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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행의 발걸음은 여유로웠다. 제자들이 비연천공을 펼쳐 걷는 것에 몰두한 탓에, 올 때보다 돌아가는 길이 배는 더뎠다.
도로라 할지라도 제대로 정비되지 않은 시대. 일행이 거쳐간 중경부 역시 도시의 길 대부분이 흙먼지 날리는 황토길이었다.
제자들의 고된 걸음을 덜어주고자, 서연은 역참의 관리인에게 신분을 드러내고 말 한 필을 빌렸다.
명예직이었기에 한 필을 빌리는 것이 전부였으나, 제자 둘을 태우기에는 부족함이 없었다.
당소소와 화련을 말에 태운 서연은 고삐를 잡고 그 옆을 묵묵히 걸었다. 제자들은 죄스럽고 불편한 기색을 감추지 못하고 몇 번이고 고개를 저었으나, 서연은 단호하게 이를 물리쳤다.
말의 흔들림 속에서도 동공을 운용하는 법을 익혀야 한다는 식의 핑계를 대자, 그제서야 죄스러운 기색을 거두고 말 위에 오르는 제자들이었다.
“생각보다 어렵군요. 가만히 있으려 해도 몸이 멋대로 반 척씩 움직이니…….”
산을 굽이굽이 돌아 호북에 다다랐을 때, 서연은 말을 멈춰 세우고 작은 모닥불을 피웠다. 워낙 외진 길이라 그런지 오가는 행인조차 없었다
타닥.
화련은 어디서 구했는지 모를 밤 몇 개를 꺼내 나뭇가지에 꿰어 불에 올렸다. 그런 화련을 물끄러미 보던 당소소가 무심한 듯 말했다.
“사저, 칼집 안 내시면 터집니다.”
“터져?”
“제 동생이 그러다 자주 다쳐서 잘 압니다.”
말을 마친 당소소는 단도를 꺼내 밤 한쪽에 작게 칼집을 냈다. 남이 먹을 것을 보는 것만으로도 허기가 지는 것은 세상의 이치인 법, 당소소 또한 주섬주섬 품속에서 무언가를 꺼내기 시작했다.
매운 양념을 칠한 육포였다. 냄새만으로도 코가 얼얼해지는 듯했다. 당소소가 말하는 매움의 기준은 범인의 경지를 아득히 벗어나 있었기에, 화련은 차마 그것을 달라고 입을 열 수 없었다.
예전에 뭣도 모르고 덤볐다가 호되게 당한 적이 있었기 때문이다.
다소곳한 자세로 앉아 육포를 조금씩 갉아먹던 당소소가 입을 열었다.
“스승님께서는 돌아가시거든 하실 일이 태산 같으시겠습니다.”
제자들을 따라 가벼운 국물 요리를 하려던 서연이 그 말에 고개를 돌렸다. 당소소는 아랑곳 않고 말을 이었다.
“예로부터 문파의 얼굴은 편액(扁額)이라 했습니다. 분명 스승님께서 직접 새기시겠지요. 천하일절의 필체를 마주한 문사들이 어찌 반응할지 너무 기대됩니다.”
“스승을 너무 띄워주는구나. 그리고? 돌아가면 터부터 새로 잡아야 하지 않을까 싶다.”
서연은 미소를 지으며 대답했다. 모닥불을 가운데에 두고 두 제자와 마주 앉은 상황이었다.
껍질을 까려고 안간힘을 쓰는 화련을 도와주며 입을 열었다.
“아무리 소림이 자비롭다 한들, 바로 곁에 문파를 세우면 가만있지 않을 게다. 더구나 여인들로만 이루어진 문파라 하니 더욱 예민하게 받아들일 터.”
금녀문(禁女門)과 금남문(禁男門)이 고작 산 몇 개를 사이에 두고 있다면, 훗날 어떤 사고가 벌어질지 눈에 보듯 뻔했다. 혈기왕성한 승려들과 어린 제자들이 부딪치면 감당하기 어려운 사건이 터질 수도 있었다.
그렇다고 하여 너무 번잡한 곳으로 가고 싶지도 않았다. 낙양의 각예대회에 참여한 이후로 어떤 일이 벌어졌는지 몸소 겪지 않았던가.
선녀라 오해할 민초들이 적지 않을텐데, 괜히 북경의 세찬 시선을 받고 싶지는 않았다.
