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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Authored-By: Claude Opus 4.5 <noreply@anthropic.com>
2025-12-14 21:31:57 +09:00

14 KiB

늦은 저녁이나 새벽 방송의 수요는 언제나 있는 법이다.

그리고 그 중에는 밤낮을 가리지 않고 시청자들과 돈을 위해 내달리는 스트리머들도 적지 않았다.

나름 스트리머 대회에서도 우승을 차지했던 듀랑 또한 그 중 하나였다.

“...진짜 꺾일 뻔했다.”

그런 부류의 방송 중 가장 체급이 큰 듀랑의 방송은, 밤보다는 새벽에 가까운 시간에 접어들었음에도 오히려 사람이 많았을 때보다 더 많은 도네이션이 터지고 있었다.

—ㅊㅊㅊㅊㅊ

—다이아ㄷㄷㄷ

—우리 듀랑 력실방송 맞습니다

—캬

—버스 타고 존나게 달려서 겨우 다이아 찍먹했다는 나쁜말은 하면 안되겠죠?

—ㅋㅋㅋㅋㅋㅋ

—이번판 솔직히 개에바였음

“아, 예. 인정합니다. 저 버스 탔어요.”

서폿이 트롤링을 하느라 라인전 자체가 성립이 안 됐고, 레벨을 제외하면 상대 원거리 딜러에 비해 앞서는 게 단 하나밖에 없었다.

보통 이렇게 서폿이 탈주보다 못한 짓을 해대면 듀랑은 다른 방송인들이 으레 그렇듯 억지로 까지 말라며 본인 실력에 대한 자체적인 옹호를 하기 마련이다.

하지만 듀랑은 이번 판만큼은 깔끔하게 버스를 탔다고 인정했다.

“솔직히 여기서 우기는 건 이분에 대한 예의가 아니죠. 트루님인가?”

게임이 끝나고 나오는 전적판에서 본인 팀의 미드라이너 닉네임을 확인한 그는, 무한한 존중을 보냈다.

—대 트 루

—버스의 신

—진짜 그냥 ㅈㄴ잘하더라

—듀랑이 얘 발톱 때만큼만이라도 했으면 진즉 그마는 갔을 듯

—ㅋㅋㅋㅋㅋ

“에헤이. 제가 그 정도로 심각하진 않죠.”

—전적 보면 걍 전프로 수준이던데?

—승률 88%ㄷㄷㄷㄷ

“오케이. 인정. 저 분 발톱 때 정도만 해도 감지덕지네요.”

—걍 프로 부계 아니냐

—ㄴㄴ여중생임

—뭔 개소리야

—진짠데(방송_링크)

—????

—이왜진

—진짜 듀랑이랑 방금 같이 게임한 미드 맞네?

—뭐임

—돌았네

원래 타 스트리머 언급이야 다들 자제하는 편이었지만, 이번만큼은 궁금증이 규칙을 이겼다.

“아니 뭐, 여중생? 중3?”

그러면서 그는 자연스럽게 트루에게 친구 신청을 보냈다.

—???

—이 새끼......

—새벽에도 경찰서 문 여냐?

—구치소 말고 그냥 감방에 바로 처넣죠?

—버스 맛을 못 잊고 하다하다 죄수 이송 버스까지 타보려고 하는 듀랑...

—숟가락 새끼들이 다 그렇지

—캐리해줬는데 고맙다고 하진 못할망정 이런 테러를?

—듀오 해달라고 말하기만 해봐라 ㅅ1ㅂ

—여중생이 운전해주는 버스 타고 놀면서 랭크도 올릴 거라는 거지?

—진짜 다 차려진 밥상에 수저도 안 올리고 날먹하려는 심보 ㅈㄴ괘씸하네

—나

—락

—나

—락

“에이, 그냥 순수하게 잘하셔서 좀 대화나 해볼까 하고 건 거지, 절대 듀오 안 합니다.”

그렇게 얘기하던 와중, 분석판 밑에 있는 전체 채팅창에 돌연 한 문장이 올라왔다.

