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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5-12-14 21:31:57 +09: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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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aw Blame History

가을의 끝자락이라고는 믿을 수 없을 정도로 몸이 따스했다. 의식적으로 시도한 첫 대주천이었기 때문이다.

임독양맥을 포함한 전신의 십팔맥을 모두 동원하여 운기했다. 전신 세맥에 천지자연의 기운이 흘러들어 순환하기를 거듭하니, 자연지기가 끝없이 흘러나왔다.

정순한 기운을 느낀 산새들이 곳곳에서 날아들어 짹짹거렸다. 하찮은 미물들의 눈에는 서연이 신령한 나무처럼 보였던 것이다.

자그마한 산새들은 서연의 머리와 어깨에 앉아 지저귀었다. 특히 서연의 정수리 부근에 유독 많이 몰려들었는데, 상단전이 천지와 공명하여 자연지기를 내뱉고 들이마시기를 반복했기 때문이었다.

그 기운을 받은 산새들의 날개에 윤기가 돌고 깃털의 색이 화려해졌다. 이따금 덩치가 커지는 산새들도 있었다.

그때, 유혼이 서연의 주변에 조용히 내려앉았다. 제 주인의 수행에 방해될까 크기를 참새만 하게 줄인 채였다.

―주인께 너무 가까이 붙지 마라.

유혼은 술법으로 가벼운 바람을 일으켜 말을 못 알아듣는 금수들을 땅바닥으로 내려놓았다.

이따금 큼지막한 맹금들이 날아들기도 했다. 그럴 때면 유혼은 제 크기를 원래대로 되돌려 맹금들을 노려보았다. 넘볼 수 없는 기세를 마주한 맹금들은 순식간에 꼬리를 내리고는 만공정에 조심스레 착지했다.

산새들을 사냥하러 온 것이 아니다. 자연지기를 받아먹기 위해 온 것이다. 하찮은 짐승들도 귀한 것을 알아보았다.

유혼이 호법을 서고 있었기 때문일까, 감히 도를 넘고 욕심을 부리는 미물은 나타나지 않았다.

무수한 산새들이 찾아오고 떠나기를 반복하는 동안, 유혼은 말없이 주인의 앞을 지켰다.

이따금 절벽 끝으로 걸음을 옮기고는 했는데, 거대한 백호가 만공정의 벽을 타고 올라올 것을 염려했기 때문이다.

백호는 용케 사람들에게 들키지 않고 만공정 코앞까지 와 있었다. 그 몸집이 얼마나 거대한지, 꼭대기에서도 그 위용이 훤히 보일 정도였다.

유혼은 보란 듯이 미간을 좁히며 주의를 주었다.

―산군 놈아. 네가 올라오면 너무 눈에 띈다.

백호도 그것을 알았는지 한동안 만공정 주변을 맴돌기만 했다. 은형술을 사용한다면 들키지 않고 올라올수야 있겠으나, 그 크기가 문제였다. 거대한 백호가 올라온다면 발 디딜 곳조차 없어질 것이다.

―몸체를 작게 바꿔주랴?

유혼의 말에 백호는 코웃음을 치고는 홀연히 사라졌다. 유혼 역시 기대도 하지 않았다는 듯 고개를 돌려 다시 주인을 응시했다.

그렇게 해가 중천에 뜰 무렵, 유혼은 산새들을 전부 물린 뒤 날갯짓 소리조차 내지 않고 조용히 날아올랐다.

곧 서연이 눈꺼풀을 들어 올렸다. 평범한 무인이라면 방금의 운공으로 단전에 내공이 쌓였겠으나, 이미 자연과 동화된 서연에게는 해당되지 않는 일이었다.

그렇기에 서연은 요상한 눈빛으로 배꼽 아래를 한참 쓰다듬었다. 무협지에서 으레 단전의 위치를 이곳으로 꼽았기 때문이었다.

‘이게 내공이 모였을 때의 감각인가?

육체가 따뜻하고 기운을 꺼내 쓸 수 있으니 분명 내공이 있을 텐데, 아무것도 느껴지지 않으니 기분이 이상했다.

대주천을 할때도 기운이 전신 세맥을 통해 흘러가는 것 같기는 한데, 어디로 모이지 않고 그냥 들어오고 나가기만 반복했다.

