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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5-12-14 21:31:57 +09:00

14 KiB
Raw Blame History

화련은 경공을 펼치며 무림맹원들의 대화에 귀를 기울였다.

“회화루 위치는 파악했나?”

“저쪽 길목이 가장 빠릅니다. 험한 산길이라 필마(匹馬)로 가는 것보다 경공을 펼치는 편이 배는 빠릅니다.”

장산의 말이 이어졌다.

“내가 최선두에 서고, 제갈혜는 최후미를 맡는다. 나머지 진형은 자유롭게 하되, 혹 아이가 뒤처지거든 가장 가까이 있는 자가 업고 속행해라.”

화련은 짤막하게 고개를 끄덕였다.

“배려해주셔서 감사해요. 그래도 혼자 갈 수 있어요.”

염이산이 헛기침하며 부연했다.

“염려치 않으셔도 될 듯합니다. 화련이가 저보다 빠릅니다.”

“진심이냐?”

“예.”

“너는 임무 끝나고 개인 훈련이다.”

“……예.”

장산은 화련과 잠깐 눈을 마주쳤다. 둘 다 아무런 말이 없었기에, 장산이 다시 물었다.

“속도를 더욱 높이려고 하는데. 따라오기 벅차면 언제든 말하도록 하거라.”

“벅차면 말씀드릴게요.”

“알겠다.”

장산이 고개를 끄덕였다.

“최대한 빨리 가자. 특이사항이 있거든 즉시 고하고. 혹여 사마외도를 마주치게 되면 최우선적으로 아이부터 보호하도록.”

곧 무림맹원들이 속도를 높였다. 화련은 어렵지 않게 그들을 뒤따랐다. 옛날부터 경공 하나만큼은 자신있었기 때문이다.

장산은 처음에는 화련을 힐끔거렸으나, 그녀가 아무렇지 않게 뒤따르는 것을 보고는 이내 경공에 집중했다.

“…….”

대화는 일절 없었지만, 어떤 상황인지 눈치채는 것은 그리 어렵지 않았다. 이따금 드러나는 무림맹원들의 심란한 얼굴이 모든 것을 설명해주고 있었기 때문이다.

지금은 그나마 나았지만, 염이선이 스승님의 일을 장산에게 고했을 때까지만 해도 맹원들은 거의 공황에 걸린 사람처럼 반응했었다.

그게 사실이냐, 진짜 사실이냐, 참말로 사실이냐, 출발하신지는 얼마나 되셨냐, 뭐라 말씀하셨냐 등등.

그러다 이내 체념했는지 눈을 질끈 감고 땅이 꺼져라 한숨부터 내쉬었다. 칼에 맞아도 신음 한 번 내지 않을 것처럼 생긴 무인들이 그리 반응하니 그 파장이 더욱 크게 다가왔다.

주변에 있던 다른 맹원들도 탄식하기는 마찬가지였다. 그들은 무어라 말하려다, 화련이 옆에 있다는 사실을 깨닫고는 입을 싹 다물었다. 무슨 이야기를 하려 했는지는 알 수 없었으나, 대충 윗사람에 대한 한탄 비슷한 것이리라 화련은 짐작했다.

분위기가 딱 그러했기 때문이다.

사람들이 살다 보면 윗사람의 험담 정도는 할 수 있는 법이라 여겼기에, 화련은 대수롭지 않게 넘겼다.

오히려 괜히 중간에 끼어 고생하는 듯 느껴져 안타까운 마음이 들기도 했다. 어디 스승님이 보통 사람인가. 만약 입장이 바뀌어 자신이 무림맹원이었다고 생각하면 정말 끔찍할 것 같았다.

잠시 후 화양현에 도착한 화련이 제일 처음 본 것은, 팔이 부러져 바닥을 빌빌 기어대는 흑도의 졸개들이었다.

장산은 흑도들을 힐끗 쳐다보더니 손을 까닥였다.

“잔챙이들이다. 살려두신 이유가 있을 터이니 빠르게 제압하고 속행한다.”

곧 무림맹원들은 도주하려는 흑도들에게 전광석화처럼 달려들어 검집채로 내리쳤다.

