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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5-12-14 21:31:57 +09: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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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aw Blame History

일행이 된 서연과 예화는 말을 타고 곧장 도시를 벗어나 빠르게 남쪽으로 향했다. 예화의 걸음이 너무 느렸기 때문이다. 애초에 그런 몸 상태로 여기까지 온 것이 기적에 가까웠다.

원래는 마차를 타려 했으나, 도시 바깥까지 가는 마차는 몇 시진씩 기다려야 한다는 말에 어쩔 수 없이 마시장에서 남는 말을 빌려 탔다. 화양현에 도착하면 말을 반납해야 했지만, 그래도 처음부터 걸어가는 것보단 훨씬 나았다.

서연의 허리를 꽉 부여잡고 달리던 예화가 조심스레 말했다.

“고수 분들은 말도 이리 능숙하게 다루시는군요.”

서연은 처음 타본다는 말을 하려다가 속으로 꿀꺽 삼켰다. 타본 소감을 말하자면, 백호를 타는 것보다 몇 배는 쉬웠다. 아무래도 속도도 백호 쪽이 빠르고, 달리는 길도 백호 쪽이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험하기 때문이었다.

‘애초에 백호는 산길로만 다니니까.

서연은 순식간에 화양현에 당도했다. 상인이 서연이 내민 대여 증서를 확인하는 사이, 예화는 말에서 힘없이 내려섰다. 오랜 시간 달린 탓에 가랑이가 쑤셔오는 고통에 그녀의 얼굴은 잔뜩 일그러져 있었다. 이윽고 증서 확인을 마친 상인이 고개를 끄덕였다.

“은전 두 냥 되겠습니다.”

“……!”

어마어마한 대여료에 낯빛이 변하는 예화를 힐끗 본 서연은 묵직한 전낭에서 은전을 꺼내어 내밀었다.

‘생각보다 훨씬 비싸구나.

말이 금값이라더니. 그리 오래 빌린 것도 아닌데 요금이 이리 나올 줄은 미처 몰랐다.

말을 묶어두고 나서는데, 예화가 고개를 푹 숙인 채 사과했다.

“죄송합니다.”

“괜찮아요.”

아직 노잣돈은 넉넉했으니 진정 괜찮았다. 오히려 몸도 아픈 처자가 괜한 눈치를 보는 것 같아 서연의 마음만 더 불편했다. 괜찮다는 듯 미소를 지으려던 서연은, 이내 눈을 가늘게 떴다.

“저쪽에 있는 자들, 아는 사람들인가요?”

“어디요?”

“오솔길 옆에.”

“매, 매 각주에요…….”

흑도로 보이는 이들 열 명이 아무렇게나 걸어오고 있었는데, 등에 두 자루 도를 열십자로 맨 사내가 유독 눈에 띄었다. 첫인상부터 험악하게 생긴 것이, 딱 봐도 매 각주였다.

그들은 스무 걸음을 더 다가온 후에야 걸음을 멈추고 고개를 돌렸다.

“예화냐?”

매 각주가 묻자, 예화는 대답도 못하고 덜덜 떨다가 그 자리에 풀썩 주저앉아버렸다.

“그럼 그쪽이 예화가 데려왔다는 여고수시고? 어째 생각보다 겉모습은 그럴듯한데, 얼굴은 어째 가리고 다니나? 지아비한테만 보여주시려고?”

매 각주는 제가 하는 말이 우스웠는지 말을 하는 와중에도 픽픽 웃어댔다.

그러다 웃음기를 싹 지우더니, 옆에 있던 수하들에게 손짓했다.

“일단 저 죽립부터 벗겨라. 얼굴을 봐야겠다.”

수하들은 고개를 끄덕이더니 자연스럽게 무기를 뽑아들었다.

서연은 동요하는 대신, 섬섬옥수 같은 손을 움직여 면사 한 켠을 걷었다. 그리고는 도화를 머금은 눈동자를 천천히 치켜들어 다가오는 사내들을 응시했다. 제 외모와 인상이 가지는 위력을 알고 있었기에 할 수 있는 행동이다.

