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객잔 내부는 고요했다.
점창파의 속가가 직접 운영하는 곳이니, 강호의 소란과는 거리가 멀었다. 그들은 점창파를 위기에서 구한 서연의 일행을 극진히 모셨다.
서연과 동행한 송월 노인 역시 마찬가지였다. 일월상단이 치료한 점창 제자의 수가 적지 않았기 때문이다. 비록 전투에 직접 나서지는 않았으나, 후방에서 묵묵히 제 몫을 다한 공로는 누구도 폄하할 수 없었다.
당소소와 화련 역시 그 자리에 있었다. 그들의 손을 거쳐 뼈가 맞춰지고 붕대가 감긴 점창 제자가 족히 수십이었다.
‘생선이라니.’
서연의 시선이 접시에 놓인 큼지막한 생선에 머물렀다. 운남은 땅 대부분이 해발로 오백 장이 넘는 고산지대로 이루어져 있어, 해산물을 구하기가 매우 어려웠다.
귀한 손님을 맞기 위해 아낌없이 값을 치르고 이리 내놓았을 터였다.
“사실, 이 늙은이도 한때 생선장사에 손을 대보려고 했던 적이 있었지요. 염장법만 익히면 한 달은 거뜬하다는 말에 헛고생을 했었습니다.”
기품있게 생선을 발라 먹던 송월 노인이 운을 떼었다.
이렇게만 보면 그저 평범한 시골의 노인 같았다. 허나 세상 견문이 워낙 넓은 것으로 볼 때, 과거에 무림에서 나름 전설적인 인물이었다고 추측할 수밖에 없었다.
밤중에 음혈종의 장로인 혈면수라를 단박에 알아보는 안목이나, 절세 고수들과 안면이 있었던 행적만 보아도 그러했다.
상행도 돈을 벌기 위함이라기보다는, 취미에 가까워 보였다.
본디 상인이라면 시간이 곧 재물이라, 한 시진도 허투루 쓰지 않는 법인데, 그는 서연과 동행하는 동안 단 한 번도 급한 기색을 보인 적이 없었다. 그뿐만이 아니었다. 여태껏 이렇다 할만한 귀한 물건을 사들인 적도 없었다.
그나마 있는 일정이라곤 며칠 뒤에 열릴 대리석 경매에 참여하는 정도였다
다른 상단들은 벌써부터 광산 주인들에게 온갖 뇌물을 바치느라 정신이 없건만, 송월 노인은 지난 며칠간 근처 시장이나 돌아다니고, 평범하기 짝이 없는 풍경을 기웃거릴 뿐이었다.
일월상단이 취급했던 물건들을 보면 더욱 납득이 갔다. 잡상인이라 칭해도 될 만큼 온갖 자질구레한 물건들이 널려 있었으니 말이다.
한참을 생각하던 서연은 무례하게 들리지 않도록 조심스레 입을 열었다.
“어르신, 상행을 다니시게 된 연유를 여쭈어도 되겠습니까?”
찻잔을 들고 내리는 순간의 적막이 유독 무겁게 느껴졌다. 당소소와 화련이 다른 곳에 머물고 있었던 탓이 컸다.
“생각보다 긴 이야기가 될 듯한데. 괜찮으시겠습니까?”
“…….”
서연은 갑작스레 깊어진 송월 노인의 눈빛을 보며 침묵했다. 무림의 거대한 비사와 엮여 있기라도 한 것일까.
그럴 만도 했다. 여든이 훌쩍 넘는 세월을 살아오며 그의 두 눈으로 목도했을 죽음과 비밀이 적지 않을 것이기 때문이다.
서연이 천천히 고개를 끄덕이자, 송월 노인이 입을 열었다.
“이 늙은이는 예전에 호법으로 일했습니다. 제가 모셨던 분은 큰 가문의 막내 공자셨는데, 걸음마를 떼시기 전부터 온갖 살수들에 시달리셨습니다. 후계다툼이었지요. 감당하지 못할 만큼의 살수들이 밀려들어 올 때는 공자님을 안고 산길을 달렸던 적이 적지 않았습니다. 보통은 행상인으로 위장했습니다. 봇짐에 공자님을 넣고 다녔지요.”
옛 생각이 나는지 송월 노인이 웃으면서 고개를 몇 번 끄덕였다.
곧 그는 자신의 기나긴 여정을 천천히 설명하기 시작했다.
“……가문 안에서 머문 날보다 가문 밖에서 머문 날이 많았을 정도였습니다. 그렇게 몇 년 동안 다니면서 발각도 되고, 생사의 고비도 넘나들다 보니 어느 순간부터는 진짜 상인처럼 행동할 수 있게 되더군요.”
서연은 고개를 끄덕였다. 수 년간 살수들을 맞이하고도 살아남았다는 것에서 송월 노인의 능력을 짐작할 수 있었기 때문이다.
송월 노인이 서연을 응시했다.
“무엇을 숨긴 채로 운반하기에는 상인만한 직업이 없다는 것도 그때 깨달았지요. 어떤 무림인이 생선 비린내로 가득한 통 같은 것을 직접 열고 뒤적이겠습니까. 칼 몇 번 찔러넣는 것이 고작입니다.”