일단은 기절만 시켜놓고 나중에 와서 거둬들이기로 하고, 무림맹원들은 회화루가 있는 곳으로 발걸음을 재촉했다.

막 현에 들어서렸는데, 팔이 부러진 한 사내가 다급히 달려왔다. 방금 만났던 흑도들과 같은 부류인가 싶어 제압하려던 찰나, 사내가 입을 열었다.

“무림맹 분들 되십니까? 소인은 회화루의 매 각주라 합니다. 이름 모를 여고수께서 맹원분들을 뵙게 되면 관아로 가서 포쾌(捕快)들부터 데려오라 명하셔서 이리 전해드립니다.”

뜬금없는 말에 장산이 미간을 좁혔다. 언뜻 듣기엔 그럴듯했으나, 흑도의 말을 곧이곧대로 믿을 수 없었기 때문이다.

장산이 믿지 못하는 기색을 보이자, 매 각주가 다급히 덧붙였다.

“정 믿지 못하시겠다면 절 포박하시고 두세 분만 따라와주시면 안되겠습니까? 그분의 분노를 감당키 어려울 것 같아서 그럽니다.”

“…….”

그쯤 되니 장산도 매 각주의 말을 진지하게 받아들일 수밖에 없었다. 이미 한 번 실수를 저지른 상황이었다. 아니, 예전에 태실산에서 벌어진 일까지 치면 이번이 두 번째였다.

만약 이번에도 실수하면?

참을 인 세 번이면 살인도 면한다는데, 마침 이번이 세 번째였다.

곧 장산의 시야에 노망난 노강호가 자신들을 매타작하는 모습이 환영처럼 아른거렸다.

“……일단 관아부터 들르지.”

이에 반대하는 사람은 단 한 명도 없었다.


“네놈들을 어찌해야 좋을까.”

제 앞에 넙죽 엎드려 있는 수십 명의 흑도를 보며 서연이 나지막이 읊조렸다. 지금이 바로 인생의 아주 중요한 기로라고 생각했다.

‘무작정 패는 것도 상책은 아니다.

작금의 행동이 앞으로의 방향성을 결정한다고 보았기 때문이다.

그때 한 놈이 조심스레 입을 열었다.

“살려주시면 무엇이든 하겠습니다.”

“허면 네 양쪽 다리부터 부러뜨려 보아라.”

“…….”

놈은 언제 그랬냐는 듯 입을 다물었다. 사내다운 강단이라곤 없는 놈들이었다. 애초에 기대도 하지 않았기에, 서연은 한숨조차 내쉬지 않았다.

서연은 공력을 끌어올린 다음, 검집채로 내리쳐 놈의 양쪽 다리를 부러뜨렸다. 우두둑 소리와 함께 고통을 견디지 못한 놈이 기절했다. 그제야 서연은 원래 자리로 돌아왔다.

“지키지 못할 말은 입에 담지도 마라.”

흑도들의 안색이 다시 창백해졌다.

“사람을 해친 적 없는 놈들은 손을 들어라.”

“……그러면 살려주시는 겁니까?”

서연은 질문한 흑도 놈을 노려봤다. 방금 전 질문했던 놈이 어떻게 되었는지 보았을텐데도 저런 질문을 할 정도로 눈치 없고 멍청한 놈들 투성이였다. 서연은 흑도 조무래기들에 대한 평가를 짐승보다 살짝 아래로 하향 조정했다.

“일단 거수해라.”

서연이 그렇게 덧붙이자, 눈치를 보던 흑도 몇몇이 슬금슬금 손을 들었다. 수를 세어보니 십 분의 일에 살짝 못 미쳤다.

서연은 그들의 면면을 훑어보다가, 옆에 서 있던 여인들에게 물었다. 회화루주를 쓰러뜨리고 갇혀있던 기녀들을 여기까지 데려온 것이었다. 개중에는 예화가 찾던 영영이란 아이도 있었다.

“저 중에 거짓을 고하는 자가 있다면 말씀해주십시오.”

“…….”

기녀들은 후폭풍이 두려웠는지 입을 다물었다. 서연은 이해한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모두 고개 숙이고 눈 감아라.”

