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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5-12-14 21:31:57 +09: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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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aw Blame History

[루나]

[메인 스탠스]

[’헌터’ 루나라는 존재에 대한 자긍심이 소량 생겨났습니다. 그러나 아직 새싹과도 같은 자긍심입니다. 어르고 달래고, 물을 주며 소중히 키워낼 필요가 있습니다.]

이 정도면 괜찮네.

우선 첫 번째 과제는 잘 넘긴 듯하다.

자기혐오와 자조로 가득 차 있었던, 루나의 자존감 펌핑 작업은 어느 정도 성공했다.

씨앗도 심어놨고.

쉽지가 않았다.

능력도 오늘따라 제멋대로고.

과거에는 몇 번 이러긴 했는데, 내 숙련도도 늘었고, 시스템도 철이 들면서 자연스레 사라진 줄 알았다.

근데 그게 아니었던 건가?

아무튼 나는 목이 타는 듯한 기분이 들어, 눈앞의 아메리카노를 들이켰다.

씁쓸한 액체가 머리를 차갑게 식혀준다.

이제 어떻게 할까.

상담을 끝내기 좋은 타이밍이긴 하다. 이대로 끝내면 그녀는 긍정적인 경험을 안고 돌아갈 수 있다.

그러나… 솔직히 말해 이대로 보내기에는 또 조금 애매하기도 했다.

시스템의 문구처럼, 막 피어난 자긍심의 새싹은 너무나도 연약하다.

다시금 길드 내부 제국인들의 차가운 시선이나, 사소한 스트레스 하나에 쉽게 꺾여버릴 수 있다.

그리고 한번 꺾인 새싹은, 다시 피어나는 데 훨씬 더 많은 노력이 들어갈 것이다.

최소한의 비바람을 막아줄, 작은 온실이라도 만들어주어야 한다.

결국 내가 생각하는 루나와의 상담에서 이뤄야 할 궁극적인 과제는 간단했다.

그녀가 가진 두 개의 정체성을, 하나의 온전한 정체성이 되게끔 인도해 주는 것이다.

그렇다면 첫 번째 정체성.

제국의 일원이라는 정체성을 강화해 주는 것은 어떨까?

‘이건 별로….

나는 곧바로 그 생각을 머릿속에서 지웠다. 하책에 가깝다.

그녀가 아무리 제국의 귀족처럼 행동하고, 그들의 법도를 따르려 노력한들, 그들이 잡종이라 멸시하는 그녀를 진정으로 받아줄 리가 없다. 닿을 수 없는 목표를 향해 달리게 만드는, 잔인한 길이다.

무엇보다 제국의 귀족이 되는 것은, 루나에게도 그다지 좋은 방법은 아닐 것 같았다.

그들의 방식대로라면 그녀는 무투를 천한 것이라 여기며 멀리하고, 마법에만 매달려야 한다.

하지만 루나가 가진 헌터로서의 역량은, 무투와 마법 두 가지가 절묘하게 섞였을 때 나타난다.

무투의 길을 버린다면 큰 손실이다.

즉, 여러모로 제국의 일원의 정체성을 일깨워 주는 것은 하책이다.

그렇다면… 수인이라는 정체성으로 굳히게끔 인도하는 것은 어떨까.

“…….”

솔직히 말해 단점을 찾기가 어려웠다.

이 세계에서 수인은 기피 대상보다는 오히려… 애호와 인기의 대상으로 여겨지니까.

그럼 그렇게 해보자.

내가 마음속으로 결심을 굳히자, 기다렸다는 듯, 눈앞에 하나의 창이 떠올랐다.

[적합 답변] [만족 적합률 79%]

[수인으로서의 자긍심을 고취시키는 것은 어떨까요?]

갑자기 웬 질문?

평소처럼 하십시오~ 거리는 명령형 말투가 아니었다.

자꾸 선택지를 무시하니까 회유하는 것 같은 느낌이 드는 건 기분 탓이겠지.

사실 내 생각도 비슷하긴 했다.

나는 그녀의 붉은 눈을 마주 보며 입을 열었다.

“루나님.”

내 부름에, 그녀의 어깨가 희미하게 움찔했다.

넋을 놓고 있던 그녀의 초점이 서서히 내게로 맞춰졌다.

“네… 선생님.”

과연 수인으로서의 자긍심을 고취시킬 수 있는 방법에는 뭐가 있을까?

정답은, 그 종족의 장점에 대해 인지시키는 것이다.

잡종의 저주가 아니라, 수인이라는 종족이 가진 축복으로.

“그런데, 수인이라는 종족은 정말 우수한 것 같습니다. 평범한 인간인 제가 봤을 때는요.”

“네?!”

루나는 전혀 예상하지 못했다는 눈을 크게 떴다.

