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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무 한 번 하려고 화산의 드높은 봉우리까지 올라가는 것은 도리에 맞지 않는 일이다. 그럴 바엔 차라리 주변의 적당한 속가를 찾아 비무대를 마련하는 것이 훨씬 효율적이었다.
그런 의미에서 소검후가 찾아간 백검문(百劍門)은 비무를 펼치기에 안성맞춤인 곳이었다. 외곽에 자리하여 사람들의 시선이 과하게 쏠리지 않는 점도 좋았으나, 무엇보다 백검문주가 소검후와 개인적인 친분이 깊었다.
과거 소검후가 백검문주의 여식을 구한 인연이 있었기 때문이다.
그 은혜를 잊지 않았던 것일까, 소검후가 당도하자 백검문주는 버선발로 뛰쳐나와 반겼다.
“소검후 님, 오셨습니까?”
소검후는 고개만 끄덕였다. 대답은 옆에 있던 도인이 대신했다.
“비무를 하려고 하는데, 자리를 마련해주실 수 있겠습니까?”
백검문주는 소검후와 그 옆에 선 서연을 번갈아 보았다. 그러다가 시선을 돌려 소검후 뒤에 선 화산의 도인들을 응시했다.
‘사질들과 대련하시려는 게로군.’
아무리 생각해도 옆의 여인보다는 화산의 다른 도인들과 합을 겨루리라 짐작하는 것이 이치에 맞았다. 나름대로 합리적인 판단을 마친 백검문주가 고개를 끄덕였다.
“곧장 준비하겠습니다.”
일다경도 되지 않아 백검문도들이 달려왔다. 정리를 마쳤다는 것이다. 안쪽으로 들어가니 제법 격식을 갖춘 비무장이 그 위용을 드러냈다.
“편히 사용하시면 됩니다.”
그리 말하며 물러나려던 백검문주는 심히 부자연스러운 움직임으로 뒤돌아섰다. 제딴에는 태연한 척 하는 모양새였다.
“소검후님, 실례가 아니라면 제 딸아이가 참관해도 되겠습니까?”
“네.”
소검후는 선뜻 고개를 끄덕였다. 애초에 화산의 검법은 어느 정도 세간에 알려져 있었기 때문이다. 종남과 지회를 여는 것 또한 그런 연유에서 비롯된 것이었다.
곧 바깥으로 달려 나갔던 백검문주가 여식을 데리고 비무장으로 들어섰다. 공교롭게도 소검후와 비슷한 연배로 보였다.
물론 이는 겉모습만 보았을 때의 이야기다.
실제 나이는 소검후보다 꽤 어리다는 뜻이다.
“배울 것이 많을 터이니, 집중하여 보거라.”
“네, 아버지.”
백검문주의 여식이 고개를 끄덕였다. 백검문주 또한 딸을 핑계 삼아 자리를 뜨지 않았다. 졸지에 비무장의 관객이 둘 늘어난 셈이었다. 화산파 도인 넷에 화련까지 합치면 총 일곱이었다.
제 삼자가 지켜보는 앞에서 검을 뽑는 것은 서연에게 처음 있는 일이었다.
‘떨리지는 않는다. 다행이다.’
서연은 비무대로 오르며 어떤 검법을 사용해야 할지 생각했다. 일전에 회화루에서 사용했던 점창의 검법들이 머릿속을 스쳤으나, 외인이 함부로 도가의 검법을 펼쳤다는 말이 나온다면 분명 뒷말이 나올 것이다.
화산의 도인들이 입이 가벼울 리는 없겠으나, 서연이 점창파와 연관이 있다는 생각까지는 막을 수 없을 것이다.
서연이 비무대에 완전히 올라 소검후의 반대편에 서자, 백검문주와 그 딸이 나직이 속삭였다.
“음?”
“처음 뵙는 분이 올라가셨네요. 화산파 도인 같지는 않은데.”
“소검후님과 그리 차이 나지 않는 연배인 듯하니, 혹 먼 곳에서 온 후기지수일 수도 있겠구나.”
서연은 내심 웃음을 삼켰다. 누가 보는 앞에서 자세를 취하는 것이 처음이라서였다.