과거 서연이 스스로를 하류 무인이라 착각했던 가장 근본적인 이유가 이것이었다. 무인이라면 으레 가져야할 단전이 없었기 때문이다.

‘상단전이나 중단전이 먼저 발달한 체질인가.

서연은 정수리와 명치를 차례로 만지작거리다가 이내 그만두었다. 어쩌면 온몸을 단전으로 쓰는 희귀 체질일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다.

그런 체질이라면 굳이 알려져서 좋을 것은 없어보였다. 구음절맥(九陰絶脈)이든, 구양신맥(九陽神脈)이든 내로라하는 체질이 나타나면 강호에 으레 혈사가 벌어졌기 때문이다.

“후…….”

문득 옆에 있는 태허진인의 숨이 길게 흘러나왔다. 서연은 태허진인을 바라봤다. 주변에서 세찬 아지랑이가 피어올랐는데, 호흡을 반복할 때마다 하얀 김이 솟구쳤다.

태허진인은 한참동안 숨을 들이쉬고 내쉬기를 반복하다가 눈을 떴다. 그의 얼굴에는 놀라움이 역력했다.

맨땅에 앉아 운기조식만을 취했을 뿐인데, 웬만한 영약을 먹은 것 이상으로 내공이 쌓였기 때문이다. 서연의 옆에서 날것 그대로의 자연지기를 흡수하였기에 가능했던 일이었다.

운기조식에 든 사이에 서연이 벌모세수(伐毛洗髓)를 해 주었다는 착각이 들 정도였다.

벌모세수란 초고수가 하수의 세맥을 내가기공으로 뚫어주거나 내공을 불어넣어 주는 것을 의미했다. 일문의 장문인이자, 한때 종남이 자랑하던 후기지수였던지라 내로라하는 영약들을 적잖이 섭취했던 터였다. 그렇기에 그 외에는 마땅한 이유가 떠오르지 않았다.

서연은 가만히 앉아 있는 태허진인을 바라보다가 눈치껏 축하의 말을 건넸다.

“장문인, 축하드립니다. 성취가 있으셨던 모양입니다.”

“……고맙네.”

태허진인은 떨떠름한 목소리로 답했다. 축하 말고는 어떠한 감정도 내색하지 않는 서연의 얼굴을 볼 때, 이번 일을 모르는척 해주기를 바라는 것 같았다.

내공이 족히 십 년은 늘었다.

놀라운 일이다. 기연이라 칭하기에 부족함이 없었다.

그 때문일까, 태허진인의 얼굴은 이제 호의를 넘어선 짙은 친근감마저 품고 있었다.

서연의 배포에 감탄한 것이다.

‘……손녀라도 있으셨나.

서연은 저를 보며 옅게 웃는 태허진인을 보며 그런 생각을 했다.


서연은 종남파에서 달포 가량을 더 머물렀다. 보법을 익히는 김에 검법도 같이 배우기 위함이었다.

태허진인은 서연이 종남의 모든 무학을 견식할 수 있도록 허락했다. 다만 비전인 천하삼십육검은 예외였는데, 서연 본인이 부담스럽다며 거절했기 때문이었다.

물론 이러한 사실을 문파 내부에 대대적으로 알리는 것은 큰 반향을 일으킬 수 있었기에, 서연은 대부분의 시간을 종남파가 제공한 개인 연무장에서 보냈다.

이따금 장문제자 정휘가 개인 연무장을 방문하여 교분을 나누고는 했다. 정휘는 자세한 내막까지는 알지 못했으나, 서연이 종남의 귀빈 대접을 받을 정도로 대단한 업적을 이뤄냈다는 것은 알고 있었다.

그렇기에 나이가 어리다고 무시하지 않고 도리어 깍듯이 대했다.

물론 그것도 잠시였다.

서연이 정휘에게 제 검술을 봐달라고 부탁했던 것이 계기였다. 정휘는 순순히 부탁을 수락하며, 귀빈이니만큼 진심으로 봐주어야겠다고 마음먹었다.

허나 서연의 실력을 본 순간, 자신이 왈가왈부할 수 없는 경지임을 깨달았다.

