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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5-12-14 21:31:57 +09: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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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aw Blame History

다음날, 서연은 곧장 각예대회가 열리는 광장으로 향했다.

본디 오가는 인파로 북적이던 광장을 대회용으로 개조하여, 수백 명의 장인이 동시에 기량을 펼칠 수 있도록 너른 터를 마련한 것이었다.

아침 이른 시각이었음에도 이미 인산인해를 이루고 있었다. 볼거리가 귀한 시대다. 금룡상단에서 대회를 연다 하니, 강호의 무인들은 물론 평범한 백성들까지 구름처럼 몰려와 구경하려는 것이었다.

거리에선 어느새 주전부리를 파는 행상들의 우렁찬 목소리가 울려 퍼지고, 한쪽에는 길게 늘어선 줄이 보였다. 줄을 선 이들은 하나같이 손에 세월의 흔적이 깊게 새겨진 상처들을 달고 있었는데, 하나같이 장인이라고 불리기에 부족함이 없는 분위기를 풍겼다.

뛰어난 석공일수록 손에 부르튼 상처가 많다. 야장의 손이 굳은살로 뒤덮이는 것과 같은 이치였다.

서연이 그 줄에 서자, 주변에 있던 사람들의 시선이 서연에게 달라붙었다. 누가 봐도 의구심으로 가득한 얼굴이었다.

눈빛만 보아도 무슨 말을 하려는지 넉넉히 짐작할 수 있을 정도였다.

‘여인이?

허나 줄을 잘못 섰다고 나서서 꾸짖는 이는 없었다. 서연의 허리춤에 매인 끌과 망치 같은 조각 도구들이 매달려 있었기 때문이다.

곧 사람들은 서연에게서 관심을 털어냈다. 겉모습만 번지르르한 이들은 스스로 도태될 것이 자명했기 때문이었다. 서연도 그러리라 여겼다.

서연은 화련의 손을 잡은 채로 접수대로 다가가 신상명세를 말했다.

“하남성 태실산? 산골짜기에 사는 사람도 다 있군. 이름은 서연, 맞소?”

“예.”

“옆에 있는 나무 조각 하나 들고 가시오.”

접수원 옆에 놓인 책상에는 네모난 나무토막이 수북이 쌓여 있었다. 서연은 그중 하나를 집어 들고는 발걸음을 옮겼다.

서연은 손바닥만 한 나무토막을 만지작거리며 생각에 잠겼다.

‘참나무다.

손에 꼽을 정도로 단단한 나무였다. 나뭇결 또한 거칠어 다루기가 매우 까다로운 재료에 속했다.

‘이걸로 거르려나 보다.

어디 석공이라고 나무를 다루지 못하겠는가. 자고로 뛰어난 조각가는 재료를 가리지 않는 법이다.

귀한 감람석을 아무에게나 내어줄 수는 없었을테니 말이다.

서연은 곧 안내받은 천막 안으로 들어섰다. 시험을 주관하는 감독관이 서연을 책상 앞으로 이끌었다. 기이하게도 금룡상단의 상단원과 관아의 관리가 나란히 앉아 있었다. 감독관인 모양이었다.

감독관이 말했다.

“일다경 안에 나무토막을 원형으로 깎아내면 되오.”

“일다경이요?”

“완벽한 구체일 필요는 없소. 우리가 세워둔 기준만 넘으면 합격이고, 그러지 못하면 불합격이오.”

서연은 안도했다.

겉면까지 완벽하게 다듬지 않아도 된다는 뜻으로 해석했기 때문이었다.

‘그 정도면 충분하지.

이 시험 주제를 듣고 적잖은 석공들이 절망했음을 몰랐기에 나올 수 있는 생각이었다.

나무토막을 쥔 서연의 손이 힘차게 움직였다.

재료의 단단함은 서연에게 큰 의미가 없었다. 서연은 나무토막을 한 손으로 단단히 고정한 다음, 조각칼을 들고 거침없이 깎아내기 시작했다.

“빠르다!”

“어찌 여인이 저런 속도를 낸단 말인가?”

주변에 서 있던 몇몇 사람들이 감탄사를 터뜨렸다. 그들 중에는 시험에서 난항을 겪고 있던 조각가들도 있었다.

“……무슨 사과 껍질을 깎는 것 같군.”

옆에서 지켜보던 감독관들조차 감탄을 감추지 못했다.

일다경이라는 촉박한 시간을 주었건만, 서연은 그 사분의 일도 되지 않는 시간에 온전한 구체의 형태를 만들어냈다.

그것으로도 모자라 아교와 모래로 만든 사포로 겉면을 매끄럽게 다듬고 있었다.

“그만해도 좋소. 통과요!”

“통과라뇨?”

“기준을 한참 초과했소. 애초에 겉면을 다듬는 것까지 상정하지 않았소.”

감독관은 서연이 만들어낸 구체를 보고 혀를 내둘렀다. 이내 그것을 책상에 올려놓고 약간 힘을 주어 밀어냈다. 곧 구체는 구슬처럼 또르르 굴러갔다. 한 번쯤 걸리는 면이 있을 법도 했건만, 굴러가는데 막힘이 없었다.

