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패검대원들이 합공하여도 감당할 수 없는 고수를 상대로, 고작 십 초를 입에 담았다.
광오하기 짝이 없는 발언이었다. 허나 누구도 쉽사리 허언으로 치부하지 못했다.
허공을 딛고 지상으로 내려오는 모습만으로 범상치 않은 존재임을 깨달았기 때문이다.
드넓은 천하를 통틀어 손에 꼽을 경신법이었다. 살포시 딛는 듯한 발걸음에도 세찬 기파가 실려 있었다.
시야에 닿는 모든 곳을 한 걸음에 능히 당도할 듯한 기세.
[대단히 오만하군.]
여고수를 올려다보던 가면의 사내가 중얼거렸다. 그의 손에는 어느새 검이 쥐여 있었다.
[허나 그렇게 행세할 자격이 있다. 오히려 여태 알려지지 않은 것이 의문스러울 정도군. 이러니 중원 무림이 넓다는 것이겠지…….]
쿨럭―!
돌연, 사내가 죽은 피를 토했다. 방금 전까지 태연하게 말하던 사람이라곤 믿을 수 없는 광경이었다.
하얀 가면의 입가가 새까만 피로 물들었으나, 사내의 눈가는 여전히 곡선을 짓고 있었으니 그 모습이 꽤나 섬뜩했다.
[소림의 제일가는 땡중도 이리 무식한 방식으로 내가중수법을 펼치지는 못할 터. 인정하지. 너는 천하에 흔치 않은 강자다.]
아예 없다는 말은 담지 않았다.
허언이라 느껴지지 않는 말이었다. 사내는 손가락을 하나씩 접어 세기 시작했고, 셋을 접고 나서야 멈추었다.
[본교로 오라. 너라면 교에서도 중진으로 대접받을 수 있을 것이다. 좌우광명사자(左右光明使者)의 직위조차 어렵지 않게 얻을 수 있으리라.]
광명좌사와 광명우사. 좌우 정승처럼 교주를 보좌하는 천마신교의 최고 권력자를 의미했다.
“마교 놈이었나.”
자신의 주변을 살피기 위함인지, 여고수는 여전히 허공에 일 장 남짓 떠 있었다.
여전히 인파가 많았다. 도망가는 것도 멈추고 그녀를 응시하는 군중이 적지 않았다.
군중은 벽력탄의 두려움조차 잠시 잊은 듯했다. 그녀의 주변에서 흘러나오는 상서로운 기운 탓이었다.
“어찌 한겨울에 꽃잎이 내린단 말인가.”
“우와아……! 어머니, 이것 좀 보세요!”
“따뜻하다. 열양공인 줄 알았건만, 그와도 다르구나. 천하에 없던 심법이다.”
잡히지 않는 꽃잎을 잡으려 애쓰는 아이들까지 생겨났다. 폭발의 여파가 동호 전역으로 번지지 않았기에 가능한 일이었다.
첫 폭발 이후로는 이렇다 할 피해가 없었다. 인파가 한 곳으로 쏠리니 영문도 모르고 따라 도망갔던 이들이 태반이었다. 폭죽으로 여기는 이들도 적지 않았던 것만 봐도 알 수 있었다.
기세가 완전히 뒤집혔다.
[신교라는 이름이 있거늘, 굳이 멸칭을 입에 담다니. 그것이 네 대답인가.]
서연은 사내의 말을 한 귀로 흘려들으며 생각에 잠겼다. 예전 송월 노인에게 들었던 말이 떠올랐다.
―마교는 강자와 싸우기 위해 수련합니다. 한 계단씩 차례차례 짓밟고 올라가, 끝내 하늘에 닿으려 하지요. 그렇기에 마입니다.
그렇게 따진다면 눈앞의 사내는 마교가 아니었다. 벽력탄으로 힘없는 민초들을 짓밟는 행태만 봐도 알 수 있었다.
“다시보니 사파 잡것이 마교 행세를 하고 있었구나.”
사내가 반응했다. 가면 너머의 눈매가 일그러지는 것이 선명하게 보였다.
