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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5-12-14 21:31:57 +09: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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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aw Blame History

당소소는 얼굴을 반쪽만 들이밀고 둥그런 혀를 낼름거리는 큼지막한 짐승을 바라보았다.

상황을 이해하기 힘들었다. 저것을 뭐라 불러야 한단 말인가? 요괴? 영물? 다른 것은 모르겠으나 평범한 짐승이 아니라는 것은 분명했다.

허나, 당소소를 가장 놀라게 한 것은, 짐승의 큼지막한 덩치도, 익숙한 듯 짐승을 쓰다듬는 은공도 아니었다.

짐승에게 고개를 꾸벅 숙이고는, 아무일 없다는 듯 도로 드러누워 색색거리며 골아떨어진 화련이었다.

‘……내가 이상한 것인가.

아무리 생각해도 그건 아닌 것 같았다. 오죽했으면 이것이 춘몽인지 구분이 되지 않을 정도.

겁이 많다고 생각한 적은 없다. 독물을 다루는 사천당문의 무인이 귀신 같은 것을 두려워하겠는가.

허나 눈 앞의 광경은 당소소의 상정범위를 아득히 뛰어넘었다.

집채만한 범이 도시 한복판까지 내려와 이층 창가에 얼굴을, 그것도 반쪽만 들이밀 것이라고 그 누가 상상할 수 있겠는가.

당소소는 동생이 챙겨주었던 약을 몇 개 챙겨먹고 나서야 가까스로 진정할 수 있었다.

그르릉-

짐승이 묘한 울음소리를 낼때마다 움찔하기는 했지만 말이다.

“은공. 그건 도대체……뭡니까?”

“음.”

서연은 백호를 쓰다듬기를 멈추고 당소소를 응시했다.

‘제대로 설명은 해줘야겠지.

앞으로 종종 이런 식으로 만나게 될 텐데, 그때마다 기겁하게 만들 수는 없었으니 말이다.

“나와 연이 닿은 영물이란다.”

“…….”

영물인 것 같기는 했다. 집채만한 범이 영물이 아니라면 대체 뭐가 영물이란 말인가.

“한 번 쓰다듬어보겠니?”

“……괜찮습니다.”

갑자기 긴장이 풀려서 그런지 전신에서 힘이 쭉 빠지는 느낌이었다. 다시 노곤해지려는 때쯤, 복도에서 발걸음 소리가 울려 퍼졌다. 발걸음 소리는 서연 일행이 머물고 있는 숙소 앞에서 멈췄다.

문 바깥에서 객잔 주인이 문을 가볍게 두드렸다.

“그, 별일 없으십니까?”

객잔에서 가장 비싼 방이다. 그런 방에서 비명이 터져 나왔다면, 아무리 무던한 주인장이라도 안부를 묻는 것이 옳았다.

백호의 눈동자가 좌우로 휙휙 움직이는 것을 당소소는 놓치지 않았다.

“별일 없습니다. 갑자기 거미가 나와서.”

평정을 가장하고 대답했다. 허나 객잔 주인은 쉬히 떠나지 못했다.

사천당문의 금지옥엽이 이 방에 머무는 것을 알았다. 아무리 생각해도 독충을 다루는 그녀가 거미를 무서워할 것 같지는 않았다.

객잔 주인은 안에서 무슨 일이 터졌다고 확신했다. 어쩌면 살수가 들이닥쳤을 수도 있겠다는 생각도 했다.

내색했다가는 저까지 죽을 수 있었기에, 객잔 주인은 마른침을 삼키며 답했다.

“그렇……군요.”

그렇게 말하며 슬금슬금 뒤로 물러났다. 관아에 신고해야겠다고 다짐하면서다.

당소소는 주인이 애먼 오해를 하고 있다는 것을 느꼈다.

“정말로 괜찮습니다.”

“알고 있습니다. 밤중에 깨워서 죄송합니다. 편히 주무십시오.”

“…….”

당소소의 미간이 절로 좁혀졌다. 직접 문이라도 열고 나서야 할까. 그런 생각이 들던 차였다.

