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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1화 마검 포르테(Forte) (23) - 마검 답게
“어?”
손에서 느껴지는 섬뜩한 감각에, 눈으로 보이는 기괴한 광경에, 피나 발레스티아는 저도 모르게 얼빠진 소리를 내었다.
객관적으로 봤을 때 큰 상처, 아니 손상이라고는 할 수 없었다.
칼날 일부가 이가 빠진 듯이 부러지고, 그 안쪽으로 손톱 하나 정도의 균열이 생겨났을 뿐.
하지만 여태까지 포르테를 반쯤 무적의 검으로 인식하고 있던 피나에게는, 마치 멀쩡한 땅이 갑자기 무너져 내린 것에 버금가는 어마어마한 충격이었다.
《멍하니 있지 마라, 계약자!》
반쯤 넋을 놓고 있던 피나가, 그런데도 이어지는 공격에 반응할 수 있었던 이유는 두 가지.
하나는 그동안의 철저한 단련을 기억한 몸이 이성보다 먼저 움직였기 때문이요, 또 하나는 다름 아닌 포르테 자신이 상처 따윈 아랑곳하지 않고 그녀를 재촉했기 때문이었다.
카아아아앙!
다시 한번 칼과 칼이 맞부딪친다.
흑기사의 공격은 지극히도 강맹했다.
평범하게 휘두른 일격 일격이 공기를 찢어발기고, 흘러넘친 오러의 여파만으로 주변 사물이 붕괴된다.
피나는 어떻게든 공격의 위력을 흘려보내려 했으나, 그 시도는 성공하지 못하고 대신 그녀의 몸이 뒤로 날아갔다.
흑기사가 그대로 추가 공격을 내보내려 한 그때.
“아아아악!!”
짜증과 공포, 그 사이쯤에 존재하는 외침과 함께 옆에서 날아온 불덩어리가 흑기사의 움직임을 견제했다.
오러의 갑옷으로 몸을 보호한 흑기사가 자신을 바라본 순간, 불덩어리를 발사한 악마 디바나는 이를 악물었다.
정말이지 그녀는 이 상황에 개입하고 싶지 않았다.
흑기사의 정확한 정체까지는 파악하지 못한 그녀였지만, 그 힘이 심상치 않다는 건 보는 것만으로도 알 수 있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녀는 이미 계약으로 묶여 있는 몸.
계약 종료 선언을 받지 못한 시점에서 피나가 죽음을 맞이한다면, 디바나 자신 역시 즉사한다.
죽기 싫으면 좋든 싫든 피나를 도울 수밖에 없는 것이다.
흑기사와 디바나가 서로 어울리는 사이, 구석으로 날아간 피나는 혼란에 빠져 있었다.
“마, 마검님. 어떻게, 어떻게 해야….”
《싸울 준비를 해라. 계약자. 디바나는 오래 버티지 못한다. 그리고, 저 녀석이 당하고 나면 다음은 너다.》
“하지만!”
담담하게 전해지는 말에, 피나는 무심코 목소리를 높였다.
“저, 저 때문이잖아요, 제가 마검님을 제대로 다루지 못해서 이렇게…!”
피나는 알고 있다.
일찍이 마왕과의 싸움에서, 용사가 지니고 있던 검은 아무런 문제 없이 제 역할을 다 해냈다.
헌데 그 검보다도 강력한 포르테가 겨우 첫 합에 망가지기 시작한 건, 피나의 실력이 당시의 용사보다 압도적으로 뒤떨어지기 때문.
“제가 진짜 용사였으면, 그랬으면…!”
그녀에게 포르테는 단순한 무기가 아니었다.
사람 대하는 것이 서툰 그녀가 마음 편히 대할 수 있는 동반자였고, 미숙한 그녀에게 길을 알려주는 스승이었으며, 타인의 기억에 잡아 먹힐 것 같을 때 자기 자신을 유지하게 해준 버팀목이었다.
그런 존재가 자기 때문에 부서질지도 모른다.
그렇게 생각하면, 피나는 차마 검을 들어 싸울 용기가 나질 않았다.
“차라리─”
도망치자고, 그녀는 말하려 했다.
이유는 얼마든지 있었다.