‘……돈은 엄청 많이 벌 것 같은데.’
밤을 호호 불어가며 먹던 화련은 속으로만 그리 생각했다. 근래 들어 스승님이 자신의 뺨을 잡아당기는 일이 잦아졌다.
스승님 나름의 애정표현인 듯했다. 모산파의 후계자 시절 받았던 진짜배기 훈육을 생각하면 뺨을 잡아당기는 것 정도야 애정표현이라 여길 만했다.
‘소림사도 보기보다 엄청 부자잖아.’
구파는 보기보다 재물이 많았다.
나라에서 받은 광대한 토지를 임대하고 받는 비용이나, 도시의 주요 길목에 깔린 객잔과 상단에서 얻는 수익은 말할 것도 없었다.
그 모든 것을 합쳐도 후원금으로 더 많은 수익을 얻는 문파도 존재했다. 소림사만 해도 황실에서 받는 후원이 어마어마했다.
‘후원금만 받으면 양반이지.’
허나 스승님은 원체 재물을 멀리하시니, 후원을 받기는커녕 직접 조각품을 팔아 문파의 운영비를 충당하려 드실 것이다.
폐쇄적이기로 유명한 모산파조차 문파를 그런 식으로 운영하지는 않았다. 비밀리에 의뢰를 받는 것은 물론, 요지에 사람을 고용하여 운영하는 객잔과 주루가 적지 않았다.
‘지금처럼 제자가 둘뿐이면 이대로도 괜찮겠지만.’
문파가 조금이라도 커진다면 운영 방식을 달리해야 할 터였다.
어느새 스스로를 신녀문도라 여기게 된 화련이었다.
제자들을 재운 서연은 맑은 밤하늘을 올려다보았다. 지금처럼 야산에서 묵을 때면 밤을 지새우며 제자들의 곁을 지키는 그녀였다.
서연은 고요히 잠든 두 제자와 백호의 머리칼을 차례로 쓰다듬었다.
운남에서 이곳 호북까지 오는 동안 지새운 밤이 적지 않았으나, 그럼에도 늘 깊이 잠든 것처럼 편안했다. 본래 피곤함을 느끼지 않는 육체였으니, 재능을 깨달은 이후에는 말할 것도 없었다.
“천천히 가자꾸나.”
나긋한 음성에 정종 명문이나 가질 법한 기운이 담겼다. 그것을 느낀 백호는 기쁘게 울었다.
서연은 어느새 본래의 크기로 돌아온 백호의 등에 제자들을 태웠다. 어찌나 깊이 잠들었는지, 움직임이 느껴졌을 터인데도 깨지 않았다.
산등성이를 넘어 높게 펼쳐진 성벽이 모습을 드러냈다.
호북의 성도, 무한(武漢).
중원에서 두 번째로 거대한 호수를 품고 있는 대도시가 한 눈에 담겼다.
해가 바뀌었다. 운남보다 북쪽에 위치한 탓일까, 도심 곳곳에 눈발이 몰아쳤다.
서연은 두 제자를 이끌고 무한의 도심을 유유히 거닐었다. 호광의 명물인 동호(東湖)가 지척이었다.
그토록 드넓은 호수는 혹한에도 쉽게 얼어붙지 않는다. 수천에 달하는 객들이 몰려드는 것은 당연한 이치였다.
허나, 서연이 한가로이 호수를 유람하는 사이에도 천하의 정세는 숨 가쁘게 돌아가고 있었다.
팔대세가의 한 자리를 차지하던 광동진가가 멸문한 사건은 순식간에 천하를 뒤흔들었다.
점창파가 봉문한 것 역시 사마련의 소행으로 밝혀진 직후, 정사의 대립은 예년과는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첨예해졌다.
장강을 사이에 두고 폭풍과도 같은 혼란이 몰아쳤다.
“무령궁(巫靈宮)이 멸문했다더군. 민초들에게 강제로 고리대금을 놓았다 하니, 필시 천명검이 개입했을 걸세.”
“사마련도 영악하기 짝이 없네. 민초만 건드리지 않으면 천명검에서도 나서지 않는 것을 잘 아는지라, 교묘할 정도로 정파 세력만 노리더군.”
“정파는 절세고수가 둘이나 있는데, 얌전히 당하고만 있는단 말인가?”