목검을 치켜든 두 사람이 마주 섰다. 서연은 입을 다물고 기다렸다.
본래 실력이 뛰어난 자가 하수에 맞춰 규칙을 정하는 것이 상례였다. 넘어지면 끝이라든지, 세 수를 양보한다든지, 아니면 제자리에서 움직이지 않고 방어만 하겠다든지 말이다.
그렇기에 기다렸다. 허나 소검후는 이를 전혀 다르게 받아들였다. 그녀는 서연을 저보다 윗줄의 고수로 여겼다.
일전에 서연이 고절한 수법의 금나수를 보였기 때문이다.
그렇기에 서연의 침묵을 길게 얘기하지 말고 바로 들어오라는 뜻으로 이해했다.
무인은 본디 무공으로 이야기해야 하는 법이니.
곧 소검후가 움직였다. 오행매화보(五行梅花步)였다.
화산의 경신법은 다른 도문들과 비교했을 때 매우 빠른 편에 속했다. 검법 특유의 성향 때문이다.
종남의 천하삼십육검이나 무당의 태극검이 수비에 치중하는 것과 달리, 화산의 검법은 대부분 공격적이었다.
그렇다고 하여 살을 내주고 뼈를 취하는 점창의 극단적인 검법과 같지도 않았다. 굳이 따지면 화려함 속에 비수를 숨겨 상대를 서서히 말려 죽이는 방식이라고나 할까.
세 보 만에 지척에 닿았다. 처음으로 마주한 화산의 경신법은 놀라울 정도로 신속하고 화려했다.
‘꽃이 피어오르는 것 같다.’
소검후의 손바닥이 매화처럼 늘어지다 추락했다. 장법부터 펼친 것이다.
‘이게 말로만 듣던 낙화추영장(落花追影掌)인가? 신묘하다. 손가락이 수십 개는 겹쳐 있는 것 같구나.’
흥미롭다. 그 와중에 자신이 보고 파훼할 수 있도록 손속을 조절하는 마음씨가 고마웠다.
팍!
손바닥을 마주 펼쳐 밀어내듯 튕겨냈다. 내공을 싣지 않았는지 손끝에서 느껴지는 반탄력이 없다시피 했다.
그 때문에 서연이 실었던 내력이 기파처럼 터져나갈 정도였다.
콰아아!
실상은 서연의 생각과는 정반대였다.
“?!”
소검후는 서연의 막대한 내력에 놀라 눈을 부릅떴다. 잠깐 닿았음에도 엄청난 반탄력 탓에 몸이 잠시나마 붕 뜰 정도였다.
만약 서연이 그 빈틈을 놓치지 않고 장법을 내질렀다면 소검후의 갈비뼈는 필시 모조리 분질러졌을 터였다.
‘고절해. 장법만으로는 안되겠어.’
소검후는 얼얼해진 왼손을 몇 번 쥐었다 폈다. 상대의 권장법이 저보다 몇 수는 위라는 사실을 인정한 것이다.
터억.
수준을 가늠했다. 상대는 명백히 자신보다 윗줄의 고수였다.
‘동년배인 줄 알았는데.’
손과 목소리만으로 그리 판단했다. 허나 내공의 양으로 미루어 짐작컨대 절대로 동년배일 수 없었다.
명색이 화산 제일고수의 직전제자다. 화산이 자랑하는 자소단을 복용한 덕에 남들과는 비교할 수 없는 방대한 내공을 지닌 그녀였다. 내공만 놓고 보면 후기지수 가운데에서도 독보적일 정도다.
허나 방금 장법이 교차했을 때 깨달았다.
‘밀려. 압도적으로.’
소검후는 서연의 수준을 구파(九派)의 중견 초고수로 격상시켰다.
소검후는 흐트러졌던 기파를 순식간에 가다듬었다. 작게나마 흐트러졌던 숨이 한순간에 되돌아오고, 손 끝의 목검을 따라 움직이던 진기가 매화처럼 피어올랐다.
화아악!
“낙화검(落花劍)!”
구경하던 백검문주의 여식이 경악 어린 말투로 외쳤다. 상승의 검법은 아니었다. 고작 비무에 화산의 비전을 드러낼 수 없음이다. 허나 피어오른 매화의 수로 유추하건데 막대한 내기가 담겨 있음은 분명했다.