적은 전설 속의 마왕과 현자가 융합한 초월자. 아직 미숙하기 짝이 없는 일개 학생 따위가 감당할 재앙이 아니다.
애초에 이 사건의 원흉은 먼 과거에 현자 일행을 궁지에 몬 각국의 지도자들이지, 피나에게는 어떤 책임도 없다.
뭣보다 피나가 다시금 덤벼들면 그 결과는 개죽음일 가능성이 너무나 높다. 살기 위해 도망치는 게 나쁜 일은 아니지 않는가.
“차라리….”
그런데.
그 모든 걸 알고 있는데.
어째서인지 피나의 입에서는 도망치자는 말이 흘러나오질 않았다.
그리고 그 망설임을 간파한 듯이, 포르테가 말했다.
재촉하기 위해서가 아니라, 피나가 이미 생각하고 있는 것을 언어로 명확히 하기 위해서.
《네가 싸우지 않는다면, 이 학원에 있는 모든 이들은 그 목숨을 잃게 되겠지.》
《네가 싸우지 않는다면, 저 불쌍한 마법사는 자기가 뭘 하고 있는지도 모르는 채로 마왕의 꼭두각시로 춤출 것이다.》
누군가는 그게 무슨 상관이냐고 말할 수도 있다.
남보다는 내가 더 중요하다고. 여기서 뭔가 잘못되더라도 그게 내 책임은 아니지 않냐고 항변할 수도 있다.
포르테는 그런 의견을 부정하지는 않았다.
확실히 그건 죄가 아니다.
하지만, 세상에는 그렇게 선을 그을 수 없는 사람도 있는 법이다.
나서지 않아도 괜찮은 일에 나서고, 돕지 않아도 되는 일을 돕고, 책임을 지지 않아도 되는 일에 책임감을 느끼는 사람이.
어리석고, 미련하고, 바보 같은 사람이.
그리고 포르테는, 그런 바보를 좋아했다.
《계약자. 아니, 피나.》
우뚝, 하고.
바들바들 몸을 떨던 피나의 움직임이 멈췄다.
《나는 검이다. 아무리 예리하고, 튼튼하고, 수많은 기능을 품었다고 한들, 누군가가 사용하지 않는다면 그저 장식물에 불과하지.》
《나의 계약자는 너다. 나를 들고 휘두를 자격이 있는 것은 너다. 나에게 존재의의를 부여하는 것은 너다.》
《만약 네가 나로 인해 싸움을 망설인다면, 나를 잃을까 두려워 너 자신의 신념을 꺾고 도망치려 한다면.》
《나는, 나를 용서할 수 없게 될 거다.》
포르테의 검에서 흘러나온 마력이, 피나의 손등을 어루만졌다.
따스한 피와 부드러운 고기를 지니지 못한 철 덩어리는, 근원으로부터 떨어져 나와버린 미아는, 그렇게라도 제 사용자에게 의지를 전했다.
《기억하고 있나? 내가 맨 처음 계약할 때 했던 이야기를.》
《어떤 위협이 상대라고 해도, 지켜주겠다. 나는 너에게 그렇게 말했다.》
《너는 나를 믿지 못하나?》
피나의 입술이 들썩이며 정제되지 못한 낱말들을 자아내려 했다.
허나, 그녀는 그 모든 것을 억누른 채 오직 한마디만을 내뱉었다.
“믿어요.”
《그렇다면, 움켜쥐어라. 나 포르테를. 이 세상에서 오직 너 하나만을 위한 마검을.》
“…네!”
피나의 손이 포르테의 손잡이를 붙들었다.
체감상으로는 무척이나 긴, 하지만 실제로는 얼마 되지 않았을 재정비 시간을 끝내고, 마검의 계약자가 다시금 전장으로 뛰어들었다.
매섭게 날아드는 흑기사의 검을 아슬아슬하게 회피하며, 디바나는 속으로 비명을 질렀다.
‘대악마급이잖아!! 나 혼자서 이딴 걸 어떻게 감당하라고!!’
디바나는 강력한 악마다.
애초에 마계의 세 군주 중 하나의 직할로 들어가, 직접 임무를 하달받는 시점에서 마계 내에서도 엘리트에 속한다고 해도 좋다.
