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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5-12-14 21:31:57 +09: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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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aw Blame History

말싸움에서 밀리거나 기세에 눌린다 싶을 때 바로 무기를 뽑아 드는 것은 무림인의 흔한 버릇이었다. 이는 논리도 명분도 부족하니 결국 힘으로 해결하려는 치졸한 발상인데, 문명인인 서연의 눈에는 실로 한심하기 짝이 없었다.

상대가 자신보다 얼마나 강한지도 모르면서 무턱대고 칼부터 뽑는단 말인가? 칼을 뽑는 순간 필시 둘 중 하나는 피를 보기 마련인데, 흑도든 백도든 자신이 패배할 거라는 생각은 조금도 하지 않는 것이 참으로 안타까웠다. 허나 그녀가 검을 뽑지 않은 이유는 비단 그것뿐만이 아니었다.

스승은 제자의 거울이라 했다. 하찮은 모욕 몇 마디에 화를 내며 칼을 뽑는다면, 화련이 그 모습을 그대로 따를까 염려되었던 것도 있었다.

물론 운초아가 선을 넘었다면 이야기가 달라졌을지 모르나, 적어도 아직까지는 선을 넘지 않았다고 생각했다.

무기를 뽑지 않았기 때문이다.

범부들과는 그릇부터 달랐기에 할 수 있는 생각이었다.

허나 버릇은 고쳐놓을 생각이었다.

고등학생 정도 되어 보이는 아이가 저리 패악질을 부리니, 윗 사람들이 어찌 키웠을지 눈에 훤했다. 다른 자제들도 크게 다르지 않았다. 이런 놈들을 내버려뒀다간 나중에 제자가 컸을 때 세상이 어찌 될지 눈에 훤했다.

“어찌, 사마외도처럼 생겼습니까?”

서연은 그렇게 말하며 한 걸음 앞으로 나섰다.

“흔치 않은 얼굴이라, 어디서 봤다면 쉬이 떠올릴 수 있을 겁니다.”

그렇게 말하며 사내들을 하나씩 응시하자, 사내들이 호응하듯 고개를 마구 끄덕였다.

“서 소저 말이 맞소!”

“내 백부께서 무림맹에 계시오만, 용모파기를 아무리 떠올려봐도 서 소저같은 미인은 본 적이 없소이다.”

“용모파기에 담기지 않을 외모요.”

사내들의 눈빛에는 그새 흠모와 찬탄의 빛이 깃들어 있었다.

사내라면 열이면 열 좋아할 얼굴이오, 설령 여인이라도 동경하고 따를만한 외모였다. 더구나 타고난 몸매도 좋았다.

물론 운초아도 예쁘장한 얼굴의 소유자였지만, 서연과는 감히 비교할 것이 못 됐다. 그 일례로 방금 전까지 운초아에게 호응하던 사내들이 그녀에게서 한 걸음씩 멀어지고 있었으니 말이다.

“근본도 없는 년이!”

기세에서 밀린 운초아가 가차없이 말했다. 더 이상 멸시하는 어조를 숨기지 않았다.

“그까짓 얼굴을 드러냈다고 하여 사마외도라는 의심을 벗을 수 있으리랴 생각했나? 이름도 알려지지 않은 조각가가 거금을 선뜻 내어 후기지수들만 탄 배 위에 올라탔다. 살수라는 의심이 절로 든다. 아니, 어쩌면 사내들을 노리고 탄-”

운초아는 색녀일지도 모른다는 말을 차마 내뱉지 못한 채로 입을 다물었다. 누군가 짙은 살기를 자신에게 뿜어내고 있었기 때문이다.

‘누가?

서연은 아니다. 어디 한 번 해보라는 얼굴로 쳐다보고 있기는 하나, 적어도 살기를 풍기지는 않았다.

운초아는 식은땀을 흘리며 다급히 주변을 돌아보았다. 갑작스러운 변화에 사내들이 당황했으나, 운초아의 시야에는 들어오지 않았다.

마침내, 운초아의 시선 끝에 한 소녀가 들어왔다.

서연과 같이 탄 이후로 줄곧 탁자에 앉아 음식을 먹고 있던 화련이었다.

“…….”

화련은 죽일듯한 눈동자로 운초아를 노려보고 있었다.