“…….”

졸개들은 혼이 나간 듯한 얼굴로 서연의 반면(半面)을 바라봤다. 일부는 아예 입도 벌리고 있었는데, 그들은 서연이 코앞까지 다가오는 것을 봤으면서도 움직일 생각조차 못하는 듯 보였다.

툭툭.

서연은 그대로 앞으로 움직이면서 손으로 졸개의 마혈(痲穴)을 짚었다. 예전에 수인경혈도를 읽었을 때 외워두웠던 혈자리였다. 처음 짚어 보는 것이었는데, 움직임이 물 흐르듯 자연스러웠다.

손끝에서 꿈틀거리는 이게 진기인가. 지금은 그리 중요하지 않았다.

서연은 외모에 한눈이 팔린 졸개들의 마혈을 마저 짚었다. 마혈이 눌린 졸개들은 식은땀을 흘리면서 온 몸을 부들부들 떨 뿐, 아무런 저항도 하지 못했다.

반수가 허무하게 제압당했다. 미인계가 이렇게나 무섭다.

서연은 무심한 눈을 한 채로 앞으로 나섰다. 그리고는 재차 호흡을 가다듬은 다음에 말했다.

“그쪽 말대로 죽립을 벗을까 고민 중이다.”

긴장한 티를 내지 않으려 애를 썼다. 다행히 이 협박은 매 각주에게 먹혔다.

“…….”

말 많던 매 각주가 입을 다물었기 때문이다.

본디 점혈이란 내가기공(內家氣功)의 정수로, 대단히 높은 수준의 무인들만 펼칠 수 있는 기술이었다. 상대방의 신체에 자신의 내공을 심어 넣어야 하기 때문이다. 자칫 실수했다간 제압은커녕 세맥과 혈도만 끊어지는 위험한 기술이기도 했다.

어쩌면 정파로 위장한 마교의 고수일 수도 있겠다는 생각도 들었다. 저 여자와 눈이 마주친 수하들이 돌처럼 굳어버렸기 때문이다.

생각이 복잡해졌기 때문일까, 매 각주는 더 이상 웃을 수 없었다.

물론 졸개들이 이러한 사실을 알 리가 없다. 눈치없는 졸개 하나가 말했다.

“너희들 뭐하냐? 장난치지 말고 빨리 덮쳐라. 아, 혹시 저 여자가 가장 늦게 움직이는 놈한테 시중이라도 들어준다더냐?”

“하하하하.”

서연이 다시금 면사를 걷어올리려 하자, 매 각주가 욕지거리를 쏟아냈다.

“전부 아가리 닥쳐라. 그 망할 주둥아리를 찢어버리기 전에. 루주께서 모셔오라 명하신 분을 이리 희롱하는 것이 제정신 박히고 할 짓이냐? 한 번만 더 개소리를 지껄이면 그 대가리부터 갈라놓을 줄 알아라.”

수하들은 싹 입을 다물었다. 하지만 여기 또 눈치없는 놈이 있었다.

“희롱은 각주님께서 먼저 하시지 않았습니까.”

그러자 매 각주는 일말의 망설임도 없이 허리춤에 매달려 있던 도를 뽑아들고는 딴지를 걸었던 수하의 머리를 후려쳤다. 도면(刀面)에 얻어맞은 사내는 찍 소리도 내지 못하고 뒤로 넘어갔다. 그러고도 성이 안 차는지, 매 각주는 발을 치켜들어 수하를 마구 밟아댔다. 결국 기절한 수하는 코도 부러지고, 이빨도 죄다 날아갔다.

“또 대꾸하고 싶은 놈 거수.”

“…….”

“저렇게 되기 싫으면 전부 입 닥치고 있어라.”

졸개들은 감히 대답할 생각도 하지도 못하고 고개만 끄덕였다.

서연이 다시금 면사를 만지작거리자, 화들짝 놀란 매 각주가 납작 엎드렸다.

“살려주십시오. 제가 미처 고수님을 알아보지 못하고 까불었습니다. 부디 회화루로 모실 수 있게 해주십시오.”

