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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사들은 엄중한 태세로 주변을 경계하고 있었다.
금룡상단이 감당하는 대규모 공사였다. 돈 냄새를 맡은 승냥이 때가 어디서 나타날지 몰랐다.
칼을 차고 긴장을 유지한 채로 주변을 경계하는 이들이 적지 않았다.
“갑자기 왜 이렇게 소란스럽지?”
인부들에게 매실차를 마저 나눠주던 예화가 말했다. 상대방이 답을 알고 있을 것이라 기대하는 어조였다.
영영은 곧장 대답하는 대신 공사장의 천막이 밀집된 구역을 살폈다. 주전부리를 가지고도 출입을 허가받지 못한 구역이었다.
독이나 약을 타지 않았다는 입증을 했는데도 그랬다. 철저한 경계에서 대문파 특유의 엄중한 기질을 느꼈다.
“높은 사람이 오기라도 했나 봐요. 이 정도 규모라면 고위 관리가 들러서 확인해 볼 법도 하죠.”
“은단화(銀檀花)? 은단화 맞소?”
“네, 맞아요.”
영영은 인부의 질문에 곧장 미소를 드러내며 차를 따랐다. 천생 예기라고 해도 믿을 화사한 얼굴이었다.
“내 살다살다 은단화에게 차를 다 받을 줄은…….”
영영은 주루의 가장 주목받는 자리에서 비파를 연주하곤 했다. 그녀의 연주를 들으려 회화루에 손님들이 길게 늘어서 있는 날이 하루이틀이 아니었다.
어느 순간 그럴듯한 별호까지 생겼다.
작금 화양현에서 가장 명성을 떨치는 사람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었다.
“힘들지는 않으시고요?”
예의상 질문을 던진 순간이었다.
으아아악―!
멀리서 비명이 들려왔다. 출입을 통제하던 무사들이 달음박치는 소리가 뒤따랐다.
영영의 표정이 한순간에 무심하게 가라앉았다.
“언니는 여기 계세요.”
“응?”
곧장 땅을 박차고 달렸다. 지현에게서 약식으로나마 보법을 배웠다. 그 덕에 치마를 입고도 질주할 수 있었다.
금룡상단에서 고용한 무사들보다는 느렸다. 도망가는 사람들의 비명에서 상황을 유츄해야 했다.
“호환, 호환이야!”
“산군이 내려왔다!”
책임자들이 모여 있는 천막이 위로 불쑥 솟아 있었다. 거대한 짐승이 안에 들어가기라도 한 듯했다.
거대한 꼬리가 천막 바깥으로 살짝 튀어나와 있었다. 무늬에서부터 범임을 직감할 수 있을 정도였다.
영영은 아연실색했다.
‘범이……저렇게나 크다고?’
무사들도 섣불리 나서지 못했다. 단련된 무인은 흉포한 짐승도 손쉽게 사냥할 수 있다지만, 저만한 크기라면 더 이상 짐승의 범주에 놓을 수 없었다.
수백 년 묵은 요괴나 괴이로 봐야 옳다. 다들 나서지 않는 것은 그 때문이었다.
이따금 들려오는 소음을 보면 아직 책임자들이 잡아먹히지는 않은 듯했다.
무거운 적막이 흐르던 때였다.
천막 안에서 희미한 목소리가 울렸다.
“나가거라.”
영영의 눈이 커졌다. 목소리가 어딘가 익숙했던 까닭이었다.
“은인……?”
뒤이어 천막이 크게 펄럭거렸다. 거대한 짐승의 울음소리와 함께 책임자들이 동요하는 소리가 뒤따랐다.
무인들이 멈칫했다.
천막이 크게 헤집어지는 소리와 함께 푸른 귀기를 띄는 눈동자가 밖으로 튀어나왔다.
화악―
불현 듯 그림자가 드리웠다. 거대한 구름이 태양을 가린 듯한 느낌.
고개를 치켜든 무사들이 경악했다.
“헉……!”
머리 하나가 성인 남성의 몸통 크기에 가깝다.
풍기는 분위기 역시 매우 강렬했다. 짐승들은 물론이고, 웬만한 무인들조차 전의를 상실할 수준이었다.
당황하는 와중에도 곧장 검을 겨누는 것에서 보기 드문 정예임을 알 수 있었다.
“무슨 크기가……!”
고개를 거의 수직으로 치켜들어야 할 정도였다.
어딜 가도 산신으로 모실 법한 존재다. 영영의 손이 미세하게 떨렸다.
‘무슨.’
오죽했으면 백호의 걸음거리가 묘하게 조심스럽다는 것조차 인지하지 못할 정도였다. 특유의 눈썰미를 발휘하지 못했다.
머리가 새하얘졌다.
그르릉―
오싹한 울음소리. 저를 향해 겨눠진 창칼들을 위협으로도 느끼지 않는 듯했다. 가소롭다는 얼굴로 입을 크게 벌렸다.
날카로운 이빨이 고스란히 드러났다.
“산신! 산신이 어찌……!”
“산을 개발하여 노하신게야!”
“도, 도망치지 마라! 대열을 유지해!”
