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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5-12-14 21:31:57 +09: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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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aw Blame History

#111화 마검 포르테(Forte) (13) - 본 마검은 믿는다

악마 발자레스는 일찍이 어느 사서를 상대하며 온갖 잡스러운 말로 시간을 허비하며 황금 같은 기회를 날린 적이 있다.

그런 점에서, 디바나는 제 동료보다는 유능했다.

슈우우욱!

바닥에서 뻗어 나온 장미 넝쿨이 포르테의 사지를 단단히 붙들었다.

그와 동시에 디바나의 몸이 앞으로 뻗어나가며, 손에 들려 있던 검이 포르테의 심장을 향해 내질러졌다.

어떤 방심도 없이, 초장부터 목숨을 끊어버릴 생각으로 덤빈 것이다.

그것은 틀림없이 올바른 대처였다.

하지만 상대가 올바르지 못했다.

후두두두둑!

포르테를 구속하고 있던 넝쿨이 단숨에 잘려 나갔다.

힘으로 억지로 뜯어낸 것은 아니었다.

묶이지 않고 자유로웠던 팔꿈치 아래.

손목과 손가락을 통한 기교만으로 검을 다루어, 넝쿨을 전부 베어냈을 뿐.

어처구니없는 기교는 거기에서 그치지 않고, 포르테가 치켜올린 검이 디바나의 검과 맞닿았다.

디바나는 순간적으로 거대한 허탈감을 느꼈다.

계단이 있으리라 생각한 곳에 계단이 없었을 때 느낄 수 있는 것 같은, 별생각 없이 앉은 의자가 갑작스럽게 무너져 내린 것 같은, 그런 허탈감.

돌진의 기세가, 검에 담긴 마력이, 그녀의 의지와는 상관없이 어딘가로 빨려 들어갔다.

아무런 위화감도 없이, 저항할 틈새도 없이, 그저 그렇게 되는 것이 당연하다는 것처럼.

쳐내기.

보다 정확히는 흘리기.

단어로 설명하면 너무나도 단순한 그 기술.

포르테의 검 끝이 그리는 곡선에 따라 디바나의 몸이 끌려갔고, 다음 순간 그녀의 명치 근처에 주먹이 틀어박혔다.

퍼어어어엉!

그건 ‘맞았다’기보다도 ‘치였다’라는 표현이 더 어울리는 충격이었다.

반사적으로 전개한 마력 방벽이 종잇장처럼 찢겨나가고, 뼈와 내장이 압력을 견디지 못하고 짓뭉개지거나 터져나갔다.

인간이라면 즉사를 면하기 힘든 피해였고, 디바나 역시 사정이 조금 나을 뿐 심각한 중상인 건 똑같았다.

게임식으로 표현하자면, 단 일격 만에 페이즈 하나 분량의 체력이 증발한 상황.

고로, 디바나는 앞뒤를 가리지 않고 힘을 전개했다.

우두두두두!

발에 차인 조약돌처럼 튕겨 나가는 도중, 디바나의 하반신에 수많은 비늘이 겹겹이 떠올랐다.

그녀의 의복이 피부와 융합되며 너풀거리는 지느러미처럼 변했으며, 귀의 형상 역시 뾰족하게 변형되었다.

세이렌(Siren).

마계에서 살아가는 수많은 종족 중 하나이자, 강렬한 ‘현혹’의 힘을 품은 목소리의 주인이 입을 열었다.

“────!”

그것은 수많은 악기 연주자가 힘을 합쳐 이루어내는 음악 같기도, 수풀을 뛰노는 정령이 자아내는 순진무구한 웃음소리 같기도, 침대 위에서 아슬아슬한 의복을 입은 창부의 속삭임 같기도 했다.

그 공통점은, 듣는 이의 마음을 뒤흔들고 소리의 주인에게로 빠져들게 한다는 것.

작정하고 사용한다면 거대한 배 한 척을 그대로 암초로 돌진하게 해서 침몰시키는 것도 가능할 세이렌의 노랫소리가, 포르테의 귓속으로 파고들었다.

디바나는 이를 회심의 공격이라 믿어 의심치 않았다.