[흥미로운 주장이군. 이 몸이 사파라니.]
“듣기로, 마교는 타고난 강자존이라 약자를 상대하는 것 자체를 수치로 여긴다던데. 네 행태는 정반대이지 않은가. 치졸한 사파 잡것들이나 보일 행동이지.”
[……몸가짐만 패도적인 것이 아니었군. 타고난 싸움꾼이야. 도발에도 일가견이 있을 줄은.]
서연은 코웃음을 치며 말했다.
“당장도 시간만 끌고 있는 주제에 말이 많구나. 내상을 가다듬느라 정신이 없는 것이 뻔히 보이거늘.”
놈이 미쳐 날뛰며 민초들에게 피해를 입힐 것을 염려하여 가만히 듣고만 있던 참이었다. 도주를 유도하여 인적이 드문 곳으로 몰아넣을 계산이었다.
그때, 사내가 껄껄 웃었다.
[들켰나.]
그리고는 돌연 검을 내질렀다. 방향을 가리지 않았다. 상하좌우 모든 방면으로 공격이 쏘아졌다. 전부 군중을 향해 있었다. 대량 학살을 이루기에 충분한 힘이 담겨 있었다.
콰아아아앙!
마치 검은 파도가 밀려드는 듯했다.
[언젠가 다시 보도록 하지.]
검자루에 올라탄 사내의 신형이 하늘로 쏘아져 나간다. 신검합일을 이룬 자들에게만 허락된다는 온연한 어검비행(御劍飛行)의 경지였다.
한순간에 점으로 비칠만한 거리로 멀어졌다. 한순간에 거대한 존재감이 멀어졌다.
군중을 구할지, 아니면 자신을 쫓을지 양자택일을 건 것이다.
패검대원이 침음했다. 귀족가 여식의 복장을 한 청목족 여인이었다.
“어검비행이라면, 광명좌사……!”
옛 교주가 참살당했을 때 목숨을 부지했던 인물 중 하나였다. 지난 수십 년동안 행방이 묘연한 인물이기도 했다.
‘교의 부활을 입에 담더니, 정녕 마교였다고?’
굳이 따지면 구마교로 분류되겠으나, 중원 무림의 입장에서 생각하면 거기서 거기였다.
여인의 생각은 딱 거기까지만 이어졌다. 코앞에서 구마교의 광명좌사가 쏘아낸 검격의 파도가 몰아치고 있었기 때문이다.
촤아아악―!
살아있는 것처럼 일대의 모든 것을 삼키며 나아왔다. 당장이라도 수백이 휩쓸릴 듯했다.
목숨을 내던질 각오로 막을 준비를 했다. 다른 패검대원 역시 같은 생각을 하는 듯했다.
“……참으로 치졸한 수를 쓰는구나. 사마외도라는 말이 어울린다.”
그 순간, 여고수의 목소리가 일대를 울렸다.
온몸에 담겨 있던 연홍색 기운이 빛살처럼 주변을 덮었다. 한순간에 검격의 파도를 따라잡았다.
꽈아아악―!
진기에 짓눌려 파도가 더 나아가지 못하던 그때.
여고수가 절세병기를 가볍게 휘둘렀다. 마치 검은 먼지가 흩어지듯, 광명좌사의 검격이 일순간에 무로 화했다.
‘거칠구나. 이게 마기인가.’
서연은 검신을 타고 오르는 마기를 보며 미간을 좁혔다. 검은 불꽃이 튀는 듯했다.
검을 굳게 말아쥐고 털어냈다. 이걸 행인들이 맞았다면 어찌 되었을지 눈에 훤했다.
같은 사람으로 여기지 않는 것이 분명했다.
저런 놈을 놓쳤다간 무슨 일이 생길지 몰랐다. 제자들이 괜한 후환을 입을 가능성이 농후했다.
허나, 하늘을 저렇게 빠른 속도로 비행하는 적을 쫓아갈 수단이 없었다.
‘나도 어검술을 익혀야 하나.’
그랬기에 서연은 눈을 감았다.
가면의 사내가 남기고 간 진기의 흔적을 역산하면서, 그의 위치를 가늠하려는 것이다.
