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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1화 마검 포르테(Forte) (3) - 작은 선의의 가치
“수백을 넘는 인원에게 동시에 같은 내용을 보여주는 환영이라고?”
“마력 반응은 조금도 느껴지지 않았는데?”
“디스펠도 안 먹혀. 대체 무슨 구조지?”
갑작스럽게 나타난 메시지에 당황을 금치 못한 것은 마법이란 학문에 대해 어느 정도 사전 지식을 갖춘 이들이었다.
그들의 상식으로 봤을 때 지금 일어난 현상은 도저히 납득할 수가 없는 것이었기 때문이다.
“음… 마법 같은 건가? 대단하군!”
“허어, 과연. 중부 최고의 학원이라는 말은 허명이 아닌 모양이야.”
“아무튼 위로 올라가라 이거지? 꽤 높긴 해도, 3일이면 뭐.”
그리고 이런 면에서는, 오히려 지식이 없는 이들의 행동이 더욱 재빨랐다.
마법에 대해서 잘 알지 못하니 이 현상이 얼마나 굉장한 건지 이해하지 못하고, 대충 흘려 넘긴 것이다.
하나둘씩 계단을 올라 위로 향하는 이들을 따라, 피나 역시 계단을 오르려 한 그 순간이었다.
《잠깐 기다려라. 오르기 전에 확인할 게 있다.》
“네?”
마검의 만류에, 피나는 고개를 갸웃했다.
피나가 갑작스레 걸음을 멈추자, 뒤에 있던 남자가 날이 선 목소리로 말했다.
“거, 안 올라갈 거면 비키시오.”
“아앗, 네. 죄송합니다….”
피나는 재빨리 쭈그러든 뒤 사람들 통행에 방해가 되지 않는 가장자리로 몸을 옮겼고, 그런 그녀를 무시한 채 사람들은 차례차례 계단을 오르기 시작했다.
그 모습을 지켜보다가, 피나가 재차 마검에게 물었다.
“저기, 확인해야 한다는 게 뭔가요?”
《퀘스트 창의 내용을 다시금 읽어봐라. 내 쪽에서는 보이지 않으니까.》
“으음. 잠시만요.”
피나는 눈앞에 있는 반투명 판때기에 적힌 내용을 쭉 읽어내렸고, 이를 확인한 마검이 말했다.
《제한 시간이 3일이라. 계약자여. 눈대중이라도 좋으니 한번 바깥에서 탑을 봐라. 저게 3일 동안 올라야 할 정도의 높이인가?》
“어.”
피나는 잠시 탑 바깥으로 빠져나와 그 높이를 살펴보았다.
확실히 탑은 높았다. 평범하게 계단을 타고 올라야 한다고 생각하면 다소 아득함마저 느껴질 정도.
다만 그래봐야 지상에서 그 끝을 눈으로 볼 수 있는 수준이었다.
다소 느긋하게 오른다고 해도 하루 이상은 걸리지 않을 터.
그런데도 제한 시간이 3일이라고 한다면, 그 결론은….
“…천공 학원 분들이 많이 상냥하신 걸까요?”
《으음.》
마검 포르테는 잠시 난감함을 느꼈다.
선배(?)들이 가르치거나 이끌었던 파트너들은 대개 이쯤 되면 척하고 알아차렸던 것 같은데, 뭔가 이번에는 쉽지가 않았다.
《단순히 탑을 오르는 게 전부가 아니라는 뜻이다. 뭔가 함정이나 특수한 기믹이 숨어 있을 가능성이 크지.》
“오오, 마검님. 똑똑하시네요!”
짝짝, 하고 박수를 치며 감탄하는 피나.
그 기이한 모습에 몇몇 이들이 의아한 시선을 향했지만, 당사자는 전혀 눈치채지 못했다.
《아무튼, 이대로 곧바로 오르는 건 그리 현명치 않아. 마침 근처에 도시가 있었으니, 그곳에서 몇 가지 물품을 챙기는 게 좋을 거다.》
도시까지 거리는 도보 기준 한 시간 이상.
“넵.”
