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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Authored-By: Claude Opus 4.5 <noreply@anthropic.com>
2025-12-14 21:31:57 +09:00

13 KiB

현재 시각 새벽 세 시 하고도 육 분.

프로게이머가 활동하기 적절한 시간대라고 할 수 있겠다.

“저 올 때까지 숨 참으셨던 분들 다시 숨 쉬셔도 돼요.”

내 말 한마디에, 채팅창이 주르르 내려간다.

—후우우우우

—이 시간에 키면 못 볼 줄 알았음?

—어림도 없지

—살았다

—일주일 동안 숨 안 쉬고 어케 살았누?

—ㅋㅋㅋㅋㅋ

—구라가 일상인 새끼들...

—이러니까 인터넷상에서는 개나소나 그마챌이지

—ㄹㅇㅋㅋ

—그래서 내일 데뷔전인데 안 잠?

“아직 자려면 멀었죠. 한 다섯 시에 자려고요.”

—부족한 잠은 학교에서 보충한다는 마인드ㅋㅋㅋ

—그저 록평

—평균 올리지 마 ㅅㅂ

—요즘 평균 따라가기 존1나 힘드네

—어떻게 록평이 흑발미모의여중생프로게이머

—ㅋㅋㅋㅋㅋㅋ

—킹림도 없지

—새벽 집안경비원들 오열

“이 시간에 제 방송을 바로 들어와 보시는 것부터 이미...라고 하면 안되겠죠?”

—크아악

—UFC로 쳐맞네

—제발그만해다오...

—근데 이년은 긴장이라는 게 없냐

—ㅈㄴ 태평하네

—쟤 진짜 신인 아니라니까.

—그럼 뭐 변방 리그에서 구르다 온 중고 신입이냐? 개소리한다 또

—헉

—야하네요

—[블라인드 처리된 채팅입니다.]

역시 새벽이라 그런지 사람들 상태가 차마 말 못 할 수준이었다.

뭐, 저런 부분이야 내가 방송을 이 시간대에 켠 순간부터 고려해야할 사항이었으니 그러려니 하고 깔끔하게 영구밴만 때렸다.

물론 아예 시스템적인 영구 밴은 아니고, 내가 원하면 언제든 풀어줄 수 있는 시스템이랄까.

“내일 데뷔전 보러오셔서 화이트보드지에 밴 풀어달라고 써주시면 해드릴게요.”

—공개 고로시ㅋㅋㅋㅋㅋ

—’저는 새벽 3시에 여중생한테 XXX한 사람입니다‘

—그냥 문장 파괴력 지리누

—ㄹㅇㅋㅋ

—그냥 죽어(진짜그게나음)

—ㅋㅋㅋㅋㅋㅋㅋ

—계정 새로 파는 게 나을 듯

—팩트는 저새끼가 티켓도 못 샀을 확률이 높다는 거임~

“왜요? 설마 매진됐어요?”

내 평생에 2군이 뛰던 리그가 매진된 것도 못 봤는데, 이 세상에서는 3부 리그마저 매진이 되는구나.

역시 LOC의 위상 자체가 차원이 다르다는 게 실감이 났다.

그리고, 처음 방송을 시작했던 때와는 전혀 다른 내 상황도 퍽 잘 느껴졌다.

—니가 오라매

—너 데뷔전 보고 싶어서 아레나 매진시켰다

—ㄹㅇㅋㅋ

—마스터 리그 첫 구매 대기열 발생ㅋㅋㅋㅋ

—ㄹㅈㄷ

—지금 이 시간에 보는 새끼들이 천인데 무조건 꽉 차지

—여중생의 프로 데뷔전은 귀하다는거시에오

—근데 심지어 원래 오백명만 받는데 이번 시즌에 증설해서 아레나에 천 명 들어간다는거임

—트루 파괴력 장난 아니네...

