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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5-12-14 21:31:57 +09: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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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aw Blame History

이서령의 이야기는 생각보다 충격적이었다.

물론 중원에 남존여비 사상이 존재한다는 것쯤은, 어느 정도 인지는 하고 있던 사항이었다.

다만 그 정도가 이 정도로 심할 줄은 몰랐을 뿐.

모든 이방인들은 이곳에 와서 이 세계와 중원이 다른 점에 대해 교육을 받는다.

사상과 문화적인 배경의 차이로 발생하는 문제를 미연에 방지하는 것이다.

따라서 중원의 이방인들이 무언가 문제를 저질렀다는 이야기를 들어본 적은 없었다.

게다가 내가 처음으로 접촉한 중원의 집단은 마교.

천마 자화연의 호법이었던 금강도 그렇고, 관계 어디에서도 자신의 주군을 여인이라 얕보는 듯한 분위기는 찾아볼 수 없었다.

아마 지금 생각해 보면, 마교는 남녀의 구분보다 힘의 논리가 우선이었기에 가능했던 일 같지만….

사도의 끝판왕인 마교에서조차 느낄 수 없었던 남녀차별을, 그들보다 더 정의롭고 고결하다고 알려진 정파에서는 만연할 것이라고는 미처 예상하지 못했던 것이다.

그것이 나의 가장 큰 착각이었다.

하지만, 그녀의 긴 이야기를 통해 한 가지 확신할 수 있는 것이 있다.

이서령은 설유월을 진심으로 사랑한다.

그 사실만은 확실하다.

다만, 그 사랑이 뒤틀려 있을 뿐.

그녀에게 있어 설유월은 자신의 과거를 투영하는 거울이었다.

설유월이 자신이 겪었던 고통을 겪게 하지 않겠다는 명목으로….

이서령은 그녀를 통제하고 있었다.

나는 천천히 입을 열었다.

“속에 쌓여 있던 많은 이야기를 해주셔서 감사합니다. 덕분에, 저 또한 두 분의 상황을 더 깊이 이해하게 되었습니다.”

내 말에, 이서령의 서글펐던 얼굴 위로 희미한 안도의 미소가 피어올랐다.

내가 그녀의 이야기를 듣고 감화되었다고, 그리 믿는 눈치였다.

그러나 나는 그녀가 하고 있는 가장 근본적인 착각을 바로잡아주어야만 했다.

나는 몸을 앞으로 기울이며, 그녀의 눈을 똑바로 바라보았다.

“하지만 맹주님께서 간과하고 있는 것이 하나 있습니다.”

내 차가운 목소리에 그녀의 미소가 다시 굳었다.

“이곳은, 더 이상 당신이 살아왔던 그 지옥 같은 중원이 아닙니다.”

나는 창밖의 화려하게 빛나는 도시의 야경을 손짓으로 가리켰다.

이곳은 대한민국이다.

원한다면 무엇이든 될 수 있다.

“이곳에서는 여인은 노리개가 아닙니다. 남성의 보호가 없어도 얼마든지 스스로의 힘으로 살아갈 수 있습니다. 그 사실을 맹주님께서도 이미 알고 계시지 않습니까.”

“그렇다 하더라도…!”

이서령이 본능적으로 반박하려던 그 순간.

나는 자연스레 호칭을 바꿨다.

“서령 씨가 딸을 지키기 위해 쌓아 올린 그 성벽이, 이제는 마땅히 누려야 할 자유로운 세상을 가로막는 감옥일 뿐일지도 모릅니다.”

그녀의 표정이 점점 더 침잠하기 시작했다.

“그리고 두 번째. 이서령 씨의 딸인 설유월씨는, 자신의 삶을 살아갈 권리가 있습니다.”

나는 잠시 말을 멈추고, 그녀의 과거를 인정해 주었다.

“그 잿더미 속에서 어린 유월 씨를 거두어주신 것은… 누가 보아도 칭찬받아 마땅한 일이었습니다. 아마 유월 씨 또한, 평생을 그리 생각하며 살아왔을 겁니다.”

그 말에 그녀의 눈빛이 희미하게 흔들렸다.

“그러나….”

나는 그녀의 흔들리는 눈동자를 보며, 마지막 쐐기를 박았다.

“그렇다 하더라도 그 선행이 한 사람의 인생의 방향을 정해도 된다는 이야기는 아닙니다.”

내 마지막 말에 상담실의 공기가 가라앉았다.

이서령의 온화하던 미간이 아주 희미하게 찡그려졌다.

분노한 것이 아니다.

자신을 평생 동안 지탱해온 신념이 무너져 내릴 수도 있다는 것을 깨달은, 그런 얼굴.