왕복에 걸리는 시간과 물품 구매까지 생각하면 세 시간 이상 소모되는 만큼 시간 낭비가 아니냐며 반론할 수도 있었지만, 피나는 시원스레 고개를 끄덕였다.
먼저 제안한 포르테 쪽이 살짝 당황할 정도의 주저 없는 행보였다.
나름 잘나가는 집안 후손답게 금전적으로 제법 풍족한 피나는 압축 주문이 걸린 대용량 가방과 물통.
설탕, 초콜릿 등의 고열량 간편식, 그 외에 여러 물품을 구매한 뒤 다시금 탑으로 돌아왔다.
이미 다들 탑 위로 올라갔으리라는 예상과 달리, 탑 주변에는 아직 사람이 우글우글했다.
그것도, 하나같이 어두운 표정을 한 채로.
“빌어먹을, 저딴 걸 어떻게 올라가란 거야?”
“맨몸으로는 무리야. 철저하게 준비를 갖춰야겠어.”
개중에는 한발 늦게 도시 쪽으로 향하려는 이들도 있었는데, 그들은 도시 쪽에서 넘어온 듯한 피나를 보고 잠시 무언가를 고민하는 기색이었지만, 짐의 크기가 그리 크지 않았던 덕분인지 이내 시선을 돌리고는 발걸음을 재촉했다.
《압축 가방을 산 보람이 있었군. 괜히 많은 물건을 가지고 있다는 걸 드러내서 좋을 게 없지.》
“그, 그러게요. 혹시 말 걸면 어쩌나 싶어서 살짝 겁먹었는데.”
《…탑 내부로 서둘러 들어가는 게 좋다. 선공 시 강제 퇴출 규칙이 있으니 바깥보다 안전할 테니.》
“넵.”
피나는 종종걸음으로 탑에 돌입했고, 이내 계단을 향해 걸음을 내디뎠다.
탑의 계단을 차근차근 오르기를 얼마쯤이었을까.
이상 현상은 곧바로 발생했다.
처음에는 사람 셋이 나란히 오를 수 있을 정도였던 계단의 폭.
그것이 옆으로 점점 넓어지기 시작한 것이다.
처음에는 얼추 건축 기술의 일종이라고 우길 수 있을 정도였지만, 탑 전체의 지름보다 계단의 좌우 폭이 더 넓어진 뒤에는 그런 말도 무의미했다.
심지어 풍경마저도 뒤바뀌어서, 나무 벽은 어느새인가 사라져 좌우로 넓은 들판이 보였고, 계단은 어느새인가 완만한 오르막길로 변한 상태였다.
하늘에서는 무시무시한 햇볕이 내리쬐며 참가자들에게서 체력과 인내심을 빼앗고 있었는데, 그들은 땀을 뻘뻘 흘리면서 힘겹게 오르막길을 오르고 있었다.
“우와아. 마검님 말대로 올라가는 거 자체가 쉽지 않네요.”
조금 질린 듯한 모습으로 피나가 중얼거렸다.
두 시간 넘게 계속 계단과 오르막길을 오른 탓인지 그녀의 이마에도 살짝 땀방울이 맺힌 상태.
그나마 물이 넉넉한 피나의 경우 조금 힘들다 뿐이지 이동 자체에는 별다른 문제가 없었지만, 탑을 가볍게 보고 도전한 이들은 하나같이 목이 말라 죽겠다는 얼굴로 헉헉대고 있었다.
그리고 원래 사람은 극한 상황에 몰리면 생각이 짧아지는 법.
“어이, 너. 그 물 내놔!!”
“하? 개소리하지 말고 꺼져.”
“내놓으라고 했잖아!!”
“어, 어어!? 오지 마! 오지 말라고! 커억!”
입학 시험 응시자 중 한 명이 다른 한 명에게 덤벼들었고, 상대를 주먹으로 대뜸 후려친 뒤 물주머니와 가방을 함께 강탈했다.
가히 산적을 연상케 하는 야만스러움이었지만, 힘 좀 꽤 쓴다 하는 이들 중 적잖은 인원들이 인내심과 자제력이 부족한 걸 생각하면 그리 이상한 건 아니었다.
허나, 물주머니를 들고 기뻐하던 응시자는 이내 경고 메시지를 무시한 대가를 치러야만 했다.