—하꼬 시절 트루를 돌려달라

—어어 안된다

—그때로 돌아가면 인게임 보이스 공개는 평생 불가임

—ㄹㅇㅋㅋ

“아무리 그래도 제가 인게임에서 그럴 리가......”

흠. 그건 또 아닌가.

스크림 할 때를 생각해 보면 욕은 없어도 논란은 약간 될지도 모르겠다.

“아무튼, 오신 김에 ST3도 많이 응원해 주시는 거죠?”

—ㅇㅇ

—게임은 꼬접해도 트루는 응원한다

—님 하는거 봐서

—이번에는 진짜 속아봐도 되는거지?

—깡!

—머가리 깨지는 새끼들 점점 늘어난다~

—ㅋㅋㅋㅋㅋㅋ

—ST는 ㅅㅂ 1군이나 3군이나 팀컬러 상태가 왜이래용

—일상인데숭

—ㅋㅋㅋ

—??? : 니들이 응원 말고 뭘 할 수 있지?

—근데 트루가 꼴박하고 져도 얼굴보면 몇 경기는 풀릴 듯

“두세 경기 연패하면 얼굴이나 뜯어먹고 살 것이지 왜 록판 기어들어 왔냐고 하시면서 꺼지라고 하실 분들이 눈에 선한데요?”

참고로 이건 경험담이다.

프라우드가 은퇴한 뒤에 아이돌 팬덤에서 넘어온 인간들이 스포츠 팬의 특성을 흡수해 암흑진화한 뒤로 LOC 월드컵 우승 전까지 참신한 욕설을 많이 들었었다.

—?????

—웨이렇게자세해요

—학교폭력 신고는 117

—우리가 미안해...

쓸데없이 실감나는 추가 묘사 때문인지, 시청자들은 내가 학교에서 겪었던 일이라도 각색한 거라고 생각하는 모양이었다.

“근데 뭐, 어차피 안 지면 안 일어날 일이잖아요?”

마스터 리그 전승 우승 한번 도전해 보지 뭐.

“그러니까 여러분들 맨날 경기장에 와서 응원해주세요.”

—정보) 티켓 판매 수익 반은 각 팀에게 배분된다

—갑자기 프라우드 재계약 때문에라도 가야될 거 같은 ST 팬이면 개추

—ㅋㅋㅋㅋㅋㅋ

—아ㅋㅋ여중생이 게임하는 모습도 보면서 ST에 돈도 쌓인다고?

—ㄹㅇ못참지

—못 참은 새끼들이 너무 많아서 못 샀다

—2222

—333333

—근데 사람 많으면 긴장 안 됨?

“사람들 많으면 좋잖아요. 응원받는 기분도 나고.”

LOCK 데뷔는 아니지만, 어찌 됐든 이번 생의 내가 프로로서 관중들 앞에 서는 첫 순간이다.

경기가 끝나고 일어났을 때, 경기장이 조용한 건 바라지 않았다.


대기실 안.

리허설도 끝났겠다, 이맘때쯤이면 원래 자리 세팅을 하러 가야 하는데, VR 기기만 끼면 알아서 내 전용 세팅으로 조정되는 덕에 편안한 휴식 시간이었다.

나는 점점 복작거리는 경기장의 소리를 배경 삼아 안대를 끼고 의자를 쭉 젖혔다.

“...너무 편한 자세 아니야?”

“경기 전에 편해야지. 뭐가 더 필요한데?”

나는 안대도 벗지 않은 채 그렇게 말하고선 편하게 누웠다.

“아, 그러고 보니까 너도 데뷔전이었지.”

“잊고 있었냐?”

“응.”

“......”

아니, 솔직히 좀 억울하다.

내 기억상 눈앞에 있는 녀석은 프라우드 이후 LOCK 우승을 밥 먹듯이 했던 괴물 중 하나였단 말이다.