백호가 체념하듯 한숨을 내쉬었다. 곧 거대했던 백호의 몸체가 바람이 빠지는 것처럼 순식간에 줄어들었다.

집채만했던 백호가 새끼고양이만큼 작아지기까지는 그리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

서연은 깜짝 놀란 얼굴을 한 채 백호를 안아들었다. 털이 푹신하고 꼬리가 복슬복슬 한 것이 백묘보다는 설표에 가까웠다.

“별 능력이 다 있었구나.”

서연에게 들려 있는 와중에도 백호의 시선은 창 밖을 향해 있었다. 정확히는, 산 중턱에 앉아있는 유혼을 향해서였다.

부리로 곡선을 그리는 것이 참으로 얄미웠다.

본래라면 받아들이지 않았을 것이다. 과거 서연이 한 곳에 틀어박혀 살았을 때만 하더라도 맘 편히 자연지기를 받아먹을 수 있었으니 말이다.

허나 서연의 외유가 길어지자, 직접 바깥을 돌아다니며 사냥을 다녀야 했다.

명색이 신수다. 어디 야생동물 같은 것을 잡아먹겠는가. 보기 드문 영물과 영초를 직접 찾아다녀야 했다.

그것도 일 년에 가까워지니 슬슬 힘들어졌다. 아무리 좋은 영약을 캐먹어도 주인의 곁에 잠깐 안겨있는 것만 못했다.

결국 세태의 흐름과 타협해야 했다.

“열겠습니다.”

상황 파악을 마친 당소소가 문을 열고 객잔 주인을 잡아당긴 것은 그 다음이었다.

갑작스레 저를 붙잡는 손아귀에 소스라치게 놀란 객잔 주인은 비명을 지를 뻔했으나, 눈앞에 펼쳐진 평범한 광경에 얼떨떨해했다.

“이게 무슨…….”

색색거리며 자고 있는 여자아이 하나, 흰털 짐승을 안고 있는 여인 하나, 그리고 저를 세차게 노려보고 있는 당문의 직계까지.

객잔 주인의 판단은 빨랐다. 그는 짐승을 몰래 반입한 서연을 탓하는 대신, 넙죽 엎드려 사죄했다.

“죄송합니다.”

그는 숙박비를 받지 않겠다는 말을 몇 번이고 반복하고는, 왕 앞에서 물러나는 신하처럼 뒷걸음치며 물러났다.

‘당랑암화가 거미를 무서워하는구나.

의외라는 생각을 애써 감춘 채였다.


“……오랜 세월 상행을 다녔지만 이런 경우는 처음이군요.”

송월 노인은 서연의 다리 옆에 서 있는 흰털 짐승을 응시했다. 줄무늬를 보아하니 범의 새끼인 듯 했다.

얼핏 보면 백묘라 착각할 만했지만, 훈련된 짐말들이 다가오기를 꺼리는 것만 봐도 아니라는 것을 알 수 있었다.

본래 범이라도 새끼 때에는 겁이 많은 것이 상식이나, 저 놈은 어찌된 영문인지 제 눈을 또렷이 응시하고 있었다. 평범한 짐승은 아니라는 것이다.

“문제가 되겠습니까? 안 된다 하시면 돌려보내겠습니다.”

“상관 없습니다. 놀라기는 했지만, 이 늙은이는 색다른 상황을 마주하는 것을 매우 즐기는 사람입니다.”

송월 노인은 백호를 쓰다듬거나 하지는 않았다. 몇 번 쳐다보다가 고개를 끄덕였다.

“마차에 두고 다니시거나, 날뛰지 않게만 하시면 될 듯합니다.”

“그렇게 하겠습니다. 감사합니다.”

서연은 설마 백호가 날뛸 것이라고는 생각하지 않았다. 말을 몇 마리씩 삼킬 수 있는 영물이 사람 몇 속여먹겠다고 새끼 행세까지 할 것 같지는 않았다.

