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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5-12-14 21:31:57 +09: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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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9화 하인 세드릭(Cedric) (5) - 상품 가치

집사장 베스티앙은 깊은 고민에 빠져 있었다.

다름 아닌 세드릭의 처우에 대한 고민이었다.

‘그를 이대로 놔둬도 되는 것인가?

세드릭의 업무 능력에 문제가 있는 건 아니었다.

아니, 오히려 차고 넘칠 만큼 유능했다.

세탁, 정원 관리, 요리, 청소, 그 외의 자질구레한 육체노동까지.

그 어떤 업무를 맡겨도 완벽에 가까운 일처리를 보여주는 게 바로 세드릭이었으니까.

하지만 단 하나, ‘주인을 공경한다’라는 일점에서는 세드릭은 그리 완벽하지 못했다.

사실 낙제점에 가깝다는 게 정확했다.

세상에 어떤 하인이 계약서를 빌미로 주인의 꼬투리를 잡아 따박따박 말대답을 하고 심지어 놀려먹기까지 한단 말인가.

만약 클라우디아와 세드릭의 관계가 비르카 귀족 사회로 퍼져나가는 순간, 클라우디아는 단숨에 비웃음거리로 전락할 것이 분명했다.

그런데도 베스티앙은 쉽사리 세드릭을 내친다는 결론을 내리지 못했다.

“세드릭! 어디 있어! 당장 안 튀어나와!?”

오늘도 어김없이 저택에 울려 퍼지는 클라우디아의 새된 외침.

허나 그 목소리를 들은 하인들은 딱히 놀라는 일도, 걱정하는 일도 없이 평온하게 제 업무에 몰두했다.

불과 몇 주 전만 해도 클라우디아의 목소리가 들리는 순간 하인들 대부분이 겁에 질리거나 심하면 경기를 일으켰던 것에 비해, 실로 놀랍기 짝이 없는 변화였다.

이유는 단순했다.

하인들 처지에서 본래 ‘클라우디아의 관심’이라는 건 그 자체가 하나의 재앙과 같았다.

그녀의 눈에 띄어서 좋은 꼴을 보기란 마른하늘에 날벼락이 떨어지는 걸 보는 것만큼이나 드문 일이었으니까.

헌데 최근엔 클라우디아의 온갖 관심을 세드릭이 모조리 독차지하고 있다 보니, 반대로 다른 하인들에게는 평온과 안정이 찾아오고 있었다.

개중에는 제발 이 평화로운 나날이 계속되게 해달라며 여신께 기도하는 하인마저 있을 정도였다.

클라우디아의 망나니 같은 행보 탓에 늘 인력 수급에 골머리를 앓아야 했던 베스티앙의 심정 역시 솔직히 다른 하인들과 그렇게까지 다르지는 않았다.

‘음, 생각해 보니 아가씨께서 이미 3개월 고용이라고 직접 계약을 완료하신 마당에, 집사인 내가 그걸 마음대로 바꿀 수는 없는 법이지. 그렇고말고.

절대, 절대로 위장과 머리카락의 평화를 아가씨의 괴로움과 맞바꾼 것이 아니다.

베스티앙은 그렇게 합리화를 끝낸 뒤, 여유롭게 콧수염을 정돈하는 소소한 사치를 즐겼다.

세드릭의 어그로 탱킹 덕분에, 모처럼 즐거운 나날을 보내는 하인들이었다.


클라우디아는 생각했다.

‘난 혹시 건드려선 안 될 녀석을 건드려 버린 게 아닐까?

일수로 15일. 횟수로 138회.

세드릭을 골탕 먹이기 위해 클라우디아가 도전하고, 그때마다 새겨야만 했던 처참한 패배의 기록들이었다.

그녀는 저택에서 할 수 있는 거의 모든 종류의 갑질과 장난질을 시도했고, 어김없이 패배했다.

심지어 이제는 세드릭 쪽에서도 은근히 그녀의 도전을 즐기는 기색마저 있었다.

아니, 그냥 즐기는 게 확실했다. 소재 고갈로 이미 썼던 걸 재탕해서 썼을 때는 노골적으로 실망하는 티를 냈으니까.

