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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5-12-14 21:31:57 +09: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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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aw Blame History

스노우볼.

소위 말하는 라인전에서 얻은 이득을 얼마나 잘 굴릴 수 있느냐는 말을 총칭하는 단어다.

보통 티어가 올라갈수록, 뛰어난 팀일수록 이 스노우볼을 잘 굴려 게임의 승리 플랜을 실현해 나간다.

그리고 보통 이걸 잘 하느냐의 기준 중 하나는 운영의 유연성이다.

“아니 라인전도 라인전인데, 이 친구 운영도 잘하네요?”

첫 번째 판은 라인전부터 너무 박살을 내서 그런지 제대로 게임을 즐기기 전에 상대의 빠른 항복으로 승리를 얻었다.

스노우볼이 굴러가기도 전에 박아야 할 상대가 폭탄 목걸이 달고 터져버린 수준이랄까.

하지만 챌린저 승격이 걸려 있는 두 번째 판은 시작부터 좀 많이 달랐다.

—필리독ㄷㄷㄷ

—밀키웨이 미드가 왜 여기에 나오누

—트루 MMR이 지금 존나 높아서 그런 듯.

—애초에 다이아 시절부터 마스터 승격 직전이던 애들이랑 매치됐으니까 말 안되진 않지

—하 근데 하필 챌 승격 걸려 있는데 운 ㅈㄴ없네

—눈치 챙기자 필리독아

—ㄹㅇㅋㅋ

—프로한테 발려봐야 정신 차리지

—챌 다는거랑 프로 상대하는 건 다른 영역이긴 함

필리독.

현 LOCK—록 한국 1부리그—에서 ST의 대항마 중 하나인 팀 밀키웨이에서 미드를 맡고 있는 선수였다.

한 마디로 현 프로고, 아마추어 솔로 랭크에서는 거의 절대적이라 봐도 무방한 선수란 뜻이다.

“트루님, 이거 이길 수 있어요?”

“무조건 이겨야죠. 제 후드티 안 보이세요?”

“아.”

다른 색채의 조합 없이, 오직 새빨갛기만 한 후드티.

ST 팬들 사이에서도 이걸 사는 팬심 깊은 팬—이라 쓰고 흑우라 읽는다—이 있는지에 대해 진지한 토론이 필요할 정도로 파멸적인 미적 감각을 자랑하는 굿즈 중 하나였다.

하지만 그녀는 주저 없이 용돈으로 구매해버린 흑우 중 하나일 정도로, ST는 은설에게 있어 인생 그 자체였다.

프로게이머 시절을 지나고 나서 더 심해지면 심해졌지, 덜하진 않았었고.

아무튼 라이벌인 밀키웨이는 자연스레 그녀에게 있어서 이겨야 할 대상이었다.

“저 죄송한데, 이번 판 두 분이서 시청자분들끼리 대화하는 건 몰라도, 끝날 때까지 저한테는 말 걸지 말아주세요.”

“당연하죠. 집중하게 도와드리겠습니다.”

"이기고 올라가시죠!"

—빡겜선언ㄷㄷㄷㄷㄷ

—진짜 이번판만 젭알

—챌 가야제

—빨리 필리독 방송 가서 여중생이 챌 승격해야 되니까 탈주나 하라고 전해주셈

—ㅋㅋㅋㅋㅋㅋ

—그 새1끼 성격이면 더 빡겜할 듯

—ST 후드티 입고 승격전 하는 ST팬을 상대로 만났다고?

—오우쉣

—쓸데없이 호승심 강한 새끼...

아무튼, 그렇게 본의 아니게 팀 간의 자존심이 걸린 매치가 성사되었다.

물론 은설은 얻을 것만 있고 잃을 건 없는, 그야말로 퍽 일방적인 딜교가 될 게 자명한 경기였지만, 프로 선수가 언제는 하고 싶은 경기만 했나.

받아들일 줄도 알아야 하는 법이었다.


[35 : 57]

밴픽이 끝나고 게임이 시작된 지도 벌써 30분을 넘어섰다.