응시자가 손에 든 물주머니를 들어 입에 대기도 전에, 그의 발밑이 뻥 뚫리는 듯하더니, 그 몸이 그대로 지상을 향해 추락했기 때문이다.
짧은 비명과 함께 응시자가 사라지자, 지면은 언제 뚫려 있었냐는 듯이 다시 본래 모습으로 돌아왔다.
문제는, 응시자가 빼앗은 물주머니와 가방까지도 함께 추락해버렸다는 점이었다.
“아, 안 돼! 갈 거면 혼자 가야지 왜!!”
아차하는 사이에 짐이란 짐은 모조리 잃어버리게 된 청년이 절망하는 모습을 보며, 포르테가 담담히 중얼거렸다.
《흠. 공격을 저지른 후 추방당하기까지 생각보다 텀이 있군. 계약자여, 기습을 조심해라.》
“네.”
청년은 잠시 동안 구멍이 뚫려 있던 장소를 멍하니 바라보고 있었지만, 이내 이를 악물고는 다시 길을 오르기 시작했다.
그 모습을 곁눈질하던 피나 역시, 다시금 앞으로 나아갔다.
길은 점점 넓어졌고, 험해졌으며, 사람들의 모습 역시 점점 많아졌다.
개중에는 아예 마력으로 몸을 강화하며 빠른 시간 내에 높이 올라온 이들도 있는 듯했지만, 이는 한계가 명확한 방법이었다.
보통 마력으로 몸을 강화할 수 있는 수준은 3위계 정도인데, 이렇게 강화된 신체 능력은 그 한계가 야생 짐승 수준이었기 때문이다.
전투나 단거리 이동에선 일반인에 비해 압도적인 유리함을 보여도, 지금처럼 장거리를 꾸준히 이동하는 면에선 어느 정도 제약이 있었다.
결국 휴식과 음식 섭취로 에너지를 보충해 줘야 하는 건 똑같았으니까.
심지어 쨍쨍하던 하늘이 어두워지며 으스스한 바람이 불어오기 시작하니, 사람들은 더 이상 위로 올라갈 생각을 하지 못하고 저마다 급조한 쉼터에서 휴식을 취하기 시작했다.
물론 그 쉼터의 퀼리티는 그리 뛰어나지 않았다.
세상에 학원 입학시험을 치르는데 캠핑용품 따위를 챙기려는 이들은 드물었기 때문이다.
반대로 말하자면, 드물게나마 있긴 있었다.
이리저리 곳곳에 세워진 천막을 살펴보며, 피나가 눈을 껌뻑였다.
“준비성이 철저한 분들이 많네요!”
《가끔 텀이 있긴 해도, 기본적으론 년마다 치러지는 시험이다. 이전 응시자나 합격자에게서 정보 수집을 한 이들이 없진 않겠지. 아무리 학원 쪽에서 교수를 바꿔 랜덤성을 부여한다고 해도 한계는 있으니까.》
“과연.”
《너도 슬슬 휴식을 취해라. 아직 이틀 이상 여유가 있으니 초반부터 너무 무리할 건 없다.》
“그렇지만, 3일 내내 쉬지 않고 올라가야 도착하는 높이면 어떻게 하죠?”
《그거라면 초반 합격자가 너무 적어. 1차 시험이라는 의미가 퇴색된다.》
“아하. 그것도 그렇네요.”
피나는 고개를 끄덕인 뒤, 이내 배낭에서 애벌레 형태의 침낭과 적당한 크기의 넓은 천 하나를 꺼내 든 뒤 잠자리에 들 준비를 했다.
제대로 된 천막을 세우기에는 너무 눈에 띄기도 했고, 준비 과정도 번거로웠기 때문이다.
평평하고 기울기가 거의 없는 지형을 골라 천을 깔고, 그 위에 침낭을 놓아 잠에 빠지려던 그때.
문득, 피나의 시야에 다른 응시자의 모습이 들어왔다.
“헉, 허억….”
상대는 피나의 기억 속에 있는 인물이었다.
아까 전 다른 응시자 때문에 짐을 잃어버렸던 청년.