말도 안되는 살기다. 식은땀이 절로 흘렀다.

화련은 주변을 돌아보다가, 자신에게만 보이는 각도로 입을 달싹거렸다.

  • 한마디만 더 해봐라. 그 창자부터 찢어주마.

그러면서 가볍게 손가락을 튕겼는데, 그 소리가 너무 작아 집중하던 운초아 말고는 아무도 듣지 못했다.

“허억!”

“끄으윽!”

곧 운초아의 호위들이 짙은 복통을 호소하며 주저앉았는데, 심한 내상이라도 입은 것인지 입에서는 검은 피를 줄줄 흘려댔다.

내력 차이가 너무나도 컸기에 발생한 일이었다.

애초에 화련은 천하삼대방파인 모산파의 후계자요, 내로라하는 후기지수 중 하나였다.

이까짓 ‘자칭’ 후기지수들과는 비교될 수준이 못 되었다.

‘이게 대체…….

운초아는 갑작스럽게 변한 상황을 도저히 따라갈 수 없었다. 다시 화련의 전음이 뇌리에 스쳤다.

  • 네 년은 스승님께서 직접 계도하실 것이다.

그리 말하고는 아무 일 없다는 듯 고개를 돌려 다시 음식에 집중하는 화련이었다. 겉으로 보기엔 그저 식탐만 많은 줄 알겠지만, 실상은 식사를 하는 젓가락으로 은근슬쩍 진을 그리고 있었다.

‘스승님께서도 묵인하셨다.

진을 보고도 아무 말씀 없으셨으니, 어느 정도 마음대로 행동해도 좋다는 뜻이리라.

‘사내들이란.

금진송을 제외하고는 죄다 한 패나 마찬가지였다. 하나같이 죽일 놈들이라는 것이다.

먼 과거 금분세수하여 함부로 살생을 하지 않는 스승님을, 잡것들이 뭣도 모르고 모욕했다.

‘소림의 방장대사도 아래로 볼 배분이거늘.

백 번 죽여도 쌌다.

배에 탄 순간부터 만약의 상황에 대비하여 진법부터 그려놓고 있었다. 무슨 진법이냐. 전서구를 소환하는 진법이라 할 수 있겠다.

‘운가의 초아, 만(萬) 가의 도오, 풍(馮) 가의 문연…….

순식간에 금진송을 제외한 자제들의 이름을 휘적인 화련은 종이를 냅다 바다로 던졌다. 곧 하늘에서 새 한 마리가 나타나 종이를 덥썩 물고 어디론가 날아갔다.

무림맹 지부가 있는 방향이었다.

저번에 염이선과 동행했을 때 지부의 위치를 미리 알아둔 덕분이었다.

‘본가로 돌아가도 지옥을 보게 해주겠다.

종이에는 자제들이 서연에게 어떠한 무례를 저질렀는지 상세하게 기록되어 있었다. 무림맹원들이 머저리가 아니라면 상황의 심각성을 알았을 터, 직접 나서지 않고는 못 배길 것이다.

거파의 장문인보다 더한 자를 모욕했다. 가문에서 쫓겨나도 이상하지 않았다.

어쩌면 제대로 조지기 위해 대주급을 불러올 수 있겠다는 생각도 들었다.

화련이 다시 손가락을 튕기자, 이번에는 자제들이 반응했다. 하나같이 꿀렁이는 배를 부여잡더니, 이마에서 짙은 땀방울을 흘려댔다.

운초아와 금진송만이 예외였다.

“끄, 끄으으…….”

설사였다.

허나 갑판 아래로 내려간다고 해도 해결할 수는 없을 것이다. 화장실을 망가뜨려놨으니 말이다.

남은 방법은 인간이기를 포기하고 바지에 지리거나, 수치를 무릅쓰고 바다 밖으로 둔부를 내미는 방법 뿐이다.

잘난 방술사가 이래서 무섭다.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기 때문이다.

“허억, 허억…….”

“윽, 으그극!”

“도련님? 갑자기 왜 그러십니까?”

호위들이 다급히 달려와 배를 붙잡고 쓰러진 자제들을 일으켜 세웠다. 주변을 경계하는 호위들도 있었나. 허나 자제들은 그러건 말건 울음이라도 터질 것 같은 얼굴로 입술을 악물고 주변을 황급히 두리번거릴 뿐이었다.

