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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5-12-14 21:31:57 +09:00

14 KiB
Raw Blame History

“이곳에서, 말씀이신가요?”

황보세가의 여식이 그리 물었다. 천생신력을 타고난 탓에 날 때부터 외공의 고수나 다름없었다.

얼핏 보면 여리여리해 보이는 팔도 소맷자락을 걷어보면 암석 같은 단단함을 드러냈다. 하북팽가와 외공으로 쌍벽을 이룬다는 명문세가의 여식다웠다.

그녀 정도 되는 후기지수는 세가의 중견 고수들과 비무를 하는 경우가 많았다. 후기지수들과의 비무에서 전력을 다했다간 어느 하나가 다쳐야 끝났기 때문이다.

청강석으로 만들어진 비무대조차 황폐해지는 경우가 잦았다. 후원에서 비무를 벌였다간 무슨 일이 벌어질지 눈에 선명히 그려졌다.

“신녀문주님의 실력을 몰라 이리 말하는 것이 아니에요. 다만, 문주님의 진신 무공은 워낙 패도적이라 들었어요. 저희가 제대로 받아내지 못해 점창 속가에 해를 입힐까 두렵네요.”

진각 한 번으로 뒤집어질 법한 풀밭이었다. 당장 그녀 정도 되는 후기지수도 경파만으로도 일대를 화포에 맞은 것처럼 뒤집어 엎을 수 있었다.

뜻이 좋다고 해도, 점창 속가가 패악질로 받아들일 수 있었다.

“황보 소저.”

허나 남궁설화가 그녀를 가로막았다. 나서지 말라는 뜻이다.

“저희 무공이 한참 아래에요. 구파의 장문인 앞에서 우려를 드러내봤자, 의미 없다는 것을 아시잖아요. 검격을 감당하면서 능히 주변까지 다스릴 분이세요.”

남궁설화의 언행이 직설적이라는 것은 익히 알려진 사실이다. 상대가 약하면 약하다는 것을 가감없이 드러내는 사람이 바로 그녀였다.

그런 이가 신녀문주를 구파의 장문인에 비유했다. 허언으로 받아들이기 힘들었다.

남궁설화는 어느새 목검을 뽑아들었다. 세차게 동요하던 목검은 언제부터인가 차분하게 가라앉아 있었다.

어쩌면 오랜만에 조물주를 만나 흥분하여 그랬을 수도 있겠다는 생각을 했다. 뭇 영성이 깃든 무기가 그러하였기 때문이다.

‘그때에는 유검(柔劍)을 사용하시는 듯했는데.

과거 안휘성의 뒷산에서 만났을 때의 이야기다. 당시에 빗자루질을 하던 서연을 생각하면 도저히 패도적인 검격을 펼치는 사람이라 생각할 수 없었다.

절세고수다. 검식의 제한이 없다고 봐도 좋았다.

‘당장은 밝히고 싶지 않은 듯 하시니.

그래서 구파의 장문인을 입에 담았다. 배려가 기껍기라도 한 것인지, 서연은 눈동자에 더없는 호의를 품고 있었다.

절세 여고수와의 비무는 천하에 다시 없을 기연이다. 선구자로 대해야 옳았다.

“전력으로 가겠습니다.”

남궁설화가 입술을 달싹였다. 그녀의 눈동자가 한순간에 비범한 안광으로 번뜩였다.

후우웅!

남궁설화의 전신에서 인위적인 안개가 피어올랐다. 진법무공을 펼친 결과였다.

현무착월진(玄武捉月陣)이었다.

본디 다섯이 펼치는 진법이었다. 안개 내부로 들어온 상대의 감각을 혼란시켜, 진기 유동과 검식의 발현에 어려움을 겪게 만든다.

남궁설화는 고절한 진법을 홀로 펼쳤다. 경신법을 펼치는 와중에 목검으로 바닥을 찍어 축을 세웠기에 가능했다.

‘족히 십 장은 퍼졌어야 했는데.

신녀문주의 주변으로 퍼져나가던 안개가 한순간에 흩어졌다. 열 보 거리에 그러한 현상이 발현했다.

