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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선우의 아래에 깔려있는 지금.
그의 숨결이 뺨에 닿고, 셔츠 너머로 심장이 세차게 뛰는 것이 느껴진다.
등 뒤에서는 검은색 재가 불에 타서 휘날리고 있다.
이 정도의 거리감.
딱 이정도가 적절했다.
불타 없어지는 최시혁의 잔해를, 그리고 자신의 위에 올라 타 있는 유선우의 얼굴을 번갈아 보며….
메어리는 과거를 회상했다.
과거의 이야기다.
그녀의 세상은 잿더미가 되었고, 그녀의 등 뒤에는 아무것도 남아있지 않았다.
10년간의 전투 끝.
신국 에레보스의 마지막은….
모든 것을 건 대사제와 성기사들의 마지막 저항은, 결국 강림한 악마와 함께 모든 것을 무(無)로 돌리는 동귀어진으로 끝을 맺었다.
땅에서 갈라진 틈새로 용암이 솟아오르고. 지상에는 살아 숨 쉬는 생명체가 단 하나도 남아있지 않았다.
메어리 또한, 무너져가는 세계 속에서 고향과 함께 최후를 맞이했어야만 했다.
그러나 세계가 무너지려던 바로 그 순간, 알 수 없는 힘이 그녀를 붙잡았다.
차원이 찢어지는 듯한 감각과 함께, 그녀는 자신의 의지와는 상관없이 다른 세계로 전이되었다.
신국 에레보스의 마지막 생존자.
그녀에게는 돌아갈 고향은 물론이고.
고향 사람도.
그녀를 사랑했던 사람도.
그냥… 그녀를 기억해주는 사람도 없었다.
모든 것이, 희미한 기억으로만 남을 뿐.
그 절망적인 무게는 어린 소녀가 감당하기에는 너무나도 무거웠다.
그리고 그 무게는, 태도에서 드러난다.
“저기, 메어리 씨. 그게 아니라… 괜찮으면… 같이 운동이라도 할까 해서….”
“꺼져.”
당시 황금 기수의 최고 유망주였던 최시혁을 비롯한 다른 이방인들은, 그녀의 비현실적인 외모에 혹해 끊임없이 접근했었다.
다만 돌아오는 건 언제나 거절뿐.
얼마 지나지 않아 대부분의 인원은 깨달았다.
그녀는 독을 품은 꽃이라는 것을.
그러나, 그렇게 생각하지 않는 사람이 단 한 명 있었다.
메어리가 이 세계에 막 도착했을 때.
모든 이들에게 적개심을 드러낼 때.
세상에 남은 내 편은 이제… 아무도 없다고 느꼈을 때.
그냥 이러다가, 확 죽어버릴까 하던 생각을 하며, 공원을 걸어 다녔을 때.
“…….”
그녀는 보았다.
늦은 밤, 달빛이 내려앉는 벤치 위, 한 남자가 고개를 숙인 채 소리 없이 어깨를 들썩이고 있는 모습을.
필사적으로 울음을 참는 흐느낌.
간간히 얼굴만 봤던, 유선우라는 남자였다.
-
메어리씨, 좀 웃으세요. 인상 피는 게 훨씬 예쁘던데.
-
꺼져.
-
오케이~ 내일 또 봐요!
늘 넉살 좋게 자신에게 말을 걸고, 거절에도 다음 날이면 아무렇지 않게 다시 다가오던 남자.
그녀는 그 내면에 조금의 흑심도 없다는 것을 본능적으로 느끼고 있었다.
늘 밝게 빛나며 모두와의 관계가 좋았던 그가.
홀로 벤치에 앉아 눈물을 삼키고 있었다.
메어리는 잠시 그 자리에 멈춰 섰다.
내면에서 호기심이 마구 피어오른다.
약한 자.
하지만 동시에 상처를 자신과는 다른 방식으로 숨기고 있었던 자.
메어리와 반대였다.
고통을 내비치고 가시를 세우는 것이 아닌, 숨기는 것을 선택한 저 남자가.