[True#Silver : 야 이 씨발새끼들아]

“어우, 깜짝아.”

—ㅋㅋㅋㅋㅋㅋㅋ

—여중생눈나 개빡쳤네

—듀랑아 빨리 사과 박아라

그는 혹여나 아직 하꼬인 그녀의 방송에 자신의 시청자가 넘어가서 그런가 싶었다.

하지만 예사롭지 않은 타자 속도와 함께 순식간에 올라오는 욕의 향연을 보니 최소한 스스로와 관련된 잘못은 아니라는 건 어렵지 않게 알 수 있었다.

“저 친구도 고생 많이 했나 보네.”

생방송 중 시청자들의 악질 저격에 수없이 당했었던 그는 왠지 트루라는 인물에게 모를 동질감이 느껴졌다.

“이왕 이것도 인연이고, 친추 보내둘게요.”

—???

—이새끼 진심으로 하는 말임?

—내가 보는 방송들 다 나락갔는데 너까지 나락가면 난 뭐보고 살라고!

—LOCK가 괜히 선수들한테 인성이랑 SNS 교육 따로 시키는지 알 거 같으면 개추ㅋㅋ

—나락 잘가고

—도네는 환불해주나요?

—이게 왜 니돈이야 씨1발

—ㅋㅋㅋㅋㅋ

“아니 진짜 그런거 아니고, 나중에라도 그마라도 찍으면 영상 각 만들어 보려고 그러는 거죠.”

아무리 요즘 솔로 랭크 티어의 변별력이 떨어졌다지만, 지금 저 정도의 압도적인 실력이라면 과장 좀 보태 그랜드마스터를 넘어 중학생 챌린저도 가능해 보였다.

“아시잖아요. 제가 진짜 촉 옵니다.”

심지어 합방 후 프로 데뷔한 선수들도 존재할 정도였다.

듀랑의 록 플레이 실력은 몰라도, 보는 눈 하나는 진짜였다.

—이새끼는 대체 왜 스트리머 하냐

—그냥 방송 때려치우고 록 스카우터 했었으면 선수들이 주는 수수료로 강남에 아파트 한 채는 샀을 듯

—ㄹㅇㅋㅋ

—이새끼는 그냥 방송이 좋음

아닌 게 아니라, 듀랑은 실제로도 솔로 랭크에서 만났던 싹수 있는 이들에게 한 마디씩 하거나 심지어는 초대석을 마련해 시청자들에게 소개해주는 컨텐츠를 꽤 많이 했다.

“뭐, 컨텐츠 고민은 그때 또 하고, 저희는 일단 이거나 구경하시죠.”

그녀에게 질 수 없다는 듯, 트롤러들도 트루의 속을 긁고 있다는 게 눈에 보였다.

못 했으면 조용히 나가기라도 하던가.

트롤러들은 그녀의 채팅에 격하게 반응했고, 덕분에 협곡이 아닌 현실에서 기어코 적으로 다시 붙게 되었다.

—ㅋㅋㅋㅋㅋㅋ

—저건 DPS 몇 나오냐

—1000은 기본으로 찍을 듯

—듀랑아 쟤 원딜이나 시켜봐라

—원딜도 잘할듯ㅋㅋㅋㅋㅋ

—트롤러 ㅂㅅ들 쫄았네

—말수 적어지는거 봐라ㅋㅋ

처음에 몇 마디 하던 트롤러들은 트루의 길고 빠른 장문의 인생 조언에 점점 침묵을 고수했다.

“편집자님, 나중에 영상 만들 때 저 채팅 부분은...아시죠?”

모자이크로 가리는 편이 나을 정도로, 그녀의 채팅은 정말 날 것 그 자체였다.

“요즘 중학생들 무섭네요.”

—싸우면 내가 질 듯

—ㄹㅇ;;

—저정도면 거의 고아제작기 타이틀 넘겨 받아도 될 듯?

—ㅋㅋㅋㅋㅋㅋ

—여중생이 뒤틀린 협곡에서 살아남는 법ㄷㄷㄷ

결국 싸움조차 성립되지 않던 일방적 폭력은—

[악질저격러맞음 님이 나가셨습니다.]