쩌저적!
그 일례로 소검후가 들고 있던 목검에 균열이 가고 있었으니, 그 속에 담긴 진기의 방대함을 엿볼 수 있었다.
“한 번.”
소검후가 짧게 되뇌었다. 목검이 부러지는 것은 중요치 않았다. 단지 검을 한 번만 섞어보는 것으로 충분했다. 어차피 목검은 수없이 많았다.
목검을 든 오른손에 검파(劍波)가 휘감긴다.
‘따갑다.’
서연은 눈살을 좁혔다. 소검후라는 별호답게 그 기세만으로도 피부를 저밀 듯했다.
소검후는 특이하게도 양손잡이었다. 듣자하니 타고난 재능으로 우검좌장을 다룬다 했다. 검격 틈에 장법을 섞을 수 있다는 뜻이다.
호사가들이 말하는 말뿐인 우검좌장과는 격이 달랐다. 화산의 장문인조차 그 고절함을 인정했다. 검후의 직전제자가 될 수 있었던 것도 저 재능 덕이라 했다.
사실상 두 명의 고수를 동시에 상대하는 것과 다름없다.
‘나중에 따로 감사를 표해야겠다.’
고수가 하수와 비무할 때 본신무공을 드러내는 경우는 없다. 굳이 사용하지 않아도 충분히 상대할 수 있기 때문이다.
있다면 상대에게 가르침을 내리고자 할 때뿐이다.
본래 고수의 조언은 아무리 작더라도 하수에겐 깨달음의 단초가 되기 마련이다. 본신 무공을 드러내는 비무라면 오죽하겠는가.
그렇기에 더더욱 사과하려는 진심이 느껴졌다. 처음에 괜한 오해를 했던 것이 미안해질 지경이었다.
서연은 눈 앞을 응시했다. 소검후가 신속한 발놀림으로 다가오고 있었다.
이전의 현란한 보법과는 다른 종류다. 상체를 숙인 채로 정면으로 순식간에 검을 찔러온다.
좌장에는 당장이라도 폭발할 듯한 진기를 머금었다.
화악!
가공할 속도에 돌바닥에서 먼지가 폭발하듯 사방으로 휩쓸었다.
서연 역시 검을 내밀었다. 형편없이 밀리지 않기 위해 전신에서 진기를 끌어올렸다.
‘보인다.’
매화가 피어날 경로가 선명히 보였다. 저를 찔러 파훼하라고 속삭이는 듯 했다.
‘곡지혈(曲池穴)에 내기를 온전히 실어 넣는다면 필시 위력이 곱절은 증폭될 텐데.’
화산 제일기재라는 소검후가 그것을 모를리 없을 터. 분명 고의적으로 힘을 줄였으리라.
하수에 대한 배려가 한량없이 깊다.
‘상냥하여라.’
서연은 소검후의 배려를 거절할 생각이 없었다.
무딘 목검에 순간 날이 섰다는 착각이 들 정도로 찬란한 광채가 흘렀다. 햇살이 반사되며 오색 광채가 사방을 휘감았다.
검면을 쓸어내리며 자세를 잡았다. 서연이 든 목검이 순식간에 쏘아졌다.
쐐액!
광채가 물결치며 몰아치던 매화를 한 점으로 풀어헤친다.
곧바로 쇄도하는 소검후의 좌장을 옆으로 비껴 흘려내고, 몰아치는 검파를 사방으로 흝어냈다.
스아악-!
서연의 팔을 따라 움직인 진기의 파동이 허공에 선을 그려내더니 소검후의 목검을 그대로 양단했다.
쩌억!
동강난 상단부가 힘없이 돌바닥을 굴렀다. 곧 소검후의 손에 들려있던 몸체마저 진기를 견뎌내지 못하고 산산히 부서졌다.
타인이 보기에는 그야말로 찰나에 일어난 일이었다.
구경하던 백검문주의 여식이 웅성거렸다.
“아버지, 보셨어요?”
“으음…….”
백검문주는 대답하는 대신 고뇌하는 척 입을 다물었다. 공방을 제대로 보지도 못했다는 말을 할 수 없었기 때문이다.