조금은… 궁금해졌다.
어째서인지 발걸음이 떨어지지 않았다.
대신 메어리는 조용히 움직였다.
정원 한구석에 놓인 자판기로 향했다.
희미한 불빛 아래에서 그녀는 따뜻한 캔 커피 하나를 뽑았다.
다시 벤치로 돌아왔을 때, 그는 여전히 고개를 숙인 채 미동도 없었다.
메어리는 그의 옆, 손이 닿을 만한 거리에 캔 커피를 조용히 내려놓았다.
- 탁.
벤치 위로 캔이 부딪히는 소리가 정원에 울려 퍼졌다.
유선우가 화들짝 놀라 고개를 들었다.
그는 황급히 눈물을 닦아냈지만, 이미 붉어진 눈가는 감출 수 없었다.
메어리는 이미 몸을 돌린 후였다.
대체 뭘 하고 싶었던 건지.
그녀는 한마디도 하지 않고 소리 없이 사라지려 했다.
그러나.
“메어리씨.”
유선우가 그녀를 불렀다.
그의 목소리는 쾌활하기보다는, 약간 지친 느낌이었다.
메어리는 걸음을 멈추고, 천천히 고개를 돌려 그를 바라보았다.
유선우는 살짝 젖은 눈으로 희미하게 미소 지으며, 자신의 옆, 텅 빈 벤치를 툭툭 두드렸다.
“앉으실래요?”
메어리는 잠시 망설였다.
… 그때는 왜 망설였는지 모르겠다.
분명 대답도 안 하고 고개를 돌렸어야 그녀의 성격에 맞았으니까.
그러나 메어리는 말없이 다가가 반대편 끝에 조심스럽게 걸터앉았다.
두 사람 사이에는 어색한 침묵이 흘렀지만….
먼저 침묵을 깬 것은 유선우였다.
“부끄럽네요.”
그는 캔 커피를 손에서 굴리며 조심스럽게 말했다.
“메어리 씨 앞에서 이런 모습을 보이는 게.”
무슨 말을 하는지 알 것 같았다.
고작 이런 일로 우는 게.
기수의 인원들은 메어리의 배경에 대해서는 대충 알고 있었다.
고작 이런 일로 메어리 앞에서 우는 게 부끄럽다는 뜻이었으리라.
메어리는 그것에 대답하지 않았다.
멈춰 선 것도 다른 이유가 아니다.
글쎄.
그녀도 다르지 않았다.
매일 밤.
아무도 없는 침실에서, 그녀는 베개에 머리를 박고 소리 없이 울었다.
비명조차 사치라고 생각했다.
가끔은 이대로 모든 걸 끝내버릴까 생각도 했다.
그냥, 살아갈 이유가 없으니까.
메어리는 살짝 촉촉해진 눈가를 닦는 그를, 텅 빈 눈으로 바라보았다.
‘너도 마찬가지 아니야?’
슬픔에는 우열이 없다.
그렇게 환하게 웃고 떠들던 그도, 결국 밤에는 이렇게 홀로 속을 삭인다.
어떤 아픔이 있는지는 모르겠다.
다만.
겉으로 드러내는 방식이 다를 뿐, 상처 입은 사람이라는 점에서는 똑같았다.
‘결국 너도 나와 다르지 않은 것 아니야?’
슬픔의 크기를 어떻게 비교하겠는가.
메어리는 자신의 고통을 부풀리고 남의 아픔을 깎아내리는 성격은 더욱 아니었다.
“딱히.”
따라서, 메어리는 그를 바라보지 않고, 그렇게 말했다.
“강한 것 같아요. 메어리씨는.”
“그것도, 딱히.”
그럴 리가.
내가 강했다면….
전부, 구할 수 있었겠지.
내 세상이 무너지지 않았겠지.
모두가 죽지도 않았을 테고.
그리고 나 혼자, 이렇게 도망치지도 않았을 것이다.