[블루베리모히뜨또 님이 나가셨습니다.]

트롤러들의 도망으로 마무리되었다.


그래.

이게 게임이지.

역시 사람은 화나면 풀고 살아야 한다.

—ㄷㄷㄷㄷㄷ

—처신 잘하겠스빈다

—내 무습다...

—1여중생 > 3트롤러

—전투력 실화냐

—방장님이제라도착한시청자가될게요

“걱정 마세요. 여러분들이 저런 저급한 폐기물들이랑 같은 취급을 받을 이유가 없으시잖아요?”

—맞워용

—우리 착함

—선량한 시청자들은 방금 아무것도 못봤다에요

—ㄹㅇㅋㅋ

—채팅창에 뭐가 지나갔던거 같기도 하고...?

—어허.

—아무일도 없었다...!

이 정도면 최소한 악질 저격러들에 대한 최소한의 자기방어는 갖춰놨다고 보면 된다.

물론 몇몇 배배 꼬인 인간들은 사람의 분노하는 모습에서 희열을 느끼기에 저격 자체가 멈추진 않겠지만, 어차피 계속 올라가면 더 못 따라오고 떨어질 먼지만도 못한 놈들일 뿐이다.

“제 랭겜 등반 속도 따라서 오실 수 있으면 뭐, 계속 트롤 하세요.”

게임을 계속하다 보니 대충 등반 속도에 대한 감이 잡혔다.

일반적인 유저라면 절대 따라올 수 없는 속도로 등반하고 있는 건 지금까지도 그랬지만, 오히려 티어가 올라갈수록 게임에 대한 개념이 제대로 잡힌 유저들이 늘어나는 만큼 나도 내가 할 수 있는 것들을 발휘할 기회도 많아진다.

그만큼 승리 플랜이 많아지니, 이길 확률도 높아진다.

말인즉, 내 기준에서는 오히려 높은 티어일수록 등반이 퍽 쉽다는 거다.

그러니 지금보다 빠르게 티어를 등반하는 와중에 계속해서 방해 저격을 하는 트롤러가 있으면, 살살 꼬셔서 그대로 ST 3군에라도 처박아 놓을 거다.

그 정도면 그 짓을 하는 거 자체가 재능이니까.

물론, 나는 내 평생에 그거 하는 인간은 프라우드밖에 못 봤다.

내가 1군에서 아웅다웅하고 있을 때, 혼자 은퇴하고 후배들 괴롭히는 즐거운 삶을 즐기고 계시더라.

그때만큼 내 아래에 후배가 없다는 사실이 사무친 적이 없었다.

아무튼.

“이제 저 이거 진짜 누를게요?”

[ 미션 : 방송 끝나기 전까지 다이아 찍기 ]

[ 1,261,000₩ ]

보면서도 저 숫자가 맞는지 의문이 든다.

프로 때야 통장에 0 개수가 다른 연봉이 찍히고, 도네이션도 100만원 단위를 자주 받는 편에 속했지만, 고작 방송 일주일만에 저 금액은 아무리 내가 중고 신인이라도 가볍게 넘길 일은 아니었다.

나는 시청자들의 격려에 힘입어 더 이상 주저하지 않고 미션 성공 버튼을 눌렀다.

—ㅊㅊㅊㅊㅊ

—백만장자ㄷㄷㄷ

—ㅋㅋㅋㅋㅋㅋㅋㅋㅋ

—받을만하다ㄹㅇ

—고생했어요

—안전자산이라매안전자산이라매안전자산이라매

—니 실력이지~

—알빠노

—난 안 걸었는데

—불금부터 개꿀잼이었으면 개추

—내 금요일 어디감?

—토요일 4시간도 같이 사라졌어

—중력왜곡ㄷㄷㄷ

—저 크기면 킹정이긴 해

착하긴 개뿔이.

