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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산과 무림맹 단원들은 최대한 빠르게 태실산에서 멀어졌다. 노망난 노강호가 갑자기 자신들을 불러세워 협박을 겸한 일장 연설하지 않을까 두려웠던 것이다.
노망났다는 표현이 적절할지는 모르겠으나, 그만한 지법(指法)을 익혔으면서 스스로를 일반인이라 주장하는 인간이 정상일 것 같지는 않았다. 그 정도로 뻔뻔해야 비정한 강호에서 당당히 금분세수 할 수 있을 것 같다는 생각마저 들 정도였으니 말이다.
알 수도 없고, 알고 싶지도 않고, 이해하고 싶지도 않았다. 그저 조금이라도 빨리 이곳을 탈출하고 싶다는 생각뿐이었다.
홍일점, 제갈혜는 아예 반쯤 정신이 나가 있었다.
‘잡기, 잡기, 잡기…….’
콕 집어서 모지리 취급을 받았기 때문이다.
분한 마음에 눈물이 나올 것 같았으나, 제갈혜는 가까스로 눈물을 참았다. 그랬다간 진짜로 모지리가 될 것만 같았기 때문이다.
다른 맹원들은 훌쩍거리는 제갈혜에게서 모르는 척 시선을 돌렸다. 제갈혜가 지법을 아주 오랜 세월 파고들었다는 사실을 모르는 이가 없었지만, 태실산의 노강호가 듣고 있을까 걱정되어 차마 위로의 말조차 건넬 수 없었다.
쉬지 않고 달려 마침내 시내에 도착한 장산은 그제서야 안도의 한숨을 내뱉었다. 사마련이나 마도와 싸웠을 때도 이렇게 심장이 두근거렸던 적이 없었는데, 지금은 심장이 미치도록 날뛰고 있었다.
안색이 창백하게 질려 있던 조원 하나가 떨리는 목소리로 말했다.
“조장님. 이제 얘기해도 되는 걸까요?”
장산은 곧장 대답하는 대신 고개를 들어 태실산 방향을 바라봤다. 못해도 삼십 리는 달려온 것 같았다. 이 거리에서 자신들의 목소리를 듣는다면 그건 자연사다.
장산이 고개를 끄덕이자, 조원들이 철푸덕 소리를 내며 쓰러지듯 앉았다.
훈련된 무인들이라 입밖으로 탄식을 내뱉지는 않았지만, 머릿속은 그야말로 엉망진창이었다.
‘흐, 흐흐흐.’
‘마교가 십만대산에 처박혀 있는 이유를 강제로 알게 된 기분이야…….’
'이건 또 어떻게 보고하지.'
‘난, 난 모지리가 아니야.’
장산은 완전히 망가져버린 조원들을 쳐다보다가, 될 대로 되라는 심정으로 자신도 주저앉았다.
“오늘은……이만 쉬자.”
심력을 너무 많이 썼다. 행인 한 명 없는 시간에 돌아다녀 봤자 얻을 수 있는 정보도 없으니, 푹 자고 일어나서 계속해도 늦지 않을 터였다. 괜히 아무 데나 쑤시고 다니다가 똑같은 실수를 반복할 것 같다는 두려움도 있었다.
장산은 힘이 쫙 풀려버린 다리를 주무르려다가, 문득 기름진 냄새가 풍겨 고개를 돌렸다. 그쪽을 보니 웬 노파가 갓 찐 만두를 꺼내어 보자기에 담고 있었다. 보아하니 새벽부터 장사를 준비하는 모양이었다.
배도 고프겠다, 장산은 노파에게 다가가 물었다.
“혹시 이 만두 파시는 겁니까?”
“손님이 사신다면야 얼마든지 팔지요.”
“가득 담아 주십시오. 열 명이 먹을 겁니다.”
“아이고, 아직 장사 준비가 안 돼서 드릴 그릇이 없는데.”
“그럼 그냥 보자기 채로 주십시오. 값은 넉넉히 치르겠습니다.”
장산은 그렇게 말하며 노파에게 돈을 건넸다. 돈을 확인한 노파가 눈을 크게 떴다.
“……너무 많은데요?”
“저희가 많이 배고파서 그럽니다.”
노파는 연신 고개를 꾸벅였다. 하루 장사를 제대로 시작하기도 전에 만두를 다 팔았기 때문이다.
“먹자.”
장산은 보자기를 땅바닥에 내려놓았다. 조원들은 장산이 말을 꺼내기 무섭게 만두를 집어 먹었다. 산처럼 쌓여 있던 만두들이 순식간에 사라졌다.
“마저 먹고 묵을 객잔부터 찾자. 그 다음에.”
그 순간, 장산의 표정이 딱딱하게 굳었다. 조원 셋을 심부름시켰던 일을 뒤늦게 떠올린 것이다.
‘아…….’