메어리가 자조적인 절망에 잠겨 고개를 숙이고 있던 바로 그때였다.
“글쎄요.”
유선우는 고개를 갸웃했다.
“그 모든 게 메어리 씨 잘못은 아니잖아요.”
“뭐…?”
메어리는 저도 모르게 반문했다.
입 밖으로 내뱉지 않았다. 속으로 떠들던 죄책감이었다.
그런데 그는 마치 그녀의 마음속을 읽은 듯, 그 자조에 대답하고 있었다.
메어리는 경악이 담긴 눈으로 그를 바라봤다.
“방금… 뭐라고….”
어떻게, 대체 어떻게.
그러나 유선우는 대답하지 않았다.
입꼬리를 끌어올리고, 부드럽게 미소지을 뿐.
메어리는 순간, 꿈을 꾸는 것 같다고 생각했다.
늘, 듣고 싶은 말이었다.
‘네 잘못은 아니잖아?’
잿더미가 된 고향을 등지고 낯선 세상에 떨어진 매 순간, 듣고 싶었던 단 한마디였다.
하지만 동시에 그 누구도 그녀에게 해줄 수 없는 말이기도 했다.
그런데, 너는 어떻게?
어떻게 안 거야?
“어떻…!”
- 톡.
바로 그 순간, 유선우의 손가락 끝이 그녀의 이마에 부드럽게 닿았다.
메어리는 깜짝 놀라 그를 올려다보았다.
“그냥.”
“…….”
유선우는 속삭였다.
“그렇게 생각하고 있을 것 같아서.”
그리고 천천히 덧붙였다.
“눈으로 보이는게… 다는 아니니까.”
그는 그때부터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손가락을 거두고 곁을 묵묵히 지킬 뿐이었다.
두 사람은 아무 말 없이, 벤치에 나란히 앉아 있었다.
시간이 흘렀다.
하늘에 떠 있던 달이 서쪽으로 기울고 차가운 새벽 공기가 둘 사이에 내려앉는다.
그는 떠나지 않았다.
그녀의 고통을 동정하지도, 섣부른 위로를 건네지도 않았다.
얼마나 지났을까.
밤의 장막이 걷히고 세상이 서서히 잠에서 깨어나는 시간.
격리소의 거대한 돔 너머로, 햇살이 비춘다.
메어리는 고개를 돌렸다.
옆에는, 밤새 그녀의 곁을 지켜준 유선우가 앉아 있었다.
그리고.
메어리도 길고 길었던 악몽에서, 비로소 깨어났음을 느꼈다.
똑같은 오후.
똑같은 식사.
격리소의 거대한 식당 안, 메어리는 언제나처럼 홀로 앉아 있었다.
이제는, 그녀에게 그 누군가도 말을 걸지 않는다.
그러나.
“메어리씨!”
누군가의 밝은 목소리가 그녀를 부른다.
식당 안의 모든 소음이 순간 멎고, 모든 이들의 시선이 한곳으로 쏠렸다.
유선우였다.
그는 식판을 든 채, 그녀를 향해 환하게 웃고 있었다.
메어리는 저도 모르게 손가락을 꼼지락거렸다.
‘어떻게 해야 하지?’
심장이 세차게 뛰었다.
어젯밤의 기억이 스쳐 지나갔다.
소리 없이 그녀의 곁을 지켜주던 그의 온기, 그리고 이마에 닿았던 손가락 끝의 다정한 감촉.
꺼지라고 할까?
아니면, 어제처럼 이마를 톡톡 해달라고 할까?
아니면, 어떻게?
선택지가 맴돈다.
그녀는 결국, 한 번도 선택해 본 적 없는 길을 택했다.
“… 응.”
고개를 숙인 채, 모기만 한 목소리로 내뱉은 대답.
그 조심스러운 대답에, 식당에 있던 많이 이들의 시선이 집중되었다.
“밥, 같이 먹을까요?”
그 소란의 중심에서, 오직 유선우만 환하게 웃고 있었다.
그게 메어리와 유선우의 시작점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