“진짜 팽팽하네요.”

“미드가 둘 다 너무 잘해줘. 저거 봐봐 지금도.”

은설의 플레이 영상을 보긴 봤었으나 헬퍼 의혹에 대해 확인하기 위해 본 것일 뿐 딱히 게임 자체 분석을 한 적은 없었던 그는, 지금 보여주는 그녀의 운영에 순수하게 감탄을 연발했다.

“와. 저기서 살짝 템포 죽이고 기다리니까 상대가 부쉬에서 몇 명씩 튀어나오네...”

—괜히 트루가 티어 높아질수록 더 빨리 점수 올리는 게 아님

—그냥 운영이랑 예측의 신임

상대의 노림수는 흘리고, 팀원들에게 숨 쉴 틈을 만들어주면서도 본인의 성장은 막히지 않았다.

게임 시작 직후 십 분에서 십오 분 정도는 말을 듣지 않았던 몇몇 팀원들조차, 게임 후반부에 접어든 지금은 그녀의 핑 하나에 솔로 랭크 치고는 다들 고분고분하게 말을 듣고 있는 걸 보면 말 다 한 거였다.

—프로하면 메인오더도 잘할 거 같음

—ㄹㅇ

—근데 이거 그냥 피지컬로 찍어누른 거 아님?

—진짜모름ㅋㅋ

—쟤 자르겠다고 사이드 3명 쳐 오는데 한 명 따고 살아가는 새끼...

—그냥 얜 피지컬은 짐승이고 능지는 제갈공명임

—캬 문무겸비

—미모도 얹어줌

—ㅅㅂ갑자기 세상이 존나 불공평해보여

—팩트)다

—ㅋㅋㅋㅋㅋㅋ

—그래도 이거 보고 있으니 힐링된다

그렇게 팽팽한 대치 상태가 이어지던 중.

상대가 시야 확인을 위해 라인 사이사이에 존재하는 부쉬 가득한 뒤틀린 숲 쪽으로 안일하게 몸을 들이밀었다.

프로 경기가 아닌 솔로 랭크의 한계이자, 동시에 은설이 속한 팀에게 있어 기회이기도 했다.

—쾅!

게임 후반인 만큼 서포터의 아이템은 집중되는 딜을 버틸 만큼 튼튼하지 않았다.

—가즈아아아아!

—그대로 밀어!

—영

—차

—영

—차

—게임 더 끌지 말고 끝내!

—챌 가냐??

상대는 자신들의 진영에서 나름 방어해보려 했지만, 시야의 부족으로 인해 버프를 주는 몬스터마저 순식간에 내주고 타워가 철거당하는 걸 지켜만 봐야 했다.

그것도 아니면 그냥 죽던가.

사실상 이미 게임은 이겼다고 봐도 과언이 아니었다.

“어...?”

그런데 그 순간, 마지막 저지선에서 상대 미드인 필리독이 갑작스러운 이니시를 열자 믿을 수 없을 정도로 파괴적인 딜이 나왔다.

[쿼드라 킬!]

원체 유리한 상태인 만큼 이니시에 걸린 상황에서도 상대팀의 대다수를 데려간 트루의 팀원들이었지만, 결국 1대 1 대치 상황이 되었다는 것부터 그리 기분이 좋지 않았다.

“어? 어? 이거 이러면 아직 몰라요!”

강화된 미니언들이 상대의 넥서스—파괴되면 패배다—의 체력을 지속적을 깎고 있었기에 이 상황에서도 아직 승리의 가능성은 있었지만, 아까보단 퍽 낮아졌다.

물론, 지금은 그런 거 생각할 때가 아니었다.

...일단 오른쪽.

상대방의 레이저 스킬을 자연스럽게 피하고, 타겟팅을 하지 못하도록 연막탄 속에 숨는다.

그리고 계속 무빙을 치는 상대방의 코앞에서 바로 스킬을 시전해 비도를 쏘아내고, 강화된 평타를 상대에게 때려 박는다.

