Files
Ex2-novel-agent/content/references/novelpia/363891/37.md
rupy1014 f66fe445bf Initial commit: Novel Agent setup
- Add 3 AI agents (writing, revision, story-continuity specialists)
- Add 4 slash commands (rovel.create, write, complete, seed)
- Add novel creation/writing rules
- Add Novelpia reference data (115 works, 3328 chapters)
- Add CLAUDE.md and README.md

🤖 Generated with [Claude Code](https://claude.com/claude-code)

Co-Authored-By: Claude Opus 4.5 <noreply@anthropic.com>
2025-12-14 21:31:57 +09:00

16 KiB
Raw Blame History

한 사내가 주위를 찬찬히 훑어보다 입을 열었다.

“용문석굴로 향하는 길은 어느 쪽이오?”

그는 특이하게도 죽립으로 얼굴을 완전히 가리고 있었다. 보통 사파 무인들이 제 신분을 감추고자 흑의를 걸치고 그리하는 것과는 사뭇 달랐다.

사내의 의복은 도리어 화려하기 그지없어, 굳이 따지면 마치 유람을 나온 귀공자 같았다.

때마침 지나가던 약초꾼 하나가 답했다.

“지금은 용문석굴에 발을 들이기 어려울 게요. 관군이 길목을 굳게 막고 있소. 허가받은 마차만이 간혹 오다닐 뿐이지.”

“노사나불이 부서져서 그렇다는 소문이 있던데, 과연 그러한가?”

“내막까지는 잘 모르겠소. 나도 소문으로만 들은지라.”

귀공자는 고개를 끄덕이다가 되물었다.

“헌데 요즘은 병사들도 이리 평범한 행색으로 위장하고 다니는가?”

약초꾼은 입을 다물었다. 대신 침묵하며 품 속에서 검을 뽑아들었다. 귀공자는 예상했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과연, 무관이었군.”

“…….”

병사들은 창을 주 무기로 삼는다. 검을 사용한다는 것은, 필시 무과에 급제한 무인이라는 뜻이다.

허나 귀공자는 눈썹 하나 까딱하지 않고 용문석굴이 자리한 산 너머를 지그시 응시했다. 그런 귀공자를 바라보던 약초꾼, 아니 무관이 나지막이 입을 열었다.

“이곳은 관이 행사하는 곳이니, 무림인이면 물러가라.”

약초꾼 행세를 하던 사내는 온데간데없이 사라지고, 특유의 드센 분위기를 풍기는 무관만이 남았다. 곧 근처에서 자연스럽게 위장하고 있던 병사들이 속속이 나타나 귀공자를 에워쌌다.

순식간에 포위된 상황. 허나 귀공자는 아랑곳하지 않고 입을 열었다.

“혹여 빈틈이 있을까 싶어 용문석굴 주변을 전부 살펴보았거늘, 길목마다 이리 병사들이 틀어막고 있더구나. 황상의 군대가 아직 녹슬지 않았다는 것을 알았다.”

“아까부터 대체 무슨 말을―.”

귀공자는 쓰고 있던 죽립을 벗었다. 그러자 기다란 귀와 함께 새파란 눈이 드러났다.

무관은 그의 귀와 미려한 용모를 보고는 청목족이라는 사실을 단번에 알아차렸다.

“……청목족?”

“낙양 부윤 대인과 이미 이야기가 되어 있는 것으로 안다. 길을 열도록.”

곧 무관은 부윤에게 전해들었던 이야기를 떠올렸다. 금룡상단주와 협력하여 비밀리에 청목족을 데려오기로 했다는 이야기 말이다.

“동행인이 있다고 들었소만.”

“발걸음이 너무나 더디기에 먼저 달려왔다.”

청목족의 경신법은 익히 소문이 자자했다. 익히기만 해도 나무와 나무 사이를 자유롭게 오갈 수 있다던가. 대성하면 바람보다 빠르다는 이야기는 강호에 파다했다.

“이것을 보여주면 될 것이라더군.”

곧 귀공자는 품에서 금룡상단의 인장이 새겨진 문서를 꺼내 보여줬다. 거기엔 월중천(月仲擅)이라는 이름과, 금룡상단주의 인장이 찍혀 있었다.

그제서야 무관은 납검했다.

“실례가 많았소.”

월중천은 그런 무관을 물끄러미 쳐다보다가, 무언가 불편하다는 얼굴로 입을 열었다. 이전보다 훨씬 권위 어린 말투였다.

“비록 지금은 낙향하였으나, 내 예전에 지휘사(指揮使)의 직을 맡은 적이 있다.”

