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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5-12-14 21:31:57 +09: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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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사람들….””

“누구예요?”

“누구야?”

“………!!”

성묵은 당황했다.

기분 탓일지도 모르겠지만, 분위기가 썩 좋아 보이지 않는다. 그로서는 전혀 이해가 가지 않는 상황.

‘에라 모르겠다.

일단 성묵은 그녀들의 바람을 들어주기로 했다. 누구인지 물었으니, 알려주면 될 것 아닌가?

우선 성묵은 연장자인 도연부터 소개하려 마음먹었다.

“자, 이쪽은 도연 씨인데….”

“성묵아, 도연 씨라니.”

“……?”

그런데 시작부터 태클이 들어왔다. 심지어 걸어온 것은 본인인 도도연. 그녀는 머리 한 쪽을 귀 뒤로 넘기며 싱긋 웃었다.

“도연 누나라고 부른다 했잖아.”

“……??”

내가 정말 그랬나 싶은 성묵이지만, 딱히 기억은 안 난다. 하지만 전생에선 고졸 따리, 현생에선 중졸 따리인 성묵 엘리트인 그녀보다 기억력에 자신이 없다.

‘뭐, 누나는 맞으니까.

“아, 그랬죠. 도연 누나.”

“후후, 잘하네 성묵이.”

“……….”

온화한 미소를 짓는 도연. 그걸 지켜보는 두 여성의 표정은 썩 좋지 않다. 성묵은 전혀 눈치채지 못한 채 소개를 이어갔다.

“이쪽은 도연 누나인데, 도진이 친누나셔. 데이터 분석에 있어선 믿고 맡길 수 있는 분이라 상대 팀 분석할 때 도움을 받고 있어.”

“앗, 설마 그 레포트가…?!”

“응 맞아, 내가 쓴 거야.”

뭔가 짚이는 게 있는 듯한 노아. 그녀는 류지가 경기 전날 한 레포트를 달달 외우는 걸 옆에서 슬쩍 본 적이 있다. 잠깐 봤을 뿐인데도 ‘엄청나다’라는 생각이 절로 들게 하는 서류라는 게 노아의 감상이다.

“직원들한테 부탁해서 다음 경기 상대인 무상고 뿐만 아니라, 기린고, 대관령고, 심지어 한청고 까지 전부 자료를 모으고 있어. 상대 팀은 내가 머리부터 발끝까지 분석해줄 테니까 성묵이 너는 경기에만 집중해. 알겠지?”

“네, 믿고 있을게요.”

마지막에 쐐기를 박는 한마디에 성묵의 ‘믿는다’는 말까지 이끌어 내며 도연은 턴을 종료했다. 나름 성과를 거뒀다고 생각하는 것인지 슬며시 웃는 그녀.

그다음 차례는 올리비아다.

“이쪽은 올리비아 램지, 영국 유명 쉐프인 고딘 램지의 딸이자 최근 핫한 예능인 청백요리사에 출연한 쉐프입니다. 그리고….”

“매일 성묵 씨에게 밥을 해줬어요.”

“……!!?”

갑자기 확 치고 나온 올리비아의 엄청난 워딩에 깜짝 놀라는 두 여성. 매일 밥을 해준다니, 그건 마치 부부 같지 않은가.

도연은 그녀가 방송에도 출연한 쉐프라는 것을 알고 깜짝 놀랐다.

‘고딘 램지는 나도 알아. 동기들이 저 방송 이야기하는 걸 들은 적도 있고. 물론 관심 없어서 보지는 않았지만….

요리사에 관한 유명한 소문이 있다. 그들은 집에서는 요리를 잘 하지 않는다고 한다.

밖에서도 종일 요리를 하다 보니, 집에선 할 의욕이 나지 않아 주로 배달 음식을 시켜 먹는다고.

‘그런데 매일 요리를 해준다고…?

심지어 그녀는 영국 최고 셰프의 딸.

어지간히 각별한 사이가 아니면 요리 한 번 얻어먹기 힘든 귀인일 텐데, 매일 해준다니. 도연은 자기도 모르게 입술을 꽉 깨물었다.

물론 듣고 있는 성묵 입장에선 다소 고개가 갸우뚱해지는 말이다.

‘아니, 뭐. 매일 해주던 때가 있기는 했는데….

올리비아의 불법 체류 서류를 쥐고 흔들던 시절에 잠깐 그랬지만, 요즘은 경기 날에만 도시락을 받고 있다. 이걸로는 모자라는지, 성묵을 보고 한마디 더 남기는 올리비아.

“…오늘 경기에서 먹은 요리도 맛있다고 해주셨지만, 저는 자신 있어요. 세종기까지 앞으로 남은 모든 경기에서 최고의 활약을 하실 수 있게, 더 맛있고 영양까지 모두 잡은 그런 요리를 차려 드릴게요.”