고로 지금처럼 데뷔전이 은근히 떨려서 이리저리 돌아다니는 녀석은 내게 있어 아직 플루크가 아니었다.

“긴장되지?”

“너는 아닌 것처럼 말하네.”

“그야, 나는 아직 갈 길이 머니까.”

LOCK에 다시 데뷔하면 또 모를까.

여기서 발목 잡힐 생각은 없었다.

“그냥 편하게 해. 하던 대로. 알지?”

나는 안대도 벗지 않은 채 그렇게 말하고선 다시 의자에 드러누웠다.

확실히 몸무게도 가벼워지니 의자가 잘 버텨준다.

“은설아, 잘 거면 조용히 해줄까?”

스크림 몇 번 하더니 그냥 일인칭 장인들 불러줄 테니 나한테는 피드백 들을 필요 따윈 없다고 하시던 감독님은 이제 그냥 내가 무슨 짓을 하든 밀어주실 것 같다.

“아니 뭐, 징크스나 루틴 있으면 알아서 하세요. 저 신경 안 써요.”

내 말에 다른 팀원들은 그제서야 제 할 일을 하기 시작했다.

플루크 녀석은 굳이 키보드랑 마우스로 챔피언을 이리저리 이동시켜봤고, 옥스는 왠진 모르겠지만 아령을 들었다.

그리고 바텀 듀오는 테블릿 하나 가지고 와서는 둘이 에어 하키를 했다.

한결같이 본인 샷이 더 좋았다고 우기는 걸 보니 최소한 오늘 경기는 문제없어 보였다.

그렇게 시간이 지나고, 진행 요원 중 한 분이 대기실 안으로 들어왔다.

“준비해 주세요! 오 분 뒤에 입장 시작합니다!”

나는 그제야 안대를 슬쩍 머리 위로 올리고 기지개를 쭉 켰다.

“슬슬 가실래요?”

“얘들아, 준비하자. 가기 전에 화이팅 한 번 하고 가야지.”

근데 어째 내 옆에 앉아 계신 감독님을 빼고 다들 고개를 돌리고 있었다.

“아.”

아무래도 다음부턴 유니폼은 한 치수 크게 달라고 해야겠다.


[자, 이번 시즌도 활기차게 시작하는 리그 오브 챔피언스 마스터 리그 개막전!]

[이번에 경기장 중축으로 전년도에 비해 수용 인원이 두 배로 늘어난 아레나입니다만, 그만큼 팬 분들도 호응해 주시면서 만석 달성했습니다!]

경기 시작 전 흥을 돋우는 해설과 캐스터의 목소리, 그리고 화려한 조명까지.

'돌아오긴 했구나.'

아직 활기가 넘치는 이 개막전의 모습이 그리웠다.

“자, 다들 앞에 팀별로 일렬로 서 주시고...”

“좋습니다. 신호 하면 들어갈게요!”

그 신호라는 게 무엇인지는 어렵지 않게 알 수 있었다.

[LOCK 산하 마스터 리그 개막전을 빛내 줄 첫 경기, ST 대 DS 게이밍!]

[선수들 입장합니다! 큰 박수로 맞이해 주세요!]

맨 앞에 서 있던 나는 잠시 뒤를 돌아 우리 팀원의 모습을 한 번 훑고선 걸어 나가기 시작했다.

[이번 시즌 직전 ST에서 영입한 유망주, 닉네임 트루!]

[스크림을 이 주도 채 하지 않았는데 내부에서 여러 말들이 오가는 선수 중 하나죠?]

[네. 방송인으로서도 인지도가 있고, 하하. 네, 저기 트루 응원하시는 팬분들이 모여 계셨군요.]

대형 전광판에 내 닉네임을 대문짝만하게 적어놓고 응원하는 이들이 보였다.

[하지만 그런 방송인스러운 모습과 인게임에서의 모습은 전혀 다른 걸로도 내부에서 꽤 말이 많았습니다.]