그녀는 거의 애원하듯 더 슬픈 목소리로 속삭였다.

그리고 내 손을 부여잡았다.

“아닙니다… 의원님….”

그녀의 뜨거운 온기가 내 손등 위로 스며들기 시작했다.

“중원의 사내들은 전혀 달라지지 않았습니다…. 그저 이 세계의 법도에 맞춰 연기하고 있을 뿐. 그들의 뿌리 깊은 생각은, 결코 변하지 않았습니다.”

“그렇군요.”

그녀는 마지막 남은 동아줄이라도 붙잡듯, 말을 이었다.

“따라서 제 딸이 그 짐승들로부터 안전하기 위해서는….”

바로 그 순간.

나는 그녀의 말을 부드럽게 잘랐다.

“그렇다면 서령 씨.”

나는 내 손 등을 붙잡고 있는 그녀의 가녀린 손가락들을 아주 천천히, 하나씩, 풀어냈다.

그리고 그 손이 도망치기 전에 다시금 단단하게 움켜쥐었다.

그녀의 눈이 내 예상치 못한 행동에 놀람으로 커졌다.

나는 그녀의 흔들리는 눈동자를 보며 마지막 질문을 던졌다.

“그런 위험한 사상들을 가진 자들과 소중한 딸을 붙여놓지 않는 것이, 가장 효과적인 보호 방법이 아니겠습니까?”

“…….”

“그런데 왜 굳이 그 짐승들의 우두머리로 당신의 딸을 세우려 하십니까.”

이서령은 아무런 대답도 하지 못했다.

그녀는 내게 붙잡힌 손을 빼내려 아주 약하게 버둥거릴 뿐이었다.

하지만 그 미미한 저항마저 이내, 스르르 힘이 풀렸다.

“이제는 그녀는 창천맹주라는 울타리가 존재하지 않더라도, 충분히 행복하고 안전하게 살아갈 수 있습니다.”

아마 그녀도 은연중에 인지하고 있었을 것이다.

이 세계에서는… 설유월에 대한 그녀의 보호 방식을 바꿔야 하지 않을까 하는.

이 세계 홀로 오게 되면서 그녀의 유일한 목표이자 삶의 방향성이었던 설유월이라는 존재가 사라졌다.

그러나 그 거대한 공허함과 걱정 속에서도, 그녀는 삶의 이유를 만들어냈다.

‘혹시라도, 내 딸이 이곳으로 오게 된다면.

그녀는 그 실낱같은 가능성 하나에 모든 것을 걸고, 창천맹이라는 거대한 성을 쌓았다.

그리고 그 성의 가장 높은 곳에서 오직 딸을 위해 다시 맹주가 되었다.

그리고 마침내 설유월이 나타났다.

그녀의 유일한 목표이자 살아가는 이유가 멀쩡하게, 눈앞에 나타난 것이다.

그녀는 그저 자신이 할 수 있는 최선을 다했을 뿐이다.

다만, 그녀가 딸을 위해 지은 완벽한 감옥이 다소 시대착오적이었을 뿐.

“흑….”

그녀의 붉은 입술 사이로 아주 작은 소리가 터져 나왔다.

이서령은 결국 흐느끼기 시작했다.

기댈 곳을 찾듯, 내게 붙잡혀 있던 그녀의 손이 오히려 내 손을 필사적으로 꽉 맞잡아왔다.

이서령은 소리 내어 울지도 못했다.

멈추지 않는 눈물을 쉴 새 없이 흑옥 테이블 위로 떨어뜨릴 뿐.

나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그저 그녀의 손이 원하는 바를 들어줬을 뿐.

그녀의 울음이 잦아들기를 기다리며, 나는 앞으로의 대화 목표를 명확히 세웠다.

이 기묘한 모녀 관계는 사실 일방적인 의존이 아니었다.

설유월이 어미에게 의존하는 만큼, 역설적으로 이서령 또한, 지켜야 할 딸인 설유월에게 지독할 정도로 의지하고 있었다.

따라서 이서령의 그 뒤틀린 의존을 먼저 끊어내는 것이, 가장 바람직한 치료법일 터.

그렇다면, 그 방법을 어떻게 하느냐가 중요한데….

지금 바로 무언가를 더 할 수는 없다.

이서령에게도 스스로의 생각을 정리할 시간이 필요하다.

단번에 많은 변화를 요구하면 그 반동도 강해지는 법이니까.

그때였다.

내 눈앞에 익숙한 창이 떠올랐다.

[비정상적인 내담자의 접근을 확인했습니다!]