무관은 갑자기 그게 무슨 뚱딴지같은 소리냐는 얼굴로 월중천을 올려다보았다.

지휘사라 함은, 위(衛)를 다스리는 최고 지휘관을 뜻했다. 당장 자신들의 최고 상관인 참장(參將)보다도 품계가 높은 것이 지휘사였다.

‘뭔 개소리지.

무관인 이상 당연히 그 정도 되는 고위 무관들의 명단은 전부 꿰고 있었다. 허나 아무리 머리를 굴려보아도 낙양에 그만한 청목족 무관이 있다는 이야기는 들어본 적이 없었다.

사칭죄를 엮어 당장 잡아들여야 하나 진지하게 고민하던 그때, 한 가지 가능성이 무관의 뇌리를 스쳐 지나갔다.

‘예전이라고 했다.

상대는 영생에 가까운 세월을 살아간다는 청목족이다. 그뿐이랴. 종족 자체가 허언을 큰 허물로 여겨 매우 꺼린다고도 했다.

무관은 이전보다 훨씬 정중한 어투로 물었다.

“혹시, 언제쯤 근무하셨는지 알 수 있겠습니까?”

“태황조(太皇祖) 시절이었다.”

현 황상의 고조부 때 관직 생활을 했다는 것이다. 보통이었다면 허언이라 일갈했겠으나, 월중천의 화려한 복식에 당당히 새겨진 흉배(胸背) 탓에 그럴 수도 없었다.

무관은 품계에 맞게 흉배에 수를 놓는다. 지휘사는 웅비(熊羆), 즉 곰의 문양을 수놓았다.

월중천의 옷에 수놓아진 짐승 또한 공교롭게도 곰이었다. 진위 여부는 따질 것도 없었다. 도대체 얼마나 먼 옛날에 수를 놓았는지, 금실로 새겨진 부분을 제외하고는 모든 색이 바래어 있었기 때문이다.

결정적으로, 월중천의 손에는 고위 관료가 아니면 지닐 수 없는 상아로 만든 아패(牙牌)가 들려 있었다.

“시, 실례했습니다!”

곧 무관이 납작 엎드렸다. 월중천은 그제서야 만족스럽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곧 월중천은 용문석굴로 걸음을 옮겼다.


서연은 낙양 부윤이 있는 곳을 찾아갔다.

그의 거처는 묵직하고 고풍스러운 기운이 숨 막힐 듯 감도는 장소였다.

수많은 하급 관리들이 은은한 햇살이 스며드는 격자문 아래에서 붓을 움직이고 있었는데, 특유의 숨 막히는 분위기에 찾아온 이들은 하나같이 압도되어 몸을 웅크리고 있었다.

내로라하는 무인들조차 이곳에선 저도 모르게 입을 다물기 마련인데, 서연의 얼굴은 몹시도 담담했다. 그동안 몇 번 오갔기 때문이다.

저벅.

부윤은 서연이 찾아올 것을 짐작하고 있었다. 노사나불의 복원이 오늘 중으로 마무리될 것임을 예상했기 때문이다.

“부윤 대인.”

“잘 오셨소.”

서연의 인사에 부윤이 마주 답했다. 서로 격식을 차린 인사였다.

부윤은 문득 옛 노사나불의 모습을 떠올렸다.

못해도 수백 년 전에 조각된 불상이다. 아무리 정성을 다해 관리했다 한들, 세월의 풍파 앞에 마모되고 물때가 끼는 것을 막을 수는 없다.

복원하기 전 노사나불 또한 그러했다. 얼굴은 형편없이 부서졌고, 팔과 다리에는 온갖 물때와 이끼가 덕지덕지 피어 있었다.

‘과연, 어찌 바뀌었을까.

아직 직접 확인하지 않았다. 기왕이면 모든 손길이 완성되었을 때, 그 장대한 모습을 한눈에 담고 싶었기 때문이다. 오랜 붕우(朋友)인 금벽산 또한 그리 하기를 권했다.

그렇다고 아예 손을 놓을 수는 없었기에, 수하들로 하여금 매일 복원 진행 상황을 보고하도록 했다.

수하들은 좌정한 노사나불이 자비로움과 위엄을 온전히 되찾았다고 입을 모아 얘기했다.

‘실로 하늘이 내린 솜씨였습니다.

세월을 거슬러 노사나불이 처음 만들어졌을 때로 돌아간 것 같다고 하는 이들이 적지 않았으며, 심지어 아예 원본을 뛰어넘었다고 평하는 이들까지 있었다.

