웬 대부호가 웃돈을 주고 사갔다고 들었소.”

상황을 얼추 정리하고, 곧장 제자들에게 달려가 손을 잡고 배에 탔는데도 따라오는 이들이 있었다.

옷차림들만 봐도 평범한 민초가 아니었다. 다들 한가락 하는 작자들이었다.

그런데도 눈동자에 동경을 품은 이가 대다수였다.

“…….”

얕은 한숨을 내쉬며 동호를 응시하던 순간이었다.

서연의 시선 끝에 웬 중년인이 비쳤다. 얼굴에 새겨진 흉터가 유독 선명한 사내였다.

놀랍게도 물 위에 떠 있었다. 등평도수(登萍渡水)라도 펼치는 듯했다.

그의 주변은 온통 붉은 빛으로 가득했다. 자세히 보니 잘려나간 시체들이 족히 수십 구는 되었다.

전투를 마무리한지 얼마 되지 않은 모양이었다. 시체들이 하나같이 세찬 기파를 내뿜고 있었다.

홀로 정예 무력대를 상대하기라도 한 것일까.

등에 새겨진 천 자가 아니었다면, 사마외도로 오인할 법한 외모였다.

곧 둘의 시선이 마주쳤다.

“…….”

중년인은 천천히 시선을 돌렸다.


단리가예는 황급히 일을 수습했다. 첫 폭발에 휩쓸려 중상을 입은 대원들이 셋이었다. 말이 중상이지 은퇴를 논해야 할 수준의 상처였다. 팔다리가 완전히 날아갔기 때문이다.

신의 정도는 와야 치료를 논할 법했다.

패검대주가 홀로 적진을 타격하기 위해 자리를 비운 탓이었다. 설마 민초들이 대놓고 활보하는 동호를 노릴 것이라고는 생각지 못했다.

당시에는 몇 번이고 검증한 정보를 따라 선제타격하는 것을 합리적이라 여겼다.

허나 상황이 이리 되었으니, 작당모의한 뭇 동창들이 숙청당하지 않을까.

아무튼, 동호에 패검대원들만 있던 것은 그런 연유였다.

“……대주께서 늦으시는군.”

일전의 여고수가 갑자기 모습을 감춘 것과 연관이 있는 걸까.

패검대주는 뭇 대주들 사이에서도 호승심이 드높기로 유명한 사내였다. 둘이 충돌했다간 무슨 일이 생길지 알 수 없었다.

‘설마.

단리가예는 괜시리 불안에 떨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