“오, 그거 좋은데. 기대할게.”

성묵에게 ‘기대할게’라는 말을 들으며 턴을 마친 올리비아. 그녀 역시 나름 만족한 눈치다. 그다음은 노아의 차례다.

“이쪽은 타카히나 노아. 류지의 여동생이예요. 야구부에선 매니저 겸 치어리더를 맡고 있는데, 응원전에서 밀리지 않은 건 그녀의 덕분이라 생각합니다.”

“헤헷, 경기 직전에 성묵 오빠가 직접 밀착 과외를 해주신 덕분이죠! 춤을 이렇게 추는 거야…! 느낌으로 가르쳐 주셨잖아요.”

“오,빠…!?”

그 별 거 아닌 명칭이 두 여성의 가슴에 훅하고 꽂혔다. 남자가 들었을 때 가장 좋아한다는 명칭 1위에 랭크한 ‘오빠.

동갑이나 연상은 넘볼 수 없는, 연하녀만의 특권. 남성들이 실제로 연하녀를 선호하는 경우가 많음을 생각해보면, 노아의 존재감은 결코 무시할 수 없다.

‘밀착 과외…?

올리비아의 머릿속이 혼란스러워지기 시작했다. 이제 일상에 지장이 전혀 없을 정도로 한국어를 잘한다지만, 아직 몇몇 단어는 어려웠다.

밀착 과외라니, 얼마나 딱 달라붙어서 가르치길래 밀착이란 단어를 쓴단 말인가. 그녀는 심기가 상당히 불편해졌다.

“앗, 성묵 오빠. 혹시 갑자기 오빠라고 불러서 싫으신 건….”

“응? 나는 괜찮은데. 편한 대로 불러.”

괜찮은 걸 넘어 내심 듣기 좋다고 생각 중인 성묵. 거절할 리가 없다.

성묵의 수락에 눈을 반짝반짝 빛내던 노아는 곧 도연과 올리비아 쪽을 보며 한마디를 던졌다.

“언니들!!”

“……!”

훅하고 찔러 들어오는 노아. 올리비아에게도 데미지가 있었지만, 도연 쪽이 특히나 커 보였다.

뭔 이야길 하려는 건가 싶었는데, 노아가 눈을 초롱초롱 빛내며 두 소녀에게 다가갔다.

“꺄앙!! 가까이서 보니까 언니들 두 분 다 너무 이뻐요!! 저랑 친하게 지내주시면 안 될까요…!”

“……??”

갑작스러운 노아의 태도에 그녀들은 당황한 기색을 숨기지 못했다. 그러나 노아는 꽤나 진심인 듯, 핸드폰까지 꺼내 들었다.

“언니들, 인스타 하시나요…! 괜찮으시면 맞팔해요!”

“…하긴 하는데.”

“으응, 계정은 있어.”

“히힛, 잘됐네요. 이게 제 아이디에요!”

그렇게 한껏 열을 올려가던 세 여성의 기싸움은, 노아 덕분에 어찌저찌 수습될 수 있었다.

‘음, 잘됐구만. 잘 지내게 되어서.

그녀들 사이에서 얼마나 고도의 기싸움이 오고갔는지 모르는 성묵은 잘 됐다며 허허 웃었다.

당연한 이야기지만 그의 고난은, 지금부터가 시작이다.

삐빅!

도연은 비척비척 포르쉐 카이엔에 올라탔다. 한창 기싸움을 올리다가, 노아 떄문에 맥이 탁 풀렸기 때문이다.

‘거짓말하는 것 같진 않은데….

그렇다고 견제를 안 할 수 없다. 노아는 조금 검색을 해보니 최근 인기를 끄는 영상 덕에 그 인지도가 높아지고 있고, 팔로워도 만 단위로 있었다.

가장 큰 견제가 되는 것은 역시 올리비아. 그 나이에 방송까지 탄 유명 쉐프인데다가, 성묵과 같은 학년 동급생.

외부인인 도연과 달리 자연 발생하는 이벤트의 숫자 자체가 다를 수밖에 없다.

그리고 도연 스스로도 가장 큰 장점이라 생각하는 풍만한 몸매 역시, 올리비아도 크게 꿇리는 편이 아니다.

도연은 핸들에 머리를 박고 진지하게 고민했다.

‘어필할 수 있는 게 뭐가 더 있지, 돈…?

거기까지 생각이 닿으니 문득 드는 한 가지 생각. 성별을 바꿔서 생각해보면, 성숙한 여고생에게 돈으로 접근하는 수상한 아저씨나 마찬가지 아닌가.

“응, 이건 진짜 아니야…!!”

고개를 맹렬하게 저으며 생각을 떨쳐낸 도연. 한숨을 푹 내쉰 그녀는 곧 아주 중요한 걸 떠올렸다.

“아, 맞다. 성묵이한테 태워준다고 해야 하는데…!!”