자연지물에 영향을 미치는 초고수가 아니고서야 불가능한 일이었다. 운남으로 출행하기 전 그녀의 모친이 주지시켜줬다.

―현무착월진은 천하에서 손에 꼽는 진법이란다. 방술과 진법에 조예가 없다면 초고수라도 일격에는 파훼하지 못해. 허나 안개를 기파로 꺾어버리는 고수와 적으로 만난다면……. 남궁가의 직계에 걸맞는 의기를 보이려무나.

피할 수 없는 죽음을 입에 담았다.

명예를 무엇보다 중요시 여기는 모친이 코앞에서 엄포를 놓는 듯했다.

동시에 남궁가가 전력을 들여 복수하겠다는 말도 덧붙였다. 모친 나름의 모성애였다.

상념을 지웠다.

‘아예 의미가 없는 건 아니야. 기척을 감추는 것 자체에 의미가 있으니.

고수에게 열보 간격으로 접근할 수 있다는 것 자체로 의미가 있었다.

걸음을 내딛은 순간 질풍이 다리에 감겨든다. 천하에서 제일을 다툰다는 보법이 남궁설화의 발끝에서 움텄다.

‘무한보(無限步).

쿵!

서연 역시 그것을 알아보았다. 안개 너머로 아주 희미한 기척이 느껴졌다. 솔잎을 활보하는 율서(栗鼠: 다람쥐)나 저러할까.

안개를 가르며 기파가 정면으로 쏟아졌다. 허나 서연은 그 반대 방향을 향해 잔향을 내질렀다.

“……!”

남궁설화의 얼굴에 당혹감이 맴돌았다. 허초가 완전히 읽혔기 때문이다.

서연은 후기지수를 상대로 천녀유검을 펼칠 생각은 없었다. 대신 근처에 퍼뜨려놓은 진기를 단번에 빨아들이듯 구조를 바꿨다.

탁!

잔향과 맞닿은 남궁설화의 검이 거미줄에 걸린 듯 달라붙었다.

“윽!”

아무리 힘을 주어도 떨어질 기미가 보이지 않았다.

안개도 예외가 아니었다. 한순간에 잔향으로 빨려들어갔다.

근처에서 지켜보던 후기지수들의 표정이 달라졌다. 남궁설화가 온 진기를 끌어다가 검을 떼어내고자 용을 쓰고 있었기 때문이다.

얼핏 보면 합이라도 맞춘 듯했다.

그 와중에도 서연은 나머지 한 손으로 뒷짐을 쥐고 있었는데, 처음의 자리에서 한 발짝도 움직이지 않았다.

“어찌 저런 기예를…….”

후기지수 하나가 망연한 얼굴로 중얼거릴 때였다.

쩌엉―!

남궁설화는 기어코 검을 떼어내고는 주춤 물러섰다. 그리고는 곧장 상단세를 취했다.

‘창궁무애검법. 완연한 패검이구나.

남궁설화를 중심으로 푸른 기운이 넘실거렸다. 바위마저 가를 듯한 검풍이 동시에 몰아쳤다.

서연은 하늘로 드높이 뛰어오른 남궁설화를 응시했다. 얼핏 보기만 했는데 무학의 요체를 알 것 같았다.

현란한 변초 너머에 홀로 오연한 검격이 숨어 있었다. 창궁무애검의 투로이리라.

‘검파는 하늘로 쳐내야겠다.

결심과 동시에 잔향검의 날을 비틀었다. 비무를 통해 깨달음을 얻는 것은 후기지수들 뿐만이 아니다.

서연 역시 비무를 통해 부족한 경험을 채우고자 했다. 명문세가의 자제들과 지금이 아니면 또 언제 교분을 나누겠는가.

‘창궁무애검은 찌르기에 약하겠다. 점창과는 완전히 정반대구나.

베기에 특화된 검술이라고 할 수 있겠다.

쩌엉―!

