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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3화 마검 포르테(Forte) (5) - 입학 면접
“뭐가 어쩌고 어째? 지금 말 다했어!?”
여성의 으르렁거림에 피나는 머릿속이 한순간 공백으로 물들었다.
이 사태를 어찌 해결해야 할지 몰랐기에 패닉에 빠진 것이다.
그리고 그 새하얀 백지 위로, 사악한 마검의 간교한 속삭임이 새어들어갔다.
《계약자여. 당황하지 마라. 내가 하는 말을 그대로 따라 한다면 틀림없이 이 사태는 해결된다.》
포르테의 목소리에는 짙은 확신이 담겨있었고, 혼란으로 가득 찬 피나의 머리는 그 삿된 마구니의 소리에 저도 모르게 홀리고 말았다.
피나는 본인이 무슨 말을 하는 줄도 제대로 모른 채, 그저 머릿속으로 들려오는 내용을 그대로 읊기 시작했다.
“실력 없는 놈들을 많이 합격시키면 문제라고 하셨나요? 그게 정말로 문제라면 학원에서 알아서 걸러낼 거예요. 혹여 걸러내지 못한다고 한들 그게 뭐 문제가 되나요? 저분들이 합격한다고 당신이 불합격이 되는 것도 아닌데?”
“아, 혹시 경쟁자들이 많아지면 성적 순위가 뒤로 밀릴지도 모른다고 걱정하시는 건가요? 그거라면 좀 죄송하게 됐네요. 전 일찌감치 여기에 자리 잡고 쉬고 계신 분이라서 당연히 실력도, 실력에 걸맞은 자신감도 갖추신 분이라 생각했는데 아니었던 모양이니까.”
“근데 책임 운운하는 말은 진짜 이해가 안 되네요. 책임을 논할 수 있는 건 그럴 자격이 있는 사람뿐인데, 혹시 위장한 상태로 학생 사이에 숨은 교수라도 되시나요? 아니면 일개 응시생이면서 다른 응시생을 규탄하고 처벌할 자격이 있다고 스스로 생각하시는 쪽이신가요? 후자라면, 음. 네 뭐, 이해할게요. 세상에는 자의식이 비대한 사람도 있는 법이니까요.”
무거운 침묵이 흘렀다.
처음 피나에게 시비를 걸었던 여성은 연이은 속사포에 점점 기가 눌리더니 이내 부들부들 떨면서 입을 다물었고, 결국에는 도주했다.
그리고 그제야, 하얗게 질려 있던 피나의 머릿속 역시 다시 정상으로 돌아왔다.
그러니까 본인이 뭔 말을 지껄였는지 뒤늦게 자각했다는 뜻이다.
“어, 아, 으아!?”
뒤늦게 그럴 의도가 아니었다고 변명하려 해도 이미 때는 늦은 상황.
“마, 마검님, 어제 어떻게 해요!”
《사건은 해결되지 않았나?》
“더 큰 문제가 생겼잖아요! 틀림없이 원한을 품으실 텐데…!”
《계약자여. 검을 휘두를 자격이 있는 건 검에 맞을 각오가 있는 자뿐이다.》
포르테의 목소리는 지극히 엄격하고 근엄하고 진지했다.
《만약 저 응시생이 시비를 건 대상이 계약자 네가 아니라 어디 성격 더러운 망나니 영애였다고 가정해 보지. 응시생이 어떻게 되었을 것 같나?》
“어…. 호, 혼났으려나요?”
《느닷없이 얼굴에 찻잔을 던졌을 거다.》
“설마!”
피나는 찻잔은 갑자기 어디서 튀어나왔냐고 묻지 않았다.
실력 좋은 검사가 칼을 가지고 다니고, 약쟁이 탐정이 파이프 담배를 가지고 다니듯, 악역 영애와 찻잔의 조합은 기본 소양이나 마찬가지였기에.