포르테의 신체 능력이 아무리 뛰어나건, 그 검기가 아무리 빼어나건, 소리 그 자체를 막아낼 수는 없는 일 아닌가.

덥썩.

그런 디바나의 확신을 쳐부수듯이, 아무렇지도 않게 다가온 포르테가 디바나의 목을 움켜쥐었다.

“악…, 윽, 끅!”

디바나는 경악으로 눈을 부릅뜨며 무어라 말을 내뱉으려 했으나, 포르테에게 목을 붙잡힌 상태에서는 불가능한 일이었다.

“내가 멀쩡한 이유가 궁금한가?”

허나 그 발버둥만으로도 말뜻을 이해하기는 충분했는지, 포르테가 대답했다.

“그렇다면 알아서 고민하도록. 어딘가의 괴도라면 몰라도, 나는 내 능력을 구구절절이 설명하는 취미가 없다.”

디바나의 시야가 급변했다.

포르테가 그녀의 머리를 벽에다가 냅다 찍어버린 탓이었다.

콰아아아앙!

무시무시한 충격과 함께, 디바나의 눈앞에서 별이 번쩍였다.

그녀의 두 손이 경련하고, 입뿐만 아니라 눈이나 귀에서까지 피가 흘러나왔다.

포르테가 손을 놓자, 그녀의 몸이 바닥에 축 늘어졌다.

“아, 으아, 어….”

디바나는 이 상황을 이해하기 어려웠다.

차라리 상대가 그저 보는 것만으로도 강대한 마력을 내뿜고 있었다면 이해했을 것이다.

만약 그녀가 방심한 나머지 상대에게 허를 찔린 거라면, 그 또한 이해했을 것이다.

하지만 지금 이건 어느 것도 아니었다.

상대가 품은 힘의 크기는 디바나보다도 작았고, 그녀는 일절의 방심조차 드러내지 않았다.

어느 것도 아닌데도, 그녀는 졌다.

그것도 제대로 싸움이라고 할 만한 것조차 해보지 못한 채.

팔을 부들부들 떨면서 몸을 일으킨 디바나는, 그대로 구역질을 했다.

입에서 흘러넘친 것은 한낱 구토나 타액 따위가 아닌, 짙디짙은 선혈과 뼛조각이었다.

몇 번이나 피를 토해낸 뒤, 디바나는 조심스레 고개를 위로 향했다.

그리고 보았다.

자기를 묵묵히 내려다보는, 포르테의 얼굴을.

“──.”

그림자를 덮어씌운 것 같은 그의 이목구비는, 여전히 확인할 방법이 없었다.

그런데도 디바나는 포르테가 어떤 표정을 짓고 있는지, 알 수 있을 것만 같았다.

그건 드높은 자의 시선이었다.

선천적인 지배자의 눈높이였다.

방금까지 전투를 치렀으면서도, 그의 눈에는 디바나를 향한 증오도 적의도 불쾌감도 남아있질 않았다.

그는 그저 기다리고 있었다.

최초에 던진 질문의 대답을.

죽음인가.

협력인가.

디바나가 전자를 선택한다면, 그는 ‘그런가’하고 짧게 고개를 끄덕인 뒤 아무렇지도 않게 디바나의 머리를 터트릴 것이다.

그다음 담담하게 제 할 일을 하러 떠나가겠지. 쓰러진 디바나의 시체에는 어떤 흥미도 없이, 뒤 한 번 돌아보지 않고.

그 무심함이, 디바나의 등골을 공포로 물들였다.

그 죽음에는 어떤 의미도 없었다.

지나가는 길에 풀을 밟고, ‘음? 뭐야 풀인가’하고 그냥 스쳐 지나가는 것과 다를 게 없었다.

악마의 세계에서 강자존이란 너무나 당연한 법칙이다.

적어도 지금 이 순간, 디바나가 눈앞의 존재에게 느낀 공포는 제 본래의 주인에게 느낀 공포보다 거대했다.

그렇기에, 디바나는 떨면서 머리를 조아렸다.

“혀, 협력하겠습니다.”


《대화를 통해 완만한 협의에 도달하는 데 성공했다. 이들이 앞으로 너를 괴롭힐 일은 없을 테니 안심하도록.》

“앗, 네.”