“인수(仁壽)를 거쳐서 악산(樂山)까지 남쪽으로 쭉 내려갈 계획입니다. 지금 속도면 넉넉하게 달포면 운남에 도착하겠군요.”

송월 노인은 말을 타지 않고 두 발로 앞장서서 걸었다. 여든 먹은 노인이라고는 믿을 수 없을 정도로 발걸음이 굳셌다.

서연은 슬쩍 일월상단의 사람들을 둘러보았다. 하남에서 여기까지 오면서 산 물건이 거의 없었는지, 마차가 대부분 비어있었다.

“어르신은 평소 상행을 다니실 때도 이렇게 걸어 다니십니까?”

“보통은 그렇지요. 몸을 직접 움직이면서 땀도 흘리고, 근육통도 앓다 보면 아직 살아있다는 느낌이 듭니다. 아무래도 먼 과거에 무인이어서 그렇겠지요.”

“대단하십니다.”

서연 또한 상단의 호위였기에, 노인의 옆에서 나란히 걸었다. 백호를 포함한 나머지 일행은 전부 마차에 남겨둔 상황이었다.

송월 노인이 문득 남쪽을 바라보며 말했다.

“이 늙은이가 아무리 대단하다 한들 황상만 할까요. 저보다 더 지긋한 나이에 군을 이끌고 계시지 않습니까. 제가 아무리 정정해도 무거운 갑옷을 입고 이리 걸어다닐 수는 없습니다.”

서연은 혹시나 하는 마음에 물었다.

“혹시 황상도 뵈셨습니까?”

“멀리서 얼핏 형상만 뵈었습니다. 단기필마(單騎匹馬)로 적군을 향해 질주하셨던 모습이 도저히 잊혀지지 않습니다. 그때 제가 환갑이었으니, 벌써 이십 년도 더 된 이야기군요.”

나이 지긋한 황제가 홀로 적진으로 달려가는 그림이 도무지 그려지지 않았다.

여봉선의 환생이라도 된단 말인가? 아니, 아무리 여봉선이라고 해도 환갑이 넘는 나이에 그러지는 못했을 것 같았다.

‘도대체 뭐 하는 사람이었을까.

이야기를 듣다보니 송월 노인에 대한 궁금증이 더욱 솟아났다. 검선, 사마련주, 마교 교주, 거기에 멀리서나마 황제까지 보았다.

이토록 넓은 견문을 가지려면 동창의 우두머리인 사례태감 정도는 되어야 할 것 같았다.

물론 서연은 송월 노인의 과거를 직접적으로 묻지는 않았다. 무례라 생각했기 때문이다. 송월 노인도 마찬가지로 서연에 대해 묻지 않았다.

그 말은 즉슨, 서로의 과거를 묻는 것을 제외하고 웬만한 이야기를 다 나누었다는 것이다.

며칠 동안 여유롭게 걸어 악산 근처에 도달했다.

“서 호위는 이 늙은이의 생각보다 대단한 분이셨군요. 여태 살검을 사용한 적이 없다니. 참으로 대범하십니다.”

“여태 제가 감당할 수 있는 적들만 만나서 가능했겠지요. 운이 좋았습니다.”

“운이라. 제게 칼을 겨눈 원수를 살려둔다는 것은 구파의 도인들도 쉬이 할 수 없는 일입니다. 자부할 만한 일이라 생각합니다.”

“……평생 무인 구실을 못하게 만들었는데도 말입니까?”

서연을 빤히 응시하던 송월 노인이 고개를 끄덕였다.

“당연하지요. 왜 그런지 아십니까?”

“잘 모르겠습니다.”

“사지근맥을 잘리면 거동이 매우 불편해지고, 평생을 남이 떠주는 미음만 받아먹어야 합니다. 하지만 제가 생각하기에 서 호위께서 그 정도로 조치했을 것 같지는 않습니다. 적당히 무인 구실을 못하게 하는 선에서 마무리지었겠지요. 맞습니까?”