《그뿐만이 아니지. 지금 네가 말한 정도는 약과에 불과한 폭언을 내뱉거나, 고용 계약으로 상대를 쥐고 흔들거나, 온갖 짓궂음으로 처치 곤란한 일을 시켰을지도 모른다.》
“세, 세상에 그렇게나 악독한 사람이 실존하나요?”
《그래. 그런 의미에서 저 응시생은 행운이라고 할 수 있다. 이번 경험을 통해 앞으로는 상대가 누군지도 모르면서 함부로 덤벼드는 일은 하지 않을 테니, 사회적으로도 육체적으로도 전보다 안전해질 테니까.》
그때, 포르테가 한층 목소리를 내리깔며 말했다.
《물론, 이 방법은 계약자 너를 향한 주변의 부정적 이미지가 살짝 강해질 수도 있다는 부작용이 있다. 주인을 보좌하는 마검으로서는 통탄할 일이지. 다급한 상황이었다고는 해도 제대로 된 설명도 없이 저질렀으니, 네가 나를 원망한다 해도 어쩔 수 없는 일이야.》
“아니에요…!”
피나는 칼집에 들어간 검을 양손으로 움켜쥐고는 애절하게 말했다.
“마검님도 저를 위해서, 그리고 저분을 위해서 한 일이잖아요! 원망할 리가 없어요!”
《그게 사실인가?》
“네!”
《고맙다, 계약자여. 덕분에 내가 틀리지 않았다는 확신을 얻었다.》
“헤헤헤.”
피나는 깨닫지 못했다.
나름대로 목소리를 줄인다고 줄인 덕분인지 주변의 다른 응시생들은 그녀의 대화 내용을 알아듣지 못했지만, 사실 내용이 들리고 안 들리고를 떠나서 검에 대고 뭐라뭐라 중얼거리는 것만으로도 충분히 미친년으로 보인다는 사실을.
또한, 그림자 속의 대악마가 포르테를 향해 ‘대단한 건 알겠는데 절대로 닮고 싶지는 않은 대선배’를 보는 듯한 시선을 향하고 있다는 사실을.
피나 덕분에 2차 시험을 통과한 인원이 훨씬 많아져서일까.
그럭저럭 널널하던 대기석이 사람으로 가득 차려는 기색을 보이자, 시험관 라이제놀이 외쳤다.
“대기석 숫자가 부족할 것 같으니, 먼저 합격한 이들은 곧바로 3차 시험으로 넘어가도록 하게!”
라이제놀이 손짓으로 자기 뒤에 있는 오르막길을 가리키자, 사람들은 그 안내에 따라 걸음을 옮기기 시작했다.
피나 역시 어버버하면서 그 행렬에 합류했다.
1차 시험 때 시달린 기억 탓인지 오르막길을 오르는 사람들의 표정은 그리 좋지 않았지만, 다행히 3차 시험장은 그리 멀리 있지 않았다.
보다 정확히 말해, 그것은 시험장이자, 면접장이자, 동시에 문이었다.
샛길은 철저하리만큼 막혀 있고, 담벼락은 드높다 못해 아예 섬 외벽과 연결되어 있는, 그야말로 ‘학원에 들어가려면 반드시 이곳을 거쳐라’라고 주장하는 듯한 건물.
그리고 그 건물을 본 순간, 피나의 눈앞에 새로운 퀘스트가 떠올랐다.
【퀘스트: 일대일 면접】
【클리어 조건: 면접관에게 합격 인정을 받을 것】
【제한 시간: 없음】
【보상: 천공 학원 입학 권리】
【특이 사항: 순서를 지켜 차례로 들어갈 것. 대기 순번 6.】
앞선 두 퀘스트보다 상대적으로 짧은 내용이었지만, 그 임팩트는 훨씬 강렬했다.
합격이 눈앞까지 다가왔다는 생각에 응시생들이 눈을 빛낸 그 순간, 건물의 입구에 부착된 넓은 판때기 같은 것이 빛나더니, 이내 그곳에 문자가 떠올랐다.
─대기 순번 1번. 입장.