오히려 이쪽이 배우는 입장이었다.

그래서 정휘는 서연이 견식을 핑계 삼아 자신에게 가르침을 내리고 있다고 여겼다.

“정휘 도사님, 그러면 오늘도 검술을 봐주실 수 있을까요?”

“아, 얼마든지 그리하겠습니다.”

서연이 작금 펼치는 검술은 종남의 유운검법(流雲劍法)이었다. 무려 열여덟 개의 초식으로 이루어져 있어 파생되는 변화가 무궁무진한 검법이었다.

당연히 그 난이도 때문에 쉽게 건드릴 수 없는 무학이었으나, 서연은 보란 듯이 여러 개의 초식을 하나의 초식인 것처럼 매끄럽게 연계했다.

정휘는 속으로 감탄함과 동시에 안타까움을 느꼈다. 서연이 오늘 종남산을 떠나기 때문이다. 고작 달포 가량 교류한 것만으로도 엄청난 진전이 있었기에 더욱 아쉬울 수 밖에 없었다.

“이번에는 어땠나요?”

“더할 나위 없이 좋았습니다.”

“……오늘도 그렇게 말씀하시는군요. 귀빈을 대해야 하는 도사님의 입장도 이해는 가지만, 고칠 점이 있다면 허심탄회하게 말씀해주셨으면 좋겠습니다.”

“…….”

정휘는 서연의 지탄에 입을 다물었다. 부족한 제 안목을 타박하는 것처럼 들렸기 때문이다. 검법을 한 달씩이나 보여줬는데 아직도 그 안에 담긴 묘리를 눈치채지 못했느냐고 훈계하는 것 같기도 했다.

정휘는 속으로 탄식을 내뱉었다. 종남 제일기재라는 별호가 이곳에서만큼은 무색할 따름이었다.

실상은 전혀 달랐으나, 정휘가 그것을 알 수 있을 리가 없었다.

서연은 남몰래 한숨을 내쉬며 도로 납검했다. 확실히 실력이 늘기는 한 것 같은데, 정휘가 계속 듣기 좋은 말만 해주는 탓에 실력을 명확히 파악하기가 힘들었다.

‘자만하기 딱 좋은 시기인데.

제 재능도 파악했고, 제대로 된 보법도, 검법도 익혔다. 강호에 나선 지 얼마 안 된 후기지수들이 자만하여 가장 많이 화를 입는 시기가 바로 이때쯤이었다.

종남에 머무는 동안 간간이 바깥 소식을 전해 들었다. 이번 가을에 농사를 망친 장강 이남의 민심이 심상치 않다고 했다.

잠잠하던 녹림(綠林)이 발호했다. 본래 녹림은 풍년일 때는 정예 십팔채만을 유지했는데, 이따금 민심이 흉흉해지면 그에 따라 수를 불리곤 했다.

반년 사이에 녹림십팔채가 삼십육채가 되었다고 했다. 녹림뿐이랴, 장강에서도 수로채가 하나둘 기승을 부리기 시작했다고 했다.

다행히 서연이 본래 가려고 했던 사천성과 운남성은 정파의 영역이었기에 녹림도나 수적들이 대대적으로 발호하지 못했지만, 그래도 평시보다 위험한 것은 확실했다.

서연이 종남에 오래간 머무른 것도 그 때문이었다. 산적들을 만나도 제자를 지킬 수 있겠다는 확신이 필요했다.

‘십대 일, 어쩌면 이십대 일을 하게 될지도 모르는데.

장문제자인 정휘와도 합을 겨뤘으니, 실력이 부족하지는 않을 터이나 그래도 무언가 아쉽다는 감정까지 완전히 지울 수는 없었다.

태허진인과 했던 약속을 지킬 겸, 수련도 계속할 겸 화산으로 바로 찾아갈 생각도 했으나, 태허진인이 당장 가는 것보다 시간을 두고 여유롭게 방문하는 것이 좋을 것이라 하여 그만두었다.

‘그래도 연화비영보를 완벽히 익혔으니.

수틀리면 제자를 안고 자리를 피하면 될 것이라는 생각도 들었다.

만약 상대가 그조차도 따라잡을 수준의 고수라면…….