“세가와 구파는 별개로 봐야 하네. 세가는 지역의 호족 아닌가. 팔가가 칠가가 되었다는 사실을 치부로 여기는 세가는 없을 걸세. 약해서 도태되었다고 여기면 모를까.”
“장강 이남은 사지야. 사마련 종주들이 죄다 그곳에 몰려 있지 않은가.”
“무림맹주는 진작에 채비를 마쳤다더군. 운남과 사천 일대에 맹원을 대거 파견했다던데.”
“제갈가도 양양(襄陽) 일대에서 진법을 보수하기 바쁘다 들었소.”
“신녀문이라고 들어보셨소? 죽엽청 한 잔이면 이야기를 흥미진진하게 풀어줄 수 있을 듯한데.”
전쟁에 흉년까지 겹쳤다. 심지어 식량을 재배할 수도 없는 겨울이었다. 장강 이남은 난세라고 봐도 좋았다.
‘호북은 괜찮겠지만, 그래도 주의하는 편이 낫겠지.’
서연은 근처 행인들의 말을 들으며 그렇게 생각했다.
호북에는 무당파와 제갈세가가 자리잡고 있었다. 장강과 맞닿은 지역치고 치안이 안정된 것은 전부 그 덕이었다.
역으로 그런 호북에서조차 이와 같은 소문이 돈다는 것 자체가 난세의 증거라 할 수 있었다.
‘흉년과 풍년은 번갈아 찾아온다던데.’
일전의 풍년은 족히 스무 년 동안 이어졌다. 흉년이 그만큼 이어진다고 하면 어떤 일이 벌어질지 상상만 해도 두려웠다.
세가와 구파마저 비옥한 땅을 얻고 식량을 구하기 위해 칼을 뽑지 않을까.
천명검? 중원은 천명검이 홀로 징치하기에는 너무나 넓었다. 당장 서연이 기거했던 하남조차 전생의 반도의 몇 곱절은 되었다.
‘지금이라도 즐겨두어야겠구나.’
어쩌면 이렇듯 마음 편히 세상을 유람할 수 있는 것도 올해가 마지막일 듯싶었다.
동호를 중심으로 모여든 군중들은 서연의 걸음에 맞춰 자연스레 몇 걸음씩 뒤로 물러났다
죽립 아래로 도화와도 같은 머릿결이 바람에 흩날리는데, 사람들은 견문에 관계없이 그 자태만으로도 고귀한 신분이라는 착각에 빠졌다.
죽립의 그림자에 이목구비가 대부분 가려졌는데도 그러했다.
“……황실에서 오신 분이신가?”
“경망스럽게 굴지 마. 옷깃이라도 잘못 닿았다간 경을 칠 수도 있어.”
새해를 맞아 천하 곳곳의 귀인들이 유람을 나온 상황이었기에, 사람들은 더 이상 왈가왈부하지 않았다.
귀한 가문의 여식이 양친 몰래 세상 밖으로 나왔다 여기는 이들도 적지 않았다.
당연히 추파를 거는 이들도 없었다. 서연의 주변으로 범접할 수 없는 기운이 흘러나왔기 때문이다.
‘이 방법도 나쁘지 않구나.’
이렇게 하면 예전처럼 면사를 쓰고 다니지 않아도 될 듯했다. 서연이 기쁜 마음으로 걸음을 옮기던 때였다.
“……오라버니?”
나란히 서서 걷던 당소소의 고개가 한쪽으로 돌아갔다. 그녀의 시선 끝에 웬 사내 하나가 닿았다.
자색이 섞인 검은 머리카락. 사천당문 직계 특유의 녹색 눈동자까지. 당진성보다는 팔다리가 길었고, 키도 족히 한 척은 컸다.
‘임무 중에 사고를 당해 사경을 헤매고 있다고 들었는데.’
족히 몇 달은 지났으니, 치료를 마쳤을 법도 했다.
허나 당소소의 나지막한 외침을 듣지 못한 것일까. 사내는 그저 고개를 돌려 주변을 훑어보다가 어디론가 사라졌다.
문득 당가주가 했던 말이 떠올랐다.
―천명검의 단주가 신묘한 검술로 첫째를 현혹한 것이 불과 오년 전의 일이오.
대뜸 내밀한 사정을 털어놓았다. 만천화우라는 절기를 지녔음에도 천명검단주에게 넘어갔다고 했다. 그만큼 무학에 대한 욕심이 지대하다는 뜻이었다.