서연은 대답 대신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면 말도 할 수 있고, 절뚝이면서도 걸어다닐 수는 있을테니, 평생 모은 돈을 가져다가 흑도 문파로 가져가서 서 호위를 암살할 살수를 고용할 수도 있겠군요. 어쩌면 서 호위를 따라다니다가 객잔에서 시킨 음식에 몰래 독을 넣을 수도 있겠습니다.”

“……감안은 하고 있었습니다.”

“그래서 대단하다는 겁니다.”

송월 노인이 잔잔하게 미소지었다.

“서 호위는 평생 살수에 쫓기느라 밤을 새고, 동시에 매일 음식을 먹을 때마다 은침을 꽂아넣는 삶을 감당하기로 결정한 것이나 다름없습니다. 여인을 때리고, 저보다 약자를 괴롭히는 무도한 이들을 살리기 위해서 말입니다. 소림의 방장도 그렇게는 못할 겁니다.”

“어르신, 금칠이 과하십니다."

송월 노인이 뜬금없이 이렇게 말했다.

“정사마가 무엇을 기준으로 나뉘는 지 아십니까?”

“잘 모릅니다.”

“약자를 위해 싸우는 것이 정파입니다. 그 목적이 자신이 아닌 남을 향해 있으니, 협객이라고 칭함에 부족함이 없지요. 그렇기에 정(正)입니다. 반면 마교는 강자와 싸우기 위해 수련합니다. 한 계단씩 차례차례 짓밟고 올라가, 끝내 하늘에 닿으려 하지요. 그렇기에 마(魔)입니다. 마지막으로 사파는 자신의 이익을 위해 싸웁니다. 약자를 아무렇지 않게 짓밟고, 또 강자에게 숙이기를 꺼리지 않지요. 비굴하다기보다는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는다고 해야 옳습니다. 그렇기에 사(邪)입니다.”

송월 노인은 그렇게 말하며 서연을 바라봤다.

여태 없던 길을 가려 하는 여인이다.

정파와 궤가 비슷하나, 그보다 원대하다. 그렇기에 같이 두고 판단할 수 없었다.

'중원에 네 번째 바람이 부려는가.'

송월 노인이 갑자기 어둠을 물끄러미 바라보았다.

“이곳 악산에는 대붕파(大鵬派)라는 세력이 있습니다. 악산 근처의 산길을 관리하고 통행료를 받는 자들인데, 계산이 합리적이라 특이하게도 정사지간 취급을 받습니다. 헌데―.”

송월 노인의 말이 끝나기도 전에 바람을 가르며 날아온 비수가 서연의 손에 사로잡혔다.

착!

서연은 비수 끝에 묻은 찐득한 핏물을 바라보다가, 고개를 치켜들었다.

“…….”

어둠 너머에서 부스럭거리는 소리가 들리는가 싶더니, 험악한 기세를 내뿜는 사람 서너 명이 모습을 드러냈다. 손과 입가에는 핏물이 묻어 있었는데, 특이하게도 눈동자와 머리카락이 붉었다.

"대붕파 사람들입니까?"

서연의 질문에 송월 노인이 고개를 가로저었다.

"사마련 팔천의 음혈종(陰血宗), 옛 혈교의 잔재들입니다."

간악한 미소를 내보인 음혈종 무인이 말했다.

“마침 의식을 치를 정혈이 부족하였는데, 잘 되었다. 너희들의 피로 혈사(血祀)를 마저 치뤄야겠…….”

그때였다.

서연은 품에서 쥘부채를 꺼내 강하게 쥐었다. 떨리지 않았다. 저보다 약하다는 뜻이다.

‘단번에 끝내자.

몇 명이나 있을지 몰랐다. 단기 결전으로 가는 것이 옳았다.

진기가 일점으로 빨려들어가는 감각이 들었다. 압축된 바람으로 인해 주변 대기가 일그러질 정도였다.

심상치 않은 기세를 느낀 혈귀들의 얼굴에 경악이 어렸다.

“무슨……!”

다음 순간, 세찬 칼바람이 그들을 덮쳤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