그녀가 아무리 악의를 드러내고 심술을 부려도, 그 모든 걸 그저 산들바람처럼 받아넘기는 하인의 모습에 그녀의 프라이드는 이미 꺾일 대로 꺾인 상태였다.

“아가씨, 오므라이스 & 함박스테이크 정식 나왔습니다.”

늘 그렇듯이 완벽하기 짝이 없는 동작으로 서빙을 해오는 세드릭의 모습을 못마땅하다는 듯이 흘겨보면서도, 클라우디아는 곧장 제 앞의 식탁 쪽으로 시선을 돌렸다.

음식을 만든 인간에게는 죄가 있어도 음식 그 자체에는 죄가 없었으니까.

변함없이 육즙이 풍부한 다진고기와 몽글몽글한 계란과 고슬고슬한 밥.

그리고 그 위를 뒤덮는 강렬한 소스의 맛까지.

어지간한 음식은 쉽게 질린 나머지 주방장에게 매번 새로운 걸 내놓으라며 떼를 쓰곤 했던 그녀였지만, 세드릭이 만들어 낸 이 요리만큼은 질리지 않고 계속해서 먹을 수 있었다. 특히 이 새콤달콤한 맛이 훌륭했다.

정원에 설치된 야외 식탁에서 식사를 끝마치고, 그녀의 취향에 따라 향 그 자체보다는 달달함과 마시기 쉬운 온도를 포인트로 잡은 홍차를 즐기기 얼마쯤.

문득, 클라우디아는 세드릭이 자기를 묘한 얼굴로 물끄러미 바라보고 있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뭐야, 새삼스레 내 미모에 반하기라도 했어?”

“하하하! 아가씨의 외모가 훌륭한 편이긴 하지요!”

“흡! 쿨럭! 쿨럭!”

순간적으로 사레가 들린 나머지, 클라우디아는 연신 거친 기침을 토해냈다.

세드릭이 건넨 손수건으로 입가를 닦아낸 그녀는, 기쁨보다도 경계와 의심이 담긴 눈으로 세드릭을 응시했다.

“뭐, 뭔데, 또 무슨 수작을 부리려고?”

“매번 수작을 부리신 건 아가씨였지 제가 먼저 수작을 부린 기억은 없습니다만?”

“주인이 하는 짓을 수작이라고 말하지 마!”

“사소한 건 넘어가지요.”

“넘어가지 마!”

이 인간이 이제는 그냥 대놓고 주인 말을 무시하네.

클라우디아는 세드릭을 흘겨봤지만, 이내 뻔뻔하기 짝이 없는 그의 얼굴을 보고는 한숨을 푹 내쉬었다.

“그래서 진짜 뭔데. 뭐 할 말이라도 있어?”

“대단한 건 아닙니다만, 그냥 아가씨의 목표는 무엇인지 궁금해졌습니다!”

“목표?”

“무얼 해보고 싶다든가, 무얼 이루고 싶다든가, 어떤 사람이 되었으면 좋겠다든가. 그런 목표 말입니다.”

클라우디아의 입가에 비릿한 비웃음이 걸렸다.

“지금 내 최대 목표는 건방진 하인의 뺨을 마음껏 후려쳐 주는 거야.”

클라우디아로서는 나름 최선을 다한 비아냥이었지만, 정작 세드릭의 반응은 예상외였다.

“그러면 그걸 위해서라도 그에 걸맞은 노력을 하셔야 하지 않겠습니까!”

클라우디아의 어처구니없다는 듯한 반응을 내버려 둔 채, 세드릭은 태연히 말을 이어 나갔다.

“가장 알기 쉬운 건 체력을 단련하는 길이겠군요. 고작 10여 분 정도를 전력으로 뛰었다고 쓰러질 듯 헉헉거리는 수준으로는 절대로 저를 잡을 수 없을 테니까요!”

“마법을 습득하는 길도 있습니다. 『넝쿨을 자라게 하는 마법』『철창을 떨어트리는 마법』등 일부 주문은 누군가를 붙잡는 데 매우 큰 효과를 발휘하지요!”

“아가씨께서 키우고 계신 혈마수들을 훈련 시켜보는 것도 좋겠지요. 유능한 사냥개는 사냥꾼의 노고를 크게 덜어주는 법입니다!”

클라우디아는 침묵했다.