서연은 고개를 가로저었다. 쓸데없는 생각을 하여 굳이 불안감을 키울 필요는 없었다. 애초에 다 감수할 생각으로 세상 밖으로 나왔던 것 아니던가.

정 안되면 낙양 부윤이 주었던 명예직인 도감 증패를 내세워 관인 행세를 하면 될테고 말이다.

물론 무림을 징치하겠다는 목적으로 세워진 천명검이라는 단체가 대놓고 존재하는 세계에서 관무불가침이 과연 제대로 이뤄질지는 모르겠지만 말이다.

서연이 그런 생각을 하며 짐을 챙기는데, 누군가 정중히 문을 두드렸다. 문을 열어보니 태허진인이 서 있었다.

“선자, 떠나신다고 들었소.”

“그렇게 되었습니다.”

태허진인은 고개를 끄덕이더니 품에서 무언가를 꺼내어 내밀었다. 나무로 된 각패였는데, 특이하게도 색이 하얬다. 색이 바랜 것이 아니라, 원래부터 순백색인 듯했다. 설명을 들으니 청목족이 영목(靈木)이라 부르는 나무의 조각으로 만들었다고 했다.

“이 패를 보여주면 종남과 친분이 있는 모든 문파들이 빈도를 대하듯 대접할 것이오.”

“……예?”

“별거 아니겠으나, 부디 받아주시오. 그래야 나중에 화산에도 편히 방문할 수 있지 않겠소.”

너무 과하다고 거절하려 했으나, 태허진인이 너무나도 완고하여 그럴 수 없었다. 서연은 다시금 제가 나이 지긋한 노인에게 약하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서연은 태허진인과 작별인사를 나눈 다음 종남산을 내려왔다.

늘 그랬듯 죽립에 면사를 쓴 채였다.

저번과는 달리 이번에는 역참에서 말을 빌리지 않았다. 틈틈이 보법을 연습해야 했기 때문이다. 화련도 연화비영보를 연습하고 있었는데, 확실히 어린아이가 익히기에는 버거운 보법이었는지 끙끙대는 일이 잦았다.

급한 여정이 아니었기에 느긋하게 대로를 따라 이동했다. 그 때문인지 저녁이 다 되어서야 묵을 만한 객잔에 도착할 수 있었다.

저녁시간 답지 않게 객잔 주변이 사람들로 북적거렸는데, 입구에서부터 몰려있는 사람들을 보아하니 대부분 손님이 아닌 구경꾼인 모양이었다.

아무리 대로라 해도 이만한 사람이 몰려 있는 것은 흔치 않았다.

무슨 일인가 하고 다가서려는데, 누군가가 행인들을 거세게 밀치고 앞으로 튀어나왔다.

“죽기 싫으면 막지 말고 비켜라!”

얼굴에 큼지막한 칼자국이 난 중년인이었다. 전체적으로 거친 사파인다운 분위기를 풍겼는데, 객잔에서 칼부림이라도 일으켰는지 피칠갑을 한 채였다.

민초들에게 거침없이 무기를 휘두르는 것을 보니 폭급한 성정을 짐작할 수 있었다.

서연은 놀란 눈을 하면서도 화련을 제 등 뒤로 숨기듯 잡아당긴 후 망설임 없이 발검했다.

본능의 영역이었다.

유려한 발검만으로도 서연이 실력자라는 것을 알아차린 중년인이 낭패라는 듯한 얼굴을 했다.

“젠장, 그새 포위당했나!”

빠르게 도법을 펼쳐 서연을 베고 나아가려던 때였다.

콰악!

서연의 검 끝에서 펼쳐진 중검의 묘리가 중년인의 도를 그대로 찍어눌렀다.

“무슨 힘이……!”

순식간에 부러진 도를 보며 아연실색한 중년인이 뒷걸음치던 그때였다.

촤악!

뒤편에서 나타난 사내가 단번에 중년인의 목을 양단했다.

“도움을 받았구려.”

사내의 등에는 천(天) 자가 크게 새겨져 있었다.

드넓은 중원에서, 황태자를 상징하는 홍실로 하늘을 새길 수 있는 집단은 단 하나 뿐이다.

“종남의 도인이 나서줄 줄은 몰랐소. 고맙소.”

사내가 포권을 취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