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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2화 마검 포르테(Forte) (14) - 유인 사냥
천공 학원.
교수의 세심한 지도를 듣는 것보다 몬스터 한 마리를 때려잡는 게 성장에 더 효과적이라고 알려진 이 요사스러운 교육 기관에는, 그에 걸맞은 다채로운 종류의 ‘던전’이 존재한다.
슬라임과 촉수가 들끓는 지하도.
각종 변이 동식물이 튀어나오는 숲.
사람 잡아먹는 책이 즐비한 도서관 등등.
개중 어떤 던전이 가장 우수한지, 가장 위험한지를 논하는 건 불가능했다.
학생마다 평가가 제각각이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가장 ‘오래된 던전’이 어디냐는 질문에는 모두가 동일한 대답을 내놓을 수 있었다.
이건 객관적인 기준이 존재하는 문제였으니까.
탑.
이미 존재 그 자체만으로도 아득한 하늘 높이 존재하는 천공 학원.
그 학원 내에서도 가장 ‘높은’ 건축물이자 던전.
허나 그런 상징성에도 불구하고 탑은 학생들에게 그리 인기가 있는 던전은 아니었는데, 학생들에게 그 이유를 물으면 다음과 같이 대답했다.
-일단 너무 높아. 100층을 어느 세월에 다 올라가?
-보통 1층에서 10층까지 도달한 뒤에 빠져나오면, 그 뒤에는 10층부터 이어갈 수 있게 전이문 같은 거라도 만들어 줘야 하는 거 아닌가? 근데 이건 뭐 매번 올라갈 때마다 1층부터 뺑뺑이니.
-함정이나 낚시도 끔찍하게 많고, 몬스터도 잡다하게 이것저것 섞여 나와서 대책 준비하기도 힘들고.
-거기에 내부구조도 계속해서 변하지. 뭐 그렇게까지 급격한 변화는 아니라서 정보 공유가 무의미한 수준은 아니지만, 어쨌든 귀찮아.
-마땅한 식량 공급처도 없고, 확실한 안전지대도 없고, 중간에 위기가 생기면 1층까지 다시 계층을 하나하나 내려가야 하는 것도 최악이다. 심지어 돌아갈 때도 몬스터들이 새롭게 충원되어 있으니 더더욱.
-100층에 도달하면 일단 포인트 보상이 나쁘지 않게 들어오기는 하는데… 그 고생을 하고 아득바득 올라갈 만큼이냐고 하면 글쎄?
탑을 향한 학생들의 평가는 여러 가지가 있었지만, 그 본질은 하나였다.
노력만큼의 보상이 돌아오지 않는다.
그것은, 아무리 작은 행위에라도 집요하리만큼 ‘보상’을 주는 것에 집착하는 천공 학원에서는 제법 이질적인 특징이었다.
멋모르는 신입생들이 탑에 도전하는 일은 있었으나, 그마저도 어느 정도 학원에 적응하고 나면 좀 더 가성비 좋은 던전으로 옮겨가기 일쑤.
그렇게 사람의 발길이 닿지 않는 곳이 된 탑.
그것도 도달한 이가 거의 없는 100층에, 한 남자가 벽에 등을 기댄 채 서 있었다.
“…….”
이목구비가 흐릿한 남자였다.
존재감이 놀라울 만큼 흐릿한 그 모습은, 사람보다는 유령을 연상케 했다.
그는 침묵을 지킨 채 99층에서 100층으로 넘어오는 계단을 쳐다보고 있었는데, 영락없이 누군가를 기다리는 듯한 모습이었다.
-저벅.
그 기다림에 의미가 있었던 것일까.
마침내 계단을 통해 누군가가 모습을 드러냈다.
금발과 벽안을 지닌, 무척이나 준수한 외모를 지닌 청년과 흑발과 금안을 지닌, 귀여운 인상의 소녀였다.
“후우. 엇.”
여기까지 올라오는 과정이 제법 고됐던 것일까.
깊은 한숨을 내쉰 청년이, 기다리고 있던 남자를 보고는 흠칫 몸을 떨었다.
허나 그것도 잠시. 청년은 밝은 미소를 지으며 남자에게 인사를 건넸다.
“디바나 님의 계약자, 카일런이라고 합니다.”
카일런이 악수를 위해 내민 손을 물끄러미 바라보던 남자는, 이내 툭 하고 내뱉었다.
“무슨 장난질이냐, 디바나.”
인사를 무시당한 것에, 카일런의 얼굴이 살짝 굳었다.
그의 입이 누군가의 말을 전달하듯이 열렸다.
“《─‘섀도르’. 장난질이냐니, 그게 무슨 뜻이야?》”
섀도르라고 불린 세 번째 악마가 대답했다.
“왜 계약자의 자의식을 남겨둔 거지? 불필요한 변수를 만들지 마라.”
흠칫.