뒤이어 공황에 빠진 비명이 사방에서 들려왔다. 무기를 든 양 팔을 덜덜 떠는 이들이 대다수였다.
쿵―
걸음을 딛을 때마다 땅이 가볍게 울렸다. 무인들이 주춤거리며 점차 물러나던 때였다.
“저……?!”
“어찌 저런……!”
웬 여인이 홀로 천막 밖으로 나왔다.
옅은 바람에 선녀와도 같은 옷자락이 휘날렸다. 뒤이어 고개를 돌린 산신과 시선이 맞닿았다.
떨리는 병장기를 겨누고 있던 무사들, 도주하던 인부들, 숨 쉬는 것조차 잊고 반쯤 공황에 빠져 있던 책임자들.
모두의 시선이 여인을 눈에 담았다. 천하에 없던 미태(美態)다.
큼지막한 산군이 위압적인 시선으로 내려다보는데도 눈매가 무심했다.
세인들이 품지 못하는 도화를 머리칼에 담았다. 하강한 선녀라도 되는 듯했다.
한순간 신화 속으로 들어왔다는 착각이 들 정도였다.
묘한 대치 속에서.
여인이 천천히 입을 열었다.
“가만히 있거라. 저 분들이 얼마나 놀랐겠느냐. 네 잘못이 몹시 크다.”
잠시 고요가 번졌다.
“……?”
상황을 곧장 받아들이지 못한 것이다.
여인의 목소리가 꼭 산군을 타박하는 것처럼 들렸기 때문이다.
아무리 생각해도 아랫것 부리듯 대할 존재는 아니라 여겨졌다.
짐승들도 사람의 말을 알아듣는데, 신수는 오죽할까.
천상에서 내려온 존재들의 다툼이 자연스레 그려졌다.
짙은 긴장감으로 일대가 잠식된 때였다.
산군이 양발을 공손히 모은 다음 여인을 향해 고개를 숙였다.
그르릉―
그리고는 애정을 갈구하는 새끼처럼 큼지막한 머리를 가져다 부볐다.
여인은 한숨을 내쉬면서도 손을 펼쳐 산군의 머리를 부드럽게 헤집었다.
“…….”
그 상태로 굳은 이들이 태반이었다. 모두가 믿기지 않는다는 기색을 보였다.
일부는 도망치는 것조차 잊고 멍한 얼굴로 그 광경을 지켜보았다.
한참이 지나서야 토해내듯 방언을 뱉어냈다.
“지, 진짜 선녀셨구나……!”
“짐승도 아니고 설마 신수를 기르실 줄은…….”
산군을 쓰다듬는 것을 멈춘 여인이 천천히 입을 열었다.
“제가 큰 실수를 지었습니다. 놀라셨을 모든 분들께 사죄드립니다.”
옷자락이 희미하게 흩날렸다. 양 손이 맞닿는 소리와 함께였다.
포권을 올린 것이다.
인부들은 되려 곤란한 기색을 띄며 허리를 연신 숙였다. 그러면서 기웃기웃 고개를 치켜들어 여인의 면면을 살폈다.
몇몇 이들의 입에서 신녀문주라는 말이 흘러나왔다. 도화색 머리카락이 세간에 널리 알려진 탓이다.
영영은 입을 다물지 못한 채로 은인을 올려다보았다.
민초들이 구파의 도사들을 신선으로 대접한다는 말을 듣고 무지하다고 생각한 적이 있었다.
“……아.”
생각이 바뀌었다.
저만한 존재가 선녀가 아니라면 도대체 누가 선녀일까.
아름답다는 말로도 부족했다.
영민하기는 했으나, 어린아이 특유의 순수를 완전히 잃지는 않았다.
영영의 갈색 눈동자가 더없을 동경으로 물들었다.
서연은 주변에 흐르는 묘한 기류에도 아랑곳하지 않았다. 자신을 지켜보는 사람들이 무엇을 상상하고 있을지 자연스레 그려졌다. 자신이라도 그러했을 것이다.
‘더는 숨길 수 없게 되었으니.’
그럴 바에는 대놓고 드러내는 것이 낫다고 여겨졌다.
영물을 휘하에 둔 문파가 아예 없는 것은 아니었다. 남만의 야수궁이 대표적이었다.
문파의 명예를 드높이기 위해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는 시대다. 의도한 바는 아니었으나, 이것으로 신녀문의 이름을 널리 알릴 수 있다면 그것으로 족하다 여겼다.
당초부터 신녀문의 상징으로 백호를 삼을 생각이었다. 대문 앞에 백호의 석상을 세워놓으려 했던 것도 그 때문이었다.
금룡상단의 둘째 공자를 겪은 이후로 위상의 중요성을 느꼈다. 제자들이 멸시받지 않는 삶을 살게 하기 위해서라도 거쳐가야 할 과정이라 여겼다.
“저…….”
웬 여아의 부름이 상념을 깼다.
고개를 돌렸다. 걱정과 기대가 섞인 얼굴을 한 소녀가 다가와 있었다.
예전에 회화루에서 구해주었던 소녀였다. 나중에 노래를 한 곡조 들려주는 것으로 은혜를 갈음하라고 했었던 것이 기억났다.