매일 귀로 소식을 전해 듣는 것도 하루 이틀이지, 이쯤 되니 부윤도 근질거리는 몸을 참기 힘들었다. 당장이라도 달려가 그 웅장한 자태를 확인하고 싶다는 마음을 애써 삼킨 적이 적지 않았다.

“본관을 찾아왔다는 것은, 드디어 노사나불이 제 모습을 찾았다는 뜻으로 이해해도 되겠소?”

“그렇습니다.”

서연이 담담하게 대답하자 부윤의 표정은 더욱 환해졌다. 부윤의 오랜 경험상, 저리 미사여구를 떼고 간결하게 말하는 사람일수록 기가 막힌 작품을 보여주곤 했기 때문이다.

수하들의 보고를 통해 이미 진행 상황을 낱낱이 알고 있었음에도 그러했다.

못해도 반 년, 길면 몇 년까지도 예상했던 대업을 조속히 마무리지었으니, 참으로 큰 은혜를 입은 셈이었다.

낙양 부윤 자리는 본래 성(省)을 다스리는 총독이 되기 전 거치는 필수 관문이나 마찬가지였다. 이렇다 할 큰 사건만 터지지 않는다면, 몇 년 후 하남의 실권자가 되는 것은 따놓은 당상이라는 뜻이다.

서연 덕분에 노사나불 복원이라는 대업을 성공적으로 마무리했으니, 민심이 흔들릴 일도 없고, 흠잡힐 일도 없었다. 부윤은 만족스럽게 고개를 끄덕였다.

붕우인 금벽산에게 듣자하니, 서연은 재물에 크게 연연하지 않는다고 했다. 그렇다면 무엇으로 보답해야 할까. 곧 보답으로 적절한 것들이 부윤의 뇌리를 스쳐 지나갔다.

석공이니만큼 물욕은 없을지라도 진귀한 재료 욕심은 있으리라. 아예 운남 대리석 광산의 출입 허가서를 주는 것도 괜찮을 듯싶었다. 여러 곳을 거닐 테니 역참 통행첩도 쓸모가 있을 테고, 아예 명예 관직을 부여하는 것도 좋은 방안일 것 같았다.

잠시 고민하던 부윤은 머잖아 결론을 내렸다.

‘그냥 전부 주어도 되겠다.

금은보화를 주는 것보다 더한 가치를 가진 것들도 많았으나, 부윤은 본래 통이 큰 사내였다. 은혜를 입었다면 몇 배로 베풀어야 면이 섰다. 더욱이 서연이 이러한 권한들을 사사로이 쓰지 않으리라는 확신도 있었다.

곧 하급 관리가 품에 무언가를 잔뜩 안고 와서는 서연 앞에 섰다. 멀뚱히 서 있는 서연에게 부윤이 말했다.

“받으시오.”

“네.”

서연은 눈치껏 가장 위에 있는 문서를 집어 들었다. 낙양 부윤의 인(印)이 선명하게 새겨진 문서였다.

그곳에는 이렇게 적혀 있었다.

‘낙양 도감 서연(洛陽 都監 徐蓮).

낙양에서 으뜸가는 장인이라는 증표이자, 한 대업을 총괄한 최고 책임자에게 주어지는 지극한 예우였다.


서연이 떠난지 두 시진 정도 지났을 때였다.

낙양 부윤은 제 붕우인 금벽산을 기다릴 겸, 서연이 정리했던 서책을 펼쳤다. 사실 서책을 필사하라 명한 데에는 별다른 의도가 없었다. 훗날 이와 같은 일이 생겼을 때 대비도 하고, 기록도 남길 겸 그리 명했던 것이다.

서연이 남긴 책은 총 두 권이었다. 한 권은 비연천공이었고, 다른 하나는 순전히 복원의 기록만을 담은 복원록(復元錄)이었다.

부윤은 옅게 웃었다.

‘무슨 이름을 무공서처럼 지어놓았군.

쓸데없이 장황한 이름과는 다르게, 그 필체만큼은 유려하고 힘이 넘쳤다. 부윤은 속으로 감탄하며 복원록의 첫 장을 펼쳐 들었다.

그러다 이내 입을 다물었다.

[세 치 간격으로 코의 너비를 잡고, 미간에서부터 곧추솟은 콧날은 두 치 육 푼으로 한다.

그 가장자리를 반 치만 끌어올려 깊이를 더하면 입술은 두텁되 자비로운 미소를 머금도록 할 수 있다. 혹 이 조절이 어렵거든 전곡혈(前谷穴)을 맞대어 가늠하면 도움이 된다.

눈꼬리는 반 치 살짝 올려 위엄을 더하고, 귓불은 어깨에 닿을 듯이 다섯 치 길게 늘어놓는다.