‘갑자기……. 배가 왜…….

‘죽는다……. 말하면 죽는다…….

다들 혼절할 것 같은 심정으로 호위의 옷자락을 꽉 붙잡았다. 온 내공을 괄약근에 끌어모으는 이도 있었다.

갑작스러운 상황에 당황한 운초아가 사내들을 붙잡았지만, 사내들은 온 힘을 쥐어짜내 운초아를 밀어내고는 화장실로 향했다.

“꺼져라!”

“비켜!”

그 힘이 어찌나 강한지, 운초아가 형편없이 밀려날 정도였다.

운초아는 반쯤 넋이 나간 얼굴로 사내들의 뒷모습을 응시했다. 제 호위들은 피를 토한 채로 엎어져 있고, 제 편이었던 사내들도 죄다 아래로 내려가 버렸다.

“이게 무슨…….”

황망한 것은 금진송도 마찬가지였다.

‘설마?

그새 음식이 상했을 리가 없었다. 당장 금진송 자신도 음식을 집어먹었으니 말이다. 그렇다면 모르는 사이에 독을 탄건가?

‘허나 그렇다기엔, 저 아이가 음식을 가리지 않고 죄다 집어먹지 않았던가.

당장 지금도 음식을 끄적이고 있었다. 아무리 생각해도 저 식탐을 뚫고 독을 넣었을 것 같지는 않았다.

그래서 더 당황스러웠다.

그때 운초아가 비명을 지르듯 외쳤다.

“사, 살수였구나 네년! 처음부터 우리를 다 죽일 생각으로 배에 오른 거였어!”

자기도 저렇게 쓰러질까 두려웠던 것인지 운초아가 검집에 손을 얹고 뒤꿈치를 뒤로 밀어넣었다.

발검하려는 것이다.

저러면 진정 돌이킬 수 없게 된다.

‘나서야겠다.

금진송은 생각했다. 이러다가 진짜로 제가 초대한 손님이 큰 화를 입게 생겼다.

금진송은 눈짓으로 호위들과 시선을 맞추었다. 삽시간에 뜻을 알아챈 호위들이 고개를 끄덕이고 운초아의 곁으로 다가갔다.

허나 운초아가 검을 뽑는 것이 더 빨랐다.

촤악!

“네 입으로 배후를 들어야겠다!”

짧게 뇌까린 운초아가 검법을 펼쳤다. 서연의 팔을 자르려는 것이다.

“막아라!”

금진송이 다급히 소리쳤다. 호위들도 빠르게 반응했지만, 운초아를 따라잡기에는 역부족이었다.

명색이 무가의 자제였다. 일개 호위들보다는 쌓아온 세월부터 달랐다.

운초아의 검이 서연의 팔에 닿으려는 그 순간이었다.

콰악!

서연의 얼굴에서 표정이 사라졌다.

벼락처럼 검을 수직으로 뽑아 공격을 막아냈다. 그리고는 왼손으론 운초아의 얼굴을 꽉 틀어쥐었다.

“어떻…….”

어떻게, 라는 말을 운초아가 내뱉기도 전에, 서연은 팔을 휘둘러서 운초아를 바닥에 패대기쳤다.

패대기질을 반복할 때마다 쾅 하는 굉음이 울리며, 선상 바닥이 깊게 파였다.

쾅! 쾅!

“쿠엑, 쿠엑!”

운초아의 동공이 순식간에 흐려졌다. 생전 처음 느껴보는 종류의 고통이었다.

서연은 한 손으로 운초아의 얼굴을 들어올렸다 내려찍기를 반복했다. 내력은 싣지 않았다. 싹수가 노란 어린 것을 훈육하는 심정이었기 때문이다.

그럴 때마다 선상 전체에 큰 진동이 울렸는데, 그때마다 지켜보는 이들은 하나같이 몸을 움찔 떨었다.

‘역시 스승님이시다.

화련은 감탄하듯 서연을 응시했다. 뒤통수가 깨지기 직전까지만 내리치는 힘 조절이 기가 막혔다.