사람들이 1번을 찾기 위해 두리번거리는 도중, 가장 먼저 앞으로 나선 것은 아까 전 피나와 언쟁을 벌였던 여성이었다.
제법 고급스러운 장비와 의복을 갖춰 입은 그녀는 피나에게 흘끗 시선을 향한 뒤, 고개를 휙 돌려 건물 안으로 나아갔다.
안정적인 걸음걸이나 곧은 자세를 보고 있으면 상당히 좋은 교육을 받았다는 것이 느껴져, 포르테가 ‘엘리트’라고 표현한 이유를 알 수 있을 것 같았다.
체감상으로는 대략 5분 정도의 시간이 흐른 뒤, 건물 앞 기이한 판때기에 적힌 글자가 바뀌었다.
─대기 순번 2번. 입장.
이번에는 곰처럼 커다란 체격에 응시생 중에는 제법 연령이 높아 보이는 사내가 성큼성큼 건물 안으로 들어섰고, 그런 과정이 반복되는 와중, 마침내 피나의 차례가 찾아왔다.
잔뜩 긴장한 모습으로 건물에 들어선 피나.
그런 그녀를 제일 먼저 맞이한 것은 긴 복도였다.
아니, 정확히 말하자면, 그 건물에는 오직 일직선으로 쭉 뻗어진 복도만이 존재했다.
위도 아래도 양옆도 모두 새하얀 복도를 어느 정도 걷고 있으니, 복도 한복판에 덩그러니 자리 잡은 책상과 그곳에 자리 잡은 한 남성의 모습이 보였다.
살짝 빛이 바랜 머리카락 갈색 머리카락과 네모난 안경이 특징적인 그는, 피나에게 흘끗 시선을 향하고는 말했다.
“어서 오십시오. 거기 의자에 앉으시면 됩니다.”
“네, 넵.”
피나는 살짝 목소리를 떨며 대답했다.
2차 시험관이었던 라이제놀과 달리 남자의 태도는 무척이나 정중했으나, 동시에 선을 긋는 듯한 냉철함이 함께 느껴졌다.
자리에 앉자마자 느껴지는 압박 면접의 기색은 내향성 소녀에게는 천적이나 마찬가지.
《진정해라, 계약자. 너의 등에는 내가 있다는 걸 잊었나?》
곁에서 조언을 건네는 포르테의 존재에 이 이상 없을 안도감을 느끼며, 피나는 호흡을 가다듬었다.
시험관이 입을 열었다.
“지금부터 몇 가지 질문을 건넬 테니 그에 대답해 주시면 됩니다. 그리 길진 않을 테니 걱정하지 마시고요.”
“네.”
“그러면 첫 번째, 천공 학원에 입학 하려는 동기는 무엇입니까?”
“어….”
피나는 잠시 고민했다.
진실은 물론 ‘아빠가 마음대로 지원서를 넣어서’였지만, 그걸 곧이곧대로 말하는 건 좀 아니다 싶었기 때문이다.
《반드시 멋지고 그럴듯한 대답을 할 필요는 없다. 그냥 학원에 다닌다면 뭘 하고 싶은지, 어떤 일이 있으면 좋겠는지를 이야기하면 충분해.》
하고 싶은 것. 바라는 것.
두 키워드를 머리에 집어넣은 뒤, 피나는 조심스레 입을 열었다.
“친구…가 생기면 좋겠어요.”
“친구입니까?”
“네. 가문의 이름이 어떻다든가, 정치적인 고려가 어떻다든가, 무슨 거창한 꿈 같은 건 신경 쓸 필요 없는, 그냥 시시콜콜한 이야기를 나눌 수 있는 친구요.”
“흐음.”
피나의 대답이 조금 예상외였는지, 시험관이 조금 오묘한 표정을 지었다.
피나는 혹시 실수라도 했나 싶어 안절부절못했지만, 다행히 시험관은 그 이상 추궁하는 일 없이 다음 질문을 내뱉었다.