“……전음을 보낼까 했습니다만, 임무 중일 것이 뻔하여 그만두었습니다.”
당소소가 고개를 제자리로 돌리며 말했다. 약간 실망한 기색이었다. 무표정인 입매가 아주 살짝 아래로 기울어진 것만 봐도 알 수 있었다.
“패검대라고 했었던가?”
“예. 패검대 소속이지요. 암단화 일이 고작 몇 달 전인데, 벌써 호북까지 온걸 보면 제대로 쉬지도 못하는 모양입니다.”
바삐 돌아다니는 오라비가 안타까운 듯했다.
헌데, 패검대가 어찌하여 제대로 된 복장도 갖추지 않고 동호를 배회하고 있는 것일까. 그 의문이 서연의 뇌리를 스치고 지나갔다.
천명검이 으레 입고 다니는 천 자가 새겨진 옷 대신 평상복을 입은 것만 보아도 그러했다. 필시 위장을 위함이리라.
‘사마외도가 숨어들기라도 한걸까.’
눈에 보이는 인파만 족히 수천에 달했다. 이런 곳에서는 작은 소란조차 재앙의 씨앗이 될 터. 사람 틈에 깔려 목숨을 잃는 일이 부지기수일 테니 말이다.
그때였다.
“천마재림(天魔再臨)! 만마앙복(萬魔仰伏)!”
인근의 눈길을 강제로 끌어당기는 사자후와 동시에 강대한 파동이 일었다. 거리가 꽤 되었는데도 그러했다.
곳곳에서 낭패라는 기색과 함께 사자후가 들려온 방향으로 도약하는 무인들이 속속 나타났다.
그중에는 당소소의 오라비라는 사내도 있었다.
“신교천세(神敎千歲)! 성화강림(聖火降臨)!”
서연의 눈이 커졌다. 백 장 떨어진 곳에 위치한 객잔의 벽이, 한순간에 부풀어 올랐다.
화아아악―!
흐릿한 광채와 함께 땅이 움푹 패였고, 사방으로 울림이 번져나갔다.
콰과과과광!
뒤이어 압도적인 크기의 불기둥이 솟구쳤다. 거리가 지극히 멀었음에도 불기둥의 존재가 눈에 훤히 보였다.
멀리서 급박한 외침이 들려오고, 인파는 마치 한 점으로 빨려 들어가듯 혼란스럽게 움직였다.
“마교! 마교의 마인들이다!”
“미, 밀지 마시오! 으아아악!”
허나 서연은 홀로 다른 곳을 주시하고 있었다.
한 중년인이 품에서 무언가를 꺼내고 있었다.
눈이 마주치자 광기에 물든 눈빛으로 희번덕거리며 웃었다. 조법을 극성으로 익힌 무인인 듯했다. 곧장 벽력탄을 꺼내 점화했다.
“천마재림……!”
벽력탄에서 섬광이 번뜩이는 찰나였다.
다른 이들은 인지조차 하지 못할 만큼 짧은 순간에 벌어진 일이었다. 그때 서연은 이미 중년인의 코앞까지 다가가 출수하고 있었다.
“……!”
중년인의 얼굴에 당혹감이 서렸다. 그는 황급히 조법을 펼쳐 서연을 막으려 들었다. 마교의 무학이었다. 허나 서연은 너무나도 쉽게 사내의 손가락을 떨쳐냈다.
‘내공으로 격발하는 방식이구나.’
사아아악!
서연의 손바닥에 놓인 벽력탄이 삿된 소음을 토했다. 눈 몇 번 깜빡일 시간이면 폭발할 것이다.
“이미 늦었…….”
찰나였다.
당장이라도 터질 듯 꿈틀거리던 벽력탄이 순식간에 잠잠해졌다.
꽈드드득―!
내공으로 짓누른 것이다. 그 와중에 일어난 자그마한 폭발들조차 진기로 억눌렀다. 그 여파로 구체였던 벽력탄은 심해에 던져진 것처럼 납작하게 짓눌려 있었다.
‘내공이 늘었다.’
제자들을 가르친 덕일까. 예전에는 폭발조차 짓누를 정도는 아닌 듯 했는데.
서연은 괜한 성취감을 느끼며 고개를 돌렸다.
“……!”
중년인은 자신의 눈을 의심하는 듯 헛숨을 들이키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