“오랜만이구나.”
서연의 얼굴이 희미한 호선을 그렸다.
혹 자신을 알아보지 못할 것을 겁냈던 영영의 표정이 한순간에 밝아졌다.
“서연 님……!”
서연은 생각했다. 일 년 사이에 많이 자랐구나.
서연은 영영의 머리카락을 가볍게 쓰다듬었다.
“근시일에 네 연주를 감상하러 가야겠구나.”
일전에 냉엄한 기세를 내뿜던 여인과 같은 인물이라고는 믿을 수 없을 정도로 말투에 온정이 가득했다.
“지금 당장이라도 들려 드릴 수 있어요…….”
답지 않게 수줍은 어투로 중얼거리는 영영이었다.
회화루의 다른 예기들이 보았다면 경악할 만한 장면이었다.
“당장은 힘들겠구나. 신녀문을 짓고 나서 너를 초대할 터이니, 그때까지 열심히 연습하려무나.”
맑은 목소리에 범접할 수 없는 절대성이 스며들어 있었다. 구파의 장문인들보다 더한 무게감이었다.
뒤에 거대한 신수가 자리한 탓이 컸다. 거기에 천상에나 있을 법한 머리색이 더해져 초월적인 분위기를 풍겼다.
서연은 하얀 턱을 돌려 책임자들을 응시했다.
“인부들이 많이 놀라 힘을 낼 수 없을 듯하니, 오늘 하루는 쉬게 하는 것이 좋을 듯합니다. 그만큼 제가 대신하지요. 이 아이가 보기보다 힘이 좋아, 못해도 백 명 분의 일은 할 수 있을겁니다.”
헤집어진 천막 안에서 눈만 깜빡이고 있던 중년인이 황급히 고개를 끄덕였다.
“그, 그리 하시지요.”
“배려해주셔서 감사합니다. 인부들의 일당은 제 사비에서 갈음하겠습니다. 금룡상단주께도 그리 전해주세요.”
“……예.”
서연은 그대로 몸을 돌렸다.
저벅.
설계도의 구조는 전부 뇌리에 새겨 두었다. 두 번 확인할 필요는 없을 터였다.
“오늘 제자들이 머물 공간 정도는 지어두자꾸나.”
너른 공터에 서서 그리 말했다. 뒤따라온 백호는 커다란 눈을 깜빡이다 고개를 끄덕였다.
천천히 걸음하여 자재들을 산더미처럼 등에 매고 돌아왔다. 성인 남성 수십이 달려들어야 겨우 나를만한 무게였다.
백호가 사뿐히 자재들을 내려놓자, 서연은 머릿속으로 설계도의 모습을 가늠하며 한 손을 슬쩍 들었다.
가벼운 손짓을 따라 큼지막한 석재들이 둥실 떠올랐다.
고절한 허공섭물이었다.
척―
마치 종잇장을 들어올리는 듯했다. 무게감이 느껴지지 않았다.
“…….”
차곡차곡 쌓여가는 석재를 보고 일대가 다시금 경악으로 물들었다. 현실을 받아들이지 못해 눈을 비비는 이들도 있었다.
이번에는 민초들보다 무인들이 큰 놀람을 드러냈다.
“허공섭물로 저럴 수 있단 말인가?”
“벌써 한 시진 째야. 차라리 술법이라는 편이 믿을법 하겠는데.”
헛웃음을 짓는 이들이 적지 않았다.
“본신무공이라는 검은 꺼내지도 않았다. 얼마나 고강할까. 한 번 받아봤으면 소원이 없겠다.”
“빈객으로라도 들어가면 가능할지도. 더 높은 곳을 바라볼 수 있을 듯한데.”
“남정네들은 아서. 여인으로 태어난 덕 좀 보자.”
어디를 가도 정예에 속하는 무인들이었기에 뜻하는 바가 컸다.
과거에 태실산에 오두막을 지었을 때보다 빠른 속도였다. 그때는 무학을 제대로 알지 못했기 때문이다.
지금은 전신을 타고 흐르는 신령한 진기를 자유로이 다룰 수 있었다.
괜한 죄책감 때문에 인부들을 쉬게 하려는 것이 아니었다. 실로 그들을 대신할 자신이 있었기에 그리 말한 것이다.
스윽.
뒤이어 서연이 잔향을 발검했다. 어깨어림에서 진기를 일으켜 기단(基壇)을 향해 내질렀다.
사아악!
공기가 잘려나가는 소리와 함께 기단이 잘려나갔다. 보기 흉하게 튀어나와 있던 표면이 한순간에 매끄러워졌다.
건물의 토대를 찰나에 다진 것이다.
뒤이어 떠오른 두꺼운 나무 기둥들이 덜컥 소리를 내며 단단히 자리잡는다.
서연이 손짓을 거듭할수록, 허공을 맴도는 도화빛 진기 역시 짙어졌다.
건물을 하루만에 짓는다. 불가능한 일이다. 세상 물정 모르는 아이들도 그 정도는 알았다.
허나.
“…….”
점차 형태를 드러내는 전각을 보며 모두가 입을 다물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