“제국에서는 수인의 본능을 천한 것이라 멸시한다고 하셨죠. 하지만 이곳에서 그 본능은, 적의 살기를 감지하고 동료의 위험을 예측하는 초감각이라 부릅니다. 소수의 선택받은 헌터들만 가질 수 있는 모두가 선망하는 능력이죠.”

억지로 쥐어 짜내는 칭찬이 아니었다. 실제로 내가 최근 수인에 대해 공부하며 품게 된 생각이었다. 초감각은, 노력만으로 얻을 수 있는 영역이 아니었으니까.

“그… 그건….”

루나의 하얀 뺨이, 붉게 물들기 시작했다. 나는 그녀가 반박할 틈을 주지 않고, 말을 이었다.

“그뿐만이 아닙니다. 제국에서 야만적인 것이라 부르는 수인의 완력과 각력은, 모든 헌터들이 부러워하고, 또 선망하는 최고의 신체 능력이죠.”

“아니… 아니에요….”

나의 칭찬 공세에, 루나는 어쩔 줄 모르겠다는 듯 고개만 저었다.

그녀의 볼은 잘 익은 사과처럼 새빨갛게 달아올라 있었다.

그리고 마지막.

이제 그녀가 눈으로 직접 확인할, 결정적인 증거가 필요했다.

“게다가.”

나는 태블릿을 들어, 어젯밤 찾아낸 하나의 영상을 틀었다.

[제목: 게이트 클리어 후 팬 서비스 하는 엘리스 헌터]

얼마 전, 커뮤니티를 뜨겁게 달구며 엄청난 이슈가 됐었던 영상이었다.

화면에는 루나와 비슷한 얼굴을 하고 있지만 전혀 다른 분위기를 풍기는 그녀의 쌍둥이 동생 엘리스가 나오고 있었다.

루나와 달리 길쭉한 잿빛 귀와 솜털 같은 꼬리를 전부 자랑스럽게 드러낸 그녀는, 게이트 토벌이 끝난 직후 팬들에게 둘러싸여 있었다.

그녀의 인기는 아이돌이 부럽지 않을 정도로 절정이었다.

엘리스는 기분 좋게 웃으며, 한 꼬마 여자아이를 번쩍 들어 목마를 태워주는 팬 서비스를 시작했다.

그러나 이 영상이 이슈가 된 진짜 이유는, 바로 다음 순간이었다.

목마를 탄 꼬마 아이가, 순수한 호기심에 엘리스의 쫑긋한 귀를 향해 작은 손을 뻗었다.

그러나 엘리스는, 아이를 보지 않고서도, 그 손길을 본능적으로 느꼈는지.

  • 쫑긋, 쫑긋.

잿빛 귀가 아이의 손길을 피해 아래, 위로 춤을 추듯 가볍게 움직였다.

아이가 꺄르르 웃으며 다시 손을 뻗자, 이번에는 귀를 앞으로 살짝 접으며, 장난스럽게 회피했다.

왼쪽 오른쪽을 번갈아가며 쫑긋쫑긋.

그 무해하고 사랑스러운 광경에, 영상 속의 팬들은 물론 영상을 보는 모든 이들이 열광했다.

나는 화면 속에서 눈을 떼지 못하는 루나를 보며, 영상 아래의 댓글 창을 스크롤 했다.

대부분 엘리스에 대해 우호적이고 좋은 댓글이었다.

전부 보여줄 것이다. 그녀가 품은 긍정적인 감정을 확신으로 바꿔주기 위해.

“보세요, 루나님. 이게 루나님을 그리고 수인을 바라보는 이 세계 사람들의 진짜 시선입니다.”

나는 가장 반응이 좋은 댓글들을, 그녀가 잘 볼 수 있도록 화면을 띄워주었다.

그러나, 루나의 시선이 댓글로 향하는 순간, 그녀의 표정이 이전과는 비교도 할 수 없을 정도로 새빨갛게 달아올랐다. 붉은 눈이 빙글빙글 돌기 시작하더니, 이내 고개를 푹 숙여버렸다.

태블릿 화면은 물론 내 얼굴조차 쳐다보지 못한 채, 무릎 위의 손을 어쩔 줄 모르겠다는 듯 꼼지락거릴 뿐이었다.

“서… 선생니임….”

그녀가 애처롭게 떨리며 달뜬 목소리로 나를 불렀다.

‘뭐지…?

뭐로 봐도 감동한 표정과 반응은 아니었다.

루나의 기묘한 반응에 나도 재빠르게, 그녀가 보고 있는 댓글들을 확인했다.

[SD_par]: 진짜 엘리스 귀 꽉 쥐고 존나…

[choi_142]: 으럇으럇 내 아이를…

[room_78]: 손잡이커버 복슬복슬하네

이런 개 미친.