조원들도 같은 생각을 하고 있었는지, 사방에서 침 넘어가는 소리만 꿀꺽- 하고 울렸다. 장산은 깊은 한숨을 내쉬며 태실산 방향을 말없이 응시했다.
노망난 노강호가 자신을 노려보고 있는 것만 같았다.
“…….”
장산은 고개를 가로저었다. 아무리 생각해도 다시 돌아가고 싶진 않았다.
조원들은 그제야 서로를 응시했다. 설마가 사람 잡는다고 했으나, 지금은 그 설마가 현실이 될 것만 같았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힘이 다 풀린 몸을 이끌고 하남의 온 객잔을 돌아다니고 싶지도 않았다.
누군들 그러고 싶겠는가.
그렇기에 조원들은 서로의 눈치만 살살 봤다. 곧 장산이 착 가라앉은 목소리로 말했다.
“나다 싶은 놈은 거수해라.”
“조, 조장님.”
“거수해.”
“…….”
곧 조원 셋이 슬금슬금 오른손을 치켜들었다. 아주 공교롭게도 세 명 모두 막내급이었다.
“걔들 엄한 곳으로 새기 전에 후딱 가서 데려와라.”
“……예.”
장마철이라 빗소리가 끊이지 않았다. 서연은 빗소리를 들으며 눈을 감고 명상에 잠겼다. 왜 명상을 하느냐 묻는다면, 산속이라 딱히 할 것이 없었기 때문이다.
무림맹원들과는 헤어졌지만, 서연은 그저 그대로 밤을 지새우고 있었다. 새벽비를 맞아서인지 도저히 잠이 오지 않았기 때문이다. 하루 이틀 잠을 거른다 해서 망가질 육체도 아니었으니, 서연은 이번 기회에 생각이나 정리하기로 했다.
가장 먼저, 오늘 만났던 이들이 무림맹이 아닌 사마외도였다면 어찌 되었을지 생각했다. 그랬다면 지금처럼 분명 몸 성히 돌아오지는 못했을 터였다.
갑자기 이런 생각을 하는 이유는 무엇인가. 좋은 스승이 되려고 노력하다보면 사건사고에 자주 엮이게 될 터. 그러다 보면 좋든 싫든 강호에 발을 걸칠 것 같았기 때문이다.
서연은 전생에 보았던 여러 무협지들을 떠올렸다. 삼류, 이류, 일류, 절정, 초절정, 화경 등으로 무학을 분류했던 무협지들이 떠올랐고, 또 삼화취정(三花聚頂)이나 오기조원(五氣朝元) 같은 현상으로 경지를 분류하는 무협지들도 떠올랐다.
허나 이내 그만두었다. 본디 무학이란 평생 파고들어도 모자를 학문일진대, 그렇게 편의적으로 정확하게 정의될 수는 없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검기와 검강으로 절정 초절정이 나뉜다면, 일평생 경공만 수련하여 강호 최정상에 오른 무인은 그들보다 못하단 말인가?
애초에 절정(絕頂)이라 하면 오를 수 없을 정도로 높은 경지라는 뜻인데, 갑자기 앞에 초(超) 자는 왜 붙는단 말인가?
사람마다 얻는 깨달음이 다르고, 살아온 삶이 다른 것은 당연한 이치인데, 모두가 지향하는 방향이 같다는 것부터 이상했다. 만약 그런 곳이 있다면 그 강호는 분명 무(武)가 본연의 가치를 상실한 곳일 터였다.
고로 검기든, 검강이든, 오기조원이든 삼화취정이든, 경지를 구분하는 모든 것들에는 큰 의미가 없어야 한다.
사람마다 꽃이 피고 지는 방법이 다르기 때문이다.
그것들은 이정표는 될 수 있을지언정, 절대적인 기준이 되어서는 안 됐다. 적어도 서연은 그렇게 여겼다.
그런 의미에서 이 세계의 강호 무림은 참으로 마음에 들었다.
절세고수들의 앞에 화경(化境)이나 현경(玄境) 같은 수식어가 붙던가? 그렇지 않다.
그저 절세(絕世).
세상에 견줄 데가 없을 정도로 뛰어난 고수들을 칭하기에 그것이면 충분하다는 뜻이다.
그 아래 이름을 날리는 고수들도 그저 별호(別號)로 불릴 뿐, 경지로 불리지는 않았다.
허나 삼류 무인은 있었다. 어디에나 삼류는 있는 법이었으니 말이다.
서연은 자신이 어느 정도 위치에 있는지를 가늠해보았다. 보법은 배운 적이 없고, 검법 또한 마찬가지였다. 마보와 같은 운동으로 외공을 단련한 적도 없으며, 그렇다고 무인들과 논검(論劍)을 나눠 본 적도 없었다. 실전 경험은 단연 없었다.
그러므로 삼류 이하라고 할 수 있겠다.