세드릭이 이 저택에 들어온 지도 그럭저럭 시간이 흘렀다.

그 말은, 세드릭은 이미 클라우디아의 하루 계획표가 어떤 식으로 흘러가는지를 꿰뚫고 있다는 뜻.

평민들에게는 그저 구름 위의 신선놀음처럼 보일 귀족 영애의 삶이지만, 사실 그녀들에게는 그녀들 나름의 고충이 존재한다.

언어, 문학, 종교 등 다양한 기본 교양과 음악, 무용, 회화 등 예술에 관한 교육을 받아야 했다.

각종 사교 모임에 나가 정치 활동을 하기도 했고, 저택의 안주인으로서 크고 작은 일들을 본인이 주관하기도 했다.

허나 클라우디아는 이 중 어느 것에도 해당하지 않았다.

그녀를 가르치기 위해 저택에 찾아오는 교사는 없었고, 클라우디아가 종교 활동에 나서는 일도 없었으며, 다른 영애와 교류를 나누지도 않았다.

먹고 자는 기본적인 활동을 제외하면, 하는 거라고는 그저 저택 여기저기를 돌아다니며 하인들을 괴롭히거나 정원에서 혈마수들과 놀아주는 정도가 전부.

아무리 그녀가 레드벨의 금지옥엽이라도, 아니 금지옥엽이기에 더욱 이해할 수 없는 모습이었다.

그걸 알기에 세드릭 역시, 지금 저런 식으로 질문하는 것이겠지.

‘왜 아무것도 하지 않으며 그저 시간을 보내느냐’라고.

복잡한 얼굴로 침묵하던 클라우디아의 눈빛에, 순간 짜증이 솟구쳤다.

그녀는 세드릭에게 쏘아붙이듯이 말했다.

“네가 뭘 안다고 멋대로 떠들어? 기껏해야 하인 주제에 내 고민을 해결할 수 있을 것 같아?”

싱글벙글하던 세드릭의 얼굴에서 미소가 사라졌다.

그는 진지하게 클라우디아를 마주보며 말했다.

“아가씨 말대로, 해결할 수 없을지도 모르지요.”

“…….”

“허나, 해결을 위해 최선을 다해볼 수는 있습니다. 적어도 머리를 맞대고 함께 고민해 드릴 수는 있습니다. 기간제라고는 해도 저는 당신의 하인이며, 당신은 저의 주인이니까요.”

“…….”

“그러니 부디 말해보십시오, 아가씨. 무엇이 아가씨를 그렇게나 괴롭히는 건지를요.”

클라우디아의 입술이 들썩였다.

귀족들의 상식으로 논하자면, 세드릭의 논리는 들을 가치조차 없는 말이었다.

언제 떠날지 모르는 외부인을 상대로, 어찌 속내를 털어놓을 수 있겠는가. 그 외부인이 자칫 바깥에서 이상한 말을 퍼트릴 줄 어찌 알고?

허나, 이미 외부 평판 따윈 반쯤 내던진 상태였던 클라우디아에게는 그 말이 제법 그럴듯하게 들렸다.

이 유능한 주제에 괴상하고, 괴팍한 주제에 섬세한.

그녀가 여태껏 한 번도 겪어보지 못했던 타입의 남자라면, 혹시 무언가 해답을 알고 있지 않을까.

결국, 클라우디아는 될 대로 되라는 듯한 태도로 입을 열었다.


레드벨 후작에게는 총 두 명의 부인이 존재했다.

첫 번째 부인은 줄리에타 플레인.

플레인 자작가의 여식이며, 후작이 지금처럼 레드벨 가문을 부흥시키기 전에 혼인했던 여인.

허나 레드벨 가문이 지금과 같은 성세를 이룬 뒤 그녀는 ‘불행한 사고’로 목숨을 잃어버렸고, 레드벨 후작은 곧바로 새로운 부인을 맞이했다.

그것이 두 번째 부인이자 클라우디아의 어머니인 로베리아 비르카.

성에서 알 수 있듯이 비르카 왕가의 공주였던 둘째 부인을, 레드벨 후작은 그야말로 끔찍이도 아꼈다고 한다.

그건 단순히 남녀로서의 호의가 아니었다.