의식의 범위가 말도 안되게 방대하다는 뜻이었다. 뒤이어 대자연이 호응하듯 길을 열었다.
무수한 구름을 제치고, 의식을 한 줄기 바람처럼 질주시켰다. 그 이후부터는 온전히 감각의 영역이었다.
드넓은 창공에서 홀로 이질적인 기운을 인지했다. 명백히 자연의 흐름을 거스르며 나아가는 누군가를 느꼈다.
‘거기 있구나.’
곧 서연이 허공으로 손을 뻗었다.
쐐애액!
대기가 찢기는 소리다. 어검비행을 펼칠 때 으레 듣는 소리였다.
드높은 상공의 거친 바람에 흔들릴 경지는 아니었다. 얕은 내상을 입기는 했으나, 그는 구마교에서도 손꼽히는 고수였다.
광명좌사(光明左使)라는 직책부터가 그러했다.
마교주를 포함하여 세손가락 안에 드는 강자에게만 허락되는 직책이다. 당장 사마련에 투신한다면 종주 자리를 얻고도 남았다.
일부러 세작들을 통해 정보를 흘려 천명검을 동호 일대로 유인했다. 벽력탄으로 민초들을 인질로 잡는다면, 패검대라고 한들 손도 제대로 쓰지 못하고 무너질 것이라 생각했다.
그 여고수만 없었더라면, 그리 되었을 것이다.
그 정도 되는 초고수는 천하에서도 손에 꼽았다. 그런데도 여태 정체를 감추고 살았다.
천하의 내로라하는 광인들과도 궤를 달리하는 인간일 것이 분명했다.
‘손속을 제대로 겨뤄보면 어찌 되었을까. 잘하면 동귀어진도 노릴 수 있을 듯한데.’
그 역시 마교의 괴인이다. 자신의 목숨을 쉽게 입에 담았는데도 이상하게 느껴지지 않았다.
그 정도 세월을 살아오면 생에 대한 집착보다 마지막 족적을 어찌 남길지가 더 중요했다.
파천(破天)을 논한다는 현 교주의 목을 그 목표로 삼았기에 아직은 죽을 수 없었다.
‘분명 즐겁기는 하겠다만.’
기왕 죽는다면 천하제일인일 것이 유력한 사내의 검에 죽는 것이 더 즐거울 것이라 생각했다.
물론 언젠가 그 여고수에게 갚아주기는 해야 할 터였다. 그녀 탓에 구마교라는 사실도 발각당했고, 패검대도 온전히 살려보내야 했으니 말이다.
그러던 광명좌사는 불현듯 기이한 감각을 느꼈다.
‘……?’
대기의 흐름이 이상했다.
여래신장(如來神掌)의 고사가 갑자기 떠올랐다.
손오공이 수십 가지 신통한 재주와 근두운을 동원하고도 석가여래의 손바닥에서 벗어나지 못했다는 설화에서 비롯된 말이다. 아득바득 빠져나가려고 애를 써도, 끝내 사로잡혀 화과산 아래에 갇혔다는 원숭이가 떠오르는 것은 왜일까.
뒷덜미가 한순간에 서늘해졌다. 그는 자신의 감을 믿고 황급히 허공으로 뛰어내렸다.
꽈아아악!
그가 딛고 있던 어검이 무언가에 붙잡힌 듯, 허공에서 꿈틀거리더니 처참한 소리를 토해내며 찌그러졌다.
‘……무슨?’
단번에 상황을 이해하지 못했다. 추락하는 도중에도 그러했다.
극한으로 압축된 대기가 손바닥 형태를 띠며, 십수 년을 애용했던 명검을 구체의 형태로 짜부라뜨렸다.
꽈드드득!
온갖 혈사를 겪어온 구마교의 광명좌사의 살갗에 소름이 돋을 정도였다. 가면 너머 경악한 그의 눈이 작아질 줄 몰랐다.
“미친……!”
오죽 당황하여 육성으로 욕설을 토해냈다.
단순히 내공을 많이 품었다고 하여 도달할 수 있는 경지가 아니다.