흑도에서 오랜 세월 살아남은 인물답게, 매 각주의 처신은 너무나도 신속했다. 매 각주는 옆에서 ‘갑자기 뭐하십니까? 같은 눈빛으로 자신을 쳐다보는 졸개들에게 욕을 쏟아냈다.

“이 골통 빈 놈들아. 저기 서 있는 저것들이 진짜로 멍청해서 서 있기만 하는 걸로 보이냐? 살고 싶으면 당장 납작 엎드려라. 그래야 팔다리 하나 정도로 끝날 수 있으니까.”

그제서야 수하들은 매 각주의 말대로 바닥에 납작 엎드렸다.

매 각주가 다시 입을 열었다.

“수하들은 제가 잘 단속하겠습니다. 살려주십시오.”

서연은 가만히 입을 다물고 있었다. 그녀의 침묵은 오히려 매 각주의 심장을 얼어붙게 했다. 등줄기에는 식은땀이 흘러내렸고, 심장은 마치 폭풍우 속의 배처럼 거칠게 요동쳤다.

“정녕 믿지 못하시겠다면, 이 자리에서 애들 팔부터 부러뜨리겠습니다.”

“각주님……?”

“미친놈들아. 너희들 살려주려고 이러는거다.”

그 말이 끝나자마자 매 각주는 자리에서 일어나 수하들의 팔을 하나씩 부러뜨렸다. 죄다 칼 쓰는 손을 부러뜨렸는데, 그 때문인지 매 각주를 살벌하게 노려보는 수하도 적지 않았다. 하지만 덤벼드는 놈은 하나도 없었다. 전부 덤벼도 매 각주를 이길 수 없다는 사실을 알기 때문이다.

기어코 수하들의 팔을 모두 분지러뜨린 매 각주는 한숨을 푹 내쉬더니, 제 오른팔부터 꺾어버렸다. 그리고는 바닥에 엎드려 말했다.

“살려주십시오.”

매 각주는 서연의 대답을 기다리면서 왼팔을 내밀었다. 양손잡이이니 마저 부러뜨리라는 뜻이다.

서연이 침묵하고 있자, 매 각주가 재차 말했다.

“당연히 아시겠지만, 그리 멀리 떨어지지 않은 곳에 저희를 지켜보고 있는 녀석들이 있습니다. 아마 지금쯤 회화루로 달려가고 있겠지요. 제가 회화루로 통하는 지름길을 압니다. 놈들보다 빠르게 도착할 수 있습니다.”

살업을 쌓고 싶지 않았던 것은 서연도 마찬가지였다. 서연은 경악한 얼굴로 저를 올려다보는 예화와, 매 각주를 번갈아 응시했다.

“예화를 업고 달려라.”

왼팔은 그대로 두겠다는 뜻이다.

“감사합니다.”

살았다는 생각이 들어서인지, 자리에서 일어서는 매 각주의 다리는 부들부들 떨리고 있었다.

“예화야, 업혀라.”

“…….”

“여기서 널 해코지했다간 우리 다 죽는다. 그러니 업혀다오. 부탁이다.”

매 각주는 그렇게 말하면서 매고 있던 무기도 싸그리 던져버렸다.

“영영이가 어디 있는지 안다. 루주의 처소 근처에 갇혀있을거다.”

“……!”

예화의 얼굴이 충격으로 물들었다. 그녀는 한참 동안 매 각주를 응시하다가, 결국 등에 업혔다.

“출발해도 되겠습니까?”

서연이 고개를 끄덕이기 무섭게, 매 각주가 빠른 속도로 달렸다. 외곽에서 활동하는 흑도치고는 뛰어난 보법이었다. 서연은 앞서 달려가는 매 각주를 물끄러미 쳐다보다가, 그의 몸놀림을 따라 했다.

거친 호흡을 들이키며 달리던 매 각주는 뒤를 돌아본 순간 경악했다. 서연이 깃털 같은 발걸음으로 순식간에 거리를 좁힌 탓이다. 그렇게 빠른 속도로 달리는데도 죽립이 기울어지지 않았다. 도저히 사람의 움직임이라고는 상상할 수 없었다.