성묵을 기다리던 버스를 도진이 일찍 출발시켜 가며 만든 기회를 기싸움 하느라 까맣게 잊고 있던 그녀. 도연은 후다닥 차에서 나와 어디론가 달려 나갔다.

올리비아는 곤란했다.

오늘 그녀답지 않은 행동의 연속이었기 때문.

‘왜지, 나는 분명….

원체 다른 사람에게 무관심한 그녀지만, 오늘 성묵의 곁에 다른 여자들이 붙는 걸 보면서는 포커 페이스를 유지할 수 없었다.

그녀는 문득 깨달았다.

그동안 우연이 겹쳐 성묵의 옆에서 계속 요리를 해주고 있지만, 그의 옆자리는 당연한 것이 아니다.

언제든 다른 사람에 의해 대체될 수 있다는 사실. 그게 그녀를 가만히 있을 수 없게 만들었다.

‘나 대신 다른 사람이 성묵 씨의 요리를…?

다른 여자가 해준 요리를 먹고 미소 짓는 성묵의 얼굴을 떠올려봤다. 왜일까, 가슴이 시릴 정도로 아프다.

“…안 돼.”

그녀는 생각했다.

앞으로도 성묵의 옆을 그 누구에게도 빼앗기고 싶지 않다고. 그리고 졸업한 후에도, 쭉 그의 옆에서 요리를 해주고 싶다고 말이다.

물론 그런 관계를 항간에서 뭐라고 하는지, 요리뇌인 올리비아는 아직 깨닫지 못하고 있었다.

“흥흥…♬”

노아는 신이 났다.

경기에서도 이기고, 예쁜 언니들의 연락처도 받았기 때문이다.

원체 예쁜 사람을 좋아하는 노아답게 그녀들과 친해지고 싶은 것은 진심이었지만, 그녀들은 당장 노아를 썩 맘에 들어 하지 않는 것 같았다.

‘에이, 차차 친해지면 되겠지…!!

성묵이라는 연결고리 때문에 앞으로도 마주칠 일이 많을 거라 생각한 노아. 그녀는 성묵을 생각하면서도 배시시 웃었다.

‘오늘 성묵 오빠, 멋있었지…!

상대 팀을 힘대힘으로 압도하는 박력과 남성성. 동 나이대의 남성에겐 느낄 수 없는 수컷 냄새가 성묵에게선 풀풀 풍겼다.

노아는 살면서 같은 나이대의 남자를 이성으로 보지 못한 게 그런 이유다. 나름 주먹깨나 쓴다는 양아치들은 굴지의 야쿠자들을 보며 자란 노아에겐 동네 건달 그 이하의 존재였고, 공부만 하는 샌님들은 말할 것도 없었다.

무영파 보스이자 그녀의 아버지인 류켄. 거기에 비할 수는 없겠지만 성묵이 성인이 되어 조금 더 피지컬이 커진다면, 충분히 비슷한 야성미를 뽐낼 거라 생각하는 노아다.

‘오빠라면 아빠의 시험을 통과할지도…!

나중에 교제하는 사람을 꼭 자신의 앞에 데려오라고 단언했던 류켄이다. 뭘 할지는 모르겠지만, 딸바보인 야쿠자 보스가 감히 딸을 데려가려는 놈을 결코 가만히 둘리는 만무.

하지만 류지를 구한 날의 이야기를 들어보면, 성묵은 전투력도 꽤 보유하고 있는 게 분명하다. 아마 동나이대에 이런 최상급 매물은 흔치 않으리라.

‘…성묵 오빠, 분명히 왕성하겠지?

무려 탑급 의사가 공인한 남성 호르몬 상위 0.01%의 괴수. 심지어 그 사이즈는 경기장에서 하도 티를 내서 더 말할 것도 없다.

노아는 그 묵직한 풍경의 이미지를 잠시 떠올려 보더니, 고개를 도리도리 저었다.

‘응, 나 혼자서는 감당 못해!

빠르게 견적을 내린 노아.

그녀의 머릿속에 마침 예쁜 두 언니들의 얼굴을 떠올렸다.

“핫, 성묵 오빠를 언니들이랑 같이 사귀면 되잖아…!?”

그녀들이랑 함께라면 괜찮을 것 같았다. 돌아가면서 성묵의 상대를 해주고, 나중엔 서로 육아도 도와주면 얼마나 좋겠는가.

‘우음, 언니들이 괜찮을지는 모르겠네….

노아는 요즘 여자아이답지 않게, ‘영웅호색’이 당연한 거라 생각했다. 그녀의 아버지인 류켄 역시 그러했으니까.

“후후, 내가 중간에서 잘하면 어떻게든 될 거야…!!”

눈을 반짝이며 원대한 계획을 세우는 노아. 아무래도 성묵의 이성 관계는 결코 평범한 방향으론 흘러가지 않을 것이 확실해 보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