일정 경지를 넘어선 무학은 술법과 다를 바가 없게 된다던가.
자신을 맹렬히 뒤쫓는 거대한 대기의 손바닥이 그러했다.
현 교주가 옛 교주를 십 초 만에 참살했을 때 느꼈던 충격에 비견할 만했다. 아니, 어떤 면에서는 그보다도 끔찍했다.
손바닥에 찌그러져 죽다니. 광인이 아니고서야 떠올릴 수 없는 방식이었다.
명백히 절세의 영역에 속하지 않고서는 선보일 수 없는 기예라는 뜻이다.
대적불가.
암담하다는 심정이 절로 들었다. 화과산의 원숭이가 이러한 심정이었을까.
‘곧장 내빼지 않았으면 죽었군.’
헛웃음이 절로 터져나왔다. 그렇다고 당장 몸 성히 빠져나갈 수 있을 것 같지도 않았다.
지금 이 순간도 신장(神掌)이 맹렬히 그를 추격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이대로 거리를 벌리지 못한다면 그는 창공에서 피떡으로 변해 죽은 최초의 무인이 될 것이 뻔했다.
‘빌어먹을. 이 나이에 이런 짓을 하게 될 줄은 몰랐는데.’
지상에 바다와도 같은 호수가 뻗어 있었다. 천하에서 가장 넓다는 동정호(洞庭湖)였다.
이 높이에서 추락한다면 몸이 온전치 않겠지만, 짓눌려 죽는 것보다야 나을 터였다.
현 교주가 어찌하여 천산에서 두문분출하는지 이해가 될 듯도 했다. 이만한 고수가 둘만 더 있어도 생사를 논해야 했을테니 말이다.
“살다 살다 이 몸이 괴력난신이라는 말을 입에 담을 줄은.”
뭉툭한 귀로 보건데 한족으로 보였으나, 명확하지 않았다. 이만한 내공을 품은 존재가 정녕 인간이라는 사실이 믿기지 않았다.
지상이 점차 가까워졌다. 백 장, 오십 장, 십 장…….
그때까지도 여고수가 쏘아보낸 신장은 자신의 멱을 붙잡으려 들었다.
광명좌사는 눈을 질끈 감았다. 속도를 줄이기는커녕 되려 가속했으니, 수면 역시 돌바닥과 다름없을 것이다.
콰아아아아앙!
수면이 폭발하듯 거센 물거품을 토해냈다. 대포라도 쏜 듯했다.
양쪽 다리에서 아득한 충격이 느껴졌다. 완전히 망가졌음을 직감했다. 족히 반 년은 요양에 힘써야 할듯했다.
아득한 고통을 참아내며, 광명좌사는 깊은 물 속에서 눈꺼풀을 들어올렸다.
광인이 쏘아낸 손바닥은 수면을 한참동안 더듬거리고 나서야 사라졌다.
광명좌사는 한참 뒤에야 수면 위로 올라올 수 있었다. 추락하기 직전에 붙잡히기라도 했는지, 한쪽 팔이 완전히 뭉개져 있었다.
두 다리는 망가졌고, 한쪽 팔은 산산히 부서졌다. 동정호의 길이는 족히 수백 리에 달했으니, 운좋게 배를 구하지 못한다면 익사할 것이 분명했다.
광명좌사는 뒤늦게 깨달았다.
“……잘못 걸렸군.”
천하제일의 광인이 언제고 자신을 다시 노릴 것을 직감했다.
허탈한 웃음소리가 한동한 호수에서 울려퍼졌다.
땡그랑―
처참한 모습으로 변한 철조각과 핏물이 여고수의 손아귀에 들린다.
패검대의 아연실색한 시선 역시 그녀의 손바닥으로 향했다. 일전에 광명좌사가 들고 있던 검이, 찌그러진 구체의 형태로 들려 있었다.
“…….”
일대가 침묵으로 물들었다. 숨을 참는 이가 적지 않았다.
여고수는 나지막한 음성으로 말했다. 진심으로 아깝다는 듯이.
“놓쳤구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