하지만 어디 가서 대악마를 자부할 정도는 절대 아니다.
예를 들어 이번 임무에 투입된 세 악마가 협력해서 『기만』의 뒤통수를 친다고 한들, 『기만』은 진심조차 보이지 않고서 장난감 다루듯 그들을 몰살시킬 것이다.
대악마와 평범한 악마 사이에는 그 정도의 격차가 있다.
그런데도 디바나가 흑기사를 상대로 얼추 수십 초 정도의 시간을 버틸 수 있었던 이유는 명확했다.
흑기사가 구태여 그녀를 때려잡겠다며 열정적으로 나서지 않았으니까.
오해를 막기 위해 말해두자면, 그건 절대로 자비가 아니었다.
그저 흑기사는 계산했을 뿐이다.
단숨에 디바나의 몸통을 베어내려고 한다면, 변수에 따라 제법 유의미한 반격을 받을 수도 있다.
하지만 팔을 베어내는 정도라면 설령 악재가 겹치더라도 긁힌 상처로 끝낼 수 있다.
그러니까 팔을 벤다.
약간의 위험을 감수하면 디바나의 목을 칠 수도 있다.
하지만 위험을 감수하지 않아도 디바나의 다리 정도는 벨 수 있다.
그러니까 다리를 벤다.
무리수를 두지 않는다.
기책을 사용하지 않는다.
언뜻 약점이 눈에 보여도 쉽게 덤벼들지 않고, 도발을 시도해도 반응하지 않는다.
정공법만을 취하는 군대.
99% 승리하는 상황에서도, 1%로 패배한다면, 그 패배가 경상이나 그 미만으로 줄어들 때까지 기다릴 수 있는, 조급함이 없는 강자.
디바나는 절벽을 향해 뒷걸음질을 반복하는 듯한 기분을 느꼈다.
이대로 계속 물러난다면 언젠가 절벽으로 떨어질 것을 안다.
하지만 앞에 있는 이가 칼을 휘두르며 위협하는 이상, 뒷걸음질을 멈출 수도 없다.
파멸이 확정된 발버둥.
그녀가 그 끔찍함에 손을 놓아버리려 한 그 순간.
번쩍!
한 줄기의 섬광이 흑기사를 향해 돌진했다.
카앙!
등 한복판을 노린 참격은, 흑기사에게 명중하는 일 없이 가로막혔다.
흑기사는 디바나를 상대하면서도 항상 피나를 경계하고 있었기에, 기습이 기습으로서의 효용을 발휘하지 못한 것이다.
하지만 피나는 당황하는 일 없이 외쳤다.
“도망치세요! 그리고 다른 사람들이 휘말리지 않게 해주세요!!”
“지금 다른 인간들 신경 쓸 때야!? 니 목숨이나 챙겨!!”
말다툼 같은 걸 할 때가 아니라는 걸 알면서도, 디바나는 무심코 외치지 않을 수 없었다.
그녀를 내버려두고 도망칠 수도 있었던 상황에서 다시 싸우러 와준 건 솔직히 고맙다.
그렇지만 피나가 죽으면 그건 그것대로 디바나 역시 죽는다.
학원에 있는 인간들을 모조리 미끼로 삼아 함께 도망쳐도 모자랄 판에, 잠에 빠져 움직이지도 못하는 짐짝들까지 피난 시켜가며 싸우라고? 제정신으로 하는 소리인가?
“제가 죽거나 흑기사가 쓰러질 때까지 아무도 휘말리지 않게 할 수 있다면, 그 이후로 당신은 자유예요!!”
허나 눈앞의 인간은 자기 말을 정정하기는커녕, 오히려 말도 안 되는 조건으로 딜을 제시했다.
더욱 어처구니가 없는 건, 피나의 저 말을 들은 순간 실제로 디바나를 묶고 있던 계약의 사슬이 출렁였다는 점이다.
계약의 주체였던 포르테가 저 어처구니가 없는 내용을 받아들여, 계약을 수정했다는 증거.
그 와중에 피나를 죽여서 계약을 끝내는 식의 꼼수는 쓰지 못하게 세부 조건을 달아둔 점이 실로 철저하다고 할만했으나, 어쨌든 막막하기만 했던 이전에 비하자면 훨씬 할만한 조건인 것도 사실.