피나는 눈을 데구르르 굴려 방 한구석을 바라보았다.

그곳에는 무릎을 꿇은 채 양손을 들고 있는 청년과 그 옆에서 바닥에 일자로 세워져 있는 장신구의 모습이 보였다.

혼란스러웠다.

‘으음, 아마 대화가 그 대화는 아니겠지.

흔히 오해받고는 하지만, 피나 발레스티아라는 소녀는 사실 머리가 그렇게까지 나쁘지 않았다.

그저 본인의 주관이나 계획에 따라 행동하는 것보다, 타인이 이끄는 대로 따라가는 경우가 많다 보니 ‘생각 없이 산다’라고 착각당할 뿐.

고로 포르테가 말하는 ‘대화’라는 게 일반적인 의미의 대화가 아니라는 것도 그녀는 눈치챘다.

눈치챘지만, 딱히 지적하지는 않았다.

‘마검님’이 그녀를 속이려고 말을 돌린 게 아니라, 그냥 마검님 기준으로 그 정도는 대화라서 대화라고 표현했다는 걸 알았기 때문이다.

“마검님, 마검님.”

《뭐지?》

“그러면 그, 저분들이 이제는 저랑 함께 그 마지막 악마분을 상대로 싸워주시는 건가요?”

《그건 어렵겠지.》

포르테는 무덤덤한 말투로 부정했다.

《저들은 계약에 묶여 있는 상태다. 작전을 실행하는 도중 세세한 방침을 결정하는 건 자유롭지만, 아예 다른 악마를 적대하는 건 불가능하다더군.》

허나 그걸로 충분하다고, 포르테는 단언했다.

《너는 지금부터 저들의 꾀임에 넘어간 것처럼 행동하면 된다. 그리고 마지막 악마가 너를 ‘용사의 봉인’으로 데려가기 위해 접근하면, 그 순간 놈을 토벌하는 거다.》

디바나와 청년은 세 번째 악마 토벌전에 개입할 수 없으나, 대신 중립으로 방관하는 건 가능하다.

이미 홀려놓았다고 믿은 피나가 제정신인 상태로 기습을 가하는 데다가, 아군이라고 믿은 디바나가 열외 상태가 되어버리면 필시 마지막 악마는 큰 혼란에 빠질 터.

그 틈이야말로 피나가 악마를 토벌할 절호의 찬스였다.

“제, 제가 할 수 있을까요?”

《어차피 상대는 천공 학원 내에서는 마음껏 힘을 발휘할 수 없다. 아니, 어쩌면 발휘할 수 있을지도 모르지만, 그 순간 교직원들의 맹공을 받아내야겠지.》

“그 정도라면, 음.”

피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솔직히 혼자 하라고 하면 그다지 자신은 없지만, 포르테가 함께 싸워준다고 생각하면 시간 벌이 정도는 충분히 할 수 있을 것 같았다.

“그러면 이제 저는 어떻게 해야 할까요?”

《크게 달라지는 건 없겠지. 던전에 가고, 퀘스트를 클리어하고, 휴일에는 쉬어라. 그러다 보면 그 ‘봉인’이라는 걸 찾아낸 악마 쪽에서 접근할 테니.》

“그, 그렇군요.”

《뭐, 그리 불안해할 필요는 없다. 어차피 아직 학기 초반. 용사의 봉인인지 뭔지 하는 거창한 걸 찾으려면 제법 시간이 걸릴 테니, 그때까지는 느긋하게 성장을─》

“저, 저기. 죄송합니다만.”

포르테의 말이 끊어졌다.

피나가 한 짓은 아니었다.

얼굴 여기저기가 상태가 안 좋은 청년이, 끼어들듯이 입을 연 결과였다.

검과 소녀의 시선을 느낀 것인지, 청년이 다급히 대답했다.

“디, 디바나 님께서 그러시는데. 연락이 왔다고 합니다. 세 번째 악마에게서요.”

잠시 정적이 흘렀다.

피나가 무언으로 포르테를 응시했다.

《흠. 계약자여, 너라면 충분히 이 시련을 이겨낼 수 있으리라 본 마검은 믿는다.》

“마, 마검님. 혹시 한 대만 때려도 되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