“학원은 학생들에게 수많은 성장의 기회를 주지만, 동시에 여러분을 위험으로 몰아넣기도 합니다. 입학하는 걸로 끝이 아니라, 그 이후에도 수많은 난관이 있으리라는 뜻입니다. 자칫하면, 생명의 위기를 겪을 수도 있고, 실제로 무사히 졸업하는 학생의 수는 입학생에 비해 확연히 적습니다. 그런데도 입학을 원하십니까?”
이쯤 되면 경고라기보다도 으름장에 가까웠다.
피나는 순간 이대로 탈락해서 아빠와 극한 부트 캠프를 체험하는 편이 차라리 안전하지 않을까 하는 근본적인 의문을 떠올렸지만, 그 순간 마검이 끼어들었다.
《인생에 위기란 언제나 찾아오는 법이지. 중요한 건 위기에 합당한 보상과 휴식이 존재하느냐다.》
“그, 제대로 된 보상과 휴식만 있다면 괜찮을 것 같아요.”
“보상과 휴식이라.”
시험관이 고개를 주억거렸다.
답변이 마음에 든다는 듯한 반응이었다.
“그렇다면 안심해도 좋습니다. 위대한 천공의 현자께서는, 험난한 길을 걷는 이들에게 제대로 된 보답이 있으면 좋겠다는 일념으로 이곳을 만들어내셨기 때문입니다. 수많은 선택과 수행에는 그에 걸맞은 보상이 따를 것이며, 그 보상에는 휴식 역시 포함될 겁니다.”
면접 분위기가 살짝 풀어진 걸 느끼고, 피나 역시 잔뜩 움츠러들었던 어깨를 조금 펼쳤다.
그 뒤에도 특기 분야라든가 배우고 싶은 학문처럼 소소한 질문이 오갔고, 마침내 마지막 질문이 던져졌다.
“당신이 생각하는 ‘용사’란 무엇입니까?”
그리 말하는 시험관의 시선은 상당히 의미심장한 것이, 피나의 대답을 꽤 기대하는 모양새였다.
하기야 천공 학원의 시험관, 그것도 면접 담당쯤 되면 피나의 신분이나 가문에 대해 모르는 것이 더 이상한 일이었다.
이번 질문만큼은 포르테도 개입하지 않았다.
피나가 어떤 대답을 할지 그 역시 궁금했기 때문이다.
용사의 성과 피를 이어받은 소녀는, 이번만큼은 크게 고민하지 않고 대답했다.
“짐을 포기하지 않은 사람이요.”
시험관이 의아함을 드러냈다.
“흠, 짐이라는 건 숭고한 의무를 비유적으로 표현한 겁니까?”
“아뇨, 그, 꼭 숭고하지 않아도 괜찮아요. 나 대신 가서 누구 좀 때려주라는 걸 수도 있고, 평화로운 시대에서 뒹굴거리며 살고 싶으니까 이기라는 걸 수도 있어요. 물론 개중에는 말씀하신 것처럼 굉장하고 숭고한 내용도 있겠죠. 어쨌든 수많은 사람들의 소원이 있었을 거고, 그건 정말로 무거웠을 거예요. 그런 걸 짊어질 수 있는 사람이니까, 용사가 아닐까요.”
피나의 말투는 덤덤했지만, 동시에 ‘나는 그렇게는 무리’라는 뉘앙스도 담겨있었다.
납득할 만한 대답이었는지, 시험관이 고개를 끄덕였다.
“알겠습니다. 그리고 아까 빼먹었던 걸 말해야겠군요.”
“네?”
“마법 담당 교수 로웰이라고 합니다. 앞으로 잘 부탁드리지요, 피나 발레스티아 학생.”
【‘퀘스트: 일대일 면접’에 성공하셨습니다.】
【‘천공 학원 입학 권리’를 획득합니다.】
허공에서 지팡이를 떠올리게 하는 배지가 출현하더니, 본래 피나가 지니고 있던 배지와 합쳐져 온전한 형태를 이루었다.
지팡이, 검, 메이스가 서로 엇갈려 균형을 이룬 배지를 보고, 피나는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입학 성공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