[사용자에게 시스템이 두 가지의 접근 방식을 제시합니다! (ノ´∩。• ᵕ •。∩)ノ ]

응?

나는 순간, 미간을 찌푸렸다.

능력이 이런 식으로 선택지를 제시하며 말을 걸어오는 것은 정말 오랜만이었다.

내가 처음 이 세계에 떨어져 능력을 각성하고, 아무것도 모른 채 헤매던 시절.

시스템은 이런 방식으로 내게 도움을 주고는 했었다.

‘좋아, 해봐.

나는 간만에 향수를 느끼며 시스템의 말을 들었다.

실제로 당시 능력의 제안과 해결법은 늘 우수했었다.

이번에도 슬기로운 해결책을 가져올 것을 기대하며, 제시를 기다렸다.

[첫 번째입니다!]

[남존여비 사상이 뼛속까지 박힌 중원 출신인 내담자 이서령에게 당신과의 완벽한 상하관계를 주입시킵니다! ]

뭐?

[여인의 진정한 안식이자 기쁨은, 옥좌에 군림하는 것이 아닌 사내의 비호 아래 있는 것이라는 사실을 몸과 마음으로 가르쳐 주는 것입니다.]

[그녀가 평생을 갈구했던 진정한 평온은 지배하는 것이 아닌 기꺼이 지배당하는 희열 속에 있다는 것을….]

야.

[ (〃⌒▽⌒〃)ゝ]

뭘 잘했다고 이렇게 해맑아.

미쳤어?

[ ( っ◞‸◟ς) ]

대체 어디까지 하나 지켜보다 보니 아주 끝까지 간다.

이게 어딜 봐서 치료방법의 일종이라는 건지.

얘가 진짜 요즘따라 상태가 이상한 것은 맞는 것 같다.

진지한 상담이 필요해 보이는데….

일단 들어보기나 하자.

두 번째는 뭔데.

아직 녀석의 가능성을 믿어보기로 했다.

[두 번째 입니다!]

바로 신나서 이야기를 시작했다.

[그녀가 그토록 원했던 평온을 사용자가 직접 만들어주는 겁니다.]

[내담자 설유월에게는 그녀가 평생을 갈구했던 다정한 아버지가 되어주십시오. 그리고 내담자 이서령에게는… 그녀가 단 한 번도 가져보지 못했던, 다정하고 믿음직한 지아비가 되어주는 겁니다.]

[한낮에는 딸의 머리를 빗겨주고, 늦은 밤에는 따스한 이불 속에서 지친 지아비를 위해 아내가 온몸으로 올리는 극진한 봉사를 받으며 두 명의 길 잃은 여인에게 가족이라는 이름의 달콤한 안식을….]

당분간 말 걸지 마.

나는 단호하게 명령했다.

[(☍д⁰) ]

[그러나, 본 시스템은 언제나 궁극적이고 절대적으로 사용자를 위한 최적의 선택지만을 제시한다는 점을 기억해 주십시오!]

[어디까지나 내담자의 내면에 있는 정보를 바탕으로 제시한 선택지임을 강조 드립니다···.]

녀석은 억울하다는 듯, 마지막 항변을 남기고는 힘없이 사라져 갔다.

[ ꜀( ꜆´⌓`)꜆ ]

나는 텅 빈 허공을 보며, 마음속으로 깊은 한숨을 내쉬었다.

날 위한다는 게 뭘까?

과연 이서령에게 완벽한 상하관계를 주입시키는 것이 나에게 무슨 도움이 된다는 건지….

일단 치료도 아닐뿐더러 그런 방식은 말이 안 된다.

나는 어지러운 생각을 멈추고, 눈앞의 현실에 집중했다.

눈앞의 흐느끼는 이서령에게 티슈를 뽑아 조용히 건넸다.

“서령 씨.”

이서령은 떨리는 손으로 그것을 받아들었다. 그리고 작게 고개를 숙였다.

나는 그녀의 젖은 눈을 부드럽게 마주했다.

“오늘은 우선 여기까지 하시죠. 스스로 생각해 볼 시간이 필요해 보입니다.”

“네….”

이서령은 젖은 휴지를 쥔 채, 소리 없이 일어나 비틀거리며 상담소를 나섰다.

나는 그녀가 떠난 자리를 한참 동안 바라보았다.

모래성 같았던 어머니의 신념이 무너졌다.

그리고 그 모래성 안에서 평생을 살아왔던 딸이 있다.

이제 저 모래더미 위에 쓰러진 두 모녀를 어떻게 다시 일으켜 세워야 할까.

나는 고개를 돌려 창밖의 도시를 바라보았다.

새로운 과제의 시작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