서연은 순순히 수긍했다.
“아무래도 그렇겠지요.”
“그렇게 십 년을 살다보니, 생각보다 적성에 맞더군요. 나중에 은퇴를 하면 상인의 길을 걷기로 마음먹었지요. 무공을 잃고 나서 그 꿈을 이루게 될 줄은 몰랐지만 말입니다.”
그렇다면 무공은 후계다툼에 패하여 잃었던 것일까. 서연이 그리 추측하던 차였다.
“막내 공자께서 어찌 되었는지 궁금하진 않으십니까?”
“솔직히 궁금합니다.”
“후계자가 되셨습니다.”
“……어찌?”
서연이 놀란 얼굴로 말하자, 송월 노인이 지친 표정으로 말했다.
“윗 형제들이 하룻밤에 모두 참살당한 탓이지요. 각기 다른 검초로, 그것도 전부 일격에 당했으니, 무공이 미천했던 막내 공자님은 용의선상에 오르지도 못했습니다.”
송월 노인은 천운이 따랐다, 같은 허황한 말을 덧붙이지 않았다.
대신 침착한 어조로 섬뜩하게 느껴질 만큼 솔직하게 말했다.
“……처음부터 호법이 필요하지 않았던 분이셨던 겁니다.”
무거운 침묵이 흘렀다.
근처에서 소란이 들려오기 전까지는 그랬다.
“와아아악! 스승님! 스승님!”
“사, 사저!”
서연은 다급히 방문을 열고 나섰다.
사방이 우뚝 솟은 건물들로 가득했다. 궁전이라 칭하기에 부족함이 없는 위용이었다.
중원 무림에서 서쪽으로 아득히 먼 곳. 천마신교의 성전(聖殿)이 위치한 곳이다.
“아미타불.”
정순한 법기를 가득 품고 있는 노승이 정좌한 채로 염불을 외고 있었다. 사방이 마교도들로 가득한 장소에서 당당히 염불을 외는 것에서 그의 간담을 엿볼 수 있었다.
승려복 너머로 역근경으로 닦아낸 단단하고 억센 육체가 훤히 드러났다. 그럼에도 얼굴에는 인자함이 깃들어 있었는데, 보는 이로 하여금 천상의 신장을 마주한 듯한 느낌을 주었다.
소림 사대금강의 일좌.
광대한 천하를 자유롭게 주유하며 온 천하의 존경을 받는 나한이 바로 그였다.
그런 그가 천산에서 염불을 외는 이유가 무엇일까. 억류와는 거리가 멀었다. 신체가 구속되어 있지 않았기 때문이다. 의복에서도 이렇다 할 전투의 흔적이 드러나지 않았다.
드넓은 전각에 오직 염불을 외는 소리만 울려퍼지던 때였다.
“수십 년 동안 염불만 외우는 것이 질리지도 않는가?”
노승의 십 보 뒤였다.
흑의를 입은 사내가 등을 벽에 기댄 채 서 있었다.
마교의 천산은 한 해의 절반 이상이 겨울이었다. 당장 창밖에 스산히 떨어지는 눈이 적지 않았음에도, 사내의 옷에는 눈 한 송이 묻어 있지 않았다.
그의 전신에서 풍겨 나온 마기의 기류가 나무 바닥에 스며든 순간이었다.
노승이 천천히 입술을 떼었다.
“마를 자처하는 자들은 잠시도 가만히 있지를 못하는구나.”
파사현정의 신령스러운 법력이 그의 전신에서 흘러나오며 사내의 마기와 정면으로 충돌했다.
드드드!
둘 사이에 반투명한 벽면이 생겼다는 착각이 들 정도였다.
한순간에 천장까지 닿았다. 둘 다 막대한 내력을 지니지 않고서야 불가능한 일이었다.
내력은 사내 쪽이 앞섰다. 다만 상성이 좋지 않았다.
파사현정의 기운이 담긴 무지막지한 경파를 쉽사리 감당하지 못했다.
결국 사내가 먼저 마기를 거둬들였다.
“매년 이리 되풀이되는군. 정중하게 말을 걸 때는 대답조차 하지 않더니.”
사내는 무서울 정도로 침착한 어조로 말했다.
“승려라고는 믿을 수 없을 만큼 성정이 드세단 말이지. 교주께서 자네를 건드리지 말라고 명하지 않으셨다면 자네의 목은 진작에 저잣거리를 나뒹굴고 있었을 걸세.”
노승은 고개도 돌리지 않고 다시 염불을 외웠다. 사내는 자신의 까끌한 수염을 쓰다듬으며 아무도 없는 천장을 보고 말했다.
“가서 차나 좀 내오거라.”
담담한 말투로 물은 직후였다. 천장 곳곳에서 들불처럼 기파가 일어났다.
곧 허공에서 흑의인이 나타나더니, 평상에 다구를 내려놓았다. 노승이 대놓고 자신을 무시하고 있음에도, 사내는 일단 자리에 앉아 차 한 잔을 마셨다.
