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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5-12-14 21:31:57 +09: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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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aw Blame History

둘 사이에 어색한 기류가 흘렀다. 한 치의 양보도 없이 서로를 재는 듯한 분위기. 마침내 기세에서 밀린 소년이 미간을 잔뜩 찌푸린 채 담벼락 아래로 내려섰다.

“신녀문주, 맞으시오?”

“그렇단다.”

소년의 어투에는 경계와 불만이 뒤섞여 있었다. 무언가 마음에 들지 않았는지, 소년은 이전보다도 미간을 더욱 강하게 좁혔다. 아이 취급이 마음에 들지 않는 모양이었다.

키는 화련보다 반 치 정도 컸다. 지학 정도 되어 보였다는 뜻이다. 한창 어른처럼 행세하고 싶은 시기일테니, 저런 모습을 보이는 것 역시 그리 이상하지 않았다.

‘무인들 옆에서 자란 아이들 말투가 저러하지.

늙수그레한 말투를 흉내내는 것만 보아도 그랬다. 저 나이 또래는 저것이 멋인 줄 아는 법이다.

“헌데 내 모습은 어찌 알아보셨소? 고명한 안법을 익혔어도 쉽게 알아챌 수 있는 것이 아닐진대.”

무림인 놀이라도 하던 걸까. 담벼락에 대놓고 앉아 있었으면서 상대가 알아보지 못하기를 바라다니.

서연은 잠시 생각에 잠겼다. 소년의 동심을 지켜줄까 싶었지만, 그럴 만한 나이는 이미 지난 듯하여 솔직하게 말해주었다.

“더 노력해야겠구나. 내 눈에는 대놓고 앉아 있는 것처럼 보였단다.”

“…….”

서연은 미소지으면서 옆자리를 툭툭 두드렸다.

“심심하던 차에 잘 되었구나. 내 말동무나 되어주지 않으련? 궁금한 것이 많아보이는 얼굴인데.”

소년의 얼굴은 이제 더 없이 기괴해졌다. 불가해의 요괴를 마주한 듯한 얼굴이었다.

“……천하는 참으로 넓구나. 단주의 말이 틀리지 않았구나. 괴력난신이 이리도 많으니.”

“단주?”

“알면서 어찌하여 물으시오. 천명검의 단주를 말하는 것을 모르지 않을진대.”

서연은 느릿하게 고개를 끄덕였다. 그런 설정이구나.

천명검 행세를 하는 것이 이것으로 확실해졌다. 뭇 사내아이들이란 목검을 치켜들고 마을을 종횡무진 휘저으며 고수 행세를 하고 다녔기 때문이다.

물론 소년의 나이는 그런 유치한 장난을 칠 시기는 지난 듯했지만, 아직 철이 덜 들었다고 생각하기로 했다.

“…….”

소년은 그런 서연을 보며 깊은 한숨을 내쉬더니, 순순히 마룻바닥에 앉았다.

“신녀문주, 내가 누군지는 궁금하지는 않으시오?”

“무림인 놀이를 하는 아이가 아니었니?”

“놀이……?”

소년의 표정이 다시금 흔들렸다. 그는 허탈한 듯 숨을 내쉬다가, 이내 정신을 차리고 서연을 노려보았다.

“나는 암검대주요. 놀이라고 폄하한 것은 꽤 좋은 수였소. 하마터면 오랫동안 단단히 쌓아온 수양이 흔들릴 뻔했구려.”

“암검대주, 그렇구나. 대주라 불러주기를 바라니?”

“……농은 그만하시오.”

소년은 다시금 깊은 한숨을 내쉬었다. 이전보다 호흡을 안정시키기가 벅찬 듯했다.

서연은 그런 소년을 보며 미소를 감추지 못했다. 늘 소녀들과만 지내다가 오랜만에 사내아이와 대화를 나누니 즐거웠던 까닭이었다. 생각보다 장난치는 재미가 쏠쏠했던 덕이 컸다.

“신녀문주, 몇 가지만 물어도 되겠소?”

“얼마든지 물어보렴.”

“……일단 점창파 장문인과는 이야기를 마쳤소. 고절한 검격이 나타나 흑룡회주를 몰아냈다더군. 검흔을 보니 분명 절세고수의 흔적은 맞았소. 정작 단주는 공적인 임무를 수행중이라 운남까지 올 상황이 못 되는데 말이오.”

“그랬구나.”

“처음에는 무당을 생각하였는데, 검선이었다면 본 단을 자처할 이유가 없소. 스스로를 감추고 오히려 점창파 장문인의 면을 치켜세웠겠지. 생각할수록 미궁에 빠지는 느낌이 들더군. 그래서 신녀문주를 직접 찾아온 것이오. 그때는 신녀문주가 누구인지 알지 못했기 때문이오.”

소년은 말을 제대로 끝맺지 못했다. 돌연 서연이 그의 어깨에 손을 올린 탓이었다.