칼날이 충돌하며 굉음이 울렸다. 거센 기파가 하늘로 솟구치며 충격파를 흩뿌렸으나, 후원에는 영향을 끼치지 못했다.

풀잎 하나하나가 서연의 진기로 덧씌워져 있었다. 후원 전체에 호신강기를 씌운 것이나 다름없었다.

연무장으로 이동하지 않은 이유를 그제서야 이해했다. 신녀문주의 진기가 닿은 모든 곳이 연무장이나 다름 없었다.

“……!”

경악한 남궁설화가 들숨을 내쉬기도 전이었다. 그 짧은 순간에 그녀의 목덜미에 검날이 얹어졌다. 닿고 나서야 검날이 뭉툭한 것을 인지했다.

‘검집이었다고?

분명 선명한 예기가 느껴졌거늘, 여태 검을 뽑지도 않았었단 말인가? 분명 안법을 전력으로 펼치고 있었는데도 눈치채지 못했다.

심지어 창궁무애검을 받아낸 검집은 흠집 하나 없이 선명했다.

“과연 남궁의 검이군요. 고절해요.”

서연이 말을 이었다. 그 사이에 허리춤에 잔향검을 도로 맨 채였다.

뒷짐을 진 채로, 한 걸음도 떼지 않고, 심지어 검집으로 싸운 사람이 입에 담을 말은 아니었다. 자칫 조롱으로 들릴 수도 있었으나, 남궁설화는 감히 딴지를 걸 생각조차 못했다.

경외심만 들었다.

‘……절세고수는 창궁무애검을 아무런 여파 없이 받아낼 수 있는 것일까.

그런 것은 아버지만 가능한 줄 알았는데.

오죽했으면 서연이 어깨를 가볍게 두드릴 때까지 정신을 차리지 못할 정도였다.

남궁설화는 다급히 기세를 갈무리하고 포권을 취했다.

“많이 배웠습니다. 그리고, 처음 뵈었을 때와 지금의 입장이 다릅니다. 마땅히 하대해주세요.”

서연은 고개를 끄덕이며 천천히 입술을 뗐다.

예전이라면 거절했을 터이나, 이제는 달랐다. 제자들을 가르치며 하대에도 어느정도 익숙해진 덕이었다.

“그러마.”

“…….”

서연은 힐긋 후기지수들을 응시했다. 남궁설화와 교분을 맺은 이들답게, 하나같이 명가의 자제들이었다.

“사흘 뒤에 운남을 떠날 예정이니, 비무를 청하고 싶다면 언제든 후원으로 찾아오도록 하거라.”

서연은 그렇게 말하며 제 제자들을 일으켜 세웠다. 어느새 신공으로 호흡하고 있는 제자들이었다.

“그리고.”

서연은 떠나기 전에 남궁설화를 응시했다.

“패검의 묘리를 살리고자 진각에 무게를 실으려고 하는 것도 이해는 가지만, 그것은 용력이 타고난 이들이나 해볼 법한 발상이란다. 차라리 직전에 펼쳤던 허초를 갈고닦아 환검으로 나아가도록 하렴. 훨씬 수월하게 검리(劍理)에 다다를 수 있을거란다.”

곧 서연이 잔향검을 가볍게 휘저었다.

“결분혈(缺盆穴)에서부터 소상혈까지를 진기로 이어 붙인다고 생각하면 이해하기 쉬울 거란다. 검세를 펼치기 쉬워지는 것은 물론, 환검도 매서워질거다.”

곧 잔향의 검신이 폭풍을 머금었다. 창궁무애검의 요체를 품은 것이다.

“……!”

남궁설화의 눈동자가 더 커질 수 없을 정도로 커졌다. 아예 입을 벌리고 있었는데, 초장에 보였던 신중한 모습은 온데간데 사라져 있었다.

“나머지는 점심을 먹고 와서 봐주도록 하마. 오늘 식사를 걸렀던지라.”

곧 서연은 제자들을 끌고 어디론가 사라졌다.

“…….”

일대가 침묵으로 물들었다.

혈기왕성한 후기지수들 답지 않았다. 약에 취한 사람처럼 멍한 얼굴로 서있는 이들이 적지 않았다.