“혹시 스승이 있으시오?”

극찬이었기에 서연은 웃으며 고개를 가로저었다.

감독관은 그것을 사문을 알리고 싶지 않다는 뜻으로 받아들였다. 설마 독학으로 이만한 경지에 오르리라고는 상상하지 못했던 탓이다.


첫 시험에서는 무려 절반이나 걸러졌다. 다행히 두 번째 시험은 없었다. 금룡상단에서 준비한 감람석의 수보다 남은 장인의 수가 적었기 때문이다.

첫 관문을 통과한 석공들 중, 평소 친분이 있는 이들은 이동하는 틈을 타 삼삼오오 모여 이야기를 나누었다.

“보아하니 섬세함보다는 속도를 중시하는 듯하더이다.”

“아무래도 노사나불을 하루빨리 수리해야 하니 그러했겠지. 괜히 감람석으로 주제를 바꿨겠는가?”

“여럿이서라면 모를까, 혼자서라면 몇 달은 족히 걸릴 작업인데.”

개방된 너른 공간에는 사람 수에 맞춰 감람석 덩어리들이 놓여 있었다. 서연의 상체보다 조금 컸는데, 그 색깔과 질감을 보아하니 하나같이 최상품이었다.

화련은 인파의 접근을 막기 위해 쳐둔 울타리 바깥에서 작은 손을 흔들고 있었다.

“힘내세요!”

서연은 픽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들어온 사람부터 맨 앞줄에 서는 방식이었는데, 서연의 자리는 공교롭게도 정가운데였다. 다른 석공들이 온통 진한 색의 옷을 입고 있어 그런지, 흑돌 사이에 놓인 백돌처럼 유독 눈에 띄었다.

곧 강단 앞에 후덕한 풍채의 노인이 나타났다. 금룡상단주였다. 거대한 상단을 이끄는 자는 아무나 되는 것이 아닌지, 성품 좋아 보이는 얼굴 너머로도 이유 모를 위압감이 느껴졌다.

그는 석공들을 예리한 시선으로 살핀 다음 입을 열었다. 무공을 익힌 모양인지, 작게 말했음에도 그 목소리가 좌중에 울렸다.

“당장 시작하시면 되겠소. 숙식은 금룡상단에서 책임지겠소이다.”

그때 석공 하나가 손을 들어 외쳤다.

“기간은 어떻게 되는 겁니까!”

금룡상단주는 그럴 질문이 나올 것을 예상했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기간 제한은 없소. 주제도 상관없소. 다만, 속(速), 정(精), 의(意) 세 분야에 비중을 두어 판단할 것이오.”

각각 속도와 정교함 그리고 조화로움을 이야기하는 것이다.

“단순히 빠르게만 만들어 내면 실격이오. 무릇 작품으로 인정받을 만할 수준이어야 하외다. 그렇다고 너무 오래 걸려도 좋은 점수를 받기는 힘들 것이오. 다들 지역에서 내로라하는 장인들일테니 이 말을 이해했을 것이오. 그럼.”

금룡상단주는 그렇게 말하고는 단상 아래로 내려왔다. 구경꾼들이 있는 곳이 아니라, 석공들이 있는 방향으로 말이다.

코앞에서 직접 보고 판단하겠다는 뜻으로 여겨졌다.

천하에서 내로라하는 상단주의 안목이 손꼽힐 정도로 뛰어날 것은 당연한 이치. 그것에 딴지를 거는 석공들은 없었다.

금룡상단주는 여유로운 걸음으로 앞줄부터 차례로 흝어나갔다. 본래 첫날에는 이렇다할 볼거리가 없다. 전체적인 그림을 그려야 하기 때문이다. 허나 속도를 평가 기준으로 내세운 탓에, 다짜고짜 끌부터 치켜드는 이들도 적지 않았다.

석공 하나를 쳐다보던 금룡상단주가 속으로 혀를 찼다.

‘이쪽은 볼 것도 없군.

아마도 감람석을 다뤄본 경험이 없던 모양이다. 단단하다고 하여 너무 강하게 힘을 줘버리면 덩어리째로 떨어져 나가는 것이 바로 감람석이었다. 경험이 없으면 제대로 다루는 것이 불가능하다는 뜻이다.

저렇게 실수할 바에는 차라리 한 걸음 물러나서 고뇌하는 편이 현명하다고 할 수 있겠다.

금룡상단주는 돌아다니면서 제 수하들에게 은밀히 전음을 뿌렸다.

  • 8번, 5점 감점하게.

  • 11번도 5점 감점.

  • 18번도 5점 감점.

금룡상단주는 가차없이 평가했다. 노사나불을 새로 만들어야 하는 중차대한 일이다. 실력이 뒤떨어지는 자에게 맡길 바에는 차라리 머리가 부서진 채로 내버려두는 편이 나았다.

이따금 금룡상단주는 걸음을 멈췄는데, 그때마다 구경꾼들도 해당 장인의 작품을 유심히 지켜보았다.