눈치를 보던 흑도들은 서연이 검집을 만지작거리자 망설임 없이 고개를 처박았다. 서연은 다시 기녀들에게 물었다.

“손짓이나 눈짓으로 알려주셔도 됩니다. 눈치 볼 필요도 없습니다.”

그제서야 기녀들이 한 놈을 가리켰다. 주변 눈치를 보다가 세 번째에 손을 들었던 놈이었다.

“……염치도 없는 놈이었구나.”

서연은 발검한 채 놈에게로 성큼성큼 다가갔다. 이상한 낌새를 눈치챈 놈이 화들짝 놀라 고개를 치켜들었지만, 이미 늦어도 한참 늦은 후였다.

뻐억― 소리와 함께 놈의 몸이 그대로 땅바닥에 처박혔다. 굉음에 몇몇 흑도 놈들이 움찔거렸지만, 마른침만 삼킬 뿐 움직이는 놈은 하나도 없었다.

서연이 다시 입을 열었다.

“여인을 납치하거나, 겁탈하거나, 능욕한 적이 없는 놈은 일어나라.”

방금 전 일을 겪어서인지, 이번에는 일어난 사람이 고작 한 명뿐이었다. 공교롭게도 방금 전 일어났던 놈들 중 하나였다. 서연은 다시금 기녀들을 쳐다봤다.

기녀들은 이번에는 고개를 가로저었다.

“저희들한테는 잘 해줬어요.”

“가끔씩 식사에 당과도 넣어줬어요.”

제법 제대로 된 놈이었다. 이제 보니 나이도 어린것이, 흑도에 몸을 담은 지 그리 오래되지 않아 보였다.

“너는 저쪽 구석으로 가라.”

“……알겠습니다.”

감사하다는 말을 하지 않은 것도 마음에 들었다. 최소한의 염치는 있다는 것이다.

그렇게 몇 번의 문답을 반복하다 보니, 얼추 인간과 짐승의 경계가 뚜렷이 드러났다. 그때, 조용히 지켜보던 기녀 하나가 슬며시 입을 열었다. 유독 앳되어 보이던 기녀였다.

“저, 여고수님. 혹시 저희는 이제 어떻게 되나요? 쫓겨나나요? 회화루가 사라지면 저희가 갈 곳이 없어서요. 할 줄 아는 게 춤이랑 노래밖에 없거든요.”

맥락 없는 질문에서부터 어린 나이가 느껴졌다.

“옛날에 살던 곳으로 돌아가도 또 팔릴거에요. 예전에 매향각에서 일했을 때도 그랬어요. 포쾌들이 들이닥쳐서 저희들을 다 풀어주고, 고향으로 돌아가라고 노잣돈도 줬었는데, 아버지한테 노잣돈도 빼앗기고 다시 팔렸어요.”

기녀는 울먹거리지도 않았다. 이런 삶에 익숙해진 까닭이었다.

문득, 힘이 없으면 행복조차 누릴 수 없는 시대라는 생각이 들었다.

흑도가 사라지면 그 자리에 새로운 흑도가 생긴다.

회화루 또한 마찬가지였다. 불태워 없앤다 한들 머지않아 이름만 바꾼 새로운 회화루가 생겨날 터였다.

“…….”

서연의 고민이 깊어졌다.


“이쪽으로.”

매 각주는 살면서 이런 일이 있을까 싶었다.

‘살다살다 무림맹원들과 포두를 동시에 안내하게 될 줄은.

포쾌들을 이끄는 자가 바로 포두였다. 비록 작은 현의 포두이기는 하나, 엄연히 무공을 익힌 무관이었다.

평소 제 실력에 대한 자부심이 대단한 인물이었는데, 무림맹원들을 마주하고는 입을 꾹 다물고 있는 것을 보니 맹원들의 역량에는 미치지 못했던 모양이다.

사실 관아로 들어서자마자 체포될 줄 알았다. 애초에 그럴 각오로 갔었다. 허나 정신을 차려보니, 선두에 서서 길을 안내하고 있는 기묘한 상황이었다.

‘모르겠다. 죽으면 죽겠지.