“애야, 절세고수를 그렇게 부르면 안 된된다. 나는 괜찮지만, 다른 사람들은 괜한 오해를 하여 널 해코지할 수도 있단다.”

“……해코지?”

“사마련주는 그렇다 쳐도, 적어도 정파의 절세고수들을 부를 때에는 경어를 사용하렴. 천명검단주를 부를 때도 마찬가지고.”

소년은 뭐라 반박하려다가 그만두었다. 서연의 눈매가 날카로워졌음을 느꼈기 때문이다.

“……우리는 황실을 섬기기에 정파의 장문인들에게 존칭을 표할 필요가 없소. 애초에 천명검의 대주는 대문파의 장문인과 비슷한 배분이오. 경외를 담을 이유가 없단 말이외다.”

잠시 고뇌하던 소년이 덧붙였다.

“허나, 문주가 그렇게까지 말한다면 시정하리다.”

“착한 아이구나.”

소년의 표정이 다시금 묘해졌다.

“취급이야 그리 중요치 않으니 넘어가겠소. 그보다 여기서 짚고 넘어가야 할 일이 있소. 이번 일에 문주가 관여하셨소?”

“그게 무슨 말이니?”

“문주가 두 종주를 물리쳤느냐고 묻는 것이오.”

“아니란다.”

의외로 소년은 실망하거나 하지 않았다. 오히려 그렇게 대답할 줄 알았다는 듯이, 저 혼자 고개를 끄덕이고 멋대로 납득했다.

“그렇다면, 이번 일은 천명검이 한 것으로 하겠소.”

“아까부터 계속 당연한 이야기만 하는구나.”

“당연한 일로 취급할 정도는 아니오. 우리도 할 일이 많단 말이외다. 사마련주가 얼마나 예측불가한 광인인지는 문주도 잘 알지 않소. 시선을 우리 쪽으로 돌려주겠다는데, 고맙다고는 못할망정.”

생각보다 성격이 훨씬 엉뚱한 소년이었다. 자신만의 세계 속에서 사는 듯했다.

‘사마련주에 천명검에, 생각보다 세계관이 촘촘하구나. 소설을 쓰면 잘 쓰겠어.

팔짱을 낀 채로 궁시렁거리는 것을 멈추지 않았는데, 딱 그 나이대의 소년이 보일 만한 얼굴을 하고 있었다.

“문주가 도발에 일가견이 있다는 것도 보고에 추가하겠소. 나라서 망정이지, 다른 대주가 찾아왔더라면 한바탕 싸우려 했을 것이오.”

“싸우다니. 혹 질 나쁜 아이들과 어울리기라도 하는거니?”

“나는 애가 아니오……!”

목청을 높이던 소년은 곧 제 이마를 짚고 고개를 숙였다. 그 잠깐 사이에 얼굴이 불그스름하게 물들어 있었는데, 화를 낸 스스로가 부끄러운 듯했다.

“체면이 말이 아니군. 나이가 몇인데 아이처럼 소리나 지르고.”

“그 나이 대에는 그럴 수 있단다.”

서연이 느긋하게 말했다. 소년은 이제 헛웃음까지 흘렸다.

“……타인의 속을 긁기로는 사마련주가 최고인줄 알았거늘. 신녀문주를 보니 그도 분발해야겠다는 생각이 들 정도요. 얼굴을 면사로 가리고 있어서 망정이지, 표정까지 보였다면 진정 노했을지도 모르겠소.”

“사마련주를 만나보기라도 했다는 것처럼 들리는구나.”

“……힘들군. 참으로 힘들어. 어디부터 어디까지 농인지 알 수가 없구나.”

긴 호흡을 내뱉은 소년이 눈을 질끈 감았다 떴다. 이전보다 힘이 잔뜩 빠진 기색이었다.

“예고없이 찾아와 큰 결례를 범했소. 깊이 사죄하고 다음부터 이런 일이 없도록 할 터이니, 이제 그만해주시오.”

서연은 고개를 주억거리면서 생각했다. 또래의 사내아이답지않게 사과할 줄도 아는구나.

부모가 잘 가르쳤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럼, 이제 가보겠소. 그럴 일은 없겠으나, 혹 연락할 일이 생기면 언제든 관아로 서찰을 보내시오. 지급(至急)으로 대하리다.”

터덜터덜 떠나는 소년을 지켜보던 서연은 한마디를 덧붙였다.

“그 옷, 밖에서는 입고 다니지 마렴. 관리들에게 잘못 걸렸다간 경을 칠 수도 있단다.”

“…….”

소년은 서연을 망연히 뒤돌아보다 고개를 가로저었다.


“……반로환동한 것을 뻔히 알았을텐데도 그리 뻔뻔하게 굴 줄은. 절세고수들은 전부 괴인이라더니. 그 말은 당최 틀리질 않는구나.”