허나 서연에게는 무형의 절세 명검이 있었다. 형태에 구애받지 않으며, 두꺼운 거목이든 바위든 깔끔하게 양단하는 심검(心劍) 말이다.
물론 마땅한 이름이 없어 심검이라 부를 뿐이지, 서연은 이것을 진짜 심검이라고 여긴 적이 단 한 번도 없었다.
조금 과격히 말하면, 서연은 이것이 심검이면 안 된다고 생각했다.
왜냐.
고수가 되려면 일단 정기신(精氣神)이 균형을 이뤄야 했다. 여기서 정(精)은 단단한 육체를, 기(氣)는 육체를 움직이는 힘을, 신(神)은 무인의 정신을 의미했다.
그뿐이랴. 심후한 내공과 그를 바탕으로 한 탁월한 무공도 뒷받침되어야 했다.
거기까지가 서연이 생각하는 고수의 전제 조건이었다.
그래서일까. 차라리 이것이 그저 제게 주어진 신기한 능력이라 여겼으면 여겼지, 서연은 도저히 이것을 심검이라 여길 수 없었다. 그것은 평생을 갈고닦은 무인들에 대한 모욕이며, 동시에 기만이기 때문이었다.
무협지를 너무 많이 읽어 생긴 폐해라고 할 수 있겠다.
서연이 전생에서 구무협(舊武俠)을 추종하는, 소위 말하는 진성 무틀딱이 아니었다면 생각이 달라졌을지 모르나, 안타깝게도 그럴 일은 없었다.
서연은 표정을 착 가라앉힌 채로 손에 들린 심검을 흝어봤다.
사실 이 정도만 되어도 어중간한 힘만 믿고 설치는 잔챙이들 정도야 어렵지 않게 물리칠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그러다 보면 점차 윗선들이 그걸 명분삼아 달려들 것이고, 언젠가는 이것으로도 감당하지 못할 진짜 고수들이 나타날 것이다.
그러면 죽은 목숨이다.
그 모든 것을 감내할 자신도, 손에 피를 묻힐 자신도 없었기에 숨어살기를 택했건만.
이제 그것도 어렵게 되었다.
누누이 말하지만, 좋은 스승이 되는 것은 이렇게나 어려운 일이다.
‘무관에 들어가서 호신술이라도 배워야 하나.’
본래 고수가 되려면 골격과 기혈이 완전히 굳지 않은 어린 시절부터 무공을 익혀야 했다. 허나 서연에게 있어 무공은 어디까지나 자신과 제자를 지키기 위한 호신의 방편이었으니, 나이는 크게 중요치 않았다.
‘이럴 줄 알았으면 남궁세가에서 그럴듯한 검법이라도 하나 얻어올 걸 그랬나.’
그만한 무림세가에는 외인에게도 공개되는 무공 비급이 여럿 있을 터였다. 허나 이제 와서 후회한들 무슨 소용이랴. 서연은 머릿속으로 근처에 있던 무관을 몇 개 떠올려보았다.
‘청풍무관(淸風武館), 진가무관(陳家武館), 비룡각(飛龍閣)…….’
곰곰이 생각해보니 비룡각은 무관이 아니라 볶음면을 파는 객잔이었다. 객잔 자체는 초라했지만, 주인장의 내공이 만만치 않아 아주 맛있게 먹었던 장소였다.
아무튼, 적당한 무관을 물색할 필요는 있어보였다.
제자도 가르치랴, 조각해서 돈도 벌랴, 책도 쓰랴, 검법도 배우랴.
해야 할 일이 산더미였다.
“…….”
허나 기분이 그렇게 나쁘지만은 않았다. 이 세계에 떨어진 이후 처음으로 그럴듯한 목표가 생긴 것 같았기 때문이다.
명상을 마친 서연은 화련이 자고 있을 방으로 향했다. 습기도 차고 더운 날씨 탓인지, 화련은 이불도 걷어차고 배까지 훤히 드러낸 채 아무렇게나 엎어져 자고 있었다.
서연은 그런 화련을 살포시 들어올린 다음, 조심스럽게 돌아 눕혔다. 화련은 잠시 움찔거렸으나, 이내 깊이 잠들었다. 꼼지락거리는 손이 마치 꿈 속에서도 조각 연습을 하는 것 같아 보여 서연의 입가에 옅은 미소가 번졌다.
땀에 살짝 젖어 화련의 이마에 달라붙은 머리카락을 조심스레 떼어내면서 서연은 생각했다.
강호에서 살아남으려면 아예 산속에 틀어박히거나, 아니면 의지를 관철할 수 있을 만큼의 힘이 있어야 한다고.
‘내일은 무관이라도 알아봐야겠다.’
후자는 모르겠으나, 서연은 적어도 산속에만 틀어박혀 살지는 않으리라 다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