이미 반쯤 내놓은 목숨이었다. 체념한 매 각주는 회화루의 정문으로 들어섰다. 은밀히 움직일 필요가 없었기에 이쪽으로 들어온 것이다. 비밀통로가 있다는 것도 미리 일러두었으니, 누가 도망칠 것을 염려할 필요도 없었다.

회화루는 고요했다. 본래 포쾌들을 이만큼 끌고 왔다면 누구라도 반응했을 터인데 말이다.

‘그새 다 죽은건가.

그만한 여고수라면 그리하고도 남았을 것 같긴 했다. 회화루주가 이 현에서는 강했으나, 현 밖으로 나가면 삼류라는 사실을 매 각주는 잘 알고 있었다.

그런 생각을 하며 최상층으로 올라가자, 예상과는 전혀 다른 광경이 펼쳐졌다. 회화루주의 방은 쓰러져 신음하는 흑도(黑道) 무인들로 가득했다. 그중 몇몇은 비교적 멀쩡한 모습이었는데, 쓰러져 있는 흑도들을 밧줄로 꽁꽁 포박하고 있었다.

그중 한 사내가 매 각주를 발견하고는 놀란 목소리로 말했다.

“……매 각주님?”

“너희는 여기서 뭘 하고 있는거냐?”

“그, 웬 고수님이 나타나셔서 짐승만도 못한 놈들을 묶으라 명하셔서 그리 하고 있었습니다.”

“짐승……?”

곧이어 따라 들어온 맹원들과 포쾌들의 시선에도 경악과 놀람이 가득했다.

“완전히 병신을 만들어놨군.”

놀란 표정으로 주변을 둘러보던 포두가 중얼거렸다.

회화루주는 말 그대로 숨만 겨우 붙어 있는 상황이었다. 단전은 완전히 부서졌고, 팔다리의 근육도 죄다 끊어진 처참한 몰골이었다. 작살난 오른팔을 보건대, 장력 싸움을 하다가 이리 되었다는 것을 어렵지 않게 짐작할 수 있었다.

‘……맨손으로 이렇게 만들었다고?

황태자의 친위대, 천명검(天命劍)이 떠오를 정도의 손속이었다. 황실의 전폭적인 지원 아래 그 숫자가 수백이 넘는다고 했던가. 평범한 무인 행세를 하고 다니다가, 선을 넘은 탐관오리나 무림인이 있으면 검을 뽑아 징치(懲治)한다는 소문을 들어본 적이 있었다.

그래서일까, 포두는 흑도들을 죽이지 않고 살려둔 것이 자신에게 보내는 경고라고 느꼈다.

포두가 다급히 물었다.

“그 고수분은 어디로 가셨느냐.”

“어디로 가셨다니요?”

사내는 영문을 모르겠다는 얼굴이었다.

“저기 계시지 않습니까.”

모두의 시선이 사내의 손끝으로 향했다.

본래 회화루주의 자리였을 태사의(太師椅), 그 앞에 한 여인이 앉아 있었다.

여인은 사색에 잠긴 듯, 고개를 비스듬히 기울이고 있었다. 열린 창문에서 바람이 흘러들어오며, 면사가 천천히 옆으로 흩날렸다.

그 때문일까, 순간적으로 시선이 엉켰다. 실로 절세라 부족함이 없는 외모에, 남녀를 가리지 않고 모두가 경탄을 금치 못했다.

“헉!”

설마 하는 얼굴로 서연을 응시하던 매 각주가 비명을 지르듯 소리쳤다.

동시에 눈을 질끈 감고 얼굴을 감싸는 모습이 아주 우스꽝스러웠는데, 그 덕에 정신을 차린 이도 적지 않았다.

“……안 굳었다? 왜 움직여지는 거지?”

매 각주는 호들갑을 떨며 주변의 눈치를 봤다. 서연의 얼굴을 제대로 보지 못해 할 수 있는 말이었다.

“푸헤헹.”

순간 웃음을 참지 못한 화련이었다. 괜히 웃음을 참으려다 더욱 바람 빠진 소리를 뱉어내고 말았다.

“……죄송합니다.”

괜히 뻘쭘해진 화련이 사과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