목의 삼도(三道)는 깊이를 일 푼으로 하면 보다 섬세하게 작업할 수 있다. 이때 우수(右手)라면 외관혈(外關穴)과 태연혈(太淵穴)에 힘을 균일히 주어 운용하는 것이 좋다.

불상의 전신을 이와 같은 간격으로 비례를 맞춘다면, 그 크기가 어떠하든 완벽한 균형을 이룰 것이다.]

“…….”

부윤은 아무런 말도 하지 못하고 복원록을 덮었다. 더 볼 필요도 없었다.

‘……사람의 눈썰미가 아니다.

당장 아무 석공에게 이 복원록을 보여준다면, 그들 또한 노사나불을 능히 재현해낼 수 있을 거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 정도로 정밀하고 세세하게 기록되어 있었다.

평생 조각이라고는 해본 적 없는 자신조차 어설프게나마 따라 할 수 있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 정도였으니 말이다.

부윤은 양손으로 얼굴을 쓸어내렸다.

곧 그의 시선이 비연천공으로 향했다. 서연이 말하기를, 견문이 부족하여 아직 다 만들지 못했다고 했다.

미완성본이라 하여 필사를 하지 않을 수는 없었다. 그렇기에 부윤 앞에 놓여 있는 것이다.

부윤은 그새 말라붙어버린 입술을 깨물었다.

‘진정 견문이 부족했을까? 이만한 오성을 가진 존재가?

그럴 리가 있겠는가.

귀신에게 홀린 듯한 기분이었으나, 이쯤 되니 확인하지 않고서는 배길 수 없었다.

부윤은 떨리는 손으로 종잇장을 넘겼다. 이전보다 훨씬 조심스러운 기색이었다.

적막 속에서 책장 넘기는 소리만 조용하게 울려퍼졌다.

부윤은 무공을 익히지 않았다. 문관이었기 때문이다. 허나 그렇다고 해서 안목까지 없는 것은 아니었다. 오히려 여타 관리들과는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많은 비급을 탐독한 것이 그였다.

그랬던 부윤의 입술이 푸들거렸다. 책장을 넘길수록 더욱 그러했다.

‘어찌, 어찌 이런…….

구결을 탐독할수록, 감당할 수 없는 물건이 손에 들어왔다는 것을 실감했다. 무림인이 아닌데도 그랬다.

끝내 빈 종이에 도달했을 때, 부윤은 저도 모르게 탄식했다.

“아!”

그는 어느새 빨갛게 충혈된 눈을 비볐다.

‘제기랄.

도대체 무슨 생각으로 이만한 서책을 아무렇지 않게 넘겨줬단 말인가!

그것도 미완성본을!

무공서라는 것을 떼놓고 보아도 얻을 것이 많았다. 마치 옛 학자들이 손수 적어 내려간 고서를 읽는 심정이었다.

번뇌가 절로 피어올랐다. 코앞에 진미가 놓여 있는데 먹지 못하는 기분이었다.

‘실로 신공이라 칭하기에 부족함이 없다.

미완성인데도 그랬다.

파사현정의 기운이 서려 있기에, 도가나 법가의 정순한 내공을 쌓은 이가 아니라면 입문조차 불가능했다. 불순한 마음을 품고 익히려 한다면, 그 즉시 기혈이 뒤틀려 의념부터 망가지기 때문이었다.

애초에 운기의 경로조차 나와 있지 않은 탓에, 종사인 서연의 도움 없이는 익히는 것 자체가 불가능했다.

서연 또한 그것을 알았기에 이리 쉽게 내어주었으리라.

'그렇다고 붙잡을 수도 없다.'

이만한 서책을 아무렇지 않게 내놓고 간 위인이 과연 관군에게 잡힐 리 만무했다.

자신이 서연을 위해 원 없이 베풀었듯, 서연 또한 자신에게 아낌없이 그리한 것이라 여길 수 밖에 없었다.

'안타깝다. 진작 이 서책부터 읽어봤을 것을.'

그랬다면 간단한 문답이라도 나눌 수 있었을 터인데.

부윤은 그 사실이 못내 아쉬웠다.

그때 웬 귀공자가 문을 다급히 박차고 들어왔다.

월중천이었다.

복원된 노사나불을 마주하고 왔는지, 냉철하고 고고하다는 청목족답지 않게 초조함으로 가득한 기색이었다.

곧 둘의 시선이 마주쳤다.

둘은 서로가 무슨 생각을 하고 있는지를 눈빛만으로도 알았다.

“…….”

두 사람은 아무 말도 하지 못하고 그저 탄식만 뱉어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