제대로 된 수분 보충도, 휴식도 없이 계속 길을 걸은 탓인지 청년의 얼굴은 언뜻 봐도 알 수 있을 만큼 초췌해져 있었고, 팔다리가 후들거리는 게 먼 곳에서도 보일 정도였다.
청년은 제대로 된 침구는커녕 몸을 덮을 거적때기 하나 없이 대충 길바닥에 누우려는 모습이었는데, 저 상태로 잠에 빠졌다간 진짜로 큰 일이 생길지 모른다는 느낌이 들었다.
물론, 그건 피나와 포르테와는 관계가 없는 일이었다.
누군가의 방해 탓에 짐을 잃어버린 청년의 불행은 안타까운 일이지만, 그런 것까지 포함해서 이 입학시험의 일부일 테니까.
하지만 어째서일까.
그 모습을 본 피나는 묘하게 안절부절못하는 기색을 드러냈다.
“저기, 그, 마검님?”
《왜 그러지?》
“저분을 도와드리면, 뭔가 문제가 생기거나 그럴까요?”
《문제가 생긴다면 생기겠지. 일단 잠재적으로 경쟁자를 돕는 일이고, 뭣보다 도움을 받았다고 해서 상대가 꼭 그에 보답하리란 법은 없으니. 오히려 좀 더 내놓으라고 적반하장으로 나올 가능성도 없지는 않다.》
“그, 그렇죠.”
그리 고개를 끄덕이면서도, 피나는 영 아쉬운 기색이었다.
포르테는 의문을 느끼고는 질문했다.
《굳이 돕고 싶은 이유가 있나? 용사의 후손으로서의 사명감?》
“그렇게 거창한 건 아니에요.”
피나는 잠시 눈을 이리저리 굴리더니, 이내 에헤헤, 하고 헤픈 웃음을 흘렸다.
“그냥 지금은 어둑어둑하니까 남의 눈에 띄지도 않고, 조용히 물이랑 먹을 것 조금만 건네주는 거면, 괜히 멋쩍을 일도 없이 할 수 있을 거 같아서요.”
대답이 되는 듯 되지 않는 말이었다.
돕고 싶다고 말하면서도 동기가 아니라 주변 상황에 대해 말했으니 그럴 수밖에.
《뭐, 나쁠 건 없겠지. 단기적으로 봤을 땐 경쟁자를 돕는 일이지만, 장기적으로 봤을 땐 학원 생활을 함께할 지도 모를 우호적인 아군을 만드는 일이다. 게다가 도왔을 때 보답이 돌아올지 어떨지는 불확실하지만, 돕지 않았을 때 보답이 돌아오지 않는 건 확실하다.》
“그렇죠? 그러면 괜찮겠죠?”
눈을 번쩍인 피나는, 가방에서 예비 물주머니랑 식량 약간, 담요 하나를 주섬주섬 꺼내 청년에게 다가갔다.
청년은 피나의 기척을 느끼고는 경계하는 듯했지만, 피나는 청년이 뭐라고 말을 하기도 전에 일방적으로 고했다.
“이거, 그, 괜찮으시면 쓰세요! 안 괜찮으시면 안 쓰셔도 돼요!”
툭.
후다닥.
청년 앞에 물자를 놔둔 뒤, 그대로 등을 돌려 후다닥 달아나는 피나.
상대는 이게 뭔 일인가 싶어 벙찐 기색이었지만, 이내 피나가 모습을 감춘 걸 깨닫고는 조심스레 물주머니에 손을 뻗었다.
긴가민가하는 얼굴이었던 것도 잠시.
꿀꺽꿀꺽 물을 열심히 들이킨 청년은, 잠시후 캬! 하는 탄성을 내뱉었다.
이제야 좀 살겠다는 듯한 반응이었다.
그는 멀리서 힐끔힐끔 눈치를 살피던 피나에게 꾸벅 고개를 숙여 감사를 표했고, 피나는 멋쩍은 듯이 뺨을 긁적인 뒤 상대에게서 좀 더 거리를 벌려 새로운 곳에 거점을 만들었다.
《흐으음.》
그 모습을 포르테는 묵묵히 지켜보았다.
그리고 평가했다.
나쁘지 않군.