권해봤자 노승이 마시지 않을 것을 아는 것이다.
사내는 스스로 잔에 차를 따르고, 마시기를 반복하다가 입을 열었다.
“교주님의 말씀을 전하러 왔네. 내년에도 계속 머무를 것이냐고 묻고 오라더군.”
“…….”
한순간 염불이 멈췄다. 노승은 그제서야 고개를 돌려 사내를 응시했다.
노승의 눈에 사내의 외양이 담겼다.
풀려있는 듯하면서도 깐깐하고 날카로운 기질을 동시에 드러냈다. 얼핏 보면 낭인처럼 보이지만, 자세히 보면 아니라는 것을 알 수 있다. 천하에 보기 드문 광인이다.
‘……더 강해졌구나.’
노승은 속으로 생각했다. 사대금강 중 최고로 꼽히는 자신조차 눈 앞의 사내의 백초지적이 되지 못했다.
이만한 강자가 마교에 일곱이나 있었다. 교주를 제외하고도 그랬다.
단일 세력이라고는 믿을 수 없는 무력이었다. 이들이 중원을 침탈하고자 한다면 온 천하가 격동할 것이 분명했다.
참사를 막으려면 마땅히 감시하고 주시해야 했다.
본래라면 간자를 심고, 온갖 정보전을 벌이는 것이 통상적이겠으나.
―본좌는 의미없는 다툼으로 시간을 낭비하고 싶지 않다.
교주가 출입을 허락한 순간 의미가 없게 되었다.
적지 않은 초고수들이 교주의 의중을 파악하기 위해 천산에 방문했다. 교주는 무기의 패용, 머물 수 있는 기간, 심지어는 천마전의 출입조차 제한을 두지 않았다.
파격을 넘어 정파에게 납작 엎드린다고 느껴질 수준이었다.
그 말을 전대 교주를 열 초식만에 참살하며 내뱉지만 않았다면, 모두가 교주를 겁쟁이로 치부했을 것이다.
곧 노승이 천천히 입을 열었다.
“계속 머무르겠다고 전하시오.”
사내는 대답하는 대신 고개만 끄덕였다.
반백 년이 넘는 세월이 지났고, 천산에 머물렀던 수많은 정파 세력들은 전부 떠나갔다. 그나마 제갈세가와 몇몇 구파만이 년 단위로 사람들을 보내고 있는 상황이었다.
먼 마교보다 코앞에서 날뛰는 사파를 살피는 것이 급했다.
‘간자들은 아직도 틈틈이 심어놓는 듯하지만.’
사내는 속으로 생각했다. 정파에도 심계가 깊은 위인들이 많으니, 방심한 척 심어둔 간자가 족히 수십은 될 터였다.
애초에 정보조직을 통해 천하를 주시하려던 자들이다. 대놓고 사람을 보내 일거수일투족을 감시당할 바에야, 평소대로 간자를 보내는 편이 낫다고 판단한 것이다.
오히려 여태 남은 소림이 이상했다.
승려라 그런지 쓸데없는 부분에서 우직했다. 설마 수십 년을 천산에 처박혀 있을 줄 누가 알았겠는가.
어느 순간부터 마교가 사대금강을 억류하는 모양새가 되었다.
전대 대장로가 볼모를 자처한 것도 그 시점이었다.
소림의 코앞에 자리를 잡고 대놓고 상단 행세를 했다. 마교가 준동하면 제 목부터 치라는 말이나 다름없었다.
무공을 잃었다지만, 그 전에 교주가 총애하던 수하였다. 볼모로서의 가치가 충분했다.
그렇게 수십 년이 지난 지금, 소림의 사대금강과 마교의 전 대장로는 서로가 원치 않는 볼모가 되어 있었다.
“내년에 다시 찾아오도록 하리다.”
사내가 바람처럼 모습을 감추고, 천장을 가득 메웠던 살수들의 인기척 역시 순식간에 사라졌다.
노승은 한참이 지나서야 바깥으로 향했다.
그의 시선 앞에 드높고 푸르른 하늘이 놓여 있었다. 가슴이 뻥 뚫리는 기분이 들어야 정상이겠건만, 어째서인지 하늘을 올려다볼수록 가슴이 답답해지는 듯했다.
“……아미타불.”
교주와 천마의 차이는 무엇인가.
오랜 세월을 천산에 머무른 탓에, 알고 싶지 않아도 알게 되었다.
단순히 마인들의 지도자에서 그치면 교주이나, 거기서 한 단계 더 나아가 하늘을 무너뜨리면 천마가 된다. 교리가 그러하다고 했다.
여태까지의 교주들은 중원 무림을 재패하는 것으로 천마가 되려 했다. 중원 자체를 하늘이라 여겼기 때문이다.
그리하여 전대 교주는 명 황실을 하늘이라 여겼고, 명 이전의 교주들은 그 이전의 왕조들을 하늘이라 여겼다.
허나 작금의 교주는 달랐다.
노승은 고개를 치켜든 채로 호흡을 애써 가다듬었다.
‘…….’
교주가 닿고자 하는 하늘이 그곳에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