그리고 동시에 다시금 비도 던지는 스킬의 쿨타임을 돌려 한 번 더.

“잡았......어라?”

분명 이동 속도를 따져보면 무빙으로는 피할 수 없는 거리였을 텐데, 어째서인지 그는 그 스킬을 피했다.

‘꼴에 현직 프로라는 거지?

확실히 일반인들과는 다른 한 수가 있기는 한 모양이었다.

그렇게 한 턴을 버텨 스킬 쿨이 돌아온 상대가 스킬을 난사했지만, 그 정도로 메이지 챔피언과 브루저 간의 근본적인 딜 구조 차이를 바꿀 수는 없었다.

스턴을 거는 장판 CC기를 궁으로 피하고, 동시에 이번에는 영거리에서 스킬을 확실하게 쏘았다.

[True -> 필리견]

“이거 진짜 뭐야! 나 봐도 모르겠어!”

“한타도 재미있긴 한데, 진짜 방금 마지막 공방전은 뭐야?”

가만히 있던 스트리머들이 입을 열기 시작했다.

사실상 방금의 전투로 승자가 전해진 것과 다름없었으니까.

아니나 다를까.

십 초도 안 되는 시간 사이 상대 팀 서포터가 부활했지만, 넥서스는 이미 너덜너덜했다.

그렇게 평타 몇 대와 함께, 상대의 넥서스가 파괴되었다.

[승리]

“제가 말 했잖아요. 이길 거라고.”

—캬

—어 누나는 말한 거 지켜

—범부와는 다르다 범부와는

—지렸다

—팀원들 서로 던졌는데 마지막에 진짜 캐치 개잘했네

—필리독 바로 컷ㅋㅋㅋ

—ST > 밀키웨이

—반박안받음

—ㅋㅋㅋㅋㅋㅋ

곧이어 승리 화면이 사라지고, 검은 화면에 나타난 그랜드마스터를 상징하는 휘장이 변화하기 시작했다.

—철컹!

은빛 찬란한 휘장이, 화면을 채웠다.

“방제 바꿔주세요.”

이제부터 나는 챌린저니까.


록을 하는 방송인들 중 인지도 면에서는 손에 꼽는 멀티냄비와 듀랑은 당연하다면 당연하게도 방금 패배한 필리독의 연락처도 알고 있었다.

“뭐? 여중생?”

“진짜라고요.”

“구라치지마. 그런 애가 어디 있어.”

나는 신호에 맞춰 영상 통화가 연결된 핸드폰의 카메라에 얼굴을 비췄다.

“안녕하세요?”

“...진짜네?”

그는 혼란스러운 상황을 정리하고 싶은지 눈을 몇 번이고 깜박이다가, 이내 다시 입을 열었다.

“밀키웨이 아카데미 어떤 거 같아? 나 진짜 너 물심양면 지원해줄 자신 있는데.”

저건 진짜 재능이다.

한 게임이지만 직접 맞대 본 그는 알 수 있었다.

라인전부터 한타까지.

절대 단순한 프로게이머 지망생이 할 수 있는 부류의 움직임은 아니었다.

어쩌면 본인을 뛰어넘는 압도적인 재능의 원석이 눈앞에 돌아다니는 걸지도 몰랐다.

“아니 형, 여기서 갑자기 영입 시도를 하면 어떡해요.”

“할 수도 있지.”

“저기 빨간 ST 후드 안 보여요?”

“알아. 근데 프로 되고 싶은 거면 어느 아카데미든 갈 수 있는 거잖아.”

그 말에, 싱글벙글 웃고 있던 은설의 표정이 바로 바뀌었다.

“아, 죄송한데 저는 이미 정했어요.”

나는 그들에게 따끈따끈하게 올라온 ST 공식 SNS의 공지를 보여주었다.

이미 이곳에 올 때부터, 이야기는 되어 있던 상태였다.

[ Welcome, ST True ]

내 유니폼에 새겨질 팀은, 언제나 하나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