나는 사색이 되어, 거의 본능적으로 태블릿을 빼앗아 화면을 꺼버렸다.

등줄기를 타고 식은땀이 흘러내렸다.

“…….”

“…….”

상담실 안에서는 정적만이 흘렀다.

진짜 시간을 되돌리고 싶다. 완벽한 빌드업이었는데 내 손으로 시원하게 말아먹었다.

어떤 커뮤니티인지 확인부터 좀 할걸 진짜.

그때였다.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이 새끼가?

눈앞에 시스템이 현 상황을 비웃었다.

마치 내 말을 안 따라서 이렇게 된 것이라는 듯.

오늘 아주 갈 때까지 가는구나.

뭘 웃어 심각해 죽겠는데 지금.

그러나, 그 요란한 비웃음과 함께 현 루나의 상태가 다시 드러났다.

[루나]

[메인 스탠스]

[수인은 이곳에서도 멸시받는 짐승인 줄로만 알았는데, 지구에서는 성적 대상으로도 소비될 만큼, '여러' 방향성으로 사랑받고 있다는 사실을 깨닫고 약간의 기묘한 자긍심을 느끼고 있습니다.]

‘…와.

이거 진짜야?

루나 씨 보기보다 개방적인 성격이네.

그래도… 정말 다행이었다.

그들의 저급한 진심이, 그녀에게 닿기는 한 모양이다.

성희롱이 그들 나름의 관심을 표현하는 방식…? 아 그건 아닌 것 같기도 하고.

일단 사과는 하자.

“죄송합니다. 제가 제대로 확인했어야 했는데.”

“… 아니에요.”

즉시 돌아온 답변이었다. 루나는 붉어진 얼굴로 손을 내저었다.

그리고 잠깐의 정적 이후.

“그…제가 오늘… 동생이랑 약속이 있어서… 이만… 다음에 또 뵐게요 선생님….”

루나는 더 이상 내 얼굴을 쳐다보지도 못한 채, 거의 기어들어가는 목소리로 자리에서 엉덩이를 슬쩍 뗐다.

“아 그럼요. 오늘 상담 고생 많으셨습니다. 다음에… 또… 뵙게….”

내 대답이 채 끝나기도 전에, 그녀는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 문 쪽으로 거의 도망치듯 향했다.

시뻘게진 얼굴로 고개를 푹 숙인 그녀는 문고리를 잡는 손마저 삐끗하더니 황급히 상담실을 빠져나갔다.

“…….”

나는 그 요란한 퇴장을 쓴웃음과 함께 지켜봤다.

‘핀.

나는 도망치는 토끼의 상태를 재확인했다.

[루나] [PINNED]

[현재 상태: [경축] 인생 최고 심장 박동수 돌파! 자신의 심장소리가 선생님에게 들릴까 봐 도망치는 중.]

[메인 스탠스: 엘리스가 나온 영상의 출처(헌터 갤러리)를 정확히 기억했음.]

“…….”

대체 헌터 갤러리는 왜….

혹시 법적 대응이라도 하려고 그러시는 건가.

루나가 과연 다시 올까?

솔직히 오늘 내가 한 짓을 생각하면 헌터 갤러리보다 오히려 나를 먼저 고소한다고 해도 할 말은 없겠다.

결과가 어찌 되었든… 루나의 1차 상담은 끝났다.

그렇다면 이제, 남은 건.

“야.”

나는 아무도 없는 상담실 허공을 향해, 낮고 서늘한 목소리로 입을 열었다.

“너 오늘 갑자기 왜 그래. 철든 뒤로는 안 그러는 거 아니었어?”

그러나 아무런 응답도 나타나지 않았다.

“안 들리는 척하지 마. 거기 있는 거 다 아니까.”

내 경고에 마침내 눈앞에 반투명의 시스템 창이 떠올랐다.

[본 시스템은, 언제나 가장 좋은 방향성의 선택지만을 제시합니다.]

저항이었다.

나는 미간을 찌푸리며, 아이를 혼내듯 말했다.

“혼난다 진짜.”

[사용자의 피드백을 반영하여, 알고리즘을 수정 중입니다. _〆(。。) ]

[본 시스템은 언제나 사용자를 위합니다! 진심으로 사과의 말씀을 드립니다!]

[ヽ(●゚´Д`゚●)ノ゚ ]

또 저렇게 이모티콘으로 사과를 하니, 방금 전까지의 분노가 사라지며 측은한 마음마저 들었다.

그래, 뭐… 돌이켜보면 녀석의 제안이 나쁜 결과로 발전한 적은 없었으니까.

“… 앞으로 잘하자.”

그러자, 시스템 창이 환하게 빛나며, 마지막 메시지를 띄웠다.

[٩( ゚ヮ゚)و]

나는 그 해맑은 이모티콘에 결국 웃음을 터뜨리고 말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