섀도르의 충격적인 발언에 몸을 떨면서도 카일런은 말을 멈추지 않았다. 정확히는, 그의 귓가에 들리는 디바나의 말을 전달하기를 멈추지 않았다.
“《웃기고 있네. 너야말로 멍청한 거 아니야? 그런 식으로 계약자의 의식을 잡아먹고 네가 직접 움직이면 시스템에게 들킬 위험이 클 텐데.》”
“너 같은 다재무능과 똑같이 취급하지 마라. 이 정도로 들킬 일은 없으니.”
“《이 새끼가 진짜, 한판 뜰래? 엉?》”
“사적인 감정으로 주군의 대계를 어그러트리고자 하는 거라면, 기꺼이 상대해 주지.”
“《아 그러셔. 잘났네. 어쨌건 나한테는 내 방식이 있으니까 간섭하지 마.》 …이상입니다. 섀도르 님. 우려하시는 게 뭔지는 알겠습니다만, 걱정하시는 일은 벌어지지 않을 테니 안심해주십시오. 저는 디바나 님과 일심동체가 되기로 마음을 먹었으니까요.”
섀도르는 대답하지 않았다.
그의 흐릿한 이목구비는 인형처럼 딱딱하게 굳어 있었지만, 카일런에게는 왠지 그것이 비웃음처럼 느껴졌다.
악마 섀도르의 시선이 청년의 옆.
검은 머리를 길게 묶은 소녀에게로 향했다.
용사의 피를 이은 후손. 그들의 작전을 성공시키기 위한 열쇠.
피나 발레스티아.
“…….”
피나의 상태는 언뜻 봐도 정상이 아니었다.
금색의 눈은 총기를 잃은 채 탁하게 잠겨 있었고, 옆에서 카일런과 섀도르가 수상쩍은 대화를 나누는데도 인형처럼 묵묵히 자리를 지킬 뿐, 그 어떤 반응도 보이지 않았다.
“홀린 건가?”
“예. 디바나 님께서 직접 힘을 쓰시는 건 어려운 터라, 제가 조금씩 조금씩 마력을 누적시켰습니다. 지금 당장 죽으라고 해도 군말 없이 따를 겁니다.”
“전투력은 어느 정도지?”
“5위계는 된다고 생각합니다.”
“좋군. 발자레스 그 멍청이가 연락이 끊어진 탓에 미끼 역할이 필요했는데. 맡기면 되겠어.”
섀도르의 무미건조한 눈동자가, 카일런을 꿰뚫었다.
“디바나의 계약자. 용사의 후손에게 명령해라. 봉인을 파괴한 후, 이곳에 찾아오는 이들을 상대로 죽는 그 순간까지 계속 싸우라고.”
카일런은 순간 떨떠름한 표정을 지었지만, 이내 고개를 끄덕였다.
“피나 양. 봉인 파괴 후, 이곳에 찾아오는 모든 이들과 싸워주십시오.”
피나는 공허한 표정으로 조용히 고개를 끄덕였다.
“…네. 카일런 님.”
“이거면 됐습니까?”
섀도르는 대답하지 않았다.
어쩌면 그거야말로 대답이었을지도 모른다.
카일런은 어깨를 으쓱한 뒤, 섀도르에게 물었다.
“그나저나, 섀도르 님께서는 계약자의 몸을 직접 움직이고 계신 겁니까? 그러면 계약자는요?”
“그게 왜 궁금하지?”
“앞으로는 함께할 동료 아닙니까. 동병상련이니 궁금해서 말이죠.”
“하.”
섀도르의 입에 차가운 조소가 어렸다.
“이 어리석은 계약자는 이미 자신의 모든 걸 나에게 바쳤다. 이곳에 있는 건 그저 빈 껍데기에 불과하지. 그런 의미에서 너는 운이 좋아. 디바나 같은 얼치기와 어울렸으니.”
“거, 너무 그러지 마시지요. 악마 중에는 인간이 변해서 된 존재들도 있다고 하던데. 저 역시 그렇게 되면 섀도르 님과도 동료가 되는 거 아닙니까?”
“시답잖은 잡소리로군.”
“쯧. 예, 예. 알겠습니다. 그래서, 봉인은 어디 있는 겁니까? 혹시 100층의 보스를 쓰러트려야 하는 거면 좀 기다려주시지요. 여기까지 올라오느라고 힘을 써서 그런지 기진맥진이니까요.”
“그럴 필요는 없다. 멍청한 인형 따위 이미 쓰러트린 지 오래니까.”
앞으로 나아간 섀도르가 보스룸의 문을 열자, 이리저리 조각난 채 바닥에 널브러진 갑옷 파편 같은 것이 모습을 드러냈다.
카일런은 선배들에게 들은 정보를 통해, 그것이 이 탑의 정상을 지키는 보스 ‘백은의 기사’였다는 걸 알아볼 수 있었다.
꿀꺽.
카일런은 무심결에 침을 삼켰다.