[그렇죠. 좋은 의미로 말이 많았습니다.]

[ST에서 프로씬에 발을 들인 지 한 달도 안 된 선수에게 주장직을 준 것만 봐도, 파격적이지만 그만큼 실력 면에서는 팀이 전적으로 믿고 있는 선수입니다.]

[스크림에서 들리는 말로는 압도적인 캐리력을 뽐내는 데다 파괴적이고 인권침해를 잘 하기로 유명하다고 하죠? 지금 ST는 트루 선수를 필두로 이전 시즌의 꼴등팀과 전혀 다른 팀이 됐어요.]

[게다가 여성 미드라이너로서는 LOCK와 그 산하 리그인 그랜드, 마스터 리그를 전부 포함해 최초, 그리고 나이로도 최연소입니다!]

[정말 기록이란 기록은 다 쓸어가는데, 과연 오늘 승리도 챙겨갈 수 있을지 기대됩니다!]

참고로 플루크는 나보다 생일이 세 달인가 빨라서 최연소 타이틀도 내가 달았다.

LOCK의 최연소 타이틀도 내가 달 수 있을지는 모르겠지만, 원래 게이머는 이런 사소한 업적에도 기뻐하는 법이다.

나는 정겨운 선수 소개를 들으며, 스테이지 위에 올랐다.

“그건 왜 끼고 와?”

“안 넘어지고 잘 올라왔...무슨 소리야?”

“네 머리 위에 그 안대.”

플루크 녀석의 말에 나는 황급히 머리를 매만졌고, 어렵지 않게 머리 위에 얹어진 안대를 찾았다.

[하하. 트루 선수, 결국 안대를 머리에서 벗어 저 멀리 던져버립니다.]

[괜찮습니다. 새벽에 해설하면 저도 가끔 저럽니다.]

[혹시 오늘 플레이할 챔피언의 암시일까요?]

해설과 캐스터, 그리고 관중들의 웃음이 이어졌다.

“벌써부터 무대를 들었다 놓으셨다!”

“찬양하라 대 트 루!”

“두 판 빨리 이기고 방송 켜줘요 누나!”

심지어 관중석 한쪽에서는 채팅창이 의인화된 것만 같은 인간들이 나를 응원 중이었다.

어째 감상에 젖을 시간도 안 준다.

“자, 다들 기기 끼고. 들어가서 음성 확인하고 잘해보자.”

해프닝이 일어난 사이 모두가 착석해 기기를 착용했고, 더 이상 경기장의 모습은 보이지 않았다.

그렇게 감독님의 마지막 파이팅과 함께, 익숙한 밴픽창이 우리 눈앞에 튀어나왔다.

그 와중에 팀원들은 다들 한 마디씩 하는 걸 잊지 않았다.

“긴장 안 한 척 하더니. 엄청 했네 뭐.”

“데뷔전이 뭐 다 그렇지.”

“우리가 캐리 해줄게. 반반만 가.”

“......”

내가 여기서 쟤들한테 저런 말을 들을 짬이었나 싶다.

더럽고 치사해서라도 나는 이 게임을 캐리할 필요가 있었다.

오늘만큼은 승리 그 이상이 필요했다.

“우리 선픽이니까, 준비한 대로 가자.”

다행히 감독님은 낄낄대는 녀석들과 별개로 차분히 밴픽을 이끌었고, 막힘은 없었다.

[자 이제 밴픽도 끝났습니다!]

[선수들 뒤틀린 협곡으로 이동했고, 이제 화면 나오는군요!]

아직 바뀔 구석이 많은 협곡이지만, 이것 또한 정겹기만 했다.

[자, 이번 LOCK 산하 마스터 리그 개막전!]

[ST 대 DS 게이밍의 경기ㅡ지금 시작합니다!]

“하나, 둘, 셋!”

“ST 화이팅!”

팬들의 함성과 함께, 우리는 앞으로 나아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