왕가와의 혼인 동맹이야말로, 그가 몰락했던 레드벨을 다시금 부흥시켰다는 증거이자, 그에게 더 큰 야망을 꿈꾸게 해줄 수단이었으니까.

만약 후작과 로베리아 사이에서 사내아이가 태어난다면, 그 아이에게는 비르카의 왕좌를 이을 계승권이 주어진다.

계승권 자체는 그리 높지 않지만, 현 비르카 왕실의 어지러운 정세와 후작의 정치력을 고려한다면, 진지하게 왕국 그 자체를 손에 넣는 것도 가능한 수준.

하지만 로베리아는 몸이 약했고, 아이를 품는 것은 그녀에게 큰 부담이 되는 행위였다.

후작은 막대한 사재를 풀어 로베리아의 건강을 보강할 수단을 확보했고, 그 노력이 보답받았는지 부부는 어떻게든 첫 번째 아이를 지닐 수 있었다.

문제는, 그 첫 번째 아이가 딸이었다는 것.

비르카 왕국의 법률상 왕족 여성은 계승권을 지닌 아이를 낳을 수는 있어도, 그 본인이 계승권을 지닐 수는 없다.

후작은 낙담했지만, 그렇다고 그 실망을 노골적으로 드러내는 어리석은 행동을 저지르지는 않았다.

어떻게든 두 번째 아이를 가지면 된다고 여겼던 그는, 부인 앞에서는 열과 성을 다하며, 첫 번째 아이에게도 애정을 쏟는 모습을 보였다.

자기가 바라지 않는 자식이었다는 걸 알지 못한 채, 소녀는 어머니와 아버지의 사랑을 받으며 자라났다.

하지만, 소녀의 행복은 그리 길게 이어지지 않았다.

무리하게 둘째를 가지려 한 행위가 화가 된 것인지, 어머니가 출산을 견디지 못하고 배 속에 있던 동생과 함께 그대로 세상을 떠나버린 것이다.

소녀는 슬픔에 잠겼지만, 소녀에게 남겨진 유일한 가족은 소녀를 외면했다.

아무리 아버지에게 매달려도, 그의 칭찬을 받기 위해 애를 써도, 아버지는 소녀를 없는 사람처럼 취급했다.

“─아, 정확히는 완전히 없던 사람으로 취급한 건 아니야. 딱 한 번. 소녀의 아버지가 소녀를 걱정해 준 적이 있었거든.”

“잘못 넘어진 탓에 얼굴에 상처가 났을 때였지. 웬일로 소녀를 일으켜 세우더니, 아주 진중한 얼굴로 ‘다치지 않게 조심하거라’라고 말해줬거든.”

“소녀는 생각했지. 아, 아버지가 그래도 나를 생각해 주는구나. 어머니를 잃은 슬픔 때문에 잠시 이상해졌을 뿐, 여전히 마음속으로는 나를 사랑하는구나.”

“그래서 소녀는 ‘착한 아이’가 되기로 했어. 보채지 않고, 응석 부리지 않고, 공부도 열심히 하는 그런 아이.”

“그랬더니, 나중에 소녀의 아버지가 소녀에게 뭐라고 말했는지 알아?”

클라우디아의 입에 차가운 조소가 어렸다.

숨기기 어려운 모멸과 자조를 그런 날카로운 가시로 바꿔낸 채, 그녀는 말을 이어 나갔다.

“「잘하고 있구나. 스스로의 상품 가치를 높이는 방법을 잘 알고 있어. 덕분에 일이 편해졌다.」”

“「너를 신부로 맞이하고자 하는 귀족들이 무척이나 많다. 최선을 다해 구슬려 보거라. 이왕이면 곧 늙어 죽을 늙은이나, 치마폭에 거두고 휘두르기 좋은 사내가 좋겠군.」”

그렇다.

후작은 딸의 몸을 걱정한 것이 아니었다.

딸이라는 ‘상품’의 가치가 떨어질 것을 염려한 것이었다.

그걸 알게 된 순간, 소녀는 그동안 해왔던 노력이 모두 부질없게 느껴졌다.

“자, 네가 원하는 대로 고민을 말했어. 그러니 이제 말해봐. 이래도 내가 ‘성실하게’ 움직여야겠니? 내 상품 가치를 높여서, 아버지 손에 비싸게 팔리도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