디바나는 괜히 더 구시렁대는 대신, 도움이 안 되는 터라 근처에 숨어 있던 카일런을 낚아채 재빨리 탑 밖으로 비행했다.
딱히 그녀가 인정이 많아서 그렇다기보다는, 카일런 또한 ‘휘말리면 안 되는 인간’에 포함되어 있었기 때문이었다.
그 모습을 확인한 뒤, 피나는 재빨리 계단을 통해 아래층으로 몸을 날렸다.
아래로, 아래로 정신없이 계속해서 내려가다 보니 보이는 것은 넋이 나간 듯이 멍하니 정지해 있는 몬스터들.
피나는 조금의 망설임도 없이 거대한 트롤의 목을 참수했다.
【자이언트 트롤을 쓰러트렸습니다!】
【3000p를 습득했습니다!】
【근력이 미미하게 상승합니다!】
그건 무척이나 기이한 일이었다.
피나는 지금 흑기사, 그러니까 이 학원의 진정한 지배자와 맞서 싸우고 있는 도중이다.
본래라면 피나가 그 무엇을 하든 간에, 시스템이 그녀에게 보상을 줄 리가 없다.
그렇다.
천공의 현자가 온전한 상태의 초월자라면.
《현자의 기억을 체험한 너라면 알겠지. 지금 현자는 마왕의 영향을 받아 사고방식이 뒤틀린 상태다.》
《마왕을 쓰러트려야 한다면서 본인이 마왕 행세를 하는 것도 그렇고, 위정자들을 향한 증오가 무차별적인 학살의 형태로 바뀐 것도 그렇다.》
《하지만 뒤틀리지 않은 부분도 분명히 남아 있다.》
《‘노력한 자에게 그 노력에 걸맞은 보답을’》
《저 규칙만큼은, 저 심상만큼은, 현자의 근간에 뚜렷하게 남아 있는 심지나 다름없다. 아무리 마왕이 현자의 사고를 왜곡해도, 보상 그 자체를 주지 않는 건 불가능해.》
《같은 맥락에서 너를 다른 학생들처럼 강제로 잠에 빠지게 할 수도 없다. 현자가 너를 용사의 후계로 인정한 이상은 절대로.》
베고, 베고, 벤다.
멈춰 있는 몬스터들을 계속해서 베어내고, 흑기사의 추적을 피해 다음 층으로 도주하기를 반복한다.
《상대는 초월자다. 우리가 아무리 용을 쓴다고 해도 초월자를 쓰러트릴 수는 없다.》
《하지만, 현자 본인은 마왕을 쓰러트릴 수 있다.》
그건 객관적으로 봤을 때 광기에 가까운 행동이었다.
초월자를 상대로 도주하는 것 자체가 쉬운 게 아니다.
헌데 그냥 도주도 아니고, 중간중간 딴짓까지 해가며 도망치는 건 오죽하겠는가.
추격전이 이어질수록 피나의 몸에는 계속해서 상처가 늘어났고, 아예 목숨을 잃을 뻔한 순간도 몇 번이나 있었다.
실로 위험천만하고도 아슬아슬한 줄타기.
《다만 이것만으로는 부족하다. 이런 방식으로는 흑기사와 맞붙을 정도로 힘을 키우기까지 너무 오래 걸려.》
《고로, 압축한다.》
기이한 것은, 그런 상황인데도 불구하고 피나의 움직임이 전혀 굼떠지지 않았다는 점이다.
아니, 굼떠지기는커녕 몬스터를 쓰러트릴 때마다 그녀는 더욱 빨라지고, 더욱 강해졌다.
놀랍도록 빠르게.
눈부시도록 급속히.
《네가 지금부터 얻는 모든 보상을, 아니 여태까지 학원에서 쌓은 보상까지도 모조리, 내가 흡수하여 재가공한다.》
《영구적인 강화가 아니라 단발적인 강화로. 오직 이 싸움이 끝나는 그 순간까지만 유효하도록.》
《너의 미래를 밝혀줄 빛을 빼앗아, 한순간의 찰나를 위해 불태우겠다.》
《어때, 제법 마검다운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