한탄하는 이는 암검대주였다.

본래 암검대의 역할은 중원 무림을 활보하며 극비에 속하는 정보를 긁어 모으는 것이다.

당연히 황태자가 중히 여기는 서연을 모를 리 없었다.

황태자에게 비연천공을 전달하며 자유를 바란다는 뜻을 함께 밝혔기에, 그동안 암검대 또한 서연의 주변을 감히 조사하지 않았다. 직접적으로 서연과 접촉한 것은 이번이 처음이라는 뜻이었다.

당연히 서연과 신녀문주가 동일인이라는 사실을 알지 못했다. 암검대주는 그 사실을 서연과 대면한 이후에야 알아차렸다.

처음에는 절세 여고수가 갑자기 둘씩이나 생긴 줄 알고 얼마나 당황했던가.

암검대주는 느릿하게 고개를 위로 들었다.

어둑한 동굴 천장.

점창파를 돕기 위해 급히 합류했던 암검대원들이 전부 이곳에 자리해 있었다. 정보를 주로 다루기는 했지만, 은밀하기로는 천명검에서도 손에 꼽히는 그들이었다.

전투력 또한 다른 무력대에 뒤처지지 않았다.

하나같이 흑의를 입고 있었는데, 특이하게도 붓으로 계속 무언가를 써 내려가고 있었다.

은비조와 전서구, 박쥐 등에서 쏟아지는 정보들을 끊임없이 받아 적는 듯했다.

야명주 하나 없는 곳에서 붓이 움직이는 소리만 이따금 들려왔다.

전부 살수 무공을 익혔기에 안법이 발달하여 가능한 일이었다.

“진정 단주께서 왔다 가셨답니까?”

휘하 대원이 조심스럽게 물었다. 암검대주는 고개를 가로저었다.

“신녀문주가 한 일이다. 허나 세간에는 우리가 한 일로 알리기로 했으니, 괜한 말이 돌지 않도록 바삐 움직여야겠다.”

“……그 말씀은?”

“신녀문주가 전하와 연이 닿은 절세고수와 동일인이었다.”

그 말을 들은 대원이 뭔가 깨달았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본단의 위상을 치켜 세워줄 생각으로 그리했다는 것이군요. 명백히 호의를 가지고 있다고 봐도 좋을 듯합니다.”

대화를 나누는 이는 대원들 중에서 연차가 가장 높은 이였다. 말단들은 이 순간에도 쏟아지는 서찰을 끊임없이 받아 적고 있었다.

“팔천의 종주 둘을 큰 힘도 들이지 않고 쫓아낸 것을 보면……절세고수라는 것도 사실이겠군요.”

“그렇겠지.”

“다른 대주들에게도 보고합니까?”

잠시 고민하던 암검대주가 고개를 가로저었다.

“전하께 우선적으로 전해드려야 기쁨을 온전히 누리실 수 있겠지. 당분간은 기밀을 유지하도록.”

“예.”

그때였다.

돌연히 날아든 전서구를 살피던 대원들이 다급한 목소리로 말했다.

“대리에서 마교의 전 대장로를 발견. 신녀문주와 동일하게 점창 속가에 머무는 것으로 추정됨. 현재 일월상단이라는 이름의 상단으로 위장 중. 맹약을 이행하기 위해 천산으로 향하는 도중 신녀문주와 연이 닿은 것으로 보임. 자세한 내막을 파악할 필요가 있다고 판단. 지원을 요청함.”

“현재 객잔 4층을 대실하여 식사 중. 친분이 적지 않아 보임. 신녀문주가 마공을 익혔는지 파악할 필요가 있다고 사료됨.”

“신녀문주의 손이 희고 광채를 띔. 소수마공을 익혔을 가능성이 있음.”

잠시 침묵이 흘렀다.

암검대주는 생각했다.

어찌하여 일이 이렇게 되었는가.

서연과 신녀문주가 동일인이라는 사실을 이제야 알아차렸기 때문이다. 그 사실을 몰랐을 때까지만 해도 신녀문주는 명백히 요주의 인물이었다.

갑자기 나타난 신진문파의 문주가 흑룡회주의 오른팔을 꺾었다. 경계해야 마땅했고, 그리했다.

“……신녀문주 곁에 머무르던 모든 인원들을 당장 복귀시키도록. 전하의 명이 우선이다. 절세고수의 심기를 거스르는 일이 있어서는 안된다. 지급이다.”

“예!”

대원들이 다급히 서찰을 적어나가기 시작했다. 순식간에 내용을 받아적은 다음 전서구와 박쥐 따위의 다리에 그대로 묶고 날려보냈다.

대원들의 시선이 일제히 암검대주를 향했다.

절세고수를 대면하는 일이다. 대주가 직접 나서야 최소한의 격이 맞았다.

“…….”

암검대주는 진심으로 가기 싫다고 생각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