다듬는 속도가 거침이 없으면서도 두드리는 힘이 일정하다. 뛰어난 장인은 정을 두드릴 때 소리부터 다르다. 경지에 올랐다는 뜻이다.

  • 43번은 3점 가산하게.

서 있는 자리가 곧 번호였다. 금룡상단주는 이따금 고개를 끄덕이기도, 때로는 옅게 감탄하기도 했다.

그러다가 중간 쯤에서 걸음을 멈춰 섰다.

그곳에 한 여인이 서 있었다. 각예대회에 참가한 유일한 여인이었다.

‘셋째가 말했던 여 석공이 저자였나?

여인은 깊이 고뇌하는 모양인지, 감람석 덩어리를 뚫어져라 응시하고 있었다.

‘생각이 복잡해질 만도 하지. 애초에 여인의 몸으로는 다루기 힘든 재료니.

왜 야장이 대부분 남성이겠는가. 힘이 많이 들기 때문이다. 석공도 마찬가지다. 여인이 하기엔 벅찬 작업이 수두룩했다. 단단한 감람석이라면 더 말할 것도 없었다.

이윽고 서연이 정과 망치를 치켜들었다. 그리고는 일말의 망설임 없이 정질을 시작했다.

똑-!

마치 옥을 두드리는 듯 청량한 소리가 울렸다. 순간 금룡상단주의 눈에 이채가 서렸다.

다른 석공들을 마저 살피려던 금룡상단주는 고개를 돌려 다시 서연을 응시했다.

곧 금룡상단주는 서연이 무얼 하려는지 이해했다.

‘환조(丸彫)로구나.

사방에서 감상할 수 있도록 조각하는 기법을 말한다. 입체감이 온전하지만, 모든 면을 온전히 깎아내야 하기에 한 면만 깎아내는 일반적인 방법보다 몇 배는 까다로운 기법이었다.

본디 조각은 부산스럽고 번잡한 작업이다. 당장 주변에서도 정(釘) 울리는 소리에 귀를 막는 행인들이 적지 않은 것만 보아도 알 수 있었다.

똑, 똑, 똑-!

허나 저 여인은 달랐다.

요란스럽지 않고 청아했다. 돌이 아니라 옥을 부딪치는 것 같았다. 그런데도 그 소리가 작지 않아, 듣기 좋은 소리가 사방으로 울려 퍼졌다.

금룡상단주는 어느새 작품에 몰입한 채로 서연을 바라보았다. 저도 모르는 사이에 처음보다 몇 걸음 가까이 다가가 있었다.

감람석 덩어리의 형상은 조금씩 바뀌었다.

처음에는 그저 거대한 덩어리였다. 도대체 얼마나 큰 그림을 그리고 있는지 가늠조차 되지 않을 정도였다.

곧 하나의 덩어리가 세 개의 산봉우리 같은 모양으로 변모했다. 처음에는 대자연을 그려내려나 했다. 봉우리를 먼저 만들고, 거기에 배경 그림을 양각(陽刻)할 때 일반적으로 그러했기 때문이었다.

그러다 금룡상단주는 자신이 완전히 틀렸음을 깨달았다.

‘아!

봉우리를 만드는 것이 아니었다. 비록 지금은 희미했으나, 봉우리 하단에서부터 가부좌를 튼 무릎과 다리의 형태가 차차 드러나고 있었다.

‘삼신삼세불(三身三世佛)이다.

세 가지 몸을 지닌 세 분의 부처라는 뜻. 굳이 봉우리를 세 개씩이나 만든 것도 이 때문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처음부터 봉우리마다 부처를 새기려 했던 것이다.

금룡상단주는 숨죽인 채 감람석을 응시했다.

서연의 손이 움직일 때마다 봉우리 위에 옷이 그려진다. 가늘게 물결치고 주름진 옷이다. 어찌나 정교한지, 누가 실제 옷을 입혀놓았다는 착각이 들 정도였다.

고개를 쭉 빼고 지켜보던 금룡상단주는 감탄을 금치 못했다.

‘어찌 이렇게 짧은 시간에…….

그렇게 생각하며 고개를 치켜들었는데, 어느새 세상이 까맣게 물들어 있었다.

금룡상단주는 저도 모르게 입을 뻐끔거렸다. 등에 흥건한 식은땀과 시큰거리는 무릎이 몇 시진 동안이나 몰입하고 있었음을 알려주었다.

고개를 돌리자 수많은 상단원들이 자신을 염려스러운 듯 쳐다보고 있었다.

“……상단주님? 괜찮으십니까?”

걱정하는 듯한 어투로 묻는 상단원을 보고, 금룡상단주는 터져 나오려는 헛웃음을 가까스로 틀어막았다.

“내가 얼마나 이러고 있었나?”

“여섯 시진이 조금 넘었습니다. 아무리 여쭈어도 대답이 없으셔서, 선 채로 정신을 잃으신 줄 알았습니다.”

농담하는 표정이 아니었다.

금룡상단주는 헛웃음을 짓다가 다시 서연이 있는 방향으로 고개를 돌렸다.

똑-!

시끄러웠던 시험장에서 오직 서연의 정질만이 청아하게 울려퍼지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