처음에는 외인이나 다름없는 신녀문주에게 다짜고짜 절기를 펼치는 남궁설화를 이해하지 못하는 이들이 많았다.

신녀문주 정도 되는 초고수는 옷자락 너머에 희미하게 보이는 근육의 움직임만으로도 검법의 약점을 파훼할 만했다. 검법을 보이는 순간 세가의 약점을 드러내는 것이나 다름없다는 뜻이다.

허나 비무를 본 이후에는 생각이 달라졌다.

파훼식이 의미 없는 강자다. 명백한 구파의 장문인, 그중에서도 상위에 속하는 인물임을 직시했다.

“……전신 세맥의 공부를 일말의 고민조차 없이 풀어주실 줄은.”

“실로 대인이시구나.”

족히 몇 년은 헤맬 법한 일을 단번에 풀어헤쳐 답을 제시했다. 비급 한 줄 때문에 뭇 강호에서 혈사가 일어나는 것을 생각하면, 남궁설화가 얻은 것은 보화로도 갚을 수 없는 기연이었다.

“검식만 보고도 창궁무애검의 묘리를 읽어낼 정도시라면, 천하를 주유한 경험도 결코 적지 않으실텐데.”

“남궁 소저, 도대체 언제 연을 맺으셨던 거에요? 남궁세가의 비선이 대단하다는 것은 들었지만, 그래도 이 정도였을 줄은…….”

가장 놀란 것은 남궁설화였다. 그녀는 얼떨떨한 심정을 감추지 못한 채로 검을 치켜들었다.

신녀문주의 배려로 일전에 선보였던 검로를 안법으로 통찰할 수 있었다.

스윽―

다시금 상단세를 취했다. 신녀문주의 조언을 되새기며 검을 내리그었다.

한순간에 대기를 할퀴면서 뻗어나간 검파가 바닥에 선을 그었다.

화악!

“……대체.”

남궁설화는 침음을 흘렸다. 점창 속가의 마당을 망가뜨렸다는 생각조차 하지 못할 정도였다.

조언 하나를 실천했을 뿐인데 창궁무애검을 펼치기가 몇 배는 수월해졌다.

그 사실을 모르는 후기지수가 없었다.

이내.

뒤에서 지켜보고 있던 황보세가의 여식이 입을 열었다.

“식사하시는 곳 근처로 가서 기다리는 편이 좋을까요……?”

반대하는 사람은 하나도 없었다.


“저 분들은 왜 저기서 저러고 계신대요?”

“모르니까 말 걸지 마라.”

점창 속가의 시비들의 대화다. 그들은 식기를 나르는 도중에 바깥에 엉거주춤한 자세로 서 있는 후기지수들을 애써 못본 척했다.

―언제쯤 나오실까요?

―황보 소저, 아직 일다경도 안 지났소.

행여 식사에 방해가 될까, 전음으로 대화를 나누었다. 남궁설화는 줄의 맨 뒤편에 서 있었다. 맨 뒤로 물러나라는 무언의 압박이 있었기 때문이다.

그렇게 얼마나 지났을까, 마침내 문이 열렸다.

후기지수들의 얼굴에 일순간 화색이 돈 순간이었다.

문을 열고 모습을 드러낸 것은 새까만 단발을 늘어뜨린 소녀였다. 재미있는 광경을 마주하기라도 한 것인지, 한쪽 입꼬리를 살짝 치켜올리고 있었다.

“흐음…….”

화련의 눈동자가 까맣게 반짝였다.

그녀는 한 손을 제 입에 가져다 댄 다음 속삭이듯 말했다.

“당과 하나만 사다 주시면, 식사가 언제쯤 끝날지 알려드릴 수도 있을 것 같은데…….”

“화련아.”

“넵.”

화련은 울상을 한 채로 입을 다물었다.

“자리에 앉으렴. 채육을 가리지 않아야 키가 잘 큰단다.”

“……네.”

어엿한 고수가 된 서연에게 더 이상 속삭임은 통하지 않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