나는 선 넘는 채팅을 한 시청자들을 본보기로 몇 명 일주일씩 밴 해버리고 슬슬 게임창을 닫으려고 했는데, 마침 알람이 하나 왔다.

“듀랑이면 아까 원딜님이시네.”

그나마 사람처럼 플레이했던 원딜의 친구 추가 요청에 잠시 고민했지만, 학교 친구들 몇 명을 제외하고 텅 빈 친구창을 보자 그냥 받아주기로 했다.

친구 수락을 하기가 무섭게, 채팅이 올라왔다.

[아시는지 모르겠지만, 스트리머 듀랑입니다.]

[록 초대석이라는 컨텐츠가 있는데, 나중에라도 시간 되시면 참가를 부탁드릴까 싶어서—]

그 뒤에 이어지는 채팅은 적당히 읽고 넘겼다. 무슨 말을 할지 뻔했으니까.

“뭐야. 근데 이분 진짜 듀랑이셨어요?”

—게임 내내 말했어 이년아

—빡겜하느라 못봤겠지

—진짜 방금판 매 분마다 1킬씩 쳐 나오는거 보면ㅋㅋㅋ

참고로 저 스트리머의 이름을 내가 알고 있는 이유는 간단하다.

ST의 파트너 스트리머 중 하나였으니까.

물론 지금은 아직 아니겠지만, 어찌 됐든 내가 모르는 사람은 아니었다.

내 기억상 나쁜 사람은 더더욱 아니었고.

—당 장 수 락 해

—이걸 고민해?

—떡상각이다

—우리 하꼬방송 벗어나는거야?

—하꼬 트루 못잃어

나는 이내 대답을 전송했다.

아까 트롤러들을 상대할 때와 달리, 예의와 격식을 갖춰서.

[챌린저 찍고 한 달 뒤에 연락 드리겠습니다.]

기왕 이렇게 된 거, 자체적으로 기한을 조정해도 괜찮겠지.

—팩트는 챌 찍으면 프로한다고 방송 자체를 유기할수도 있다는거임

—ㅋㅋㅋㅋㅋ

“안 그럴 테니 걱정 붙들어 매시고, 오늘 방송은 여기까지 할게요.”

—ㅂㅂ

—트바

—또 엄크 오기 전에 침대로 ㄱㄱ

—ㅃㅇ

—수면패턴 어카지

—이미 씹창나서 노상관임

—ㅋㅋㅋㅋㅋ

나는 거의 하루 종일 켜둔 것만 같은 방송을 끄고선, 그대로 이불 속으로 쏙 들어가 잠을 청했다.


그렇게 토요일의 오전이 끝나기 직전에 일어났다.

점심을 실눈을 뜬 채로 비몽사몽 먹고 있자니, 옆에서 장 여사의 질문이 들어왔다.

"그래서 어제 어떻게 됐니?"

나는 순식간에 달아난 잠을 뒤로 하고, 부모님을 컴퓨터 앞으로 데리고 가서 그대로 록을 실행했다.

사소하긴 해도 이렇게 조금씩 부모님을 설득시키는 게 중요하니까.

그러나 유감스럽게도 우리가 마주한 건 다이아 휘장이 아니었다.

[부적절한 플레이어 채팅]

[저희는 프로그램을 통해 플레이어님의 부적절한 채팅 목록을 발견했으며, 게임에 해가 끼치는 것을 방지하기 위해 7일간의 채팅 금지와 3일간의 솔로/듀오 랭크 게임 정지라는 처벌을 해야 하는 것을 이해해 주시길 바랍니다.]

[‘아주 잘 이해했으며 동의합니다’를 입력해 주세요]

[ ]

”이런 씹.“

빌어먹을 게임사 놈들.

리그도 없애고, 대회도 없애고, 게임 업데이트도 멈추는 걸로 모자라, 이제는 내 계정까지 건드린다.

“착한 말. 우리 딸.”

할 말은 많았지만 부모님 얼굴을 보며 참을 인을 마음속에 몇 번이고 되새겼다.

그래.

록이 좋은 거지, 어떻게 게임사까지 좋아하겠어.

…부계나 파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