얼마 지나지 않아 운초아는 두 눈을 까뒤집고 기절했다. 서연은 그런 운초아를 집어들고는, 선상 한쪽에 아무렇게나 내동댕이쳤다. 기이한 자세로 널브러진 모습이 마치 바닷바람에 널린 오징어 같았다.

서연은 아무렇지 않다는 듯 도로 납검하고는, 금진송에게 다가가 말했다.

“저 쪽이 먼저 공격했는데, 나중에 일이 생기면 공증을 서주실 수 있겠습니까?”

“얼마든지 그리하겠습니다. 서 소저께서 불편하실 일은 추호도 없으실겁니다.”

금진송은 속으로 감탄했다. 강호 무림을 주유하는 상인이라 간담이 큰 덕도 있었다.

‘진짜로 신분을 숨긴 고수였구나.

강호에서는 노인과 아이, 여자를 조심하라더니, 그 말이 딱 들어맞았다. 사문을 묻고 싶다는 생각이 굴뚝같았으나, 금진송은 가까스로 입을 다물었다.

어떻게든 환심을 사고 싶었기 때문이다.

여태 여인에게 헤벌레하는 사내들을 이해하지 못했던 금진송이었으나, 오늘만큼은 달랐다. 왜 주왕이 달기에게 홀려 파국을 일으켰는지 알 것 같았다.

‘참으로 아름답다.

오죽했으면 각예대회의 심사위원들을 매수하여 환심을 살 생각까지 들 정도였으니 말이다.

그렇게 된다면 아버지에게 죽도록 맞겠지만, 그 대가로 서연의 미소를 볼 수만 있다면 남는 장사라고 생각했다.

‘일단 뒷정리는 확실히 해야겠지.

무림인들의 은원은 확실하다 했다. 여기서 자신이 운초아와 그 일당들을 확실히 정리한다면, 서연 또한 만족할 듯싶었다.

‘납품도 몇 달 끊고, 주변 상인들에게도 눈치를 주면 알아서 말라죽겠지.

명색이 천하 오대 상단이었다. 고만고만한 무가 너댓 개 망하게 만드는 건 그리 어려운 일이 아니었다.

친우? 원래 상인들에게는 모두가 친우이고, 동시에 남인 법이다. 맺고 끊음이 확실하다는 것이다.

다시 죽립과 면사를 둘러쓰는 서연을 보고, 금진송은 아쉬움을 감추지 못했다.

때 아닌 상사병에 걸린 금진송이었다.


서연은 가는 도중에 배를 갈아타야 했다. 아래층에서 끔찍한 냄새가 올라왔기 때문이다. 다급히 바깥으로 도망쳐 나온 호위들의 신발에는 황갈색 무언가가 묻어 있었는데, 그것만으로도 돌아가는 상황을 대충 유추할 수 있었다.

이따금 아래층에서는 비명과, 푸드득― 하는 소리가 뒤섞였다.

다들 끔찍한 얼굴을 하고 있는 가운데, 화련만이 히죽 웃고 있었다. 어린아이가 똥 이야기를 좋아하는 것은 흔한 일이었기에, 다들 그러려니 했다.

졸지에 똥쟁이들을 친우라 소개한 꼴이 된 금진송은 얼굴이 벌개졌고, 곧 전서구를 보내 자신의 상단에서 새 배를 한 척 불러왔다.

“이쪽으로 갈아타시면 되겠습니다. 낙양까지 제가 모시겠습니다.”

“감사합니다.”

“하하, 이 정도는 얼마든지 해드려야지요.”

서연이 고맙다고 할 때마다 금진송은 헤헤거리며 제 머리를 긁었다.

아무튼 그렇게 원래 탔던 유람선에는 똥쟁이 넷과, 운초아, 그리고 그들의 호위들만 남았다.

나중에 누가 배를 발견하면, 저들 모두 인간 취급을 못 받을 듯 싶었다. 왜 모두냐 묻는다면, 화련이 운초아의 복통은 하루 뒤에 일어나도록 조절했기 때문이라고 답하면 되겠다.

구조될 때 지릴 가능성이 높다는 소리다.

'하남의 다섯 똥쟁이. 보기 좋다. 어울려.'

다시 말하지만, 잘난 방술사가 이렇게나 무섭다.

화련은 히죽 웃으며 갑판 너머를 응시했다. 멀지 않은 곳에 낙양이 보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