그가 알고 있는 바에 따르면 백은의 기사는 ‘최소’ 5위계의 파티원이 포함된 파티가 집단으로 덤벼들어야 간신히 승산이 생겨나는 보스.
그런 상대가 별다른 저항도 못 해보고 이렇게 무참히 당했다는 건, 섀도르의 실력이 범상치 않다는 증명이었다.
하물며 시스템에게 들키는 걸 각오하고 발휘하는 능력은 그보다도 높을 터.
그런 이를 상대로 지금부터 해야 할 일을 생각하면 무심코 눈앞이 아찔해질 것 같지만, 카일런은 애써 정신을 다잡았다.
‘디바나 님을 위해서…!’
“이쪽이다. 여기에 있는 이 석상을 베어버리라고 명령해라.”
그렇게 말하며 섀도르가 가리킨 것은, 보스룸 가장 안쪽에 있는 커다란 돌덩어리였다.
커다란 지팡이와 품이 넓은 로브를 갖춰 입은, 고집 강한 노인의 석상.
그저 보스룸의 배경 중 하나라고만 알려졌던 그 석상이 무언가를 숨긴 ‘봉인’이라고, 그 누가 알아차렸겠는가.
이곳에 오기까지 학원 차원에서의 별다른 규율이나 제약이 없었던 걸 생각하면, 교수들조차 그 존재를 모를 가능성도 높았다.
“대체 그 석상은 뭘 봉인하고 있는 겁니까? 혹시 알아내신 것이 있습니까?”
“베라고 말했다. 귀가 안 들리나?”
안 그래도 희미한 섀도르의 기척이 더욱 옅어졌다.
그것이 섀도르 나름의 ‘전투 준비’라는 걸 이해한 카일런은, 눈을 딱 감고 명령했다.
“피나 양, 시작하십시오!”
“네. 카일런 님.”
감정이 느껴지지 않는 무표정과 고저 없는 목소리로, 피나가 검을 치켜들었다.
양손 검의 아름다운 검신이 드러나며, 그 위쪽으로 선명한 검강이 피어올랐다.
무엇이든 베어버릴 것 같은 빛의 권화가, 힘껏 내리쳐졌다.
석상이 아닌, 섀도르를 향해서.
푸슉!!
악마에게 모든 걸 넘긴 이의 껍데기라고 해도, 흘러나온 피는 틀림없이 붉었다.
“이, 게…!”
가슴팍을 크게 베인 섀도르의 눈이 경악으로 크게 떠졌다.
그가 마냥 방심하고 있던 것은 아니었다.
만약 똑같은 상황에서 카일런이 검을 휘둘렀다고 해도, 섀도르는 아무렇지도 않고 반응한 뒤 상처 없이 그를 제압했겠지.
허나 피나를 상대로 그러는 건 불가능했다.
마검 포르테의 백업을 전력으로 받고 있는 피나는, 이미 온전히 6위계의 영역에 도달한 상태였기 때문이다.
방금과는 달리, 인형처럼 흐리멍덩하지 않고 명확한 의지를 품은 피나의 눈.
그리고 어딘지 모르게 어색한 카일런의 행동거지.
섀도르가 상황을 온전히 파악하기까지는 그리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디바나!! 감히, 감히 주군을 배신 한 것이냐!!”
디바나는 대답하지 않았다.
자의든 타의든 이미 깃발을 바꾼 이상, 어중간한 태도를 취하는 것이야말로 최악이라는 걸 그녀는 잘 알고 있었다.
그런 디바나의 뜻을 함께하며, 카일런은 던전 계단 쪽으로 도주했다.
그렇게 하라는 지시가 있었기 때문이다.
콰아아아아!
선명한 흑색의 오러가 흘러넘쳤다.
더없이 딱딱하고, 굳건하고, 무정한.
마검으로서 ‘포르테’가 보유한 오러.
암살자 스타일의 섀도르는 어떻게든 모습을 감추거나 피나의 시선 밖으로 벗어나려고 했지만, 포르테의 보조를 받는 피나는 그 발버둥을 모조리 타파하며 섀도르를 몰아붙였다.
단검과 양손 검이 맞부딪친 직후 섀도르의 오른팔이 날아갔다.
피나의 발목을 붙들려 한 그림자가 잘려 나간 순간, 섀도르의 두 다리에서 피가 솟구쳤다.
이대로는 상황이 불리하다고 여긴 것일까.
섀도르의 육체 그 자체가 허물어지며, 그의 그림자가 방 곳곳으로 흩어졌다.
마침내 인간의 껍데기를 둘러쓰기를 포기하고, 악마로서 전력을 발휘하기 시작한 것이다.
《계약자여.》
“네, 마검님.”
피나가 검을 들어 올렸다.
검디검은 오러에, 아주 잠깐, 푸른빛의 무언가가 나타났다가 이내 사라졌다.
다음 순간.
흩날리는 꽃잎의 연무가, 보스룸 전체를 가득 메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