언뜻 본 것만으로도 제가 펼치는 보법과 같은 것이라는 것을 알았다. 그런데도 보법에서부터 격이 달랐다. 물론 상식의 선이라는 것이 있었기에, 매 각주는 서연이 보법을 단 한 번 보고 통찰했다고는 생각지 못했다.

‘……도망갔어도 전부 죽었겠다.


그렇게 산길을 일 각 정도를 달리고 나서야 현(縣)의 입구에 도착했다.

눈앞에 펼쳐진 현은 제법 번화한 모습을 띠고 있었다. 사람들로 북적이는 거리에서 조금 떨어진 외딴 곳에 붉은 단청과 화려한 문양을 새긴 기루가 자리 잡고 있었다.

매 각주는 회화루를 바라보다가 서연에게 말했다.

“간부들만 아는 뒷길이 있습니다.”

매 각주를 뒤따라 들어간 창고에는 장정 하나가 겨우 들어갈만한 철문이 놓여 있었다. 그림자와 먼지로 가득한 물건 틈 사이에 놓여 있는 탓에 자세히 살피지 않으면 찾지 못할 정도로 교묘하게 감춰져 있었다.

매 각주가 철문 앞에서 말했다.

“매 각주다. 일 마치고 복귀했다.”

곧 철문이 아무 소리 없이 열렸다.

“각주님. 벌써 다녀오셨습니까?”

매 각주는 문지기를 쳐다보더니, 좌장으로 뒷목을 내리쳤다. 곧 정신을 잃은 문지기가 픽하고 쓰러졌다.

“일단 기절시켰습니다만, 죽이는 편이 나을까요?”

매 각주는 그렇게 말하며 문지기의 목덜미를 발로 짓밟았다. 서연의 허락이 떨어진다면 당장이라도 숨통을 끊을 기세였다.

이 순간 서연은 무림인들의 손속이 얼마나 잔혹한지를 다시금 실감할 수 밖에 없었다.

허나 서연은 번민에 잠기는 대신, 조용히 문지기의 마혈을 짚었다.

“계속 가지.”

“……예.”

서연은 어두운 통로를 걷는 내내 생각을 정리했다. 습하고 퀴퀴한 흙냄새가 코를 찔렀지만, 그녀의 사유(思惟)는 더욱 뚜렷해졌다. 저들이 짐승이라는 생각에는 변함이 없었다.

짐승이 무어냐.

힘을 가지고 있으면서도 같은 사람을 해치는 것이 짐승이다. 이를테면, 단지 쾌락을 위해 아녀자를 납치하여 능욕하고 팔아넘기는 자들이 그러하고, 자신의 사리사욕을 채우려 무고한 이들의 보금자리를 불태우고 가족을 찢어놓는 무뢰배들이 그러하다.

허나 이 짐승들은 누군가에게는 잔혹한 짐승이면서도, 또 다른 이에게는 피붙이고, 또 벗이 되기 마련이었다.

세상의 흑과 백이 이토록 명확하게 분리되어 있지 않은 탓에, 부처께선 대자대비(大慈大悲)한 마음으로 모든 중생을 감싸안고 구제하라 이르셨다.

허나 부처가 되는 것은 너무나도 힘든 일이다. 이 세상에는 자비를 베풀 수 없을 정도로 잔악한 짐승들이 많기 때문이다. 깊이를 알 수 없는 악행 앞에서 무한히 자비를 베풀 수 있을 정도로 서연은 인내심이 깊지 못했다.

그러나 사람은 될 수 있을 것 같았다.

사람은 무어냐.

한 번 어긋난 자를 바로잡아 길을 일러주는 것이 사람이다. 죄를 뉘우치는 자를 받아들이는 자가 사람이며, 또 짐승이 사람을 해치지 못하도록 계도하는 것이 사람이다.

어두운 통로 끝, 사다리가 있는 곳에서 미약한 빛이 새어들어왔다.

서연은 짐승으로 가득한 무림에서 사람이 될 생각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