“엄청난 공방이었다. 더 붙일 말이 없구나.”
그렇기에 백검문주는 달리 할 말이 없어 그리 둘러댈 수밖에 없었다.
“……!”
화산의 도인들은 눈을 부릅 뜬 채였다. 그중에는 대사저가 외인에게 상해를 입을까 염려하여 당장이라도 뛰쳐나갈 채비를 하던 이도 있었다.
’대사저가……패하셨다고?’
단순히 배분이 높다 하여 대사저로 대접하는 것이 아니었다. 실력으로 강호에 그 위명을 떨쳤기에 마땅히 대접하는 것이었다.
검후의 제자만 아니었다면 진작에 화산이 자랑하는 정예, 매화검수의 일익으로 활약했을 터.
허나 그런 소검후가 고작 두 합 만에 패배했다. 아니, 서연이 손속에 여유를 두지 않았다면 첫 합에 승패가 갈렸을 것이다.
“…….”
소검후는 텅 빈 오른손을 내려다보았다. 방금 전까지 들려있던 목검은 온데간데없고, 손끝에 까끌히 만져지는 나뭇조각만이 그 흔적을 남겼다.
아무리 상승의 검법이 아니었다지만, 단 한 수에 이리 파훼될 것이라고는 꿈에도 몰랐다.
격이 다르다. 스승인 검후에게 가르침을 받을때나 있을 법한 일이다.
“많이 배웠습니다.”
서연이 정중히 포권했다. 그녀는 진심이었다. 이번 대련을 통해 적잖은 영감을 얻었기 때문이었다.
‘내 눈이 생각보다 좋구나.’
평범한 재능으로 검로를 읽어낼 수 있겠는가. 소검후가 손속에 여유를 두어 가능했겠지만, 그럼에도 제 안력이 뛰어나다는 것은 확실했다.
물론 서연의 포권은 다른 이들에게 전혀 다르게 받아들여졌다.
“…….”
몇 수나 뛰어난 고수가 하수에게 배웠단다. 그게 말이 되는 소리겠는가.
당연히 고깝게 들렸다. 다만 그 말투가 너무나도 정중하여 감히 나서는 이가 없을 뿐이었다.
소검후는 천성이 둔한 인물이었기에 그런 미묘한 분위기를 알아차리지 못했다. 아직 배워야 할 것이 많으니 겸손하게 굴라는 뜻으로 돌려 해석할 따름이었다.
그래서 다시 물었다.
“……진검으로 다시 해보고 싶은데, 어찌 생각하시나요.”
필시 진검이라면 몇 합 정도는 더 나눌 수 있을 것이다. 이런 목검으로는 상승의 검법을 펼칠 수 없었기 때문이다.
허나 서연은 고개를 가로저었다.
이미 사과받고도 남을 만큼 깨달음을 얻었다. 저만한 사람이 자신을 위해 두번씩이나 허물을 드러낼 필요가 없다고 여겼다.
“무리하지 않으셔도 됩니다.”
그래서 그렇게 답했다.
물론 이 말 역시 주변 사람들에게는 전혀 다르게 들렸다.
무리하지 않아도 된다? 진검을 들어도 결과는 같을 테니, 그저 얌전히 있으라는 말로 들렸다.
몇몇 도인들이 뒷목을 잡았다. 격한 감정에 열이 오른 탓이다.
“어, 억!”
“실로 오만하다.”
“너무 흥분하지 마. 냉정하게 보면 대사저께 가르침을 베풀었다고 봐야 맞으니까.”
“말투가 거칠 뿐이지, 몸 성히 끝내신 것만 보아도 심성이 악하신 분은 아니다.”
차마 선하다고는 못했다.
화련은 이번만큼은 화산의 도인들에게 뭐라 하지 못했다. 그녀가 느끼는 감상도 엇비슷했기 때문이다. 물론 싫지는 않았다. 스승님이 자신을 저만큼이나 아낀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마음에 안드는 사람을 만나면 내 머리를 쓰다듬게 해야겠다.’
분명 스승님께서 탈탈 털어주실테니 말이다.
화련은 나중에 제 여동생을 만나면 머리부터 들이밀기로 다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